〈 91화 〉 십일장 내기, 경쟁 (6)
* * *
처절하다.
자리에서 견동을 바라보는 이들이 모두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따지고 보면 고작 비무.
영약이 걸려있다곤 하나 저렇게까지 눈물 콧물을 짜며 임해야 할 승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승부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는 견동의 모습은 ‘처절하다’외의 감상을 떠올릴 수 없는 형태였다.
“끄아아…!”
견동이 또 한번 달려들었다.
목리원이 검을 크게 휘둘러 견동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벽우림을 상대했다.
날파리를 쫓는 듯한 검이었다.
물론 목리원이 그런 의도를 지닌 채 휘두른 것은 아니었으나, 보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수였다.
압도적인 기량 차이에 기인한 결과였다.
견동은 바닥에 누워 헥헥 숨을 내뱉으면서도 목리원을, 벽우림을 노려봤다.
그리고 또 비틀비틀 일어서기 위해 땅을 짚었다.
이젠 목리원도 그 근성에 슬슬 견동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어찌 저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목리원은 견동을 몰랐다.
그가 진원단주라는 것 외에는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어떤 내막을 지닌 사람이고 이 승부에 무슨 마음으로 나왔는지까지.
…아니, 이 비무가 왜 성사된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목리원은 견동이라는 인간 자체를 볼 수 있었다.
목리원이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바라본 견동은.
‘무인.’
훌륭한 무인(?人)이었다.
목리원의 입가에 싱긋 미소가 떠올랐다.
‘굴하지 않는 의지는 중하다.’
스승의 가르침 중 하나였다.
제아무리 강대한 공력이 있다 한들, 절세의 무공이 있다 한들 의지가 없으면 빈 껍데기일지니.
무인으로서의 본은 굳센 의지에서 뻗어 나오는 것이리라.
‘역시 단주는 다르구나!’
오해였다.
견동은 겁쟁이었고 승부에 진심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가 일어서는 이유는 그저 울분이었고, 발악이었다.
물론 지금은 중요치 않은 일이었다.
채앵!
목리원은 견동이 마음에 들었다.
꺾이지 않고 일어서는 의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가 일류의 무인인 것은, 무학적 이해는 이류도 겨우 닿는 하수라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목리원은 견동과 겨뤄보고 싶었다.
“…당신과는 그만해도 될 것 같소.”
그 말에 벽우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뜻을 이해하는데 그리 큰 수고가 필요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 정도로 목리원의 시선은 견동에게만 꽂혀 있었다.
이것은 모욕이었다.
동급의 무인이 자신을 두고 하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신과는’이라는 말로 제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명백한 모독이었다.
벽우림은 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검을 쥐며 목리원에게 달려들었다.
“감히!”
순간 목리원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승리를 위해 이미 힘이 다한 아군을 몰아넣는 것은 정도에 맞지 않소.”
그 말과 함께, 목리원이 검을 휘둘렀다.
초식도 없었다.
그저 느릿하게 뻗어 나온 검이 벽우림의 검을 휘감았고, 이내 ‘탕!’ 소리를 일으키며 두동강 냈다.
그리고.
빠악!
벽우림의 명치에 목리원의 발이 꽂혔다.
“꺼헉…!”
내력을 실은 발차기였다.
정양이 필요한 부상.
목리원은 이미 벽우림의 검을 모두 흡수했다.
“그럼….”
쓰러진 벽우림을 확인한 목리원이 견동을 돌아봤다.
그는 헉헉 숨을 내쉬며 핏발 선 눈으로 검을 꼬나쥐고 있었다.
검 끝이 덜덜 떨렸다.
“단주님만 남았구려.”
싱긋 웃는 목리원의 미소는 상쾌했다.
또한 몸엔 부상이랄 것이 단 한 자락도 보이지 않았다.
엉망진창인 견동과 모든 면에서 대비되고 있었다.
목리원은 물었다.
“단주께선 왜 계속 일어나는 것이오?”
“흐으….”
“충분히 의지를 보이셨소. 승부에서 물러나지 않는 웅심을 보이셨소. 한데 어찌하여 또 일어서는 것이오?”
“끄….”
견동은 비틀대는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세우며 목리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나 잘 되지 않았다.
징징 귀가 울려 소리가 퍼진 까닭이다.
견동이 들은 것은 ‘왜’라는 의문뿐이었다.
‘왜….’
이유를 묻는다.
그리고 견동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 한방….”
“음?”
“한방… 흐으… 한방만 먹이려고 그러오….”
탁!
견동이 발을 내디뎠다.
“안, 그러면… 억울해서…!”
목리원의 눈이 슬쩍 커졌다.
그러다 곱게 접혔다.
“그렇소?”
목리원의 안색은 한껏 기꺼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럼 해보시오.”
목리원이 왼팔을 허리 뒤에 댔다.
발은 땅을 바로 디디고 있었고, 몸은 일자로 쭉 뻗어 있었다.
“여기서 움직이지 않겠소. 보법을 쓰지도 않겠소. 몸을 흔들지도 않겠소.”
검끝은 정확히 견동을 향했다.
“자, 단주께서 다가오시기만 하면 되오.”
얼핏 조롱으로도 비칠 수 있었다.
이 말을 하는 목리원의 목소리에 존중이 묻어있지 않았더라면, 그의 미소가 조금만 뒤틀려 있었더라면.
분명 이는 조롱이 되었을 터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는 이런 언행을 하고 있음에도 여실히 느껴질 정도의 존중을 견동에게 보이고 있었다.
뿌득
견동은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또 발을 내디뎠다.
약 15보.
직전 꽤나 멀리 튕겨나간 탓에 내달릴 거리가 길었다.
즉 도움닫기를 할 거리가 충분했다.
견동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 걸음에 힘을 더했다.
절뚝대는 걸음이 바른 걸음으로 화한다.
그것이 또다시 뜀박질로 화한다.
추했다.
그리고 역시 처절했다.
“으아아아아!”
탁!
견동이 뛰어올랐다.
제대로 자세조차 잡지 않은 채 체공한 견동이 목리원을 노려보며 검을 내리긋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울분이, 억울함이, 분노가 묻어난 검이 쏘아졌고.
튕겨 나갔다.
“훌륭한 수였소.”
채앵!
손에서 놓친 검이 허공에 붕 떠오르고, 뒤를 이어 목리원이 검면으로 견동의 왼쪽 허리를 쳤다.
퍽!
둔탁한 소음과 함께 견동의 눈이 뒤집혔다.
기절이었다.
“묵룡! 승!”
*
와아아아!
비무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
순간적으로 무의식 아래로 빠졌던 견동의 의식을 끄집어 올리는 소리였다.
견동은 부스스 눈을 떴다.
그러자 용봉단 쪽으로 손을 들고 있는 심판 기태운과 제게 다가오고 있는 목리원이 보였다.
머리는 조금 맑아진 상태였다.
견동은 그제야 탄식을 내뱉었다.
‘졌구나….’
이제 모두 끝났다.
끝끝내 저 빌어먹을 놈의 재능에 단 한 대도 먹여주지 못하고.
삼류 왈패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목소리를 키우다 제 무덤을 파서 스러지게 됐다.
견동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얄궂게도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이다.
‘결국 저 하늘조차 내 패배가 아닌 묵룡의 승리를 축하하는구나!’라고 생각할 떠올릴 정도로 견동은 처참한 마음이었다.
다가온 목리원이 입을 연 것은 그런 순간이었다.
“좋은 비무였소. 내 배움을 얻었구려.”
견동은 누운 채로 목리원을 바라봤다.
입가엔 헛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 저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인지, 그리 심하게 두드려 패놓고도 ‘좋은 비무’ 따위의 말을 하는 게 얄미워 견동은 말했다.
“뭐가 좋은 승부요. 이렇게 처참히 깨졌는데.”
더는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유일한 피붙이였던 조부가 저를 내칠 테니 이제 길바닥에 나앉는 신세다.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 터였다.
아니, ‘그때 그런 놈이 있었지’하고 추억팔이하듯 한번은 이름이 나올까.
견동이 허탈함에 큭큭 웃자, 목리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처참하지 않았소.”
“뭣이오?”
“훌륭했소.”
견동의 얼굴이 요상하게 찌푸려졌다.
목리원은 그 얼굴에 씨익 웃으며 답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잖소.”
목리원이 손을 내밀어 견동의 상체를 일으켰다.
“무학에서 내가 앞섰을 뿐이오. 의지만큼은 내가 졌소. 그 정도로 단주께선 훌륭히 본을 보이셨소.”
견동은 어안이 벙벙했다.
목리원의 말은 당장 이해하기엔 너무 갑작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것에 무어라 질문을 더하려던 와중,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환호성은 없었다.
그저 짝짝 소리.
그리고 썩 흡족해 보이는 미소들이 있었다.
견동이 이들의 반응을 이해한 것은 다가온 기태운의 말이 있던 이후였다.
“근성은 있으시구려.”
그리 말한 기태운이 견동의 어깨를 툭툭 치고 자리에서 내려갔다.
견동이 시선을 돌리니 백검대주 권표월과 적운대주 강찬이 있었다.
강찬은 소리쳤다.
“거 실력은 좀 키워보시오! 그래도 단준데 다음엔 한 대라도 먹여봐야 하지 않겠소!”
껄껄 웃으며 내뱉은 말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찬은 이후 권표월에게 끌려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견동은 그제까지도 멍했다.
그의 뇌리에는 계속해서 ‘다음에’라는 말이 맴돌고 있었다.
‘다음….’
다음이 있을까.
조부께서 자신을 내치면 그것으로 끝인데.
그리 생각하던 견동은 흠칫했다.
‘…조부께서 내치면 다 끝인가?’
조부 견궐은 내각주다.
그의 눈 밖에 나면 맹에서의 입지가 좁아진다.
하나, 따지고 보면 그뿐인 일이었다.
단주와 대주직에 사람을 올리는 것은 결국 맹주다.
이미 있는 사람을 사퇴시키는 것 또한 맹주다.
‘…다음이 있다.’
견동은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조부님의 인정만을 바라고 있었구나….’
이리 추해질 때까지 그것만을 바라보며 달려왔구나.
그것이 아니면 그 무엇도 없으리라 생각하며 달려왔구나.
참으로 어리석고 좁은 시야다.
견동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봤다.
아직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무인들이 있었고, 박수를 치는 단원들도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목리원이 있었다.
“단주?”
목리원의 물음에 견동은 울컥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을진대.’
조부께 인정받지 못한다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었을진대 왜 그다지도 그 일에 목을 맸던 것일까.
왜 그것밖에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다.’
사실 조부의 인정이 아니더라도 자신은 살 수 있었다.
알고 있었다.
그걸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홀로 서는 것이 두려웠을 뿐이다.
주르륵 견동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자 목리원이 깜짝 놀라 허둥댔다.
자리에 남아있던 무인들은 ‘저 인간이 왜 저러나’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견동은 울면서 울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조부의 눈 밖에 난다고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아니, 조부의 그늘에서 벗어나야만 보이는 더 넓은 세상이 있었다.
태생의 천함이나 무공의 일천함으로 저를 재단하지 않는 이들이, 그저 그 순간의 의지만을 바라봐주는 이들이 이다지도 많았다.
“다, 단주…!”
“아니, 아니오.”
견동은 염소수염을 파르르 떨며 눈물과 콧물을 닦았다.
울음기를 지운 그의 얼굴 위에 떠오른 미소는 상쾌했다.
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묵룡 대협.”
“으, 음?”
“다음에, 다음에 또 나와 비무를 해줄 수 있겠소?”
목리원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단주께서 원하신다면.”
“고맙소.”
그리 말을 나누던 중 당화서가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부러진 팔은 부목이 둘려 있었다.
견동은 그것에 죄책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따지고 보면 저 부상조차 내각에서 데려온 용병에 의한 것.
그것보다 더 전으로 돌아가 보면 이 비무 자체가 제 입방정으로 벌어진 일.
“…용봉단주.”
당화서는 견동의 말에 물끄럼 그를 내려다봤다.
비무에서 끝까지 일어서는 견동의 모습은 그간 봐온 것과 달랐다.
‘입만 살았다’에서 ‘근성 정도는 있다’정도로 평가를 올려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당화서는 싱긋 웃으며 견동에게 말했다.
“영약은 오늘 중으로 보내주십시오.”
흠칫.
견동의 몸이 들썩였다.
당화서는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목리원에게 말했다.
“목 소협, 갑시다.”
“아, 알겠소! 단주도 조심히 가시오!”
견동은 멍하니 떠나는 두 남녀를 바라봤다.
그러다 귓가에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를 들었다.
“흠, 그래도 역시는 역시구려. 진원단주는 무력이 참….”
“그래도 열심히 하는 꼴은 보기 좋지 않소. 무력이 참… 그렇지만.”
“거 속 시원하게 말하시오. 무력이 참 볼품없다고.”
견동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랬지.’
이들은 보이는 그대로 자신을 평가하는 이들이다.
태생으로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저를 바라보는 이들이다.
‘그리고 난 그런 분들께 못난 모습을 보였고.’
반성해야 할 터였다.
또한 정진해야 할 터였다.
견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르륵.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살아보자.’
눈물의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래도 한 명은 걱정해주면 안 되나. 이리 심하게 다쳤는데.’
아무도 이리 엉망진창이 된 제 꼴을 걱정해주지 않는 것.
그게 슬픈 이유였다.
그렇다.
멋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견동은 견동.
아직 무림맹에서 둔검 견동이라 함은 입만 산 얌생이를 뜻하는 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