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90화 (90/334)

〈 90화 〉 십일장 ­ 내기, 경쟁 (5)

* * *

목리원이 숨을 돌린 순간이었다.

“안 일어나나!!!”

벽우림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직전 쓰러진 여덟의 무인들이 끅끅대면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목리원은 멍한 얼굴로 벽우림을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몰아갈 일인가?’

물론 중요한 친선 비무다.

무려 영약이 걸린 비무인 만큼 각오가 남다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나, 이미 승부는 난 게 아닌가.

용봉단에서 5승을 챙겼다.

이 승부에서 이겨봐야 얻을 것이라곤 참패는 아니었다는 자기 위안뿐.

하여 목리원은 말했다.

“누워있어도 되오. 나는 당신들 열이 한 번에 덤벼들어도 다시 여덟은 일수에 눕힐 수 있소.”

오만으로 들리겠지만 목리원은 자신이 있었다.

이들의 검로가 엮여 만들어지는 투로.

그 투로의 목적과 파생될 수 있는 수많은 변수는 이제 목리원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앞선 오강악과의 전투에서 배운 것이 있는 까닭이다.

벽우림은 절정의 끝자락.

내공 수위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고작 그 정도로는 이들을 눕히는 일을 막을 수 없었다.

“몸이 상할 정도로 할 필요는 없소. 결국 내가 이길 테니.”

검을 고쳐잡으며 내뱉은 말에 벽우림의 흰자위로 핏발이 섰다.

“오만하시구려.”

“사실일 뿐이오.”

목리원이 검을 치켜들었다.

“정 못 믿겠다면 시험해보는 것도 좋은 방편이지.”

어느새 여덟의 무인이 다시 일어선 상황.

벽우림은 으득 이를 갈며 외쳤다.

“쳐라!”

이번엔 그 본인과 견동까지 합세한 10인의 공세였다.

중심축은 벽우림.

그가 목리원을 향해 정면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자 움직임에 맞춰 무인들이 뒤따른다.

목리원을 기점으로 여덟의 방위를 모두 둘러싸고 앞과 뒤를 더 보강한 형태의 합격진이었다.

목리원은 그들이 점한 위치만으로 그것을 깨닫고 숨을 들이쉬었다.

‘마침 시험해볼 게 있었는데 잘 되었다.’

목리원이 빙글 몸을 돌렸다.

그리하며 춤추듯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스르릉

가장 앞선 벽우림의 검이 목리원의 검과 맞부딪쳤다.

부드럽게 움직인 목리원의 검은 벽우림의 검을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타고 오르며 다른 방향으로 휘기 시작했다.

이어진 광경은 기이했다.

“무슨…!”

적운대주 강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드러난 광경을 바라봤다.

“환(?)? 아니, 유(?)?”

그 구분이 모호했다.

본디 환검과 유검은 그 구분 자체가 근접한 면이 있긴 하나, 저 정도로 모호하진 않았다.

벽우림의 검을 타고 움직인 목리원의 검이 그 경로를 뒤틀어 다시 내달린다.

그러자 벽우림의 검이 의도하지 않은 각도로 꺾여 견동의 검과 교차했다.

채앵

날붙이가 충돌하며 소리가 인다.

끝나지 않았다.

아직 목리원을 향해 쏘아지는 여덟의 검.

그것들이 교차한 두 무인의 검에 경로를 잃고 이리저리 튀기 시작했다.

무인들이 애써 경로를 되찾으려 했으나, 불가했다.

챙 채앵

제 궤도를 찾으려는 검이 있으면 조금도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로 꺾여 들어간 목리원이 다시 뒤틀고 뒤틀어 서로 엮어낸 까닭이다.

진원단의 검이 서로 엮이며 드러나는 형상은 그랬다.

마치 거미의 덫에 걸려 발버둥 치는 벌레의 것처럼,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것이 목리원이 고안한 만련이검의 두 번째 초식.

지사허류(????)였다.

거미줄을 엮듯 적들의 검을 엮어 흐름을 끊어낸 목리원이 이어 공세를 바꿨다.

탁 타닥

검으로 땅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하며 속도를 점점 가속하더니 이내 신형이 다 흐려질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챙!

열 번의 타격에 한 번의 소음.

정확히 검의 무게중심을 노린 검이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그것들을 쳐냈다.

탈혼번쾌(????).

만련이검의 일식이 발현됨과 동시에 무인들이 검이 하늘로 떠올랐다.

아직 검을 붙잡고 있는 것은 벽우림과 견동이 끝.

목리원은 그들이 움찔한 틈을 타 연격을 이어 여덟의 무인을 먼저 쓰러트렸다.

“끄악!”

“커흡!”

각각 관절을 검면으로 두드려 해한 상태.

이들은 이번 비무에서 더 일어나지 못할 터였다.

“으아아악!”

벽우림이 괴성을 내지르며 덤벼들었다.

찌르기 자세였고, 기세가 사뭇 날카로웠다.

‘명치.’

노리는 곳을 깨달은 목리원이 눈을 빛냈다.

아직 검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대로 벽우림이 다신 일어서지 못하도록 두드리면 될 터.

그리 생각하고 검을 휘두른 순간.

“으아앗!”

견동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이쪽 먼저.’

목리원이 몸을 반바퀴 돌려 등 뒤로 짓쳐오는 견동을 두드렸다.

빠바박!

오른쪽 무릎과 왼쪽 팔꿈치, 다시 오른쪽 어깨와 이마를 검면으로 내려치자, 견동이 ‘꺼억’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다.

목리원은 그걸 확인하곤 벽우림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

견동은 반쯤 감긴 눈으로 고꾸라져 목리원과 벽우림의 비무를 바라봤다.

직전 맞은 머리 탓에 머리는 징징 울리는 와중.

“끄어….”

눈앞의 광경에, 견동은 무심코 생각했다.

‘재능….’

저것이 바로 재능있는 자들의 비무다.

순간에도 수십 번 검을 휘두르며 막고 찌르는 수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초인의 비무.

범인은 제아무리 발악해도 닿을 수 없는 경지의 비무.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견동은 울컥 속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쓸모없는 것.

저것이 뭐길래.

재능이 대체 뭐길래 사람을 그리 가른단 말인가.

대체 무엇이길래 그것만으로 가치가 결정된단 말인가.

‘나도…!’

재능이 있고 싶었다.

더 높은 경지로 향하고 싶었다.

그리해야만.

‘조부님께…!’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

*

둔검(?) 견동.

무림맹의 단주직을 하고 있음에도, 그의 별호는 둔한 검이었다.

당연했다.

애초에 그는 검술로 단주에 오른 이가 아닌 까닭이다.

그를 단주직에 올려준 것은 어디까지나 내각주의 손주라는 휘광뿐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멸시에 지쳐 단주직을 포기했을 터였다.

자존심을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보통의 무인이라면, 그리했을 터였다.

하지만 견동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무인이 아니었다.

태생부터 무(?)보다는 문(文)에 어울리는 사내였다.

그런 그가 왜 무인이 되어 맹의 단주직에 있는가.

그 이야기를 해보자면 조금 더 먼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어릴 적의 견동은 가난했다.

그의 아버지는 견씨 성에 윤자 이름을 쓰는 가난한 문사였고, 어미는 장터에서 잡동사니를 파는 상인이었다.

끼니를 굶은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하나, 그때의 견동은 행복했다.

­동아, 너는 참 멋진 학자가 되겠구나.

사랑으로 그를 보듬어주는 부모가 있었고,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장터의 골목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의 삶이 바뀐 것은 본디 몸이 약했던 아버지가 병상에 드러누운 후.

또한 어미의 장사가 더 이상 유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패망한 후였다.

아비의 약값이 필요했다.

하나, 가정에 그런 일이 가능한 사람이 없었다.

나날이 심각 해져가는 아비의 병세, 그에 따라 초췌해져 가는 어미의 얼굴.

힘겨운 세월이 이어진 지 약 3여 년이 지났을 적, 어미는 말했다.

­동아, 어미와 함께 조부님을 찾아뵙지 않겠느냐?

견동은 놀랐다.

제게 조부가 있다는 말을 생전 들은 일이 없었던 까닭이다.

견동이 제가 사실은 명문의 자식임을 안 것이 그날이었다.

그리고, 부모를 잃은 것도 그날이었다.

­네놈이 내 손주라고?

무림맹의 내각주 해파검 견궐.

넌지시 소문으로만 들었던 이름 높은 노인이 저를 내려다보는 것에 견동은 두려움을 품었다.

­아버님, 제발 저희 남편 좀….

­아버님 소리가 나오더냐?

­…제발.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면….

­저 아이가 내 핏줄이란 것이겠지. 두고 가거라. 내 도망간 그놈을 대신해 저 아이를 맹의 무인으로 키워야겠으니.

­그게 무슨… 안 됩니다!

저를 원하는 견궐에게 어미가 소리를 질렀다.

견동은 어렸으나, 그럼에도 상황이 좋지 않은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나선다면 이 상황이 잘 풀릴 것도 알 수 있었다.

­어머니, 그리하겠습니다.

하여 가족을 위해 가족을 버렸다.

­동아….

­아버지에겐 약값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견동은 겁쟁이였다.

하나, 사랑을 아는 소년이었다.

그렇기에 견동은 스스로를 희생했다.

타인이 되어 아비의 약값을 벌기 위해 견궐의 손자로서 자라기 시작했다.

딱 3년.

견동이 그 일을 후회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결국 아비의 병세는 낫지 않았다.

아비는 이승을 떠났고, 어미 또한 그 충격에 요절했다.

슬퍼할 틈도 없었다.

견궐은 딱 한 달간 그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추모할 시간을 줬고, 이후론 더더욱 그의 수련에 목매기 시작했다.

결과만 말해보자면 견동은 실패했다.

­쓸모없는 놈.

견동은 무학에 재능이 없었다.

처참할 정도였다.

견궐은 그것이 천한 어미의 배에서 나와 그런 것이라 했지만, 견동은 알았다.

제게 용기와 패기가 없는 것이 문제임을.

검을 들고 일어나 남과 맞서 싸울 정도의 담이 없는 것이 문제임을.

주변의 멸시어린 시선과 말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다.

그것보다 버틸 수 없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내가 손해를 봤구나.

조부의 경멸.

이제와 혼자가 된 견동은 유일한 제 편이 돌아서는 것이 너무 아프게 느껴졌다.

견동은 사랑이 좋았다.

가족이 좋았고, 그들의 미소가 좋았다.

하여 그것이 멀어지는 것을 버틸 수 없었다.

견동은 견궐의 마음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런 그가 뒤떨어지는 무학의 재능을 어떻게든 가리기 위해 눈을 돌린 것이 정치였다.

입지를 쌓아 무림맹에 남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리하면 조부께서 다시 돌아 봐주리라.

그런 계산이었다.

악독해지기로 했다.

뻔뻔해지고 몰상식해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실적을 낼 수 있다면.

조부의 곁에 남을 수 있다면 그리하기로 했다.

하나 그 또한 끝.

채앵!

모두 끝났다.

이제 자신은 완전히 조부의 눈 밖에 났고, 돌이킬 방법 따윈 없었다.

이대로 길바닥에 나앉아 죽어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으리라.

순간.

“끄윽…!”

견동은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속이 확 타오르고, 또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울분이었다.

탁!

견동은 비틀대며 일어났다.

관절이 욱신거려 서 있는 것조차 괴로웠지만, 누워있는 것은 그보다 더 괴로웠다.

“으아아악!!!”

견동은 추하게 눈물을 흘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목리원에게 달려들었다.

‘재능!’

결국 그놈의 재능 탓이었다.

암만 노력하고 지원을 받아도 닿을 수 없는 초인의 경지는 재능 탓이었다.

부모를 지키지 못하고 조부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이리 쓰러지기까지 한 것 또한.

그 모든 삶 또한.

재능이 모자란 탓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깨와 팔꿈치가 망가져 검로가 엉망이다.

또한 소리를 내지른 탓에 목리원은 이미 자신이 다가옴을 알고 있었다.

빠악!

“꺼헉!”

이번에 허리.

단번에 저를 눕힌 목리원이 또 벽우림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견동은 눈물과 콧물, 거기에 침까지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울분을 토했다.

그리고 일어섰다.

“끄, 아아아…!”

끊기는 목소리로 내달렸다.

이번엔 목리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하나, 검은 냉정했다.

빠악!

허벅다리를 검면에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견동은 또 쓰러졌고, 또 일어났다.

차오른 울분이 너무 컸던 까닭이다.

이제 모든 게 끝나가는데, 고작 저 재능 하나가 없어 한 대도 먹여주지 못하는 것이 억울했던 까닭이다.

‘한 대만…!’

그리 다 가졌으니 한 대 정도는 맞아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정도 맞아 준다고 흠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나.

왜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냔 말이다.

비틀비틀 견동이 목리원에게 다가갔다.

소리를 지를 힘조차 없어 끊기는 숨소리만을 토해내며 나아갔다.

빠악!

종아리를 맞고 쓰러졌다.

그리고.

“크흐….”

또 한 번 일어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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