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89화 (89/334)

〈 89화 〉 십일장 ­ 내기, 경쟁 (4)

* * *

혜운이 내려왔다.

당화서는 한껏 노한 표정으로 혜운을 노려봤지만, 혜운은 히히덕대며 그녀를 지나칠 뿐이었다.

“당 시주님 차롄데 안 올라가요?”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뿌드득.

당화서의 손등 위로 힘줄이 돋아났다.

“…있다 봅시다.”

“예에~ 다녀오셔요~.”

혜운의 실실 쪼개는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당화서는 비무장 위를 바라보며 눈을 좁혔다.

‘저자가 내각의 무인인가.’

말총머리의 사내가 있었다.

나이는 서른 중반 즘으로 보였고, 허리엔 도가 걸려 있었다.

길이나 너비로 보아하니 쾌보다는 강을 추구할 터.

‘절정이군.’

내공 수위는 비슷했다.

물론, 내공의 발출을 금하는 만큼 중요치는 않은 일이었다.

당화서가 비무대 위로 오르자 말총머리 무인이 고개를 숙였다.

“내각의 초릉이오.”

“용봉단주 당화서요.”

두 사람 사이에 사뭇 날카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따라 나온 진원단의 아홉 무인들은 초릉을 믿는 것인지 기고만장한 태도였다.

청룡대주 기태운이 손을 들었다.

“양측 위치로!”

당화서는 자리로 향한 후, 품속에 손을 넣었다.

잘그락

소리가 일었다.

‘잔챙이는 치우는 게 맞겠지.’

내공의 발출이 금지된 비무.

이는 당화서에겐 꽤나 큰 제약이었다.

그녀가 사용하는 독의 대부분이 내공의 발출로 상대를 중독시키는 형태인 까닭이다.

저들도 그걸 알기에 저리 기고만장한 것일 터.

‘우습다.’

당화서는 코웃음을 쳤다.

어찌 생각이 저리 짧은 것인지, 다만 독공 하나 탁월하다고 봉(?)의 별호를 받았겠는가.

“개시!”

아니었다.

본인이 그 자리를 원치 않는다곤 하나 당화서는 아직 사천당문의 소가주였다.

그리고 사천당문은 독공만을 가르치지 않았다.

쉬익!

당화서의 팔이 일순 흐려졌다.

그와 동시에 정확히 열 개의 끝이 뭉툭한 비도가 쏘아져 나가, 무인들의 급소를 후려쳤다.

“꺽!”

“끄읍…!”

진원단의 무인들은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무릎을 꿇었고.

채앵!

초릉만이 도를 출수하여 비도를 튕겨냈다.

“암기라….”

“잔챙이는 치우는 것이 좋을 듯하여.”

당화서는 그리 말하며 소매를 펄럭였다.

어느 순간 당화서의 손엔 한 손에 3개 씩 총 여섯 개의 비도가 걸려있었다.

암영비도(????).

일전 강서성 수양현에서 목리원이 상대한 표산의 절기.

당문의 소가주인 당화서 또한 그 무공을 쓸 수 있었다.

내공 심법이 다른 만큼 표산과 같이 신묘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흉내 정도는 가능한 것이다.

“가겠소.”

당화서가 그리 말했다.

초릉이 긴장을 떠올리기 시작할 땐, 이미 비도가 그의 미간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흡!”

초릉은 고개를 꺾어 비도를 피했다.

하나 그것으로 당화서의 공세는 끝이 아니었다.

챙!

찰나의 순간 초릉의 코앞까지 도달한 당화서가 비도로 초릉의 명치를 노렸다.

초릉은 미간을 구겼다.

‘빠르다!’

속도가 빨랐다.

다만 발재간이 좋다 수준이 아니라, 공격의 호흡 자체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빨랐다.

‘괜히 단주는 아니라는 것이겠지!’

초릉은 그리 생각하며 크게 도를 휘둘렀다.

당화서가 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 순간의 그녀는 이미 저 멀리 몸을 물린 상태였으므로.

초릉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임무는….’

용봉단의 전승을 막는 것.

진원단의 패배가 확정되었다 한들 그들의 남은 체면이라도 살리는 것이다.

이는 초릉이 승부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뜻과도 같았다.

왜 아니겠는가.

당화서의 뒤로 남은 이가 검룡과 묵룡이다.

제아무리 내공을 제약했다곤 하나, 검술만으로도 다른 지경에 이른 무인이 둘이다.

‘조장이 온 만큼 변수가 있긴 하겠지만… 여기서 승부를 보지 못하면 뒷일이 곤란해지는 건 마찬가지.’

초릉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무리를 하더라도…!’

당화서만큼은 이겨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초릉이 내달렸다.

타닥!

경쾌하게 이어진 보법.

그리고 그 끝에서 당화서의 허리를 노리며 크게 휘둘러지는 도.

초릉의 초식 중에 가장 빠른 수였으나, 이조차도 당화서에겐 느렸다.

빡!

허리를 숙여 도를 피한 당화서가 비도의 손잡이로 초릉의 왼쪽 허벅지 한가운데를 찍었다.

이어 곡예를 하듯 뒤로 뛰어오르며 세 개의 비도를 더 쏘아내 각각 명치와 단전과 왼쪽 무릎에 맞췄다.

“큽…!”

초릉의 몸이 비틀렸다.

고통에 자연히 비틀린 것이긴 하나, 이 또한 하나의 노림수였다.

당화서가 호흡을 가다듬으려 하고 있었다.

아마 바로 움직이진 못하리란 판단이었을 터.

‘지금이다!’

초릉은 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근육을 조이며 무너져가는 자세 그대로 돌진했다.

당화서의 눈이 크게 뜨였다.

몸은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움찔 떨려 자세가 흔들린 상황.

초릉의 도가 뻗어 나와 당화서의 어깨를 노렸다.

그 순간의 당화서는 입술을 깨물며 판단했다.

‘차라리 팔 하나를 내어준다.’

비무용으로 마련한 도라 날이 죽어있다.

내력으로 보호하며 맞으면 큰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을 터.

당화서가 팔로 도를 막았다.

빠각.

유쾌하지 못한 소음이 일었고, 당화서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통증을 느꼈다.

보통 사람 같았다면 그 순간의 자세가 다 무너져 내렸으리라.

하지만 당화서만큼은 달랐다.

고통은 그 무엇보다 그녀에게 친숙한 것이었다.

쉬익

당화서가 멀쩡한 손으로 비도를 쏘아냈다.

공기를 찢고 날아간 비도가 정확히 초릉의 미간에 맞았다.

빡!

“억…!”

초릉의 눈이 뒤집혀 흰자위가 드러났다.

그리고 직후.

털썩.

초릉이 무릎을 꿇었다.

당화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부러진 팔을 붙잡으며 기태운을 바라봤다.

“독봉! 승!”

기태운의 승 판정.

그것에 비무장에 함성이 가득 울려 퍼졌다.

*

“소저! 팔은 괜찮은 것이오?!”

목리원이 한껏 걱정 어린 표정으로 당화서에게 다가가 주변을 빙빙 돌았다.

팔은 물론이오 다른 곳도 상한 자리는 없는지 찾는 것이었다.

그 꼴이 마치 커다란 강아지 같았다.

떠오른 생각에 당화서는 킥킥 웃었다.

그러다 욱씬 차오르는 통증에 표정을 구겼다.

“소, 소저!”

“괜찮습니다. 각오하고 내어준 것이니.”

독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같은 절정의 무인.

시답잖은 수로는 밀릴 것이 뻔했고, 저쪽에서도 몸을 내어줄 각오를 하고 달려든 것이니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해는 되는 말.

하나 목리원은 이상할 정도로 당화서의 상처에 속이 꾹 조여오는 기분을 느꼈다.

“너무 과격했소….”

“과격하기는요. 무인이 이런 걸 주저해서야 되겠습니까.”

목리원의 낯이 시무룩해졌다.

과한 걱정이긴 하나, 당화서로선 꽤나 기꺼운 걱정이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 이정도면 이 주도 안 되어 낫습니다.”

후회는 없다는 뜻으로 당화서가 목리원의 머리를 슥슥 쓸었다.

그런 직후에야 당화서는 흠칫하며 손을 뗐다.

“아, 죄송….”

“음? 무엇이 말이오?”

목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받은 취급에 그 어떤 거리낌도 없는 듯한 기색이었다.

순진한 걸까, 그도 아니면 멍청한 걸까.

‘…순진한 거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이리 몸에 손대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른다고 보는 게 맞았다.

순간적으로 당화서의 사고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것은 음흉한 생각들.

아무것도 모른다면 조금은 아닌 척 욕망을 채워도 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순진하게 구는 목리원의 잘못이 아닐까.

당화서의 목뒤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눈을 질끈 감겼고, 입에선 긴 숨이 삐져나왔다.

‘…그건 아니지.’

당화서는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았다.

“다음은 검룡의 차례였지요.”

당화서가 말하자 남궁진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카로운 벽안은 비무대 위를 노려보는 형상이었다.

“다녀오지.”

남궁진천이 비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검룡! 승!”

시작과 동시에 비무를 끝냈다.

내각의 무인도 진원단의 부단주도 평무사도.

남궁진천의 검 앞에는 공평했다.

*

진원단주 견동은 턱을 덜덜 떨며 말했다.

“이, 이제 어쩌오! 벌써 5패요! 이번이 마지막인데 이러다간…!”

보채는 말투로 닦달하는 이는 용병들의 조장.

영검(??) 벽우림이었다.

벽우림이 미간을 좁히자 견동은 히끅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하나 더 투덜대지 못했다 뿐이지 견동의 속엔 불안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전패! 전패는 안 된다!’

이미 조부에게 실망감을 더 줄 수 없을 만큼 준 상태다.

여기서 용병을 얻어갔음에도 전패로 승부를 마무리하면 조부가 정말 저를 내칠지도 몰랐다.

그럼 떠내려간 오리알 신세다.

더 뒤를 지켜주는 이가 없으면 이 단주 자리에서도 내려와야 할지도 몰랐다.

견동은 비무대 위로 올라가는 목리원을 바라봤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한 낯짝.

패배라곤 떠올리지도 않는 모양새였다.

‘저, 저런 괴물을….’

어떻게 이기란 말인가.

듣기로는 내력만 충분했다면 금검 권표월과도 싸워 이길 수준이라 했다.

겨우 18살이 말이다.

쿵 쿵

견동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 치며 불안을 부풀렸다.

시선은 떨렸으며, 다리 또한 후들거리고 있었다.

일류의 무인답지 못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제대로 된 일류도 아니니 맞는 말이긴 했다.

견동의 경지는 내각주인 조부의 지원 아래 영약과 비급을 내려받으며 무공의 깊이와 내공의 양으로 억지로 끌어올린 경지였다.

“조, 조장…!”

이제 비무대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 생각에 머리까지 새하얘져 재차 내뱉은 말에, 벽우림이 답했다.

“진원단주.”

서릿발 같은 목소리였다.

“그리 불안해하실 것 없소.”

“으응…?”

“내각주께선 이미 단주를 내치셨으니.”

견동의 몸이 덜컥 멎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조부님이 날 이렇게 내칠….”

“수밖에 없지. 그리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하찮은 무력을 지니고 있으니. 그렇다고 지략이 뛰어난 것도 아니지 않소.”

벽우림의 말은 무감정했다.

당연한 사실을 읊조리는 이의 태도였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그리 말하며 비무대 위로 오르는 벽우림의 뒷모습을, 견동은 허망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기태운이 그를 호명하기 전까지 말이다.

“진원단주!”

“…아, 가, 가겠소!”

견동이 헐레벌떡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벽우림은 그제까지도 견동을 쳐다도 보지 않고 있었다.

‘조부님이? 나를?’

견동은 비무고 뭐고 당장 내각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이 일이 거짓임을 확인받고 싶었다.

하나 그것보다 기태운의 말이 빨랐다.

“양측! 위치로!”

스릉

벽우림과 진원단 무인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것에 견동이 따라 검을 뽑자, 목리원이 지그시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하오.”

“이쪽이야말로.”

답한 것은 벽우림.

견동은 그제까지도 멍한 얼굴이었다.

그로선 머리가 복잡하여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도 그럴 틈조차 없는 이 상황이 야속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개시!”

와중 기태운의 말이 울렸다.

목리원은 가만 서서 선수를 양보하고 있었고, 그것에 진원단의 무인 여덟이 먼저 뛰쳐 나갔다.

결과는 당연히.

“끄악!”

목리원의 압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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