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십일장 내기, 경쟁 (1)
* * *
돌아온 목리원은 그 길로 바로 연무장을 향해 명상에 빠졌다.
약 하루 하고도 반나절.
식음을 전폐하고 이어가는 명상에 다른 단원들은 깨달았다.
“배움이 있는 듯하군요.”
“징글징글하네. 어떻게 사람이 그거 잠시 다녀왔다고 깨달음을 얻어요? 아니, 맹주님이 목 시주님을 이뻐해서 특별 교육이라도 해준 건가?”
각각 일운과 혜운의 말이었다.
혜운은 몸서리까지 치고 있었다.
재능이야 자신들보다 한참 위에 있는 것은 알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목리원의 속도는 너무 빨랐던 까닭이다.
아무렴, 분명 용봉지회에서 볼 때 만해도 같은 절정 초입이었던 걸 생각하면 저게 겨우 반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이룬 성과란 말 아니던가.
암만 생각해도 같은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괜히 고금제일 후보라고 하는 게 아니네요.”
“저희도 정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있거든요.”
혜운이 입술을 삐죽였다.
당화서는 그런 혜운을 보며 헛웃음을 짓다, 이내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그는 이마에 힘줄을 빡 세운 채 목리원을 노려보다 돌연 몸을 돌렸다.
“2 연무장은 내가 쓰겠다.”
몸이 근질거린 것인지, 그도 아니면 경쟁심을 불태우는 것인지.
한결같은 모습에 당화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 괜히 방해하지 말고 저희도 갑시다. 다들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 당화서의 주도 아래 단원들이 자리를 비켜주고 또 반나절.
그제야 목리원은 눈을 떴다.
뜨인 목리원의 눈엔 깊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깨달음을 그러모으며 한층 웅혼한 내공을 얻은 것이다.
‘거의 다 왔다.’
물론 내공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목리원의 내력은 극마지체라는 신체 탓에 아직도 사납기 그지없는 형태.
그 고삐를 쥐고 있는 목리원의 통제력이 조금 더 강해진 것이라 봐야 했다.
‘인간과 강호. 그리고 가능성.’
중심은 그 세 단어였다.
이 이상의 발전은… 지금은 불가능했다.
다른 무엇보다 아직 내공의 총량이 모자라다.
검술의 형 또한 한끝 모자라다.
‘초절정.’
그 거대한 벽은 금은 갔을지언정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정체는 그리 길지 않을 터였다.
‘한 걸음이다.’
딱 한 걸음.
목리원의 무재는 그만큼의 거리를 말하고 있었다.
다음 경지가 목전에 있는 만큼 이는 조바심이 있었으나, 목리원은 그것을 꾹 눌러냈다.
‘천천히, 그리고 바른길로.’
스승인 목선오의 가르침은 이 순간도 목리원이 가야 할 길을 일러주고 있었다.
목리원은 연무장을 나섰다.
하늘은 이미 새까맣게 물든 시간.
저 하늘의 별만이 아릿한 빛을 흩어내고 있었다.
“으음… 배가 고픈데.”
목리원은 시무룩해졌다.
이리 늦은 밤이라면 숙수도 잠자리로 떠났을 테고, 다른 단원들 또한 모두 잠에 들었을 터인 까닭이다.
오늘은 그냥 꾹 참고 자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에 입술까지 댓발 튀어나오는 와중.
“고생하셨습니다. 목 소협.”
당화서가 품에 주전부리를 낀 채 나타났다.
목리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소저!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어쩐 일이오.”
“대충 이쯤이면 소협께서 자리를 터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배고픈 건 못 참으시지 않습니까.”
당화서가 웃으며 주전부리를 내밀어 보였다.
“대충 전병이랑 말린 고기 몇 개를 싸 왔습니다. 먹고 주무시지요.”
“소저…!”
목리원이 감격에 몸을 떨었다.
그러다 당화서의 손을 맞잡았다.
“역시 소저밖에 없소!”
“당연한 말씀을.”
당화서는 뻔뻔하게 답했다.
*
용봉단의 연무장 앞엔 작은 정원이 있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바라보면 저 앞으로 연못과 담벼락이 보이는 전각에서도 꽤나 좋은 자리였다.
목리원은 연못에 비친 별을 바라보며 전병을 집어먹었다.
그리하며 수다를 떨었다.
급한 마음에 바로 명상에 빠지느라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이오! 맹주님께선 사람을 무력이 아닌 다른 가치로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셨소.”
“그것이 깨달음으로 이어진 겁니까?”
“그렇소! 내 부끄럽게도 맹주님께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뛰어와 버렸지 뭐요.”
“맹주님도 이해하실 겁니다. 아무렴, 그분께서도 목 소협과 같은 시기를 보내 그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소! 맹주님이 날 보내려고 글쎄….”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사백운이 목리원의 잔을 깨며 자작을 하고 싶다 했던 일과, 그 이전으로 돌아가 나눈 잡담과 그 자리에서 마셨던 백주(白?)에 관한 것도 모두 말하고서야, 목리원은 뒤늦게 영약에 까지 생각이 미쳐 말했다.
“아! 맹주님께서 용봉단에 영약을 하사할 것이라 말하셨소!”
“예, 저도 오늘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환단 하나와 자소단 하나. 올해 맹 앞으로 왔던 구파의 영약이라더군요.”
“오오 두 개씩이나…!”
“아마 가장 큰 공로를 세운 목 소협과 검룡에게로 갈 것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당화서가 웃으며 말하자 목리원은 움찔했다.
“어… 다른 단원들은 받지 못하는 것이오?”
그제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이다.
당화서는 눈을 끔뻑이다, 이내 ‘푸흡!’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목리원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들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괘념치 마시지요.”
“하지만….”
그래도 다 함께 고생한 것이지 않나.
더군다나 자신의 고집 탓에 어려운 길을 함께 했는데 어찌 입을 싹 닫는단 말인가.
“영약을 쪼개서 나눠 먹으면….”
“본래 효능의 십분의 일도 안 나올 겁니다. 알 사람이 왜 그러십니까?”
“그럼 그걸 팔아서 작은 영약 여러 개로….”
“만들었다간 맹 뿐만 아니라 소림과 화산의 추격을 받겠지요? 비전 유출로 공적이 될지도 모릅니다?”
당화서가 겁주듯 말하자 목리원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고, 공적은 아니 되오…!”
그러다 어깨를 늘어트리며 수긍했다.
“으음… 영약을 더 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리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쉽지 않소?”
“저는 목 소협이 잘 크는 것만 봐도 배가 부릅니다.”
그리 말한 직후, 당화서는 이 말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말을 정정했다.
“그, 단원들이 강해지는 것이 보기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너무 노골적으로 들리진 않을 터다.
당화서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목리원은 가만 그 모습을 바라봤다.
언제나 느끼던 그녀의 다정함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와중.
망막은 그녀의 미소를 그 위로 새기려는 듯 미동도 하지 않고 똑 멈추기 시작했다.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그랬다.
“소저는 말이오.”
“예?”
“참으로 마음이 큰 사람이구려. 나는 소저의 그런 점이 참 좋은 것 같소.”
목리원이 소탈하게 웃었다.
하나, 역설적이게도 목리원은 그런 소탈함조차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아….’
곱게 접힌 눈이나 싱긋 올라간 입꼬리는 우아하다.
달빛과 연못의 빛을 반사하며 하얗게 빛나는 피부는 꼭 도기처럼 매끄럽다.
참 말도 안 되는 미남.
치미는 생각에 당화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선은 그중에서도 목리원의 눈동자에 콕 박혀 떨어질 줄 몰랐다.
자세히 보면 아주 옅게 갈색의 빛이 감도는 목리원의 맑은 눈은 그를 이루는 요소 중에서도 당화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꼭 그의 깨끗한 성정을 드러내놓은 것 같다는 이유였다.
조용한 장원의 마당.
바람이 옅게 가지를 흔들면 풀잎이 연못 위로 떨어져 파문을 일으킨다.
그리하며 무인의 귀에나 들릴 작은 물소리가 인다.
이 파문이 마음까지 울려 퍼진 것인지, 그도 아니면 목리원의 맑은 미소가 또 다른 울림을 만든 것인지 갑작스레 속이 저릿해진다.
아니, 사실은 그런 인과 따윈 중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눈이….”
당화서의 손이 뻗어나갔다.
목리원의 뺨에 닿고, 이내 엄지가 눈 밑을 쓸었다.
“음?”
“…참 어여쁩니다.”
그저 그런 말만이 속에 가득 떠올랐다.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후, 당화서는 흠칫 놀랐다.
“…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리 어둑어둑한 와중에도 확연히 보이는 붉은 기운이 당화서의 얼굴에 자리했다.
한발 늦게 이성이 돌아온 것이었다.
‘내, 내가 무슨!’
대체 무슨 남사스러운 소릴 한 건가!
순간 홀려버려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말을 해버린 당화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달아나버렸다.
“쉬십시오!”
목리원은 홀로 남아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음, 소저도 참 엉뚱하군!”
그런 소리나 하며.
*
당화서의 얼굴은 다음날도 붉었다.
눈을 뜨자마자 한 일은 부끄러움에 몸을 떤 것이었고, 몸을 씻고 나와 업무를 보러 가는 중에 한 일은 세 걸음마다 걸음을 멈추고 수치심에 얼굴을 감싸는 것이었다.
회의에 도착한 이후도 그랬다.
“용봉단주, 몸이라도 아프신 것이오?”
회의 때면 근처 자리에 앉던 금검 권표월이 물었다.
당화서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저 부끄러워서 목이 매달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 말을 삼켰다.
대체 어쩌자고 거기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아니.’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은 목리원 탓이었다.
괜히 그 분위기에 그렇게 잘생긴 게 문제였다.
자신이 아니라 세상 누굴 가져다 둬도 그 순간에 그런 말을 내뱉었으리라.
당화서는 안쓰러울 정도의 자기합리화를 이어가며 마음을 다스렸다.
하나 그런다고 마음이 편해질 리는 없었다.
몸은 또 부르르 떨렸고, 권표월의 의문은 짙어져만 갔다.
“회의를 시작하겠소!”
와중 회의가 시작됐다.
이어지는 말은 늘상 있어왔던 것들이었다.
어느 지역의 어느 지점에서 마교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거나, 현재 임무를 나가 있는 인원들의 동향이 어떻다거나 다른 지부에서는 어떤 말이 오가고 있다는 것 등등.
사실상 흘려들어도 후에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일들인 만큼 당화서는 집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떠올리는 생각은 ‘오늘은 목 소협의 얼굴을 어찌 봐야 하나’ 따위의 것이었다.
그런 중이었다.
하늘이 당화서의 집중을 도우려 한 것인지 보고가 끝난 이후 나온 말은 당화서의 눈을 부릅 뜨이게 했다.
정확히는, 용봉단의 영약 수여에 딴지를 거는 진원단주 견동의 말이 그런 반응을 떠올리게 했다.
“흠, 소환단과 자소단은 너무 과하지 않소?”
견동이 염소수염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당화서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작자가?’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말을 내뱉는 걸까.
그런 의문까지 차오르는 상황이었다.
“…적법한 보상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단원들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어요.”
“하나 역시 체계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맞소. 묵룡과 검룡은 훌륭히 임무를 완수했으나,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일은 맹에 안 좋은 선례로 자리하게 될 것이오.”
당화서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견동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제아무리 협의에 맞는 일이라 하나 그것이 다른 이들을 위험에 빠트릴 원인이 된다면 그에 대한 벌도 있어야 한다고 보오. 자소단은 빼는 게 좋을 듯하구려.”
회장의 분위기가 사뭇 날카로워졌다.
다른 단주와 대주들은 흥미가 묻어나는 얼굴로 당화서의 답을 기다렸다.
당화서는 이를 빠득 갈며 뜨거워지는 머리를 애써 식혔다.
‘그렇게 나온다라….’
이건 참기 힘들었다.
아무렴, 단원들이 제 목숨까지 걸어가며 얻은 보상이 아니던가.
개중 목리원과 남궁진천은 초절정의 마인과 생사의 골목에 서서 검을 휘둘렀다.
한데 어찌 제삼자 따위가 이딴 말을 지껄이는 것이냔 말이다.
당화서는 희번뜩한 눈으로 견동을 바라봤다.
그리하며 회장의 다른 단주들에게 물었다.
“…혹 이 의견에 찬성하시는 단주님들이 있습니까.”
손을 드는 것은 셋이었다.
그래도 손을 내리고 있는 것 또한, 셋이었다.
대주가 아닌 단주급을 꼽아 물은 이유는 하나였다.
당화서가 씨익 웃었다.
“표가 같군요. 3대 3.”
단주들 중 견동과 교분을 나누는 사람이 몇인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결과 또한 예상 범위 내다.
그리고, 이곳은 무림맹이다.
“이렇게 하지요. 마침 진원단에도 작은 영약 4개가 들어왔다 들었습니다.”
“그, 그게 어쨌단 말이오.”
“거십시오. 비무로 결정합시다. 누가 영약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견동이 돌연 몸을 흠칫 떨었다.
다른 단주와 대주들은 ‘호오’하며 흥미를 떠올렸다.
개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영약 내기라, 2년 만인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리 많은 사람이 모인 무림맹인 만큼 그 안의 사소한 시시비비는 언제나 존재했었으니.
지금 당화서가 권유한 영약 내기 또한 그와 같은 맥락에 있는 관례였다.
또한 맹 자체에서도 각 단대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관례였다.
‘안 그래도 곱게 안 보이던 참이다.’
가진 걸 다 빼앗아 찍소리도 못하게 해주겠다.
당화서는 그리 마음먹으며 견동을 노려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