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83화 (83/334)

〈 83화 〉 십장 ­ 독대, 결의 (1)

* * *

당화서는 맹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얼굴 위론 피로를 가득 묻힌 채였다.

‘일이 끝이 없구나.’

머리가 다 지끈거릴 정도의 업무량이었다.

임무 보고와 과정에서의 예산 사용처 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돌발 행동에 관한 해명이나 다른 단주의 견제까지.

‘아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당화서는 ‘쯧’하고 혀를 찼다.

다시 생각해도 화가 치미는 진원단의 단주 탓이었다.

­그리 돌발 행동을 하실 거면 차라리 맹을 나가시는 건 어떻소? 이곳은 집단이오. 그리 개인의 이상만으로 행동해선 안 되는 걸 모르시오?

나이도 비슷한 주제에 제가 영감이라도 되는 양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내뱉던 말이 퍽이나 얄밉게 느껴진다.

딴에는 멋이라도 부리겠다는 듯 기른 염소수염은 그런 말투에 탓에 얌생이의 것처럼 느껴졌다.

당화서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무인이란 작자가 정치질에만 정신이 팔려서 원.’

진원단의 단주 견동은 단주라는 직책에 있음에도 일류의 경지에 밖에 오르지 못한 별종이었다.

오죽하면 부단주한테도 비무로 질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약자.

그런 그가 단주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인맥질과 정치질.

혓바닥만큼은 초월지경에 이른 작자라, 그는 그리 혀로 단주직에 올라 대주까지도 바라보고 있었다.

당화서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런 작자에게 싫은 소리나 듣는 그 상황이 싫었다.

다행히 백검대주 권표월이 편을 들어주어 위기를 모면했으나, 차오르는 짜증은 어쩔 수 없었다.

쿵. 쿵.

차오른 짜증에 당화서의 발걸음이 거칠어졌다.

그녀의 화난 기색에 복도에서 마주친 무인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당화서는 그것에 움찔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이번 임무에서 행했던 연기와 관련된 사건이 와전되어 ‘독봉은 사실 혀로 사람을 죽이는 독사의 성정을 가지고 있다’라는 소문이 퍼진 까닭이다.

‘…빌어먹을 소문.’

당화서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확실히, 화난 자신의 얼굴은 목리원도 움찔할 정도로 사나운 편이었으니 관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와중이었다.

“아, 용봉단주!”

금검 권표월이 맞은편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아는 척을 해왔다.

“아, 금검 대협.”

“이제 돌아가는 것이오?”

“예, 슬슬 단원들도 돌봐야 하니.”

“돌봐야 한다라….”

권표월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은 기색이었다.

아무렴, 이곳 무림맹에서 용봉단과 가장 교류가 활발한 사내인 만큼 대략의 사정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고생이 많구려.”

어제는 목리원과 남궁진천이 합격을 수련하던 중 기물을 파손했다던가.

들려오는 말이 죄다 뭐가 부서졌다거나 누가 사고를 쳤다는 내용뿐이니, 권표월로서는 당화서에 대한 동정심이 한껏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해야 할 일인 것을요.”

당화서가 해탈한 듯 웃었다.

그것에 권표월은 따라 웃다가, 이내 ‘아’하는 소리를 냈다.

“한데 그건 들으셨소?”

“무엇 말입니까?”

“맹주께서 묵룡과 독대를 하실지도 모른다고 하더구려.”

흠칫.

당화서의 손끝이 떨렸다.

얼굴엔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맹주님께서 말입니까?”

직후 나온 말은 그랬다.

“혹시 목 소협이 또 사고를 친 겁니까? 그새? 저 모르게? 아니, 아니지. 맹주님께서 부르실 정도면…!”

당화서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무언가 아득한 것을 바라본 사람의 얼굴이었다.

권표월은 그것에 그만 ‘빵!’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오. 사고 때문이라기 보단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으신 까닭이라 들었소.”

“아…!”

당화서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 다행이군요.”

“너무 걱정이 많구려.”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들이라.”

당화서가 허허롭게 웃었다.

그러다 물었다.

“여하튼 소식을 알려주어 감사합니다. 목 소협과 이야기를 해봐야겠군요.”

“수고하시오.”

권표월은 미련없이 자리를 떠났다.

당화서는 잠시 그 뒷모습을 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예절을 가르쳐야겠구나.’

목리원에게 식사 예절을 가르쳐야겠다.

지금 당화서의 머릿속엔 그런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

“식사예절 말이오?”

돌아온 용봉단의 전각.

단주실에 불려온 목리원이 반문했다.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혹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목 소협은 곧 맹주님과 독대하는 자리에 가실 겁니다.”

“아, 자문님께 들었소.”

“그렇습니까? 아, 하긴. 강소소 대협은 맹주님께서 직접 초빙하신 분이니.”

당화서가 납득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목리원이 어색하게 웃었다.

‘어색하구나.’

강소소가 염소소의 가명인 것은 알았지만 이리 들을 때마다 움찔하게 된다.

하나 본인이 정체를 숨기고 있는 만큼 티를 내서는 안 될 터.

목리원은 표정을 가다듬은 후 물었다.

“한데 예절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것이오?”

“어려울 것은 없습니다. 그저 자리에서 지켜야 할 예의와 자세. 그리고 격식 같은 것을 가르칠 거예요.”

“음, 웃어른과의 식사 예절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내 이래 봬도 강호에 나오기 전까지 두 분의 어른을 모시고 살아온 사람이니!”

목리원이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왜 아니던가, 그가 평생 모신 것은 다름 아닌 사성육왕의 고수 중 두 명이 아니던가.

개중 특히 예의에 민감했던 것이 걸왕 마일석이었다.

어른과 식사를 할 때 지켜야 할 예절이라며 꿀밤까지 맞아가며 배운 것들을, 목리원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화서는 ‘오’하는 소리를 내며 목리원을 바라봤다.

‘스승이 두 분이셨구나.’

그런 정보와 더불어 속엔 미약한 기대감이 떠올랐다.

그래, 너무 아이로 봐서 잊고 있었지만 목리원도 엄연한 고수의 제자다.

그 정체까지야 모르지만 목리원의 무공을 생각하면 꽤나 이름있는 전대의 고수였을 터.

그런 이가 식사예절도 가르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나.

당화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하며 말했다.

“아, 다행이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 저랑 예습을 해볼까요?”

“알겠소! 내 소저를 맹주님이라고 생각하고 대해보겠소!”

목리원이 벌떡 일어나 제 가슴을 쳤다.

“보고 깜짝 놀라지나 마시오!”

*

깜짝 놀랐다.

너무 엉망진창이어서.

“…목 소협?”

“응? 왜 그러시오? 빨리 드셔보시오! 아~!”

당화서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채 목리원을 바라봤다.

목리원은 닭다리살을 젓가락으로 집어 당화서의 입 앞에 대고 있었다.

목리원의 눈이 반짝거렸다.

“다리는 어른에게! 뼈까지 발라서 먹여주어야 하는 게 아니오?”

대체 목리원의 스승은 뭘 가르친 것일까.

당화서의 머릿속에 의문이 차올랐다.

사실을 따져보면 그랬다.

걸왕 마일석은 태생이 거지다.

그리고 사성육왕에 올랐다고는 하나 거지로서의 본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즉, 예의범절보단 제 편한 대로 목리원을 굴리기 위해 꿀밤을 섞은 교육을 한 것이었다.

말려야 할 목선오조차 그 광경을 그저 흐뭇하게만 지켜봤으니 목리원이 정상적인 예의범절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자! 소저! 아~ 해보시오!”

목리원이 재차 닭다리살을 들이밀었다.

당화서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러자 목리원이 눈부신 미소와 함께 당화서의 입안에 닭다리살을 넣어줬다.

“어떻소? 간이 잘 맞소?”

입맛까지 고려해주는 것인가.

확실히 극진하다.

굳이 따지자면 객잔의 숙수 같은 극진함이었지만.

당화서는 닭다리살을 씹어 꿀꺽 넘기곤 말했다.

“…맛이야 있지요.”

“다행이오! 잠시 기다려 보시오! 어디 보자 다음엔….”

“목 소협.”

당화서는 목리원을 제지했다.

그가 직접 음식을 먹여주는 상황에 슬쩍 가슴이 설렌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지금은 마냥 그런 것을 즐길 때가 아니었다.

“음? 왜 그러시오?”

목리원이 순박하게 물었다.

그 꼴이 너무나도 해맑아, 순간적으로 당화서는 ‘사실을 말해주는 게 옳은 것일까?’라는 의문까지 떠올렸다.

하나 말하지 않으면 뒷일이 크게 곤란해질 터.

당화서는 결의에 차 말했다.

“그건 웃어른을 대하는 예절이 아닙니다!”

“그, 그러언­!”

“아주 친한 친우끼리의 예절이지요!”

실리와 욕망을 둘 다 채우는 형태였다.

당화서의 음흉함은 이 순간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

모든 이야기를 들은 목리원은 절망했다.

“우, 웃어른을 대하는 예절이 아니었다니!”

목리원은 무릎을 꿇은 채 양 주먹을 꽉 쥐었다.

그것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속았구려!”

목리원의 속에 마일석에 대한 원망이 피어올랐다.

아무렴, 이 예절을 익히는 동안 꿀밤을 얼마나 맞았는지 생각해보면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직접 사냥한 토끼를 손질하고 간을 맞추고 맛있는 부위까지 양보하는 것은 물론이오, 젓가락으로 집은 음식을 흘리지 않기 위해 젓가락질을 따로 수련까지 했었다.

한데 그 나날들이 모두 의미가 없었다니!

자연히 처참한 심정이 떠올랐다.

“내 산으로 돌아가면 이 일을 꼭 따질 것이오!”

“그… 예, 힘내십시오.”

당화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위로의 의미로 어깨를 톡톡 두드리자 목리원이 울상을 지었다.

당화서는 그 꼴에 저도 모르게 ‘귀엽다’라는 감상을 떠올리다, 이내 흠칫 놀라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이럴 때가 아니었다.

“그럼 다시 식사 예절을 배워보도록 하지요. 그래도 젓가락질은 아주 훌륭하시니 언행에 관한 것만 배우시면 완벽하실 겁니다.”

“알겠소….”

“먼저 자리에 관한 것부터 배워보지요. 독대라곤 하나 상대는 맹주님입니다. 자연히 상석과 하석이 나눠지지요. 일단 보편적인 상석은….”

당화서의 설명이 이어졌다.

목리원은 재빠르게 기운을 차린 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당화서의 이런 가르침은 대체로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삶 전반에 유용한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말로 하는 설명이라 모호한 부분이 존재했으나, 목리원의 이해엔 무리가 없었다.

그는 순박한 사람이었지,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렇게가 기본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음! 확실히 알겠소. 한데 말로는 확실히 알 수 없는 부분도 있어서 그런데 혹시 시연이 가능하시오?”

“그럼요. 그것까지 생각하고 온 자리인 것을요.”

당화서가 싱긋 웃으며 상석에 가 앉았다.

“그럼 들어오는 것부터 시작해볼까요?”

“도움에 감사하오!”

목리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외쳤다.

“시작하겠소!”

전해지는 말 뒤로, 목리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포권을 취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바른 자세.

적절한 긴장과 너무 들뜨지 않은 어조.

훌륭했다.

그런 생각에 당화서가 미소 짓는 순간.

“으잉? 목아우. 예서 뭐하나? 맹주님은 또 웬 말이고.”

복도를 지나가던 제갈산이 목리원을 발견하고 물었다.

목리원의 고개가 들렸다.

“아, 제갈형! 내 맹주님과의 독대자리가 있어서 소저에게 예절을 배우고 있었소!”

“누님에게?”

제갈산의 눈이 좁아졌다.

그것에 당화서가 뜨끔하며 식탁 아래로 주먹을 쥐었다.

­아주 친한 친우끼리의 예절이지요!

의심이 묻어난 눈초리에 그 말이 떠오른 까닭이다.

이런 쪽으론 촉이 꽤나 좋은 제갈산이다.

혹시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화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불만 있느냐?”

인간은 본디 찔리는 일이 있으면 공격적으로 변하는 법.

당화서의 목소리는 그 진리에 따라 날카로워졌다.

제갈산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없소!”

그렇게 달아났다.

와중 제갈산은 생각했다.

‘내가 다시 가르쳐야겠구나!’

당화서는 참으로 똑부러진 사람이지만 목리원이 연관되는 순간 이성이 흐려지는 경향이 있었다.

제갈산은 확신했다.

당화서가 교육을 빌미로 목리원에게 이상한 지식을 전수했을 것이리라고.

참, 촉 하나는 기막히게 좋은 사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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