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구장 임무, 첩보 (13)
* * *
섬서에서의 일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오강악을 위시한 마인들은 화산과 종남의 무인들이 치료해 호송을 떠났고, 지난 한 달간 부단히도 힘겨워했던 소가장의 사람들은 이제와 하나둘 정양을 끝내고 일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목리원은 당화서에게 물었다.
“이제 저들은 어찌되는 것이오?”
“예?”
“소가장의 장주는 사망했다 들었소. 염마에게 속아 그의 부인이 된 여인도.”
“아, 그 얘기였습니까.”
당화서는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의 이야기를 목리원에게 전했다.
소가장주의 배다른 동생이 섬서의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나, 그에게 연락하니 소가장을 팔고 그 돈을 사용인들에게 나눠주란 답을 받은 것.
그리고 소가장이 있는 자리는 앞으로 한동안은 무림맹 차원에서 관리를 하리란 것까지.
모든 이야기를 들은 목리원은 눈을 큼지막하게 만들었다.
“그 배다른 동생이란 분은 참으로 대단하구려. 보통은 자신이 장주가 되겠다 말하지 않소.”
“그렇지요. 보기 드문 호인입니다. 뒷이야기로는 장주와 사이가 꽤 좋았다더군요. 사용인들과도 좋은 추억이 많았다고 하고… 그들이 길바닥에 나앉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훈훈한 이야기였으나,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생각하면 역시 씁쓸한 이야기였다.
목리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는 언제 복귀하는 것이오?”
“아마 사흘 내로 복귀할 것 같습니다. 아직 이쪽 지부와 해야할 일이 조금 남아서.”
목리원은 그 말에 슬금슬금 당화서를 살폈다.
아무렴, 저 ‘일’이란 것에 자신 때문에 있었던 돌발 행동도 포함된 것을 아는 까닭이다.
“…미안하오.”
“사과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다 같이 한 일이 아닙니까.”
“그래도 말이오. 결국 내 고집으로 시작된 건….”
“목 소협.”
당화서는 목리원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리원의 곁으로 갔다.
풀이 죽은 모습이 참 불쌍하게만 보인다.
옳은 일을 했음에도 눈치부터 보는 게 그동안 기를 너무 죽인 건 아닌가 싶어진다.
당화서는 떠오른 생각에 푸흡 웃으며 목리원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소저…?”
목리원이 움찔 떨며 얼굴을 붉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에 몸은 바짝 굳어 있었다.
당화서는 쿡쿡 웃으며 목리원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예, 솔직히 말하면 위험한 일이지요.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다면 제가 편을 들어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하지만 말입니다.”
목리원의 눈이 데구르르 굴러 당화서의 얼굴을 향했다.
당화서는 진하게 미소 지었다.
“그것이 오늘 일을 후회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저희는 협의를 위해 직접 발로 뛰었잖습니까.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하지 않구요.”
실로 후회는 없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정도(??)라는 길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않았다는 만족감이 있는 까닭이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한 까닭이다.
“이번 일은 해볼 만 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성공했구요. 그러니 지금은 기뻐만 해주십시오.”
“소저…!”
“말했듯이 책임은 제가 집니다. 단주로서.”
당화서가 목리원의 뺨을 콕 꼬집었다.
목리원은 차오른 감동에 눈망울을 일렁였다.
“역시 소저밖에 없소!”
목리원이 당화서를 왈칵 껴안았다.
그것에 화들짝 놀라 허리를 곧추세우던 당화서는, 이내 ‘푸흡’하고 웃으며 목리원의 등을 토닥였다.
“예예, 그러니까 이제 기운 내셔야지요.”
“알겠소! 내 기운을 크게 내보리다!”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다음에 같은 일이 있으면 무조건 도와주진 않을 겁니다? 저는 목 소협이 무모한 일에 뛰어들게 들지는 않을 거예요.”
“아암! 그것도 알겠소!”
임시로 만든 단장실엔 목리원의 기운찬 외침과 당화서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 껴안고 있던 두 사람이 떨어진 것은 또 한참 뒤.
“당 시주님, 계십….”
부단주인 일운이 보고를 위해 찾아올 즘이었다.
그 기척에 황급히 두 사람이 거리를 벌렸으나 그들의 얼굴 위론 붉은 기색이 가득했다.
일운으로선 고개를 갸웃할 만한 상황.
당화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목리원이 마주 안기던 순간, 그 꼴이 너무 귀여워 은근슬쩍 즐겨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인지한 까닭이다.
당화서는 오늘도 스스로의 음흉한 욕구와 싸우는 중이었다.
*
사흘이 지났다.
그간 남아있는 섬서에서의 일을 모두 마친 용봉단은 짐을 꾸려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잘 지내거라!”
그들을 마중나온 것은 다름 아닌 소가장의 사람들.
목리원은 가장 앞에 있던 선우에게 그리 말하며 웃었다.
선우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대협!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쑥스럽구나.”
목리원이 뒤통수를 긁으며 머쓱한 듯 웃었다.
그 순수하고 잘생긴 얼굴에 소가장의 젊은 여인 몇몇이 ‘아….’하고 탄성을 흘렸다.
여전한 반응이었다.
선우는 킥킥 웃음을 흘리며 사용인들을 바라보다, 이내 목리원에게 물었다.
“이제 또 볼 일이 있을까요?”
너무 큰 은혜를 입었다.
앞서 말했듯 평생이 가도 잊히지 않을 은혜이리라.
하나 그저 감사함을 담아두기보단 언젠가 꼭 이 은혜를 갚고 싶었다.
멋지게 자라 당신이 구한 사람이 이렇게 잘 컸다고 말하고 싶었다.
선우가 그런 기대감을 담은 채 목리원을 바라보자, 목리원은 환히 웃었다.
“인연이 우리를 다시 이어준다면.”
답지 않은 멋들어진 대사는 역시 ‘강호협객전’에서 따온 것이었다.
단원들의 얼굴 위로 ‘그럼 그렇지’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하나 강호협객전을 모르는 선우는 탄성을 흘렸다.
“인연이 다시…!”
그 말을 곱씹었다.
그런 중 당화서가 말했다.
“잘 지내거라. 혹 다른 일이 생기면 맹의 섬서 지부를 통해 연락하고.”
“아, 네!”
“그럼 정말 가보마. 잘 지내거라.”
당화서가 그리 말하고 돌아서 목리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목리원도 크게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그렇게 용봉단이 길 저편으로 떠나가기 시작했다.
선우는 상기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눈 속에 담긴 것은 작지 않은 동경이었다.
웃는 얼굴로 정의를 행하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모습은 소년의 마음에 어떤 불씨를 피워올리기 충분했다.
“어머니….”
“응?”
“저 꿈이 생겼습니다.”
선우의 어머니는 선우를 바라봤다.
직후 그의 한껏 달아오른 얼굴에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그게 무엇이니?”
“협객이요.”
선우가 양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그의 시선은 아직도 용봉단이 떠난 자리에 꽂혀있었다.
‘대협이 구해준 삶이야. 의미 있게 쓰고 싶어.’
한때 모든 것이 끝날 줄로 알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죽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아이에게 무엇도 바라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가 있었다.
그런 따스한 온기와 용기를 가진 이들이 있었다.
선우는 생각했다.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여 외쳤다.
“저, 협객이 되고 싶어요!”
이날부터 소년의 꿈은, 협객이 되었다.
*
섬서에서 호북 무한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경쾌했다.
용봉단이 그곳에서 일을 마치는 동안 한발 빨리 움직인 소문이 그들이 가는 도시마다 퍼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무명 또한 오르고 있었던 까닭이다.
어찌 무인으로서 제 이름값이 높아지는 것을 즐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제 이름 옆에 협(?)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에 기꺼워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참으로 즐거운 여정길이리라.
또한 그것을 끝내고 돌아온 무림맹에서조차 기꺼움은 더욱 진해져만 갔다.
“왔느냐.”
“예!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용봉단의 전각.
목리원은 가장 먼저 염소소를 찾아 싱글벙글하며 외쳤다.
염소소 또한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얘기는 들었다. 대단한 일을 했더구나. 장하다.”
목리원은 뺨을 붉히며 흐흐 웃었다.
그러자 염소소가 차를 한잔 달여와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려주겠느냐?”
“아, 그게 말입니다! 우선 섬서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목리원의 수다는 길게 이어졌다.
어찌나 그 신난 기색이 진한지 듣고 있는 사람까지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
어떤 순간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때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세세하게 이어지는 말에 염소소의 미소는 점점 지긋해져 갔다.
그리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난 후, 염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생했구나.”
“고생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뿌듯했으니!”
“그래, 하지만 미련했다.”
멈칫.
목리원의 몸이 떨렸다.
얼굴엔 당황이 묻어났다.
하나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염소소가 한 말의 뜻은 이미 다른 단원들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것일 터였으니.
목리원은 쓰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스승님이라면 이런 상황에 물러서지 않았으리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목가놈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아느냐? 목가놈과 너는 다른 게 있다.”
목리원은 염소소의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다른 것이라 하면….”
“힘.”
염소소의 미소는 더 이상 푸근하기만 하지 않았다.
“아느냐? 목가놈은 말이다. 이 강호에 나와 이름을 날린 모든 순간이 강자였다. 그것도 압도적인 강자 말이다.”
목리원의 입이 꾹 다물렸다.
사실 모르는 이야기가 아닌 까닭이다.
목선오의 강호초출은 아주 늦었다.
곧 사십이 되는 중년의 나이였고, 그런 만큼 그의 무력은 이미 초월지경에 다다라 있었다.
당시의 강호에 그를 해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말했듯, 이 강호는 강자존을 따른다. 강자의 말이 법이 된다. 목가 놈이 그리 위대한 협객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그가 강자인 까닭이다.”
“…제 무력이 모자라다는 말입니까.”
“그래. 한참이나 모자라다. 나이대에 비해선 경이적이긴 하나, 강호는 네가 어리다고 봐주는 곳이 아니다.”
목리원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분하다.
무인으로서 분한 말이었으나,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는 말이었다.
“…새겨 듣겠습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겠느냐?”
“제가 지금 오만해져 있다고 판단하신 게 아닌지요.”
목리원의 눈빛은 어느새 굳어져 결의를 띠고 있었다.
염소소는 그제야 흡족하게 웃었다.
‘머리는 참 좋단 말이지.’
하는 짓이 영 어벙해서 그렇지 이해력은 참 좋았다.
한 마디면 열 가지 의미를 이해하는 오성이 있었다.
사실 이리 말한 것조차 노파심이었으나, 염소소는 그 노파심을 더 이어갈 필요성은 없음을 느꼈다.
‘알아서 잘 크겠구나.’
게다가, 자신이 아니어도 목리원의 곁엔 바른 말을 해줄 좋은 동료들이 있는 듯했다.
“그래, 잔소리는 이쯤 하마.”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더 정진하겠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염소소는 말꼬리를 늘리며 씨익 웃었다.
“…일단 잘못을 하긴 했지 않느냐.”
“예.”
“백운이 놈이 널 찾을 것이다.”
백운.
무림맹주인 창성 사백운을 이르는 말이었다.
목리원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염소소는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
“의례적인 과정이니 긴장할 것은 없다. 뭐, 그놈이 너한테 관심을 가지는 만큼 또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어 나온 것은 끌끌대는 웃음기가 묻어난 말이었다.
”어디 잘 넘어가 보거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