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구장 임무, 첩보 (12)
* * *
오강악의 몸을 관통하던 두 개의 검이 빠져나왔다.
목리원은 ‘흐읍!’ 숨을 몰아쉬며 손끝을 떨리게 하는 감각을 털어냈다.
인간의 몸을 베고 몸을 관통하며 이는 감각은 이 순간에도 목리원을 괴롭히고 있었다.
“…끝난 게 맞소?”
털썩.
목리원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진이 빠진 목소리로 묻자 남궁진천이 마찬가지로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숯덩이가 되어 쓰러져있는 오강악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 숨은….”
남궁진천의 눈이 좁아졌다.
오강악에게서 호흡 등의 생명 반응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러길 잠시, 남궁진천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붙어는 있군. 곧 죽을 것 같지만.”
얼마나 질긴 목숨인지 선천전기까지 끌어다 쓰고도 숨이 붙어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과 목리원이 그의 단전을 깨부순 게 영향을 주긴 했겠지만, 그걸 생각해도 그랬다.
“바퀴벌레 같다.”
“흐흐, 동감이오.”
목리원이 바닥에 누운 채로 들썩거리며 웃었다.
아마도 오강악은 다신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고 제 발론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폐인이 되겠지만 그것에 대한 유감은 없었다.
아무렴, 그가 보통 악인이던가.
이곳까지 오며 그가 어떤 참상을 일궜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나.
‘아무튼.’
이리 물리쳤으니 그것으로 된 거겠지.
목리원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직전의 전투를 되새겼다.
‘신비롭다.’
신비롭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순간이었다.
검과 검이 얽혀 만드는 새로운 검로도, 그 순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음에도 상대의 의중을 알 것만 같던 기분도.
“…합격이라는 거. 꽤 좋았소.”
목리원이 그리 말하자 남궁진천은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평소대로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반응이었으나, 그 기세만큼은 꽤나 죽어있었다.
어느 정도 동의를 표하는 것이리라.
목리원은 그것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남궁형이라고 불러도 되오?”
차오른 내적 친밀감과 조금 들뜬 기분에 내뱉은 말이었다.
왜인지 그와 조금은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전한 말이었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따가웠다.
“죽여도 되나?”
남궁진천의 눈이 부릅 뜨였다.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는 눈에선 경멸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목리원은 움찔 몸을 떨며 시무룩하게 답했다.
“…그렇게까지 말한 건 없잖소.”
“역겹다.”
“거 참….”
목리원이 입술을 삐죽였다.
자연히 분위기는 어색해지기 시작했고, 당화서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괜찮으십니까!”
그녀는 혼자였다.
얼굴 위론 걱정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이 이곳의 참상에 꽤나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강악과 싸우던 내도록 이곳에선 폭음이 그치지 않았었고, 땅거죽은 다 뒤집힌 상태였으니.
게다가 목리원의 상태는 또 어떠하던가.
상의는 천 쪼가리 하나 남기지 않고 전부 타 있었다.
드러난 피부 위는 대부분이 그을러 있었다.
“대체 뭘 어떻게 싸워야 이럽니까!”
당화서가 버럭 화까지 내며 목리원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손으로 몸 곳곳을 짚으며 목리원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다.
그리 판단을 마친 당화서가 한숨을 푹 내쉬자, 남궁진천이 말했다.
“그놈보다 마인을 살펴라.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당화서는 그제야 마인을 발견하고 경악한 얼굴을 만들었다.
“…살아있는 것입니까?”
남궁진천이 말하기 전까진 저게 마인인 줄도 몰랐다.
그 정도로 마인은 숯검댕이가 되어 있었다.
“치료가 가능하나?”
“목숨줄을 붙여 놓는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 나머지는 맹에 맡겨야겠지만….”
아주 격렬한 싸움이었다는 것은 알겠다.
아마 조금만 운이 안 좋았다면 자신이 본 것은 목리원이나 남궁진천이 쓰러진 모습이 아니었을까.
당화서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까지 차오르는 와중 목리원이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다른 분들은 어딨소?”
마음이 놓이자 마자 한다는 게 다른 사람 걱정이라니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당화서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구출한 인질들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듣기론 마인들이 이곳에 온 지가 한 달이다.
그간 인질들은 사육당하는 가축처럼 방에 따닥따닥 붙어 감금되어 있었다.
다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였고, 개중엔 이미 굶주림으로 죽어있는 사람도 있었다.
오죽 끔찍한 장면이었냐 하면, 목리원이 그 장면을 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니, 어찌 되었든 성공은 성공이니.’
당화서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가지요. 일을 마무리하러.”
*
야밤의 대이동은 소란스러웠다.
도시의 주민들은 몰골이 된 채 거리를 지나가는 인질들을 보며 의아함과 경악을 토해냈고, 단원들은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마인을 경계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장원.
“어머니!”
선우가 인질들을 보자마자, 그 앞렬에 서 있는 어떤 여인을 보자마자 새된 목소리로 외치며 달려왔다.
여인이 울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팔을 벌리자 선우가 안겼다.
“선우야!”
“어머니!”
선우가 히끅 울음을 토해냈다.
여인 또한 결국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선우의 어머니는 목숨이 붙어있었다.
아주 쇠약해지긴 했으나 식사만 제대로 챙긴다면 금방 나을 정도였다.
여하튼, 지금 중요한 일은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참으로 보기가 좋소.”
목리원은 피로가 가득 묻어난 얼굴을 하면서도 웃었다.
역시 이게 좋았다.
제아무리 연기라곤 하나 남을 핍박하는 것보다 이렇게 타인을 미소 짓게 하는 일이 좋았다.
미소 짓는 것은 목리원 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의 제갈산도 코를 쓱 훑으며 웃었고, 당화서와 일운, 혜운도 흐뭇한 얼굴을 만들었다.
남궁진천은 머쓱한지 괜히 그 광경에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와중 선우가 단원들을 바라봤다.
직후 벌떡 일어나선 그들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대협!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를 구해주셔서 너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인지 목소리엔 벅차오른 기색이 가득하다.
목리원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구한 게 아니다.”
“네?”
“네가 구한 것이지.”
목리원이 시원스레 웃었다.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용기 내 진실을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돕지 않았다면 우리는 너의 어머니를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우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이내 그의 얼굴이 조금씩 젖어 들어갔다.
“대협….”
“용기 내 주어서 너무 고맙구나.”
그 말이 끝.
목리원은 모든 일이 끝난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한 순간, 이제 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차오른 피로에 그만.
털썩.
“목 소협!”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서 드러누워 버렸다.
*
이후로 사흘이 흘렀다.
무림맹 섬서 지부의 무인들, 그리고 화산파와 종남파의 무인들이 모두 도시에 들어섰다.
도시의 분위기는 이미 한껏 어수선해진 상태.
왜 아니겠는가.
지난 사흘간 소가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들 사이에 모두 퍼진 상태가 아니던가.
개중 가장 많은 말이 나오는 것은 역시 용봉단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배다른 삼형제가 이번대의 용봉들이라더군!”
“하긴! 이상하긴 했네! 세상에 그렇게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또 어딨겠는가! 성격은 또 어떻고!”
“그럼그럼! 아, 그리고 그 얘기 들었나? 배다른 삼형제에게 피해를 입었던 상인들 말일세! 다시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은 일은 없다고 하더군! 매번 적선하듯 던진 돈이 딱 피해액과 맞아 떨어진다 허이!”
“그것뿐이던가! 일이 모두 끝나고 나선 독봉이 피해를 입힌 사람들을 한명씩 찾아가 사과까지 했다고 하지 않던가!”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섬서를 들썩인 악인이 사실은 이곳에 암약한 마인을 무찌르러 온 영웅이라는 게 알려진 이후부터 그들의 평가는 손바닥 뒤집히듯 뒤집혔다.
개중 가장 많은 말이 나오는 것은 역시 용봉단의 단주인 당화서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렴, 연기를 하는 중에도 모든 과정을 앞서 통제하고 일이 끝난 후엔 사과까지 확실히 하러 다녔으니 그녀의 이야기보다 다른 게 우선될 수가 없지 않겠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들었나? 지금 맹에서 살아남은 마인들을 심문하며 얻은 정보인데… 사실 소가장에 숨어있던 게 육마(??) 중 한 명인 염마 오강악이었다고 하더군!”
“오, 오강악이라면…!”
“마검 오춘의 후예 말일세! 그들이 아직도 마교의 중심에 있다는 게 밝혀졌다네!”
“허어…!”
“아무튼, 응? 그 염마를 검룡과 묵룡이 쓰러트렸다는 게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겠나!”
“역시 후기지수의 대표들이라고 할 만하군!”
목리원과 남궁진천의 이야기는 특히 무인들에게는 빠질 수 없는 안주거리였다.
아무렴, 용봉지회의 결승 때부터 어디에 나왔다고만 하면 화제거리가 되었던 이 시대의 주인들이 아닌가.
그들이 또 한 번 경악할 업적을 냈다는 것에 다름 아닌 무인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데 왕형은 참 이런 소식에 빠르구려!”
“허허! 사실 내가 말일세, 그 용봉지회가 있던 날부터 계속 묵룡의 족적을 따르는 중일세. 무인으로서 너무 존경스러워서 말이야.”
왕형이라 불린 사내, 왕허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말해 무어 할까.
이류 무사 왕허.
그는 용봉지회에서 목리원을 처음 본 순간 그에게 매료되어 그의 우승을 점쳤고, 용봉단의 창단식에 친우를 데려가 그를 응원했고 이곳에서 또한 목리원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있는 목리원의 추종자였다.
‘사실 이곳 일은 운이 좋아 알게 된 것이지만.’
그저 섬서를 유랑하던 중 마침 들른 마을에서 딱 그날 소문이 퍼지기에 미친 듯이 수집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하나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왕허는 이 모든 것이 목리원과 자신을 이어주는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떠올렸다.
와중 이곳에서 친해진 사내가 물었다.
“여하튼, 그래서 그 묵룡은 지금 무얼 하고 있소?”
“무, 묵룡 말인가?”
왕허는 뜨끔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눈은 데구르르 굴러가고 있었다.
‘모, 모르는데.’
알 턱이 있나.
왕허는 그저 어딜 가도 사람을 쉽게 사귀고 소문에 귀가 밝은 방랑 무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그대로 말하기엔 왜인지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 사내가 보이는 기대감 넘치는 눈빛이 그 자존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 글쎄… 지난 전투에서 얻은 깨달음을 수습하기 위해 명상을 하고 있지 않겠나?”
“오오오!!!”
왕허가 황급히 지어 내뱉은 변명.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검룡형! 합격 연습 좀 합시다! 내 한 번만 더 해보면 뭔가 알 것 같소!”
“꺼져라.”
“아, 검룡형!”
“꺼지라고 했다. 그리고 검룡 형은 무슨 근본 없는 호칭인가?”
“남궁형은 싫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검룡형이오!”
“역겹다. 하지 마라.”
“거 사람이 참 차가우시오!”
목리원은 그날 합격을 통해 어렴풋이 붙잡힌 깨달음을 붙잡기 위해 남궁진천의 뒤를 쫓고 있었다.
남궁진천 또한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보다 목리원과 합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쳐와 내내 거절하는 와중이었다.
이리 쫓고 쫓기는 두 사람의 소란이 끝나는 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둘 다 조용히 안 합니까! 여기 환자가 몇인데 그렇게 크게 떠들어요!”
바로 당화서의 호통.
…섬서의 한 야트막한 장원은 오늘도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