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구장 임무, 첩보 (11)
* * *
팔이 세로로 쪼개지는 통증.
그것이 아주 느릿하게 오강악을 덮쳤다.
하나 오강악은 통증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사고가 한없이 팽창하며 어떤 장면을 그리기 시작한 까닭이다.
퇴보를 깨닫는 순간 스쳐 지나간 것은, 그의 지난 삶이었다.
*
마도육문(???門).
저 신강 너머 십만대산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가진 여섯 문파를 이르는 말이었고, 오강악은 그중 검화문(火門)의 소문주로 태어났다.
다만 육문 중 하나의 소문주라 평할 수 없었다.
검화문은 그 가문을 세운 이가 마교의 역사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였던 까닭이다.
마검(?) 오춘.
이 강호 무림에 나타났던 세 번째 천살성이자 정파 무림의 명가에서 태어나 마인으로 생을 끝맺은 괴인이 바로 검화문의 초대 문주였다면 그 위상이 설명이 될까.
그렇기에 검화문은 강성했다.
또한 이번 대의 소문주인 오강악은 강했다.
천살성의 오성으로 지어낸 ‘적염마공’은 마공 중에서도 능히 신공이라 말할 수 있는 공능으로 그를 뒷받침했다.
그가 10세의 나이에 천마의 선택을 받아 소교주가 된 것은 어찌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린날의 오강악은 생각했다.
세상이 제 것과도 같다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발아래 있는 것만 같다고.
실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딱 한 사람만 없었다면, 그의 망상은 현실이 되었을 터였다.
18세.
천마신공(????)의 전수를 하루 앞둔 날 나타난 그 사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오강악이 기억하는 그날의 일은 그랬다.
웬 거지 나부랭이 같은 것이 찾아와 천마와 독대했다.
그 이후 소교주의 자리를 두고 그 거지 나부랭이와 비무를 했다.
그 비무에서 ‘뿌드득’ 소리와 함께 안면 가죽이 뜯겨 나갔었다.
살려는 주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비다.
그런 모욕을 당했다.
이후의 일은 다시 생각해도 끔찍했다.
제 것인 줄로 알았던 모든 것이 손아귀를 빠져나가 스러졌다.
더 이상 만인지상의 자리는 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아니, 그딴 것들보다 더욱 치욕스러운 것은 언제나 고개를 조아리던 것들이 비웃음을 담은 채 자신을 흘겨보던 것이었다.
한낮 거지 나부랭이가 어떻게 자신을 능가했는가.
그 답을 안 것은 그런 세월이 일 년 정도 이어진 이후였다.
천살성?
…예, 이번 대의 천살성이라 합니다.
허….
얄궂다.
그 순간의 오강악이 떠올린 생각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렇지 않나.
이리 돌이켜 보니 자신의 운명은 그 천살성이라는 별 하나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는 꼴이 아닌가.
천살성의 후예로 태어나 그 과실을 취하고, 또 다른 천살성의 등장에 몰락하니 자신의 삶은 어쩌면 그 별을 더욱 빛나게 할 그림자 따위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날부터였다.
가슴 속에 품은 열망이 진득한 늪이 되어 가라앉기 시작한 것은.
그 무엇으로도 풀리지 않는 분노에 눈에 뵈는 것은 죄다 씹어먹기 시작한 것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보였고 뭘 씹어먹던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그런 나날 중 유일하게 유쾌했던 일이라면 하나, 단천화의 배신이었다.
중원에선 혈마라고 불리던가.
교를 배신한 배신자가 부린 술수에 그 거지 나부랭이가 천살성을 잃었다.
병신같은 일이었고, 그것보다 병신 같은 것은 그놈의 반응이었다.
…별을 되찾겠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떨어져 나간 걸 다시 붙이겠다는 건가.
그 방법을 알기는 하는 건가.
유일하게 그걸 알고 있던 제사장 단천화가 죽어 나자빠졌는데 무슨 수로 찾겠다는 것인지.
한참을 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유쾌함에 그날은 계집 하나를 통째로 집어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별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제 진정 실력있는 자만이 소교주의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런 마음에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그놈에게 도전했으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기어오르지 마라. 버러지.
그놈은 여전히 소교주였고, 그놈이 별을 잃었음에도 내가 잃은 것을 되찾지는 못했다.
왜.
어째서.
그런 의문이 떠나가질 않았다.
그리고.
‘…퇴보한 게.’
그때부터였다.
후두두둑.
오강악의 시간이 빨라졌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정확히 세로로 쪼개져 덜렁거리는 것은 더 이상 팔이라고 부르기에도 뭣한 꼴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끝이라고?’
이번 역시 천살성이다.
‘또’ 천살성이다.
자신을 드높게 만든 것도, 나락으로 처박은 것도, 이제 목숨까지 끊어내려는 것이 천살성이다.
결국 저항하지 못했다.
이 별에 휩쓸리기만 했다.
오강악은 멍하니 전방을 바라봤다.
어느새 거리를 벌린 천살성과, 그 곁의 제왕성이 보였다.
‘고작 별 주제에.’
그저 타고난 재주 중 하나가 아닌가.
왜 저것이 나를 결정지으려 하느냔 말이다.
오강악은 그것이 너무 미웠다.
그 별 하나에 자신의 삶이 휩쓸리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겨우, 겨우 별이란 말이다….”
턱!
오강악이 어깨 관절이 망가진 팔을 들어 직전 세로로 베인 팔로 뻗었다.
그 위의 어깨를 붙잡곤 손에 힘을 줬다.
뿌득.
어깨가 조였다.
뿌드드득.
살점과 근육이 죄다 짓이겨졌다.
“끄아아아악!!!”
푸화악!
어깨가 뽑혔다.
오강악은 이제 못 쓰는 팔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핏물이 터져 나오는 어깨에 손바닥을 대곤 마기를 뿜어냈다.
치치칙! 소리와 함께 고기가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절단면을 태워 지혈하는 것이었다.
오강악은 핏발 선 눈으로 목리원과 남궁진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애새끼들이 뭘 안다고 깝죽대는 것이냐.”
이젠 한쪽 팔이 없다.
남은 팔의 어깨 관절조차 아예 망가져 버렸다.
하지만 괜찮다.
“죽여주마. 네놈들도, 그 찢어 죽일 별도.”
아직 심장은 뛴다.
그리고 마기도 남아있다.
오강악은 손을 들어 갈퀴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제 왼쪽 가슴팍에 푸욱 쑤셨다.
심장을 찔러, 그 속에 깃든 제 생명을 터뜨렸다.
키이이잉!
선천진기를 불태워 생명을 마기로 치환하는 대법.
적을 죽이기 위해 기꺼이 삶을 내던지겠다는 각오로 이뤄진 대법.
적염마공의 마지막 수, 흉신악살(????)이었다.
*
이변을 눈치챈 것은 오강악이 제 팔을 뽑아내던 순간부터였다.
“묵룡!”
남궁진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외쳤다.
어느새 검을 뽑아 든 채 앞으로 내달리려 진각을 밟았다.
지금 죽여야 한다.
그런 판단이었고, 오판이었다.
“멈추시오!”
목리원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 제 쪽으로 당겼다.
콰아앙!
직후 오강악에게서 터져 나온 불길이 정확히 남궁진천의 코앞까지 스쳐 지나갔다.
남궁진천은 등골에 소름이 쫙 돋는 기분을 느꼈다.
‘갔었다면….’
죽었다.
그런 생각에 목리원을 흘긋 바라봤으나, 목리원의 시선은 불길에 꽂혀있었다.
남궁진천은 그의 시선을 따라 불길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불길이 잦아드는 순간 드러난 것에 헛숨을 들이켰다.
‘…몸이.’
오강악의 몸이 불에 타고 있었다.
단순히 불길을 두른 게 아니라, 그 피부 위가 죄다 익어가고 있었다.
뜯겨 나간 팔은 불길로 이뤄진 다른 팔이 대신하고 있었다.
“주… 거….”
오강악이 한 발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검룡! 싸워야 하오!”
그 말에 남궁진천이 입술을 짓씹었다.
‘사아아’하고 새어 나온 푸른 기파가 남궁진천의 검과 공간을 점했다.
일말의 지체도 없었다.
남궁진천은 검을 휘둘러 기파를 쏘아냈고, 오강악은 그걸 몸으로 받아냈다.
치직!
소리만이 있었다.
오강악의 몸엔 조금의 흉도 지지 않았다.
‘무슨…!’
당황이 일었으나 망설일 틈은 없었다.
목리원이 쏘아져 나갔다.
남궁진천 또한 당황을 꾹 누르곤 진각을 밟았다.
또 한 번 행하는 것은 제왕검형의 기수식.
이번엔 아예 몸뚱어리를 두동강 내버리겠다는 듯 남궁진천이 검을 움직였다.
동시에 목리원이 남은 내공을 다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
묵색과 청색.
두 개의 기파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강악을 향해 짓쳐 들었다.
오강악은 양 팔을 벌려 그것들을 손으로 막았다.
콰앙!
폭발과 함께 검초가 막힌다.
하나 두 사내는 멈추지 않았다.
남궁진천은 불길함을 느꼈다.
목리원은 살기를 느꼈다.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것이 제 생명을 불살라 보이는 공력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자리에서 도망치려 했다간 저 공력이 다른 이들을 향할 것임을.
“검룡!”
“알고 있다!”
짧은 순간, 목리원과 남궁진천의 눈빛이 오갔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이곳에서 막는다.
하지만 초절정의 무인이 선천진기까지 죄다 쏟아내며 보이는 공력을 그저 막을 수는 없었다.
방법은 하나.
합격(??)이었다.
우웅!
검명이 울렸다.
오강악의 앞과 뒤를 점한 두 사내가 동시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틀에 짜 맞춘 것처럼 정확히 같은 순간에 검을 뻗기 시작했다.
목리원의 검이 오강악의 어깨를, 남궁진천의 검이 목을 긋는다.
오강악이 남궁진천의 검을 먼저 막으려 팔을 뻗자, 목리원이 검의 경로를 뒤틀어 남궁진천의 검을 걷어내곤 그 반발력으로 오강악의 등을 베었다.
치직!
하나 치명상은 없었다.
오강악의 몸을 불사르는 불길이 터져 나오는 상처를 바로 태워 지혈했다.
오강악이 몸을 돌려 뒤차기로 목리원의 명치를 노렸다.
그러자 남궁진천이 오강악의 지탱하던 다리의 무릎을 베 무게 중심을 흩뜨렸다.
탓!
동시에 두 사람이 오강악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다른 방향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번 역시 똑같은 순간에 펼쳐진 수였다.
그것이 쉴 틈 없이 오강악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콰앙!
폭음과 함께 공세가 격렬해졌다.
믿을 수 없게도, 승기는 목리원과 남궁진천이 있는 쪽으로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다.
두 사내가 있어선 안 될 일을 해낸 것이 그 이유였다.
단 한 번도 연습해본 일이 없던 합격기를 실전에서 바로 성공시키는 기행을 벌인 것이 그 이유였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저 두 사람이 서로의 검을 너무나도 잘 아는 까닭이었다.
남궁진천이 살아생전 서로의 모든 것을 걸어 내고 상대해본 이는 목리원이 처음이었다.
목리원이 제 본성까지 이용해가며 이겨보려 발버둥 쳤던 상대는 남궁진천이 유일했다.
그 정도로 서로의 검에 해박하기에.
그 정도로 서로의 검이 어떤 움직임을 할지를 꿰고 있기에 남궁진천은 목리원의 변초로 제 검의 경로를 뒤트는 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목리원은 남궁진천의 힘을 이용해 검의 경로를 더욱 격렬히 뒤틀 수 있었다.
콰앙!
인간의 몸을 베고 있음에도 폭음이 인다.
터져 나오는 불길에 살갗이 뜨거워진다.
하나, 두 사내는 그 순간 위험이 아닌 다른 것을 떠올렸다.
‘길이….’
보였다.
아직 검을 뻗지 않은 자리로 새로운 검로가 보였다.
홀로는 구현할 수 없던 새로운 검초가 무한히 개척되기 시작했다.
이는 두 사람이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자신이 아닌 상대의 수가, 그 수에 얽힌 또 다른 수가 하나의 초식으로 화하며 새로운 무리를 쉼 없이 엮어내는 경험은 그다지도 신비로운 것이었다.
분명 불에 닿는 것은 피부인데 뜨거워지는 것은 머리였다.
다음은 어딜 향해 검을 뻗어야 상대의 검이 따라 맞춰주고 적을 벨지, 어떻게 검을 거둬야 서로의 빈틈이 가려질지 그 방법이 찰나에도 수십 개씩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무아지경(無?之?).
그것에 빠져 그들은 검이 보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관측했다.
채앵!
두 사람의 검이 맞붙으며 서로를 밀어냈다.
그 반발력으로 오강악의 폭발에서 멀어졌다.
순간, 그들은 동시에 깨달았다.
몸에서 폭발을 일으킨 직후 아주 잠시 오강악의 몸이 멈춘다는 것을.
데구르 굴러간 시선이 서로를 향한다.
눈짓으로 상대방도 그것을 깨달았음을 확인한다.
두 사람은 몸 위로 기파를 덧씌웠다.
그리고 폭발이 잦아드는 순간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정 반대편에서 동시에 찔러 들어오는 검 두 개.
그리고 그 가운데 움찔 몸을 떠는 마인.
순간 드러난 장면 이후, 검이 살을 파고드는 섬찟한 소리가 울렸다.
푸욱!
정확히 같은 순간에 두 개의 검이 오강악을 관통했다.
각각 오강악의 명치와 단전이었다.
츠즈즈.
오강악의 몸에서 불길이 사그라들었고.
“쿨럭!”
그가 핏물을 토해내며 고꾸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