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구장 임무, 첩보 (10)
* * *
목리원은 길게 숨을 내뱉으며 기파를 가다듬었다.
폭발이 이는 순간 피부 위에 기막을 덮는 순간적인 판단이 아니었으면 이미 바짝 구워져 탄 고기가 됐으리라.
목리원은 고개를 숙여 제 상태를 확인했다.
상의는 다 타들어 가 흔적도 남지 않았다. 살갗은 조금 붉은 기운이 올라와 있는 것이 열기를 완전히 지워내진 못한 듯했다.
욱신거리는 통증은 아마 화상 탓일 터다.
‘움직일 수 있다.’
검을 휘두를 수 있다.
이 정도로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목리원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낄낄 웃고 있는 오강악의 모습에 후욱 숨을 내뱉었다.
“더 할 것이오?”
오강악은 전신에 자상이 나 피가 주륵주륵 흐르고 있는 형상이었다.
비틀거리는 꼴을 보면 더 이상 무공이고 초식이고 사용하지 못할 지경으로도 보였다.
오강악은 목리원의 말에 쯧쯧 혀를 찼다.
“설마.”
오강악이 다시 한번 겁화를 몸에 둘렀다.
그러자 피가 줄줄 흐르던 상처들이 전부 지져지며 피가 멎었다.
“내가 이 정도로 포기할까? 응? 아니지. 겨우 피부 겉면 좀 긁혔다고 포기하면 내가 왜 마인이겠느냐.”
목리원의 공격은 매서웠으나 실속이 없었다.
무슨 연유에선지 급소는 단 한군데도 건드리지 않았고, 공격 부위는 일정하여 피부 위로 마기를 두르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을 피하는 게 가능했다.
그런 만큼 출혈을 막은 지금이라면 다시 싸울 수 있었다.
오강악은 잠시 목리원을 노려보다, 이내 그런 말을 이었다.
“…그래, 죽이지 않겠다고 했었지.”
살려는 주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비다.
소교주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것이 목리원의 말과 겹친다.
오만하다. 그리고 역겹다.
서로를 향해 살초를 뻗어 겨루기에도 바쁜 순간에 저리 상대를 아래로 내려다보니 이보다 역겨운 오만이 또 없으리라.
“하여튼 그놈의 별이 뭐라고 저렇게 자신만만한지. 그게 네 것이니 세상도 네 것 같더냐?”
오강악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기분을 느꼈다.
이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상대방의 존재가 너무 밉다.
살아 숨쉬는 꼴을 넘어서 그저 그것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기록조차 밉다.
저것만 없었다면.
저 별만 없었다면 모든 것이 내 것이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좀처럼 떠나질 않았다.
오강악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 감정의 이름은 분명 질시였다.
“별만 없었으면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바란 적 없는 별이오. 그리고 난 이 별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오.”
“다 그렇게 말하지. 별을 가지고 있는 놈들 특징이 뭔 줄 아느냐? 그걸 제가 다스릴 수 있다고 오만하는 것이다. 결국 운명에 휩쓸려 별에 매달릴 병신들 주제에.”
적염마공이 들끓으며 좀 더 선명한 피의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오강악의 눈 흰자위 또한 그 색에 맞춰 핏빛으로 물들었다.
“별을 이용해봐라. 내가 찍어눌러주마. 그 별이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마.”
별보다 내가 우수하다.
오강악은 그것을 증명할 자신이 있었다.
“겨우 절정지경의 애새끼가 뭘 알까.”
화르륵!
적염마공이 더욱 거칠어졌다.
오강악의 몸 주위를 넘어, 그의 등 뒤에서 크기를 불리며 악귀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적염마공 오의.
염의신(???).
초절정의 경지를 증명하는 기예, 기공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강악이 팔을 들자 악귀가 팔을 들었다.
그의 질시와 분노를 형상화한 귀신이 이윽고 목리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쿵!
뻗어나간 손이 공간을 휩쓸었다.
그 순간의 목리원은 전신이 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살기를 느끼며 검을 뻗었다.
그리하며 진각을 밟았다.
‘두 번은!’
두 번은 기공을 몰라 당하지 않으리라.
금검과의 비무에서 기공을 확실히 알았으니, 그저 기공이라는 이유로 또 당하는 일은 없으리라.
사아아.
목리원의 검에서 묵색의 기파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만련이검의 1식이 펼쳐졌다.
탈혼번쾌.
본능와 감정을 모두 흐려 치밀하게 계산된 초식만을 끊임없이 몰아치는 검.
제 혼을 괴롭혀 끄집어내고 검만을 남기는 검.
그것이 뻗어 나온 악귀의 손을 정면에서 걷어내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기파가 기파를 두드리고 검이 손을 쳐내며 순간 폭풍이 일었다.
묵색의 바람이 불길을 흩어내고, 불길이 다시 뭉치며 손으로 화한다.
그 속에서 목리원이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
기공을 아무리 해한다 한들 마인을 물리칠 수 없었다.
그저 그의 공력을 깎아내는 행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공력을 깎아내는 속도보다 자신의 공력이 모두 소진되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붙는다.’
탁!
목리원이 또 한발 발을 디디고 다가섰다.
신묘한 걸음이었다.
분명 걸음을 앞으로 내디디고 있을 텐데 그 모든 동작이 검초를 보조하는 예비동작으로 화하며 목리원의 신형을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가속에 또 가속을 더하여 검을 통제 너머로 보낸다.
내딛는 걸음 속의 회전력을 그 과정에 보탠다.
이것은 목리원이 오로지 탈혼번쾌 하나만을 위해 지어낸 보법.
귀영신보(????)였다.
스스스.
목리원이 신형이 흐려지며 몸이 여러 개로 흩어지는 착각이 일었다.
오강악은 ‘크핫!’하고 웃으며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 촐싹댄다고 될 것 같더냐!”
그제까지 놀고 있던 다른 손을 앞으로 뻗으며 행하는 동작은 초식.
악귀의 몸을 빌어 적염마공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별을 쓰란 말이다!”
오강악이 주먹을 말아쥐자 악귀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기파를 짙게 만들자 악귀의 주먹이 선명해졌다.
그 위로 기포 같은 것이 끓으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형상이 만들어졌다.
오강악이 주먹을 뻗었다.
폭권(??).
터지는 주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주먹이 지나가는 경로에 죄다 폭발이 일기 시작했다.
목리원의 숨이 ‘흡!’하고 멎었다.
저것은 위험하다.
그런 판단과 동시에 목리원의 몸이 아래로 내리 깔렸다.
내달리는 속도는 조금도 줄이지 않은 채 정말 그림자라도 된 것마냥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도 검은 가속한다.
이미 목리원의 통제를 벗어난 검은 얻은 속도를 쉬이 잃지 않겠다는 듯 그의 몸 위를 스쳐 지나가는 주먹과 바닥을 쳐대며 계속해서 빛을 흩뿌려대고 있었다.
5보.
딱 그 정도의 거리를 두고 두 사내의 눈이 맞았다.
악귀의 크기로는 간섭할 수 없는 인간의 거리였다.
오강악이 이를 빠득 갈았다.
목리원은 동공을 좁혔다.
이윽고 한계를 넘어 가속한 검이 그의 팔을 향해 쏘아졌다.
“웃기지 마라아!”
순간, 오강악의 외침과 함께 그의 몸에서 폭발이 일었다.
콰앙!
*
찰나의 순간, 목리원은 검 너머의 거리로 기파를 쏘아냈다.
탈혼번쾌로 내내 집중시킨 내력을 쏘아내듯 오강악의 어깨로 뿌린 것이었다.
아주 느리게 묵색의 기검이 폭발을 뚫고 지나가고, 이어 그의 어깨에 파악 꽂혔다.
후두둑.
핏물이 쏟아지는 것이 목리원의 망막에 새겨졌다.
하나 그것을 보는 목리원의 마음은 암담했다.
‘옅다.’
팔을 잘라낼 각오로 방어조차 포기하고 쏘아낸 수였건만 겨우 어깨 관절을 뚫어내는 정도.
길게 늘어진 찰나 속에서 목리원은 패배를 직감했다.
겁화가 점점 다가온다.
막을 수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 고집을 부렸건만.’
결국 이리 실패하고 마는 것인가.
순간 쓰린 속에 목리원이 희미하게 웃었다.
눈이 지그시 감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쿠우웅!
공간을 짓누르는 중압감이 목리원과 오강악을 휩쓸었다.
순간 목리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오강악은 허! 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일어나라.”
‘화악!’하고 겁화가 갈라진다.
그리고 고개는 든 목리원은 익숙한 이의 익숙하지 않은 등을 볼 수 있었다.
“…검룡.”
“일어나라고 했다.”
짙푸른 기파가 공간 전체를 감쌌다.
그 농도가 초절정에 오른 오강악과 비견될 정도였다.
가진 내공만큼은 세대 중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고 평해지는 남궁진천의 기파였다.
남궁진천이 슬쩍 고개를 돌려 목리원을 바라봤다.
그의 벽안은 왜인지 분노의 기색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실패는 없다. 일어나라. 어떻게든 저놈을 사로잡는다.”
남궁진천이 재차 고개를 앞으로 돌린 순간, 오강악은 그의 벽안에 낄낄 웃기 시작했다.
“제왕성!”
어깨가 뻐근하다.
아니, 짓눌리는 기분이다.
대체 영약을 얼마나 처바른 건지 감이 안 잡힐 정도로 숨이 턱턱 막히는 기파다.
하지만 그것뿐.
“네놈도 똑같은 버러지다!”
오강악의 염의신이 다시 한번 덩치를 불렸다.
이번 역시 주먹을 뻗었다.
그와 함께 오강악이 발을 내디뎠다.
오른쪽 어깨 관절이 으스러진 것은 신경도 안 쓰인다는 듯 내지르는 주먹은 호쾌했다.
쿠웅!
공기가 터지며 폭음이 일었다.
그것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남궁진천은 검을 들어 올렸다.
“누가 누굴 보고 버러지라 말하는가.”
키잉!
푸른 기파가 남궁진천의 검을 감쌌다.
직후 검이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복잡한 기교는 없었다.
그저 압도적인 거력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금검과의 비무가 있던 날부터 그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수련해왔던 일 검이었다.
쩌저적!
염의신, 악귀의 주먹이 두 개로 갈라졌다.
“묵룡!”
목리원이 쏘아져 나갔다.
공력이 얼마 남지 않아 숨이 차올랐으나, 문제 되지 않았다.
‘아직 검을 휘두를 수 있다.’
몸은 움직인다.
검에 두를 내공 정도는 남아있었다.
폭발이 있기전 쏘아냈던 수로 마인의 어깨는 아예 불능이 될 정도로 망가졌다.
그렇다면 노릴 것은 하나.
‘멀쩡한 어깨.’
목리원의 신형이 흩어졌다.
다시 한 번 검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팍, 파박! 파바박!
땅을 치며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검이 점점 희끄무리한 빛무리로 화한다.
탈혼번쾌와 귀영신보가 함께 펼쳐지자 순식간에 목리원이 오강악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오강악의 눈이 부릅 뜨였다.
‘웃기지 마라.’
이게 아니다.
자신은 별을 상대로 이기려 했던 것이지, 이런 합공으로 무너지려 한 게 아니었다.
살기에 취해 날뛰는 짐승을 찍어누르려 했던 것이지 초식에 의해 무너지려 한 게 아니었다.
이게 아니란 말이다.
뚜둑!
오강악이 손을 뻗었다.
염의신을 거둬 제 멀쩡한 팔에 둘렀다.
이 또한 기공에 속한 기교였다.
염의신과 합일하여 신체에 기공을 담는 그의 정수였다.
그것이 뻗어나간 순간.
뿌드드득.
뻗어 나온 목리원의 검이 오강악의 주먹을 파고들었다.
‘…어?’
통증보다 먼저 시각적으로 벌어진 일이 눈에 들어왔다.
겁화를 두른 주먹 사이로 파고든 검날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에서부터 손등을 지나 팔뚝과 팔꿈치를 너머 어깨까지.
찌지직!
자신의 팔이 세로로 쪼개지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공은 고작 저딴 검기로 막을 수 있는게 아니란 말이다.
기에 의를 담아 평생 걸어온 무공의 진의를 담은 것일진대.
단순한 물리력이 아닌 의념을 현상화 한 것일진대 이것이 왜 고작 칼날에 갈리냔 말이다.
‘내가 평생을….’
그것을 떠올린 순간, 오강악은 깨달았다.
소교주의 자리에 앉아 언젠가 만인지상의 자리에 앉고자 했던 그 평생의 열망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가.
‘…있나?’
없었다.
그날 그놈을 만난 순간, 그놈에게 얼굴이 뜯겨나간 순간부터 자신의 의념은 다른 것이었다.
더럽혀졌다.
염의신은 더 이상 패도를 바라는 악귀가 아닌 질시에 찬 패배자가 되었고, 그날 이후 자신은 조금도 강해지지 않았다.
분명 소교주의 자리를 뺏긴 날도 초절정이었을진대, 몇 십년이 지난 아직도 초절정이다.
후두둑.
핏물이 흩날리는 순간, 오강악은 깨달았다.
‘퇴보했다.’
질시에 빠져있던 시간동안 자신은 계속해서 퇴보하고 있었음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