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78화 (78/334)

〈 78화 〉 구장 ­ 임무, 첩보 (9)

* * *

남궁진천이 소란을 일으키는 와중, 다른 단원들은 장원의 내부로 진입하고 있었다.

마인의 수괴가 있는 안채는 가장 심부.

과정에서 다른 마인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대부분이 검룡에게 시선이 끌렸습니다. 아마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마인들은 심부를 지키는 핵심 인력들이겠지요.”

기감을 늘려 확인하진 못했다.

이쪽에서 기를 펼치면 저쪽에서도 자신들의 위치를 눈치챌 것인 까닭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저쪽의 전력을 가늠하며 인력을 나누는 것뿐.

“선우의 말대로라면 인질들이 잡힌 곳은 안채에서도 가주의 침소라고 들었습니다. 장원 구조상 절대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곳이지요.”

상식적으로라면 그랬다.

“제갈산.”

당화서는 제갈산을 바라봤다.

제갈산이 싱긋 웃었다.

“나한테 맡겨 주시구려.”

제갈산의 약식 진법과 보법은 야음을 틈타 움직이는 데 최적화 되어 있다.

상대의 인지를 속이고 인질들을 구출하는데 그보다 적합한 이는 없으리라.

하나, 그저 제갈산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는 일.

저 안채에 있는 것은 마인들 중 최정예 병력인 만큼 시선을 분산시키는 일이 필요했다.

“일운 스님과 백봉은 저와 함께 다른 마인들을 상대합니다. 들은 대로라면 저쪽의 수가 한 명 더 많겠지만, 저는 충분히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혜운과 일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확인한 당화서가 목리원에게 말했다.

“목 소협.”

“말하시오.”

“목 소협이 수괴를 잡아야 합니다. 이 중에서 무력적으로 가장 완성된 것이 목 소협인 까닭입니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목리원이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소. 아니, 반드시 해내겠소.”

가장 위험한 길을 가는 것은 이런 고집을 부린 자신이어야 할 것이다.

목리원은 그런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른 단원들이 따라 일어섰다.

“제갈산. 전투가 시작되면 움직여라.”

“무운을 빌겠소.”

“그럼 갑니다.”

탁!

당화서가 뛰어오르는 것을 기점으로 단원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

염마 오강악은 아직도 방 안에 누워있었다.

눈까지 감고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꼭 죽은 사람의 꼴과도 같았으나, 간헐적으로 움직이는 발끝은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천살성이라….’

오강악은 그것을 곱씹었다.

그리하며 표정을 구겼다.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 까닭이다.

언제나 새빨간 동공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던 사내.

자신이 있던 자리를 앗아간 찢어 죽여도 모자랄 사내.

현재의 소교주였다.

­살려는 주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비다.

오강악은 제 얼굴을 쓸었다.

그를 떠올릴 때면 그에게 뜯겨나갔던 안면 가죽이 욱신거리는 탓이었다.

‘버러지 같은 것.’

오강악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솟았다.

‘그깟 별 하나 잃었다고 병신이 되다니. 얼마나 우습더냐.’

오강악은 속으로 소교주를 비웃었다.

천살성을 잃고 검붉게 굳어버린 눈동자도, 약에 찌들어 시간을 보내는 몰골도, 그런 주제에 미련을 못 버려 이리 중원을 침공하는 것도 모두 우습기 그지없었다.

명령대로라면 도둑은 살려야 한다.

그가 살아있어야 다시 별을 되찾을 수 있으니.

하지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오강악은 그를 살릴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자신이 천살성의 목을 꺾어버린다면 별은 영영 잃게 된다.

그리된다면 그 빌어먹을 종자에게 영원한 절망을 안겨줄 수 있으리라.

“끄흐흑!”

오강악은 들썩거리며 폭소를 토해냈다.

“천마아아~ 군리이임~.”

은 개뿔이.

“별에 의지하는 버러지한테 줄 자리는 아니지.”

오강악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느껴지는 기운이 있는 까닭이다.

“자, 그럼 손님을 맞으러 가야지.”

그의 몸에서 굳은 피가 투둑투둑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마기가 피어올랐다.

화르륵 피어오른 마기가 핏빛 겁화로 화해 오강악의 몸을 감쌌다.

적염마공(赤???).

그를 소교주의 자리까지 이끌어주었고, 이제와 염마(??)로 불리게 한 마공이 발현된 것이었다.

오강악이 그대로 내달려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하며 주먹을 뻗었다.

순간.

콰앙!

문밖에서 틈을 노리던 목리원이 검을 뽑아 들어 주먹을 막았다.

“고놈 참 잘도 생겼구나!”

오강악이 끅끅 웃으며 외치자, 목리원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마인.”

“죽어라!”

오강악이 두르고 있던 불꽃이 갑작스레 덩치를 불렸다.

이윽고, 폭발을 만들었다.

콰앙!

목리원이 튕겨져 나갔다.

*

이곳까지 오며 목리원이 고민한 일이 있었다.

‘과연 별에 의지하지 않고 마인을 이길 수 있을까.’

천살성에 의지한다면 쉬울 것이다.

목리원은 설령 마인이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다 한들 천살성을 이용한다면 쉽사리 그를 이길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천살성은 상대의 모든 살기와 움직임을 다 파악할 수 있다.

극마지체는 상대가 사용하는 마공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

목리원에게 마인은 그가 행하는 모든 수를 꿰뚫을 수 있는 상대다.

그가 얼마나 강하던, 그런 상황이라면 질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해선 안 됐다.

‘살기에 잡아 먹힐 것이다.’

천살성이 보여주는 투로는 모두가 살초였다.

극마지체가 바라는 것은 이 몸을 마기로 물들이는 것이었다.

­원아, 마공이 왜 마공인 줄 아느냐? 그것이 몸에 해로움을 알면서도 참을 수 없는 유혹으로 심상을 옭아매는 까닭이다. 한 번이라도 그 맛을 보는 순간 다시는 전과 같은 수련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목리원은 알았다.

자신은 아직 짓쳐들어오는 유혹을 몰아낼 정도로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유혹을 역으로 이용해 되돌릴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 아니었다.

남궁진천과의 비무에서 사용한 방법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자신을 죽일 의도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방법.

이번에는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인의 살기는 남궁진천의 것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지독할 테니.

‘권마. 그를 이기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다.’

이제껏 그러지 않겠다고 해놓고도 은연중 천살성에 기대 온 것이 문제일 터다.

다만 위기 앞에서 통제되지 않는 힘으로 도박해온 이유일 터다.

하여 목리원이 떠올린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초식.’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일정한 경로로 이어가는 수.

그것이라면 살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마인을 벨 수 있었다.

검초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실수로라도 마인의 급소를 벨 일이 없었다.

아주 치밀하고 기계적으로 사고를 모두 초식에 의탁하여 벤다면 유혹에 떠밀릴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 지은 검이 있었다.

‘만련이검(??理?).’

권마 패웅추를 상대하며 실감했던 초식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하여 직접 만든 검법.

이것을 이용하면 저 마인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뭘 그리 간을 보느냐. 응? 천살성이면 더 사납게 굴어야지.”

오강악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그의 몸을 휘감은 핏빛 겁화는 사납게 혀를 날름거리며 목리원을 위협하고 있었다.

목리원은 물었다.

“…역시 당신들은 이 별에 대해 알고 있구려.”

“아암, 알다마다.”

“어떻게 아는 것이오?”

오강악이 우뚝 섰다.

그는 잠시 멍한 얼굴을 만들다, 이내 미친 듯이 폭소하며 말했다.

“크하하학! 순진하기도 해라. 내가 그걸 왜 알려줄 것이라 생각하느냐?”

“알려주지 않으면 당신이 아주 고통스러울 것인 까닭이오.”

“얼씨구.”

“농담이 아니오.”

목리원은 자세를 가다듬었다.

어느새 검집은 저 멀리 던져, 양손으로 검을 쥔 자세였다.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살려두지도 않을 것이오. 나는 당신을 아주 괴롭고 아프게 만들 것이오.”

초식의 예비 자세였다.

오강악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목리원으로선 알 수 없는 감정을 품은 채로 한참이나 그를 응시하다, 이내 읊조리듯 말했다.

“…항상 그런 식이란 말이다.”

“음?”

“네놈들은 말이다. 별을 가졌다는 놈들은 말이다.”

쿵.

오강악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안면 가죽 절반이 갈려있는 얼굴 위론 힘줄이 뿌득뿌득 돋아 있었다.

“겨우 타고난 별 하나로 그렇게 유세를 떤단 말이다. 그걸 빼면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목리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 더 생각을 이어 나가진 못했다.

오강악이 목리원을 향해 달려든 까닭이다.

화르륵!

겁화가 쏘아져 나왔다.

동시에 오강악의 오른 손아귀가 목리원의 안면을 움켜쥐려는 듯 크게 펼쳐져 다가왔다.

온 세상의 증오를 다 그러모은 살기가 이러할까.

원망에 절여 팔팔 끓인 감정이 이러할까.

목리원은 저 손아귀와 함께 전해지는 것들에 가라앉은 눈빛을 만들며 말했다.

“…말하지 않겠다면 알아내면 그만인 일이지.”

목리원의 출수는 빨랐다.

인간의 인지를 넘어 사각에서부터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꽈드드득!

찰나의 순간 정확히 7회.

목리원의 검이 오강악의 손가락 마디, 손목, 팔뚝과 팔꿈치 관절까지 죄다 베고 지나갔다.

떨어져 나가는 살점은 없었다.

오강악이 그 순간 팔에 마기를 집중시킨 까닭이다.

오강악의 피가 허공을 수놓으며 두 사람의 몸이 교차해 위치가 바뀌었다.

하나 그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오강악이 진각을 밟고 재차 쏘아졌다.

이번에 뻗어내는 것은 발이었다.

염퇴각(??).

겁화를 두른 다리가 목리원의 명치를 향했다.

스으으­.

목리원의 몸에서 묵색의 기파가 흘러나와 검을 감쌌다.

목리원은 다시 한번 인지를 벗어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이번 역시 양상은 목리원의 우세였다.

꽈드드득.

총 11회였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검을 휘두른 목리원이 오강악의 다리를 갈아버리겠다는 듯 발끝부터 허리까지를 벴다.

그리하고서도 멈추지 않았다.

순간 호흡을 가다듬은 목리원은 더욱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오강악을 몰아쳤다.

한 번에 휘두르는 검의 횟수가 많아졌다.

7회로 시작한 것은 11회를 넘어 18회와 31회.

그리고 또 다시 42회와 51회까지.

검을 베는 횟수는 그리도 늘어났을진대, 그것에 걸리는 시간은 소름이 끼치도록 똑같았다.

만련이검 1식.

탈혼번쾌(????).

목리원이 무림맹의 무공 중 쾌검만을 그러모아 그 묘리를 엮어 만든 초식을 이어갈수록 빨라지는 검.

최초에 팔의 힘만을 이용하던 검이 저항과 반발력, 그리고 기파의 충돌을 이용하며 더욱 가속했다.

꽈드드드득­!

살점과 뼈가 베이는 소리가 계속해서 일었다.

이젠 목리원의 신형마저 흐릿해지고 있었다.

다만 번쩍번쩍 튀는 불똥만이 이것이 무언가의 충돌임을 말해줄 정도였다.

목리원은 제가 장담한 대로 오강악의 급소만을 전부 피해 가며 그를 찍어눌렀다.

그런 와중, 오강악이 끅끅 웃었다.

“병신.”

목리원의 표정이 굳었다.

짧은 순간, 전신이 다 베어 긁히는 중에도 오강악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확인한 까닭이다.

자신의 명치였다.

고개 숙인 목리원은 어느새 불이 옮겨붙어 화르륵 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위험하다.

그리 판단한 목리원이 초식을 끊어내고 빠르게 몸을 물렸다.

오강악은 비틀대면서도 웃었다.

전신의 살점을 죄다 갈아버린 상처는 신경도 안 쓰는 모양새였다.

“저만 잘난 줄 아는 병신. 그러니까 고꾸라지는 거다.”

그리하며 손바닥을 짝! 하고 부딪쳤다.

“너나 그놈이나.”

목리원의 명치에 붙어있던 불꽃이 화악 전신으로 퍼졌다.

그리고 폭발했다.

콰아앙!

적염마공의 5식, 염마귀(???)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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