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구장 임무, 첩보 (7)
* * *
“맹에 도움을 요청합시다.”
제갈산의 말이었다.
당화서가 선우의 거짓됨을 확정지은 순간 가장 먼저 나온 의견이었다.
당화서가 고개를 끄덕였고 남궁진천이 동의를 표했다.
하나 그것으로 모든 결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럼 선우의 어머니는 어떡하는 것이오?”
말을 내뱉은 것은 목리원, 답한 것은 남궁진천이었다.
“그것조차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
“진실일 가능성이 더 크오. 내가 계속 지켜본 바로는 아이에겐 다른 어떤 사술도 걸려 있지 않았소. 몸속에 내기를 흘려본 결과 고독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었소. 그렇다면 협박당하고 있다는 말일 텐데, 그 내용으로 가장 타당한 것이 어머니의 목숨이 아니오?”
앞서 있던 논쟁과는 달랐다.
목리원은 이번엔 충분한 근거를 들어 선우의 편을 들었고, 그 근거는 다른 단원들로서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형태였다.
물론, 인과적인 납득을 말하는 것이었다.
목리원의 말은 여전히 합리적이지 못했다.
그 점을 꼬집은 것은 이번 역시 남궁진천이었다.
“우리는 아직 적의 병력을 모른다.”
“하지만 선우의 어머니가 위험하다면 그걸 외면하는 것은 그른 일이오!”
“위험하고 비합리적인 일이다.”
“양민의 목숨을 앞에 두고 합리를 따지는 것이오?”
“그러는 자네는 양민의 목숨을 위해 여기 있는 이들의 목숨을 다 바쳐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남궁진천의 말에 목리원의 몸이 멈춰 섰다.
얼굴에 떠오른 것은 머뭇거림이었다.
“그건….”
“협의라, 좋지. 하나 그것이 위험 앞에 불나방처럼 위험 앞에 달려들라는 말은 아니다.”
남궁진천은 얼굴을 찌푸린 채로 말을 이었다.
“본인의 입지를 상기해라. 우리가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상기해라. 우리는 당해선 안 된다. 용봉단은 백도 무림이 이번 전쟁에 내놓은 얼굴이고, 그런 만큼 언제나 성공하는 모습만을 보여야 한다. 다만 명예의 문제가 아니라, 사기의 문제와도 연관된 것이다.”
남궁진천은 짜증이 났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랬다.
그는 아직도 이 선우라는 소년을 포박해 두었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남궁진천의 기벽 ‘통제광’이 자극당한 것이다.
제왕성을 타고 난 그는 천성적으로 모든 일을 발아래 두고 있어야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 불확실성에 대한 거부감을 진하게 느끼고 있었다.
“묵룡, 우리는 유람 중 이 꼬맹이를 만난 게 아니다. 임무의 과정으로서 이 꼬맹이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 차이를 알아라. 임무란 건 네놈 마음대로 날뛰어도 되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남궁진천이라 해서 협의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이 백도 무림이 왜 백도(白?)인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나. 협의를 앞세운 결과가 희망차기만 할 것이라면 세상에 악을 행하는 자가 누가 있겠나.
선인이 당하는 일이 왜 있겠나.
그렇기에 합리가 필요했다.
남궁진천은 눈앞의 일보다 큰 그림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치(理?)보다 합리(?理)가 우선시 되어야 정의가 바로 섬을 믿는 사람이었다.
목리원은 남궁진천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리하며 그의 말이 옳음을 인정했다.
하나 그것에 따르지는 않았다.
“그럼 나 혼자라도 가겠소.”
“…뭐?”
“검룡의 말은 합당하오.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가 선우의 어머니를 구하려는 것은 나의 욕심이오. 그것에 단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민폐가 맞겠지.”
목리원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러니 혼자 가겠소. 부탁하오. 나는 도저히 이 일을 외면할 수 없소.”
고개까지 떨구며 해내는 부탁이었다.
그것에 남궁진천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안 된다. 네놈이 혼자 가서 당하면 마교 놈들이 맹의 공세를 눈치챌 것은 생각하지 못하나?”
“그럼 도망가지 못하도록 끝까지 발을 묶어두겠소. 전신이 칼에 꿰뚫려도 버텨 보이겠소.”
“그걸 비합리적이다 말하는 것이다.”
남궁진천의 기색이 더욱 험악해졌다.
그 험악함이 곧장 칼이라도 뽑아 들 것 같은 수준이라면 표현이 될까.
“생떼 부리지 마라. 네놈이 죽으면 단의 전력에서 3할 이상이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단순한 전력 손실이 아닌 상징적 의미가 깎여나가는 것이다. 한데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나.”
그에 맞서는 목리원도 물러서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런 비합리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오.”
덜컥.
남궁진천이 멈춰 섰다.
목리원은 힘있게 말을 더했다.
“검룡의 말은 옳소. 나는 그걸 이해하오. 검룡은 참으로 멀리 보는 사람이고 대의를 볼 줄 아는 사람이오. 한데 말이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대의만 바라보며 눈앞의 일은 외면한다면 그들은 누가 구해주는 것이오?”
목리원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이치와 합리는 다른 개념이나, 그 무엇도 틀리지 않은 개념이라고.
그렇기에 한쪽에만 목을 매선 안 되는 것이라고.
남궁진천은 합리적이다.
그의 주장 또한 합리적이다.
하나, 정의는 그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았다.
남궁진천의 합리는 핍박받는 약자들을 구할 수 없었다.
목리원은 그것이 싫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합리만을 따졌다면 자신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인 까닭이다.
“누군가는 비합리적이어야 하오. 누군가는 눈앞의 약자를 위해 뛰어들어야 하오. 그래야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웃을 수 있소.”
목리원은 목선오의 협에 의해 살아있는 이였다.
미래에 있을 수많은 부정적인 가능성에서 눈을 돌리고, 그저 눈앞의 아이를 살리려 한 우둔한 협의에 구원받은 이였다.
그렇게 살아난 주제에 어찌 합리를 따질 수 있겠는가.
어찌 제 목숨 하나 건사하자고 남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라도 비합리를 따라야 하지 않겠소. 나처럼 우둔한 이만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목리원이 쓰게 웃었다.
그 기색에 남궁진천은 그저 주먹을 꽉 쥘 뿐이었다.
당화서가 나선 것은 그때였다.
“그만.”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녀의 표정 또한 시린 분노가 맺혀 있었다.
“말다툼이나 할 것이면 그만두십시오.”
정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단장으로서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눈치 없는 목리원과 남궁진천이지만, 그것 정도는 알 수 있었기에 한발 물러섰다.
당화서는 피곤한 듯 콧잔등을 꾹꾹 눌렀다.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지만….’
목리원과 남궁진천은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다른 극점에 서 있었다.
그런 만큼 이런 다툼 또한 예상 내의 일이었다.
그것이 하필 이런 순간, 이런 주제를 두고서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부담감이 어깨를 꽉 짓누르는 와중, 하나 안타깝게도 임무 중인 현 상황에서 최종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었다.
“두 사람의 의견 모두 잘 들었습니다.”
단원들의 시선이 당화서를 향했다.
당화서는 그때까지도 어찌할지를 고민하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저는 여러분이 제가 단장이라고 해서 제 말을 들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들을 것이었다면 진즉에 들어 처먹었겠지요.”
그 말에 깨갱하는 것은 직전까지 싸운 두 사내였다.
하나 나머지 셋도 그리 당당한 낯짝은 아니었다.
“일단 이 꼬맹이를 깨울 겁니다. 그리고 물어보지요. 정말 어머니가 잡혀있는 것은 맞는지. 그리고 저쪽에서 걸어온 조건이 뭔지.”
단장은 가장 이성적이어야 한다.
당화서는 그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당화서가 남궁진천을 옹호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사실 여부를 밝혀낸 다음, 각자의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그녀는 단원들의 선택을 존중해줄 심산이었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단장의 덕목은 책임이면 족한 것이었기에.
*
깨어난 선우에게 들은 이야기는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었다.
단원들을 장원의 후문으로 유인해오면 어머니를 살려주겠다.
이번에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말이었다.
아무렴, 저 사실을 바로 파악하기 위해 제갈산이 직접 선우의 박동을 측정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까닭이다.
이어지는 것은 바로 단원들의 선택이었다.
그들의 앞 길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당장 목숨이 위험할지 모를 선우의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맹의 지원이 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맹엔 전서를 보냈습니다. 지원이 오기까지 예상되는 시간은 사흘 안팎, 오늘 바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한 시진 뒤 장원의 마당으로 나와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단원들이 흩어졌다.
목리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당 앞으로 나왔다.
아직 한 시진은 채 되지도 않았음에도 말이다.
‘욕심인 것은 알고 있다.’
하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목리원은 그 본인이 협객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절대 타협하지 못할 선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단원 모두가 나오지 않아 끝내 목숨을 잃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선이었다.
목리원은 눈을 지그시 감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선우가 그에게 다가온 것은 그런 와중이었다.
“…대협.”
선우는 어느새 목리원을 대협이라 부르고 있었다.
죄스러운 마음 반,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자신을 믿어준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 반이었다.
목리원은 선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표정을 풀며 말했다.
“아, 왜 더 누워 있지 않고 나와 있느냐.”
싱긋 웃는 얼굴은 구김살이 없었다.
마치 아무런 걱정도 말라고 안심시키는 듯한 기색이었다.
하나 어찌 그리할 수 있겠는가.
선우는 이미 단원들 사이에 오간 말을 모두 들었다.
지금 이 사내가 자신 때문에 사지로 기어들어 갈지도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다.
선우는 쿵쿵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죄책감과 불안함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역시 안 되겠어.’
선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가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음?”
“저 때문에 사지로 가지 않으셔도 된다구요. 마인들을 잡는 데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목리원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선우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까닭이다.
“대, 대협은 천하제일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저도 들었어요! 용봉지회에서 검룡을 무찌르고 우승자가 되신 거. 너무 압도적이어서 어쩌면 이번 세대엔 대협을 이길 사람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
묵룡 목리원에 대한 소문이 얼마나 파다하던가.
이 전쟁에서 그가 구할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겠는가.
선우는 알았다.
그런 사람이기에 더욱 멀리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죄, 죄송해요. 괜히 심란하게 만들어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것에 선우의 심장이 더욱 무겁게 뛰었다.
목리원의 답이 나온 것은 그런 박동이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어느새 목리원은 선우의 앞에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부드러운 목소리에 선우의 고개가 들렸다.
목리원은 웃고 있었다.
“왜 내가 질 것이라 판단하느냐?”
자신감이라 말할 수도, 또한 객기라고 말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선우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답을 내뱉었다.
“…마, 마귀는 엄청 강해 보였어서요.”
“나는 약해 보이더냐?”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걱정이 없겠구나.”
선우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를 기분을 느꼈다.
목리원은 그만큼이나 선우에게 곤란함을 주고 있었다.
목리원도 그것을 알았다.
하여 더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
“걱정일랑 말거라. 내가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온전한 내 고집 탓이니.”
목리원의 손이 선우의 어깨를 짚었다.
다친 그가 아프지 않도록 부드럽게 해내는 행동이었다.
“나는 남을 돕는 일에 밖에 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 내가 검을 쓸 자리를 찾아가는 것뿐이다.”
선우에게 하는 말이었고, 동시에 목리원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검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되새기겠다는 듯 입안에 단어를 굴리다,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아느냐?”
“무엇을요…?”
“내 검은 말이다.”
목리원은 선우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한 얼굴을 한 그에게 말했다.
“내 검은, 처음 그것을 쥔 순간부터 너희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 자신이 검을 배운 이유를 되새겼다.
그 속에 망설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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