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구장 임무, 첩보 (6)
* * *
소년이 눈을 뜬 것은 그날 해가 다 저물고 난 이후였다.
“으음….”
고통스러운 기색이 묻은 신음.
그것에 고개를 번쩍 든 목리원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일어난 것이냐?”
반가움이 잔뜩 묻어난 어조였다.
소년은 온 전신이 다 쑤셔오는 와중에도 눈꺼풀을 들어 올려 목리원을 바라봤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우, 우와….’
피로와 통증으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확 들어오는 목리원의 외모 탓이었다.
소년은 단언컨대 사람이 이렇게까지 잘생길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 아니, 다 아프겠구나. 미안하다. 그보다 정신은 좀 들고? 그래, 물, 물이라도 마실 테냐?”
목리원이 허둥지둥 주변을 둘러보던 중, 소년은 뒤늦게야 지난 일을 되새겼다.
간밤에 있었던 마귀와의 만남.
그리고 그가 자신을 끌어내 가둔 일.
한참이나 몸을 두들긴 후 내뱉던 말까지.
배다른 삼형제라는 놈들이 있다. 근래 근방에서 악명을 떨친 놈들이지. 그놈들을 찾아가라. 살려달라고 빌어보고 그놈들이 너를 도와주겠다고 말하면 이곳으로 이끌어라.
그 순간 마귀의 시뻘건 눈을 떠올린 순간, 소년의 숨이 멎었다.
장원 뒤쪽의 담벼락을 넘도록 유인해라. 그럼 네 어미는 살려주마.
‘어머니!’
소년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뚜두둑!
갑작스런 움직임에 골절된 갈빗대가 비명을 내질렀던 까닭이다.
“끄하악…!”
“지, 진정하거라! 그리 크게 움직이면 안 된다!”
목리원이 화들짝 놀라 소년을 바로 눕혔다.
소년은 헉헉 숨을 내쉬다 겁먹은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자 목리원이 말했다.
“그래, 내 경황이 없어 아무것도 묻지 못했구나.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목리원의 목소리는 따스했다.
그것에 소년은 몸을 움찔하다,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서, 선우입니다.”
“선우. 선우라! 참 어여쁜 이름이구나. 그래, 일단 말은 할 만 하느냐?”
“네에….”
소년, 선우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당황을 토해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이, 이 사람이 배다른 삼형제?’
목리원이 너무 친절했던 까닭이다.
이상했다.
본디 들려온 소문에 의하면 배다른 삼형제는 참으로 악독한 악인들이라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가지는 일이 없다고 들었는데, 지금 사내가 보이는 모습은 너무 선하지 않나.
분명 죽어 마땅할 나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들과 어머니를 맞바꾸려 한 것인데, 이러면 차마 그러기가 미안해진단 말이다.
‘이런 사람을….’
그 마귀에게 던져줘야 하는 건가.
선우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하나 그의 속마음을 알 턱이 없는 목리원은 그저 그 안색에 깜짝 놀라며 말했다.
“왜, 왜 그러느냐? 또 어디가 아픈 것이냐? 내 기다리거라. 어서 소저를….”
“아, 아니! 아니에요!”
선우는 다급히 목리원을 붙잡았다.
핑핑 돌아간 그의 머리는, 이 순간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아니야. 어머니를 구해야 해. 이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건 상관없이!’
자신만이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다.
마귀는 분명 이 사람들을 장원 뒤쪽 담벼락으로 이끌면 어머니를 풀어주겠다고 말했다.
선우는 지난 밤의 일을 또 한 번 되새겼다.
그날 밤 마귀가 내밀었던 새끼손가락은 분명 어머니의 것이었다.
선우의 손이 벌벌 떨렸다.
그는 지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도, 도와주세요.”
선우는 모르는 사람들의 목숨보다 어머니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
단원들이 모이기까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우가 깨어난 순간 목리원이 허둥지둥 외쳤던 말들이 방 밖으로도 울렸던 까닭이다.
그리 크지 않은 방.
단원들이 선우를 빙 둘러싼 채 앉자 목리원이 말했다.
“그래, 이제 말해보거라. 선우 너는 어디서 왔고 무엇 때문에 그런 몰골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목리원의 태도는 여전히 따스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선우는 마른침이 꼴깍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바라보며 유독 험학한 기색을 뿌리는 벽안의 사내 때문이었다.
선우는 저런 벽안을 가진 사람을 알았다.
‘거, 검룡.’
지금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후기지수 중 하나인 검룡 남궁진천이 분명했다.
그걸 알고 나니 다름 사람들의 정체까지도 짐작이 갔다.
이들은 용봉단.
지금 중원 무림을 한껏 달아오르게 한 신예들일 것이다.
선우는 이제야 인과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귀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그가 왜 배다른 삼형제의 악행을 들어놓고도 자신에게 동정을 구하라 말했던 것인지까지도.
‘마, 마귀들은 무림맹을 노리고 있었구나!’
그것에 흔들리는 마음이 있었다.
이들이 무림맹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사정을 설명하고 구출을 요청해도 되는 게 아닐까.
짧게 고민이 떠올랐으나, 이내 선우는 그 일을 포기했다.
‘아니야. 만약 내가 도움을 청했다가 마귀들에게 들키면 어머니는….’
분명 명을 달리하실 것이다.
마귀들이 지난 한 달간 보였던 악행은 그다지도 무자비한 것이었다.
소년에겐 그런 위험부담 앞에서 정의를 부르짖을 용기가 없었다.
소년의 눈이 목리원을 향했다.
아직 끈기 있게 자신의 답을 기다리는 모습에 또 마음이 흔들렸지만, 선우는 다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저는 소가장에서 왔어요.”
“소가장?”
목리원의 물음에 답한 것은 제갈산이었다.
그는 요 닷새간 근처의 소문을 모았던 터라, 지금 선우가 말하는 장원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장원이네. 한 달 전 새로 데릴사위가 들어왔다는 것으로 알고 있네.”
데릴사위라는 단어에 선우가 흠칫 떨었다.
당화서는 그 반응을 유심히 살피다 물었다.
“아가, 네가 그리 두들겨 맞은 이유가 방금 말한 데릴사위 때문이더냐?”
“네, 네에….”
선우는 움츠러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곤 미리 들은 대로 말을 엮었다.
“데, 데릴사위라는 사람이 저희 어머니를 겁박하고 감금했어요! 그래서 제가 구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한테 들켜서….”
선우의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연기는 아니었다.
선우는 실제로 감금되어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깊은 슬픔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것에 목리원이 안타까운 듯 탄식을 내뱉었다.
“마음고생이 심했겠구나.”
“도, 도와주세요! 어머니를 구해주세요! 장원의 비밀 통로로 향하는 문은 제가….”
그 말이 더 이어지려는 순간, 당화서가 출수했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손이 선우의 혈도를 콕콕 찍었다.
그러자 선우가 스르르 잠에 빠졌다.
목리원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 당화서가 말했다.
“거짓말을 하는 중입니다.”
확신 어린 어조였다.
*
같은 시간 소가장의 안채.
그곳엔 온통 피로 칠해진 방 안에 누워 나른한 얼굴로 천장을 보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의 행색은 몰골이란 말이 어울렸다.
대체 언제부터 이 피바다에 잠겨 있었던 것인지 검붉게 굳은 피가 그의 온 전신에 들러붙어 있었고, 그에 따라 내뱉는 숨엔 비린내가 풀풀 풍길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었다. 사내의 주변에 널려있는 것은 시체. 또한 그가 우물우물 씹고 있는 것은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식인.
사내는 지금 그 행위를 하고 있었다.
“…염마님.”
와중, 새까만 잠행복을 입은 이가 그림자처럼 스르르 몸을 일으키며 나타났다.
누워있던 사내, 염마(??) 오강악이 눈을 데구르르 굴려 제 수하를 바라봤다.
수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꼬맹이가 무사히 장원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
“하지만….”
“음?”
“괜찮겠습니까? 그것이 그놈들한테 사실대로 말해 맹의 지원을 받아온다면….”
오강악은 낄낄 웃었다.
“춘아. 내가 왜 굳이 그 꼬맹이를 직접 두들기면서까지 그곳에 보낸 줄 아느냐?”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겁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겁쟁이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이기적인 놈들은 사람을 저울 위에 얹어둔다. 그 꼬맹이가 딱 그랬다. 제 몸 하나 건사하겠다고 똥간에 숨어있던 것도, 그리 두들겨 패니 살려달라 매달리는 것도, 또한 어미를 돌려줄 테니 다른 놈을 바치라는 말에 순순히 수긍하는 것도.”
오강악은 ‘퉤’하고 씹고 있던 손가락을 뱉었다.
그러자 그것이 천장을 툭 치고 떨어지며 길게 핏물을 흩뿌렸다.
“적격이지. 거기에다 생각도 짧아. 아마 그놈은 무조건 거짓말을 들킬 게다.”
‘춘’이라고 불린 복면인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는 대경실색한 얼굴로 오강악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그것은 위험한 일이 아닙니까? 맹의 귀에 이 일이 들어가 지원이 온다면….”
“그게 재밌는 것 아니겠느냐.”
오강악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는 너무나도 유쾌한 일을 맞닥뜨리고 있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관객이 되는 게다.”
“관객이라니 그 무슨….”
“그 위선자 놈들이 부르짖는 협이 어떨지. 그걸 구경하는 게야.”
오강악은 제 얼굴에 들러붙은 피딱지를 슥슥 털었다.
“자, 위선자 놈들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일 것이다.”
오강악의 피부가 드러났다.
그의 안면엔 마치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쭈욱 긁어낸 듯한 굵고 거대한 흉이 있었다.
“하나는 오늘 밤 바로 이곳을 찾는 것이다. 꼬맹이는 그놈들을 속이려 한 발칙한 놈이지만 어미가 붙잡혀 있는 것은 사실이지. 그놈들이 부르짖는 협의대로라면 위협에 처한 양민을 두고 망설여선 안 될 것이다.”
“다른 선택지는….”
“맹에 지원을 요청하고 기다리는 것.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며칠은 더 걸릴 것이다. 그 사이에 꼬맹이의 어미는 죽을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 거거든.”
춘은 입을 꾹 다물고 오강악을 바라봤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즐거워하는 오강악의 모습에, 그는 께름칙함을 느꼈다.
그런 중에도 오강악의 말은 계속됐다.
“같지도 않은 것들이지. 무력으로 군림하는 주제에 번지르르한 포장이나 하는 쓰레기들이야. 나는 그놈들이 그 포장을 언제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가 너무 궁금하다. 과연 제 목에 칼이 들어올 상황에도 그 협의를 계속 부르짖을 수 있을지. 아니면 제가 유리한 상황에서만 그 협을 부르짖을 수 있을지를 보고 싶은 게야.”
“위험은….”
“싸우면 되지 뭘 걱정하느냐. 응?”
오강악이 춘을 바라봤다.
그의 눈엔 광기라 할 것이 맺혀있었다.
이어진 행동은 괴악했다.
그는 바닥에 발라당 누운 채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과장되게 외쳤다.
“천마아아~ 구운리이임~ 만마아아아~ 아앙보오옥~.”
그러다 ‘뚝’ 움직임을 멈췄다.
그 순간의 오강악은 텅 빈 무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소리나 내지르면서 그놈들을 찢어발기면 되는 것 아니냐? 대~단 하신 소교주님을 위해서 말이다.”
이것은 불경한 행위였다.
교에 대한 충성심도, 그 교를 이끌 다음 주인에 대한 예의도 느껴지지 않는 엄벌이 마땅한 행위였다.
하나 춘은 그것을 트집 잡지 못했다.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그러기엔 이 사내에 대한 것을 너무 많이 아는 까닭이다.
이 사내가 소교주를 얼마나 증오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염마 오강악.
그는 지금의 소교주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