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구장 임무, 첩보 (5)
* * *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한창 망나니 연기에 심취해 행패를 부리는 와중 튀어나온 소년도, 그 소년의 몰골으로 내뱉은 말도, 쓰러진 소년 탓에 깨진 목리원의 표정도.
당화서의 파악은 빨랐다.
그리고 행동은 더욱 빨랐다.
“현아!”
당화서는 찢어질 듯 높아진 목소리로 목리원을 붙잡았다.
그리고 대경실색한 듯 목리원의 흑색 장포에 묻은 오물을 털어냈다.
“아니 이렇게 더러운 게 묻을 수가 있을까! 안 되겠다! 당장 돌아가자! 이런 오물 묻은 것은 버려버리고 더 값비싼 새 옷을 지어야겠구나!”
홱!
당화서의 고개가 돌아갔다.
표독스러운 인피면구의 눈꼬리가 더욱 솟으며 그녀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왕삼아! 이 망할 꼬맹이를 끌고 와라! 내 당장 돌아가서 저것에게 죄를 물을 것이야!”
왕삼, 제갈산은 빠르게 당화서의 의도를 알아채곤 전신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리하며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이며 소년을 안아 들었다.
“가자!”
당화서가 목리원과 팔짱을 낀 채 인파 사이로 걸어 나갔다.
꽤나 빠른 걸음이었고, 그것에 다른 단원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얌전히 당화서의 뒤를 쫓았다.
사람들의 얼굴에 맺힌 것은 소년에 대한 동정심이었으나,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이는 없었다.
배다른 삼형제.
그 악명이 순식간에 하남성 전체로 퍼진 괴인들을 상대로 호기롭게 나설 영웅은, 안타깝게도 양민 중엔 없는 것이었다.
그들로선 그저 소년의 무사를 빌 수밖에 없었다.
*
장원으로 돌아온 용봉단은 인피면구와 외투를 벗어 던지곤 안채로 달려들어 갔다.
제갈산은 이부자리를 펴 그 위에 소년을 눕힌 후, 소년이 입은 오물투성이의 옷을 북북 찢어 벗겼다.
그 순간 공간에 경악이 깃들었다.
“이건…!”
“몸이 성한 곳이 없군요. 상태가 심각합니다.”
일운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소년의 몸은 전신에 피멍이 들어 하얀 부분을 찾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골절상이 곳곳에 보였고, 들썩이는 호흡은 참으로 불안정하여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사람의 것과 같았다.
기껏해야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소년의 몸에 있다기엔 너무나도 끔찍한 폭력의 흔적이었다.
당화서는 소매를 걷어 올린 후 소년의 맥을 짚으며 말했다.
“제갈산! 가서 금창약을 가져오거라! 일운 스님은 제 옆에서 보조해주시고 목 소협은 검룡과 함께 깨끗한 물을 떠와 주십시오! 백봉! 너는 장원 주변을 지키거라!”
빠르게 이어지는 명령에 단원들이 흩어졌다.
당화서는 언제나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침구를 꺼냈다.
독과 암기의 사천당문.
그 후계자로 자란 당화서는 의술에도 조예가 있었다.
스으으.
당화서의 손끝에서 암녹색의 물결이 일렁였다.
마취독이었다.
당화서가 마취독으로 침을 쓸고 그것을 소년의 가슴어림에 꽂자, 소년의 호흡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일단 몸을 닦고 피고름을 짜낼 겁니다. 다음으로 흉터를 꿰매고 골절을 치유하지요.”
“알겠습니다!”
직후 목리원과 남궁진천이 대야에 물을 한가득 받아와 당화서에게 내밀었다.
당화서는 소년의 몸을 꼼꼼히 닦은 뒤 치료를 시작했다.
*
약 두 시진에 걸친 긴 치료 끝에 소년의 처치가 끝났다.
그제야 긴장을 푼 당화서가 숨을 돌리자, 긴장된 얼굴로 보고 있던 목리원이 물었다.
“사, 상태는 어떻소?!”
“잘 끝났습니다. 외상이 너무 심해 한동안은 정양이 필요할 테지만 평생 안고 가야 할 병은 없을 듯합니다.”
“다, 다행이오…!”
목리원이 어깨를 늘어트리며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그러다 시선을 소년에게로 돌렸다.
소년은 온 전신에 부목과 천을 두르고 있었다. 호흡은 안정되었으나 어찌나 고통스러웠던 것인지 아직도 잠결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누굴까요?”
어느새 나타난 혜운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것에 단원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학대의 흔적이었소.”
“학대 수준이 아니라 아주 죽여 없애버리겠다는 수준이던데….”
“아니다.”
남궁진천이 제갈산의 말을 끊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소년을 내려다보며 확신하듯 말했다.
“겉보기엔 상태가 심각하나 치명상은 없다. 교묘하게 외상에만 집중한 흔적이다. 저 몰골은 의도된 것이다.”
흠칫.
목리원의 몸이 들썩였다.
시선은 당화서에게 쏘아졌다.
“소저, 저게 무슨 말이오.”
“…검룡의 말 그대로입니다. 예, 저도 치료 중에나 확신한 것이지만 이 흉들은 인위적인 흉이 분명합니다.”
당화서의 말에 단원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지금 당화서의 말이 사사하는 바가 너무 노골적인 까닭이다.
제갈산이 물었다.
“…우리에게 접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처를 냈다. 그리 말하고 싶은 것이오?”
당화서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여전히 소년에게로 향한 채였다.
이어지는 것은 남궁진천의 말이었다.
“숨어있던 마인의 수족일지도 모른다. 포박해서 깨어나는 대로 심문해야 한다.”
급진적인 말이었다.
하나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애초에 용봉단이 망나니 행세를 한 이유도 숨어있는 마인의 시선을 끌어 유인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만약에 말입니다.”
당화서의 말에 이목이 집중됐다.
그녀의 찌푸려진 표정은 지금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말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만약, 이 아이가 저희를 노리고 온 것이 맞다면 염두에 두어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마인들이 이미 우리 정체를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목리원이 헛숨을 들이켰다.
당화서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인들도 저희들의 소문을 들었을 텐데 유인책으로 아이의 동정을 이용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관련이 없다 말하기엔 아이의 행동은 확실히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 대로변을 뚫고 한가운데의 저희에게 온 것이 특히.”
돌이켜 보면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리 망가진 몸으로 그 대로변까지 나온 것도, 거기서 하필 도움을 구한 사람이 자신들인 것도.
보통 저리 몰려서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할 것이었다면 가장 먼저 보이는 사람을 찾는 게 일반적이었다.
“…검룡의 말대로 최소한의 조치는 해두지요. 만약 마인의 수족이 아니라면 사정을 듣고 도우면 될 일이고, 마인의 수족이라면 정보를 캐내야 합니다.”
다른 단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단 한 사람, 목리원만 빼고.
“…소저, 그건 너무한 일 같소. 아이가 이리 몸이 망가져 있지 않소. 도망갈 수단도 없을 테니 일단 편히 쉬게 두어야 하지 않겠소? 아이는 내공 한 줌 느껴지지 않는 양민이오.”
목리원은 단원들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이리 상처 입은 아이를 앞에 두고 마인의 수족일지도 모른다는 둥, 포박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니 그들과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목 소협, 마인의 일입니다. 이것은 임무예요. 사적인 감정으로 움직여선 안 되는 겝니다.”
“아이가 마인의 수족이 아니라면 분명 겁을 먹을 것이오. 학대당한 흔적이 분명히 있는데 이곳에서까지 험악하게 대해지면 얼마나 큰 상처를 입겠소? 그것은 너무한 일이 아니오!”
“묵룡, 애처럼 굴지 마라.”
남궁진천이 입을 열었다.
그의 벽안은 얼핏 분노로도 느껴지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이 꼬맹이가 마인의 수족이 맞다면 그쪽과 연락할 수단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소!”
“몸속에 있을 수도 있지. 그도 아니라면 우리를 만나기 전 연락책을 어딘가에 심어두었을 수도 있고.”
남궁진천의 말은 이치에 맞았다.
목리원 또한 그걸 알고 있었기에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남궁진천은 코웃음을 치며 그런 목리원에게 말했다.
“낭만을 좇는 일을 나무라진 않겠다. 하지만 사리분별은 할 수 있도록.”
목리원은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단원들도 남궁진천의 말에 수긍하고 있었다.
‘왜….’
왜 아무도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인가.
이들은 마인의 수족이라는 가능성 하나 때문에 무공 한 자락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를 험하게 대하는 일이 진정 옳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목리원은 알 수 없었다.
아니,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이번 역시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은 그랬다.
지금 단원들의 말은 아주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
마인의 수족일 가능성이 있다면 괜한 위험부담은 제쳐두고 확실한 방법을 쓰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이치에 맞다고 해서 그것이 협의에 맞다는 말은 아니었다.
목리원은 도움이 필요하다 말하는 양민에게 차갑게 구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
목리원이 생각하기에, 이 상황은 잘못됐다.
“…내가 계속 곁을 지키겠소. 내가 감시하겠소. 그러니 포박이나 심문 같은 말은 하지 말아주시오.”
목리원이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의 얼굴 위론 간절함이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남궁진천이 다시 한번 말했다.
“마인의 수족 중엔 일부러 무공을 배우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세간에 잠입하기 위한 것들이지. 하나 그들이 마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마교에서 키우는 아이들은 지독하리만치 끔찍한 정신 개조 끝에 세상으로 나온다. 분명 맹에서 교육받은 일이 있을 텐데?”
“아닐 가능성도 있소. 설령 이 아이가 마인에 의해 다가왔다 한들, 그저 협박당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오.”
“그런 희망적인 관측에 기대려 하는가?”
“그런 가능성을 믿는 것이 협객이오. 내 알기로는 이 아이가 양민일 가능성이 티끌만큼이라도 존재하는 한 겁박하는 것은 있어선 안 될 일이오.”
목리원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눈빛 또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남궁진천과 눈씨름을 하던 목리원이 당화서를 바라봤다.
“소저, 미안하오. 나는 아이를 지켜보고 싶소.”
당화서는 가만히 그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그리하며 떠올리는 것이 있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이 지난날 겪었던 어느 사건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탓이었다.
‘…딱 잔혈곡에서 이랬었지.’
강서에서 안휘로 넘어가던 잔혈곡에서 어린 소녀를 마주하고 이런 말싸움을 한 기억이 있다.
그날의 자신은 저것이 누군가의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목리원은 아닐 가능성을 말했었다.
그리고, 그날 옳았던 사람은 목리원이었다.
그런 위협을 무릅쓰는 것이 협객이니, 그러기 위해 힘을 키우는 것이 협객이니. 우리가 무를 갈고 닦은 이유가 그것이지 않소.
되새기는 순간 당화서의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지금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임무에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도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그랬다.
목적을 위해서 강압적인 수를 우선시한다면 그것이 흑도와 무엇이 다르겠냐는 의문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떠올린 순간, 당화서의 입에서 헛웃음이 삐져나왔다.
“…저는 목 소협의 행동에 책임을 져줄 수 없습니다.”
“내가 온전히 책임지겠소.”
“아이가 마인의 수족이라면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기꺼이 감내하겠소.”
당화서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하나 대화의 맥락은 점점 허락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다른 단원들도 그것을 느꼈다.
“독봉, 진정으로 묵룡의 뜻을 허락할 생각인가?”
남궁진천의 기세는 더욱 험악해졌다.
목리원이 말했다.
“믿어주시오.”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목리원과 남궁진천의 시선이 다시 한번 부딪쳤다.
남궁진천은 짓씹듯 이를 물며 말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비효율적이야. 왜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지?”
그는 실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인의 수족이 아닐 가능성에 기대 위험을 감수하겠다니. 이보다 멍청한 말이 또 있겠는가.
일단 포박해서 심문한다면 그 어떤 위험부담도 없이 소년의 정체를 까발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남궁진천이 목리원을 노려보자, 목리원은 답했다.
“역경이 있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가 유일하게 아는 것을 내뱉는 말이었다.
“가장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것이 협객인 까닭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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