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73화 (73/334)

〈 73화 〉 구장 ­ 임무, 첩보 (4)

* * *

무사히 하남성의 검문을 통과한 용봉단이 향한 곳은 작은 장원이었다.

소담한 연못과 이름 모를 꽃들이 인상적인 이 장원은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모를 조사를 위해 맹에서 미리 섭외해둔 장소였다.

장원의 가장 큰 방.

당화서는 갑갑했던 분장을 풀고 단원들에게 말했다.

“미리 말했듯 저희는 이곳에 숨어든 마인들을 찾아 검거해야 합니다.”

“검거 말이오?”

“예, 아무래도 산 채로 잡아가는 게 좋겠지요. 뽑아낼 수 있는 정보는 다 뽑아내야 할 테니까요.”

목리원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화서는 그것을 뒤로 한 채 재차 말을 이었다.

“정확히 어디에 마인들이 숨어있는지는 모릅니다. 종남과 화산에서 공개적인 수사를 하고 있으나 결과는 미진한 중이지요.”

“맨땅에서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군요.”

일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곳 섬서에 터를 잡은 종남과 화산조차 찾지 못한 마인을 단서도 없이 찾으라니 곤란함이 치솟는 것이다.

목리원은 가라앉는 주변 분위기에 끙끙대며 고민하다 그런 말을 내뱉었다.

“혹 이곳에 암약한 흑도를 처치하고 자리 잡은 게 아니겠소? 왜, 저번에 무한으로 갔을 적엔 마인들이 산적인 척 나타나지 않았소.”

“예, 다른 지역에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던 일이지요. 하지만 가능성이 낮을 겁니다.”

“왜 그런 것이오?”

“이곳이 섬서라서 그런 것일세.”

답한 것은 제갈산이었다.

“섬서라서?”

“종남과 화산이 이곳에 있지 않나. 도가 계열의 구파가 두 개나 이곳에 몰려 있다 보니 섬서엔 흑도가 잘 없다네.”

“으음….”

목리원의 끙끙대는 기색이 진해졌다.

“큰일이구려. 그럼 소저도 지금은 방책이 없는 것이오?”

“없진 않지요.”

목리원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당화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왜 망나니 꼴을 하고 이곳에 왔겠습니까.”

“아!”

“저희는 이 도시를 다 헤집고 다닐 것입니다. 저희가 패악질을 부린 곳에 마인이 끼어 있다면 분명 우리를 노리려 들겠지요. 자신들이 숨어든 도시에 이목이 끌리면 곤란하니까요.”

너무 희망적이고 섣부른 관측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지! 마인들은 마공에 정신이 오염된 상태라 이성보다 감정을 우선시해서 움직이겠구려! 마인의 불안함을 저격하는 것이 맞소?!”

“정확합니다.”

목리원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양 주먹은 불끈 쥐어져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상태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알겠소! 내 할 수 있는 최대한 열심히 혀를 차보겠소!”

그의 말에 다른 단원들이 웃기 시작했다.

결연한 얼굴로 다짐까지 하며 한다는 게 겨우 혀를 차는 일이라.

참으로 우습고도 순진해 보여 절로 웃음꽃이 핀 것이다.

*

여정 중의 피로를 모두 해소한 다음 날의 아침.

단원들은 본격적인 ‘망나니 연기’에 돌입했다.

시작은 객잔부터였다.

“이딴 걸 돈을 받고 판단 말이냐?!”

당화서가 표독스럽게 외치자 추남의 탈을 쓴 남궁진천이 음식이 담긴 그릇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목리원은 ‘쯧’하고 혀를 차며 허공을 바라봤고, 제갈산은 얼굴을 새하얗게 만든 채 연신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혜운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일운은 오늘도 발판이었다.

사실 이들로서 이런 패악질은 내키지 않는 행동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악명을 쌓아야 하는 까닭이다.

그저 악명 정도로는 안 됐다.

이 하남성의 성도에 모두 그 악명이 퍼져 자신들의 이름과 지내고 있는 장원까지의 모든 정보가 퍼질 정도의.

그리하여 성도 전체의 이목이 끌릴 정도의 악명이어야 했다.

단원들은 객잔에서의 패악질이 끝나고도 열심히 망나니 연기를 이어갔다.

시장통에서는 상인이 팔던 과일을 발로 찼고, 포목점의 비단에 침을 뱉었다.

푸줏간의 고기를 맨손으로 만지는 일도 했고 길을 걷던 행인에게 일부러 어깨를 들이밀어 시비를 걸기도 했다.

하나, 역시 그리 악행만 하려니 양심이 쑤시는 부분이 있었기에 용봉단이 선택한 사죄는 바로 ‘돈’이었다.

“그 눈은 뭐냐? 아~ 그래. 이딴 것이라도 팔아 먹어야 하는데 내가 훼방을 놓았다 그런 것이냐?”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됐다! 이 비루먹을 망종아! 천한 네놈은 주제에 맞게 이것이나 먹고 떨어져라!”

짤랑!

당화서는 매번 패악질을 마치면 표독스러운 말과 함께 상인들에게 은자를 집어던졌다.

딱 훼손한 물품의 가격만큼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상인들의 표정이 미묘해졌지만 그렇다 해서 단원들에게 호의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렴, 인간이란 본디 자신에 대한 공격에 한없이 예민해지는 족속이 아니던가.

단원들의 의도는 제대로 먹혀들어 가기 시작했다.

하남성에 ‘배다른 삼남매’의 악명이 널리 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딱 닷새였다.

*

“죽겠소.”

장원의 마당, 목리원이 핼쑥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것에 당화서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목리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쩌겠습니까. 임무가 그런 것을.”

“그래도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단 말이오….”

목리원의 울상은 어딘가 가련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외모가 그런 것도 있지만, 실제로 목리원이 느끼는 심적 압박이 큰 게 이유였다.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해본 일 없던 목리원이다.

또한 처음 보는 사람에겐 대체로 호의적으로 다가서는 목리원이다.

그런 목리원인 만큼 타인의 원망 어린 눈초리에 더욱 상처받는 것이다.

“소저는 괜찮소?”

“저야 가문에서 도망 다닐 적엔 자주 이런 시선을 받았던 터라.”

그 말을 증명하듯 당화서의 낯빛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렴,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목리원을 만났던 강서성 수양현에서 기루를 운영할 때만 생각해도 흑도들에게 모함당해 온갖 모진 말을 듣지 않았던가.

당화서는 타인의 원망이 너무 익숙한 사람이었다.

“으음….”

당화서의 눈에 동정심이 깃들었다.

제 무릎을 끌어안은 채 궁상맞게 연못을 바라보는 목리원이 너무 가엾다는 생각 탓이었다.

이어진 말은 결국 그런 형태였다.

“…정 힘들다면 내일은 쉬시겠습니까?”

“아, 아니오! 다들 힘들 터인데 어찌 나만 쉴 수 있겠소!”

목리원은 뒤늦게야 당화서의 눈치를 보며 허리를 바로 세웠다.

하지만 홀쭉해진 뺨은 가릴 수 없었다.

거뭇거뭇한 눈그늘이 목리원의 눈 밑에 매달려 있었다.

당화서는 그것에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버렸다.

톡.

당화서의 손이 뺨에 닿는 순간 목리원이 흠칫했다.

엄지가 눈 밑을 쓸자 목리원은 왜인지 심장이 간질간질한 기분을 느꼈다.

“이리 홀쭉해져서야… 안 되겠습니다. 오늘은 소면에 죽엽청 말고 다른 것을 좀 먹으셔야겠어요.”

평소라면 기겁하고 고개를 저었어야 할 말이었다.

하지만 목리원은 당화서의 손길에 속이 너무 간질거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중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일뿐.

당화서를 바라보던 목리원은 그녀의 걱정 어린 표정에 괜히 머쓱해져 연못으로 시선을 돌렸다.

쿵.

쿵.

심장이 두방망이질치는 것에 목리원은 당황했다.

나고 자라 배운 것이 그저 협행 뿐이라, 그는 아직 떠오른 감정의 이름을 몰랐다.

*

어두운 밤중에도 호롱불이 환하게 주변을 밝히는 거대한 장원.

겉으로 보기엔 참으로 아늑한 활력이 감도는 곳이었으나, 그 속에 지내는 이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니, 움츠러들어 있었다.

뿌득!

장원의 안채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께름칙했던 까닭이다.

그와 함께 풍겨오는 혈향 또한 께름칙했던 까닭이다.

하나 그 모든 것이 이들에겐 익숙했다.

벌써 한 달째, 단 하루도 피 냄새가 가시지 않는 장원의 똥간에 한 소년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또….’

또 사람이 죽었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죽은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젠 의미가 없어졌다.

그 누가 됐던 감히 반항을 떠올린 이의 가족일 것이 분명하니.

소년은 헤진 옷소매를 끌어올려 차오른 눈물을 닦았다.

그럼에도 계속 차오르는 눈물에 끅끅 소리를 흘리며 몸을 떨었다.

소년이 바라는 것은 그저 하나였다.

오늘 저 안에서 죽은 이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길.

자신과 친했던 이가 아니길.

이기적인 마음이었으나 궁지에 몰린 소년에게 그런 걸 따질 여력은 없었다.

소년은 그저 기도를 이어갔다.

본인조차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모르는 기도였다.

울음을 참으려고 숨까지 참아낸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런 순간이었다.

“찾았다.”

똥간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것에 화들짝 놀란 소년의 고개가 들렸다.

“히, 히익!”

소년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몸이 똥간 아래로 처박혔다.

그런 중에도 소년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것이 있었다.

‘마, 마귀…!’

마치 마귀의 것을 연상케 하는 불거진 사내의 눈이었다.

*

용봉단은 오늘도 망나니 연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젠 어느 정도 연기에 익숙해져 응용까지 더할 수 있게 된 지경.

남궁진천은 인피면구로 인한 짜증을 어떻게든 풀어내겠다는 것인지, 오늘도 일운을 발판 삼아 위에 선 채로 들고 있던 과일을 집어 던졌다.

그것에 또 상인 하나가 얼굴을 맞았다.

“쓰레기 같은 맛이다.”

상인의 얼굴이 울긋불긋해졌으나 그가 반박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렴, 악명과 함께 이 삼남매가 강서성 유명 지주의 자제들이란 소문이 함께 떠오른 까닭이었다.

혹시라도 자식들이 해를 입은 것에 지주가 분노하면 어떡하겠는가.

그가 무인들 고용해서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겠는가.

일개 양민에 불과한 상인은 그것이 두려웠다.

하여 그저 벌벌 떨며 순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죄, 죄송….”

상인이 고개를 숙이자 목리원은 또 미간을 찌푸렸다.

근래 핼쑥해진 얼굴은 그런 인상을 험악함으로 보이게 하고 있었다.

하나 실제로 목리원의 속은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마인들을 잡기 위한 것이리라.

협을 위한 것이리라.

그리 마음을 다잡아도 죄 없는 양민이 두려움에 고개를 숙이는 꼴은 보고 있기 힘들었다.

그저 협으로 사람들을 웃게 해주고 싶었던 목리원은 자신이 악인이나 할 법한 일을 한다는 것에 짙은 혐오감을 느꼈다.

‘…대의를 위해서.’

그런 변명이 옳은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협객에게 어울리는 말인가.

목리원의 상념은 깊어져만 갔다.

당화서가 그런 목리원의 기색을 눈치채는 것은 금방이었다.

아무렴 바로 전날 그의 속내를 들은 차가 아니던가.

마음은 아팠으나 또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에 당화서는 그저 목리원의 손을 꼭 붙잡았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은밀히 해낸 행동이었다.

목리원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당화서는 부드럽게 그 손을 어루만지며 작게 속삭였다.

“미안합니다.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취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도가 없었다.

어지간한 수법으론 마인들을 끌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리 속삭임을 이어가는 당화서의 목소리에 목리원은 고개를 숙여버렸다.

“…알겠소.”

이것은 임무이니 억지를 부려선 안 된다.

목리원이 그리 속을 다잡는 순간이었다.

툭.

소년 하나가 목리원의 팔을 붙잡았다.

목리원은 그것에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눈을 큼지막하게 만들었다.

“사, 살려주세요….”

소년의 얼굴은 온통 시뻘겋게 멍이 들어 있었다.

몸엔 힘이 하나도 없었고, 피 냄새와 똥 냄새가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눈물까지 흘리며 말을 토해낸 소년은.

털썩.

이윽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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