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구장 임무, 첩보 (3)
* * *
3년 차 문지기 왕삼은 생각했다.
관문의 문지기야 말로 이 세상 누구보다 역경과 고난 속에 살아가는 인종이리라고.
‘지치는구먼.’
지친다. 거기에 힘들고 괴롭기까지 하다.
매일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검문하고 또 검문하는 것은 지루함보다 괴로움이 앞서는 일이었다.
대체 누가 문지기를 문 앞에서 농땡이나 피우는 한량이라 하는지, 왕삼은 그런 말을 하는 사내가 있으면 바로 주먹을 갈길 자신이 있었다.
‘교대 시간이….’
왕삼은 저 하늘 높이 떠 있는 해를 바라봤다.
아직 교대까지는 눈대중으로도 한참은 남은 듯했다.
그것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왕삼은 또 사람 하나를 안으로 들인 후 익숙한 동작으로 마차를 멈춰세웠다.
“정지.”
그 말에 족제비 같은 인상의 마부가 흠칫 놀랐다.
무언가 눈치를 보는 듯 시선은 흘끔흘끔 마차 안쪽을 향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한데 개도 아닌 사람, 그것도 교육받은 무사가 3년이나 같은 일을 하면 어떻겠나.
왕삼은 마부의 저 작은 행동만으로도 이 마차가 어떤 마차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주인을 모시는 중이구먼.’
마차 안에는 지체 높은 이가 타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성격이 그리 좋지는 않으리라.
아무렴, 저 족제비 같은 마부의 얼굴 위로 떠오른 조바심이 그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아니겠나.
왕삼은 확신했다.
저 마차 안의 인물은 꽤나 성격이 폭급한 이일 것이라고.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오셨소.”
왕삼의 말에 마부가 우물쭈물 내려 그에게 다가왔다.
직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 주인님이 강서에서 이쪽까지 관광을 오신 중이오. 지금 심기가 조금 좋지 않으신데, 그냥 보내주면 안 되겠소?”
마부의 눈엔 얼핏 간절함까지 깃들어 있었다.
왕삼은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거의 이런 식이다. 신분 높은 이들을 모시는 것들은 제 주인만 무서운 줄 알지 문지기 무서운 줄 모른다.
이래 봬도 나라의 녹봉을 먹고 사는 엄연한 군인일진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왕삼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검문에 예외는 없소! 마차 안의 객은 이리 나와 얼굴을 비추시오!”
꽤 큰 소리라 길게 이어진 대열에서도 웅성거림이 일었다.
이것은 왕삼의 고약한 취미 중 하나였다.
신분 높은 이들이 제 말 한마디에 끌려 나와 창피를 당하는 일은 이 끔찍한 문지기 생활을 이어가게 해주는 원동력이나 다름없었으니.
마부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 얍삽해 보이는 인상이 아주 질려버리니 정말 설원의 족제비가 딱 저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이보시오! 주인님의 심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잖소…!”
마부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순간이었다. 마차의 문이 벌컥 열렸다.
안에서 나오는 것은 서글서글한 인상의 청년.
하나 황삼은 마부가 두려워하는 주인은 그가 아니리라고 장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의 차림새는 허름하고 얼굴은 조금 질려있었던 까닭이다.
왕삼은 저와 눈을 마주친 청년의 얼굴에서 옅은 원망의 기색을 느꼈다.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청년이 바닥에 그대로 엎드렸다. 인간 발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왕삼조차 문지기로 지낸 3년동안 다섯 번을 채 보지 못한 엄청난 광경.
뒤늦게 왕삼은 불안감이 슬슬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이 정도로 폭급하다고?’
왕삼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렸다.
목 뒤로는 마른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있었다.
본능은 말한다.
이제 나올 것은 진상 중의 개진상이리라고.
신분 있는 진상이라 문지기로서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도 모자라지 않을 상대라고.
‘물러서지 않는다!’
왕삼이 그런 다짐까지 띄워 올리던 중.
“쓸모없는 것.”
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꽤 중후한 맛이 있는 목소리였다.
직후 열린 마차의 문에서 한 사내가 나왔다.
‘저, 저게 무슨…!’
왕삼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의 얼굴이 너무나도 못생겼던 까닭이다.
‘어찌 사람이 저렇게까지 못 생길 수가!’
주먹코에 불거진 광대, 무슨 벌에라도 쏘인 것 같은 부르튼 입술과 눈 안쪽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처진 눈꺼풀.
거기다가 인상까지 쓰고 있으니 저게 사람인지 요괴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와중 값비싼 비단으로 지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옷을 입은 모습은 끔찍한 괴리감을 주고 있었다.
“네놈인가? 감히 날 불러낸 것이.”
추남이 말했다.
왕삼은 괜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끼다, 애써 그것을 털어내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제아무리 사내의 신분이 높다곤 하나 자신은 나라의 군인.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 그렇소! 내 이곳의 문지기로서 통행자의 신분을 파악할 필요가 있소!”
사내의 인상이 더욱 험악해졌다.
왕삼은 저도 모르게 히끅 딸꾹질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이리 용기를 내는 중이지만, 속에 ‘혹시 고관대작의 자제분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와중, 왕삼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춘아. 품위 없구나.”
우아함이 물씬 묻어나는 여인의 목소리가 마차 안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에 왕삼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하나, 빛은 없었다.
‘허억!’
나온 것은 표독스러운 인상의 여인이었다.
눈꼬리가 어찌나 치켜 올라가고 입술은 또 얼마나 작은지 독사 같은 인상이란 말이 딱 어울릴 생김새.
왕삼은 사내를 볼 때보다 더한 두려움을 느꼈다.
순간 여인과 왕삼의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이제 나왔는데 어쩔 것이냐?”
여인이 독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왕삼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내, 내 평생 안사람보다 표독스러운 목소리는 듣지 못할 줄로 알았건만!’
착각이었다.
맨날 바가지나 벅벅 긁던 안사람이 선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왕삼이 뻐끔뻐끔 입술을 달싹이자 여인의 눈매가 더욱 치켜세워졌다. 저기서 더 눈꼬리가 올라갈 수 있다니! 왕삼은 경악했다.
“왜 말을 못 하는 것이냐? 응?”
여인의 미간이 좁아졌다.
왕삼은 화들짝 놀라 직전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 무, 문지기로서 이곳을 통행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알 필요가….”
“허!”
여인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떠오른 표정엔 ‘감히 네놈 따위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왕삼의 목뒤로 또 마른침이 넘어가던 중, 여인이 말했다.
“오냐, 이리 끌어냈으니 내 기꺼이 따라주마. 뒷일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엇이 그리 화가나는 것일까.
여인은 그리 말하더니 마차 안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얘! 현아! 너도 나오거라!”
‘또, 또 있다고?!’
딱 봐도 저 둘은 남매다. 그리고 남매가 하나같이 생김새가 괴악하고 성격이 포악하다.
둘만 해도 진이 다 빠질 수준인데 또 하나가 더 나오면 어쩌자는 것인가.
왕삼은 하늘이 무심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알겠소. 누님.”
하지만 이번 역시, 나온 인물은 왕삼의 예상을 깼다.
직전과는 반대의 의미로.
“아…!”
어디선가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것이 전염병처럼 퍼져 울리기 시작했다.
왕삼 또한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 이게 무슨….’
마차에서 내려온 사내의 생김새에 그리된 것이었다.
‘현’이라 불린 사내는 그리도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슬쩍 찌푸린 무표정한 얼굴은 매혹적이다. 걸음마다 흔들리는 머릿칼은 비단결과 같았고, 입고 있는 흑색 장포는 그것이 아주 화려한 행색을 하고 있음에도 사내의 미모 탓에 빛이 바래고 있었다.
이게 정녕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말인가.
맹세컨대 왕삼은 살면서 이렇게까지 잘생긴 사람을 본 일이 없었다.
왕삼은 확신했다.
‘배다른 자식!’
지금 나온 사내는 저 둘과 배다른 자식이리라고.
“무슨 일입니까?”
사내는 허공을 보고 있었다.
세상사엔 눈곱만큼도 관심 없다는 듯 목소리는 공허했다.
사내의 뒤를 이어 뽀얀 여인이 나왔으나 왕삼은 거기엔 시선도 주지 못한 채였다.
“저놈이 우리 얼굴을 봐야 하겠다는구나.”
“흐음.”
사내의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 왕삼을 향했다.
왕삼은 그 눈빛에 왜인지 자신이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절로 시선이 내리깔렸다.
그 순간, 사내의 미간이 더욱 구겨졌다.
이어 소리가 흘러나왔다.
“쯧….”
덜컥.
왕삼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왕삼은 이제야 완전한 후회를 떠올렸다.
‘크, 큰일났다!’
분명했다. 저 사내는 고관대작의 자제일 것이 분명하단 말이다.
이 일이 상부에 알려지고 자신은 분명 징계를 받을 것이다.
그것에 울고 싶은 기분까지 떠올랐다.
와중 여인은 말했다.
“됐느냐? 응? 만족해?”
왕삼의 눈망울이 그렁거렸다.
고개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빠르게 끄덕여지고 있었다.
“돼, 돼, 돼, 됐습니다앗!”
척!
왕삼이 길을 비켰다.
그러자 흑색 장포의 사내가 다시 한번 ‘쯧’하고 혀를 차더니 마차 안에 들어갔다.
이윽고 표독스러운 여인과 추남, 그리고 언제 나왔는지도 모를 뽀얀 여인과 인간 발판까지 마차에 들어서자 마부가 ‘그것 봐라’하는 얼굴로 왕삼을 노려봤다.
그리고 문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멀어지는 마차소리에 그제야 왕삼은 흐물흐물해져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왕삼은 다시 생각했다.
문지기는 극한직업이라고.
*
“어땠소?!”
마차의 안, ‘현’이라고 불린 흑색 장포의 목리원이 칭찬을 바라는 아이의 얼굴로 당화서에게 물었다.
당화서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내가 연기에 소질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구려! 아, 소저도 엄청났소! 정말 어찌나 연기를 잘하던지 나는 소저가 저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악녀로 느껴지지 뭐요!”
“칭찬 감사합니다.”
마차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딱 두사람만 빼고.
“…이제 다 끝난 건가.”
남궁진천은 한시 빨리 어디론가 들어가 이 짜증 나는 인피면구를 벗고 싶었다.
어찌나 보형물을 많이 집어넣은 것인지 가만 달고만 있어도 불쾌한 이물감이 잔뜩 들었던 까닭이다.
말해 뭐할까. 남궁진천이 왕삼에게 보였던 표정 또한, 안면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구겨진 표정이었다.
“조금만 참으시지요. 일단 구해둔 숙소가 있으니. 아, 다른 두 분은 괜찮으십니까?”
당화서가 일운과 혜운에게 물었다.
혜운이야 목리원에게 묻혀가 한 일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일운은 풀이 죽어 있었다.
“…꼭 발판이어야 했는지요.”
인간 발판.
이것은 처음부터 계획된 연기가 아니었다.
문지기가 꽤나 꼼꼼하게 검사를 하는 것에 마차 안에서 급하게 만든 역할이었다.
발상은 혜운의 것이었다.
아무래도 낙제생 두 명 다음으로 불안한 것이 일운이었다 보니 그에게 말이 필요 없는 직책을 던져버린 것이다.
당연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나 안 하겠다고 땡깡을 부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랬다.
일운이 왕삼에게 보였던 원망의 기색은 괜히 꼼꼼하게 일해서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하게 만든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
마차 내부가 숙연해졌다.
와중 혜운만큼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목리원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분위기라도 환기해 보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 그러고 보면 말이오! 제갈 형은 연기가 정말 엄청나시더구려! 세상에 나는 그 순간에 제갈형이 원래부터 내 마부였던 것은 아닐까 착각까지 들었소!”
“그, 그렇지요! 다른 건 몰라도 연기 하나만큼은 정말 인정할 만했습니다!”
당화서가 말을 받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눈물나는 노력이 있었으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남궁진천의 짜증과 일운의 우울은, 그들로선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힘내시오.”
목리원은 결국 그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