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71화 (71/334)

〈 71화 〉 구장 ­ 임무, 첩보 (2)

* * *

권표월이 목리원에게 일러준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순박한 목리원조차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행동이었다.

­혀를 차시게, 가장 소중한 물건 하나에 오물이 묻었다는 상상을 하면서. 와중에도 시선은 상대를 향하고 있어야 하네.

바로 혀를 차는 행위. 목리원은 의아함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혀를 한 번 차는 것으로 망나니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권표월은 그런 목리원에게 다른 말을 더하지 않았다.

­일단 해보시게.

그런 말을 남길 뿐이었다.

그렇게 찾아온 오늘.

의아함이 있었으나 목리원은 권표월을 믿고 들은 행위를 해냈다.

시선은 남궁진천을 향한 채로 강호 협객전에 물이 쏟아지는 상상을 하며 혀를 찼다.

그러자 이는 변화가 있었다.

“쯧….”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하자면 목리원은 인간이 생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얼굴을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미남이었다.

그런 그가 표정을 바꾸는 순간, 그 아름다운 얼굴이 찌푸려지며 이는 묘한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순진한 얼굴 위로 사나움이 깃든다. 내려앉은 눈꺼풀과 솟아오른 눈꼬리에 인상 위로 차가움이 덧대어진다.

삐뚜름하게 떨어지는 입꼬리는 또 어떠한가. 반항적이다. 그리고 오만하며 우아하다.

“…세상에.”

당화서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흠칫 놀라며 얼굴을 붉히곤 제 입을 막았다.

쿵. 쿵. 그러는 중에도 심장은 부지런히 뛰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반항적이고 까칠한 목리원은 방심하고 있던 당화서에게 그리도 큰 충격이었으니.

언제나 생글생글 웃던 사내가 보이는 색다른 모습은 그리도 매력적이었으니.

‘내, 내가 이런 걸 좋아했구나!’

당화서 본인조차 몰랐던 취향을 일깨워버리는 모습이었으니.

당화서는 차마 목리원을 더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궈 버렸다.

염소소 또한 ‘오’하는 소리를 내었다.

역시 저 얼굴은 뭘 해도 일을 치는 얼굴이라는 것일까. 산전수전 다 겪은 염소소조차 목리원의 저런 반항적인 모습에 소녀시절 감성이 일깨워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것에 따로 호들갑을 떨거나 하진 않았으나, 감탄이 삐져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역시 목가놈 제자치곤 너무 잘생겼구나.’

그런 생각까지 떠올리는 와중.

“…허.”

남궁진천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의 얼굴 위로 떠오른 감정은 딱 잡아 말할 수 없는 형태였다.

굳이 그 감상을 토해내야 한다면 그랬다.

절대 제게 해를 입힐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동네 꼬마에게 뺨을 맞은 듯한 얼굴.

남궁진천은 목리원이 경멸이 가능한 사람이란 생각을 못했다.

하여 갑작스레 쏘아진 경멸에 입을 뻐끔거리는 일조차 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의외인 공격에 얼이 빠진 것이다.

하나 그것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남궁진천의 사고는 빠르게 일련의 사건을 엮어 상황을 파악했다.

목리원이 혀를 찼다. 표정을 구겼다. 자신을 보면서.

이것은 도발이었고 능멸이었다.

그렇다면 할 행동은 하나.

스릉.

검이 뽑혔다.

“비무다. 묵룡.”

남궁진천의 눈이 부릅 뜨였다. 흰자위엔 핏발까지 서 있었다.

염소소가 나선 것은 그 순간. 그녀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올라 남궁진천의 정수리를 후려갈겼다.

빡! 하고 청량한 소리가 났다.

“비무 같은 소리하고 있네.”

쿵.

남궁진천의 무릎이 꿇렸다.

그는 정수리를 매만지며 염소소를 노려봤다.

하나 염소소가 어디 그런 것에 기죽을 노인이던가.

“어쭈, 요놈 눈 좀 보게?”

염소소가 주먹을 치켜들자 남궁진천의 눈이 스리슬쩍 깔렸다.

‘…더 강해지면.’

오늘도 남궁진천은 미래를 기약했다.

그제까지 가만히 있던 목리원은 움찔움찔 몸을 떨다, 더는 못 버티겠다는 듯 확 표정을 풀어버리더니 기대감이 묻어난 얼굴로 당화서에게 말했다.

“소저! 어땠소?!”

주먹까지 꽉 쥐며 눈을 빛낸 채 묻는 말.

하나 당화서는 답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녀는 직전 목리원이 보였던 모습에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려 눈이 핑핑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 그극….”

“음?”

“훌륭하다는구나.”

염소소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목리원은 그 말에 눈을 끔뻑이다, 이내 환히 웃으며 말했다.

“그럼 통과인 것이오?!”

“그래, 통과다.”

“으아앗!”

목리원이 만세를 불렀다.

염소소는 그 모습에 허허로이 웃으며 생각했다.

‘그냥 이놈도 마차에 박아버려야겠구나.’

통과는 무슨.

혀 차는 것 하나로 첩보가 되면 객잔의 점소이도 첩보원이 될 것이다.

염소소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도저히 답이 없다. 목리원은 남궁진천과 함께 마차 행이다.

*

여러 사건 사고가 있던 중에도 시간은 흘러 임무 당일.

목리원은 눈앞에 드리워진 거대한 마차에 입을 떡 벌렸다.

“오, 오오…!”

용봉단의 전각 앞엔 온갖 화려한 장식이 달린 금색의 마차가 있었다.

생전 듣도보도 못한 마차의 화려함에 좀처럼 입이 다물리지 않는 와중, 당화서가 말했다. 부유한 상가의 따님처럼 온갖 화려한 장식을 몸에 매단 채였다.

“맹에서 지원해준 마차입니다. 이것 한 대가 저희 3달 치 활동비니 잘 쓰고 반납해야 하지요.”

“3, 3달 말이오?!”

목리원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금전 감각이 없는 목리원이라도 아는 것이 있었다.

용봉단은 외부 후원을 통해 맹 내 다른 단보다 많은 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 지원금 1달 치면 평범한 가정이라면 몇 년은 풍족히 살 정도라는 것을.

한데 1달도 아니고 3달이라니.

목리원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에 몸을 비틀거렸다.

그 순간 당화서가 말했다.

“목 소협이 입고 있는 옷은 1주일 치 활동비입니다.”

목리원의 몸이 바로 섰다.

그가 입고 있는 흑색 장포가 단정히 정리됐다.

“…소저, 자신이 없어졌소.”

“목 소협은 거의 마차 안에만 있을 테니 걱정일랑 마시지요.”

“마차 안의 먼지가 옷에 묻으면 어떡하오?”

“맹이 고리업자도 아니고 그런 것까지 따지진 않습니다.”

두 사람의 만담이 이어지던 중, 시중 역할을 맡은 세 남녀가 다가왔다.

제갈산과 일운과 혜운이었다.

개중 유일하게 변장을 해야 했던 일운은 가발을 쓰고 있었다.

“세상에, 일운 스님! 머리카락이 있으니까 인물이 확 살아났소!”

“칭찬 감사합니다. 목 시주님.”

합장하는 일운은 그 다부진 체격과 단정한 머리, 그리고 서글서글한 인상에 꽤나 그럴싸한 미남이 되어 있었다.

역시 사람은 머리카락이 이만큼 중요한 것이다.

목리원은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으며 혜운과 제갈산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그저 복장만 갈아입은 채였다.

“제갈산은 마부, 백봉은 제 시녀 역할을 할 겁니다.”

“그렇구려!”

“목아우! 거 장포 하나 둘렀다고 인물이 너무 산 것 아닌가!”

“제갈형은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 것 같소! 역시 변장의 달인이시오!”

“크허허! 과찬이네!”

맹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받는 임무인 만큼 분위기는 한껏 들뜬 상태.

당화서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떠올리다가도, 이내 잔소리를 포기했다.

벌써부터 닦달했다간 임무 내도록 분위기가 안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검룡은 어디 있습니까?”

일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먼저 오지 않았습니까? 저보다 먼저 숙소에서 나왔….”

일운의 말이 끊겼다.

그의 얼굴 위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괴이한 표정이 걸렸다.

그에 따라 다른 단원들의 시선도 일운이 보는 방향을 향했다.

“…검룡?”

목리원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변장이….”

남궁진천의 변장이 꽤나 괴이했다.

대체 인피면구 안에 뭘 쑤셔 넣은 것인지 광대가 불룩하고 코는 주먹코에 입술 또한 퉁퉁 불어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눈두덩이는 살을 얼마나 덕지덕지 붙였는지 눈동자가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황망하기 그지없는 시선들.

그들의 의문에 답해준 것은 염소소였다.

“이놈 눈깔이 너무 새파래서 가릴 방법이 좀처럼 안 떠오르지 뭐냐. 그래서 그냥 얼굴을 다 뭉개버렸다.”

껄껄 웃는 얼굴 위로는 왜인지 모를 즐거움까지 맺혀 있었다.

당화서는 남궁진천의 눈치를 봤다.

저 인간 성격상 저런 얼굴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하나, 당화서가 읽을 수 있는 표정은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그저 타구봉으로 흠신 두들겨 맞은 듯한 얼굴이 끝이었다.

“푸흡…!”

혜운이 그만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 순간 남궁진천의 입이 열렸다.

“…누가 웃어도 좋다고 했나.”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남궁진천의 심기가 극도로 불편해져 있음을.

그래도 인피면구가 싫다고 땡깡은 부리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당화서는 괜히 남궁진천이 불쌍해지는 기분에 더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말했다.

“…출발하지요.”

당화서는 배려심을 아는 여인이었다.

*

목리원과 일행들이 출발한지 2주가 된 시점이었다.

이곳은 섬서의 관중.

그들은 그 오랜 과거부터 중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중원의 심장과도 같은 평원에 도착했다.

관중평원을 마주하는 단원들의 표정은 꽤나 밝았다.

아무렴, 관중 평원이 어떤 곳이던가. 고대부터 중원을 지배했던 국가들의 수도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던 만큼 수많은 역사와 비사가 잠든 땅이었고, 또한 그런 과거에 이끌려 수많은 관광객이 발을 들이는 장소가 아니던가.

“목아우, 그거 아나? 황하강의 물놀이는 그리도 각별한 맛이 있다네.”

“그런 것보다 화산을 구경해보고 싶소! 무려 중원 오악이라고 불리는 명산 중의 명산이 아니오!”

“둘 다 조용.”

당화서의 말에 제갈산과 목리원의 입이 꾹 다물렸다.

당화서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이제 곧 관문에 들어섭니다. 조금 있으면 사람들 틈새로 파고드는 만큼 각자 역할에 충실하세요.”

근 2주간 수도 없이 했던 말이 다시 나왔다.

당화서는 걱정이 차오르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잘 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마차에 박아 놓는다곤 하나 관문을 들어설 땐 목리원과 남궁진천도 얼굴을 내비쳐야 했다.

한데 저 둘이 위장 신분대로 움직이리라는 확신이 안 생기는 것이다.

자연히 당화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것에 목리원은 괜히 움찔 몸을 떨다, 이내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거, 걱정 마시오! 내 소저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소저?”

“누, 누님!”

목리원의 얼굴이 슬쩍 붉어졌다.

그랬다.

이번 위장 신분에서 목리원과 당화서, 그리고 남궁진천은 삼남매의 역할이었다.

당화서가 첫째고 남궁진천이 둘째고 목리원이 셋째였다.

역할이 역할인 만큼 목리원도 입에 ‘누님’이라는 말을 붙여야 하나, 그것이 영 쉽지가 않았다.

실제로 당화서가 나이가 더 많음에도 목리원은 당화서를 ‘소저’라고 부를 때가 가장 편했기 때문이다.

“내 유념하고 꼭…!”

목리원이 재차 마음을 다잡고 ‘누님, 누님’하며 홀로 말을 되뇌기 시작했다.

당화서는 그것에 괜히 귀를 기울였다.

연기라곤 하나 그랬다.

목리원의 입을 빌어 나오는 ‘누님’이라는 말은 꽤나 각별하게 들리는 구석이 있었다.

즉, 부끄럽게도 당화서는 임무를 빌미로 사심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크흠, 조심하십시오. 아니, 조심하거라.”

“알겠소! 누님!”

마부석에 앉아있던 제갈산은 좁아진 눈으로 그 꼴을 바라봤다.

눈치 빠른 그만이 대강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본인부터나 잘하지.’

세상 어느 누님이 제 남동생을 보며 뺨을 붉힌단 말인가.

아니, 붉히는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게 어디 건전한 관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제갈산은 참 할 말이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괜히 말해봐야 돌아올 것이라곤 고통스러운 설사뿐임을 아는 까닭이다.

“제갈 시… 아니, 강형. 저기 관문이 보이네.”

순간 일운이 그리 말하자 제갈산 또한 정면을 바라봤다.

그의 말대로 관문이 보였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보였다.

“도착했습니다!”

제갈산의 말에 그제까지 풀어져 있던 분위기가 조여졌다.

임무의 시작, 관문 통과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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