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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살검협-70화 (70/334)

〈 70화 〉 구장 ­ 임무, 첩보 (1)

* * *

권표월은 강했고 초절정은 높았다.

그날의 비무를 평하는 말은 그것 하나면 족했다.

목리원의 뒤를 이어 나온 용봉단의 단원 중 권표월과 그나마 수를 나눈 것은 남궁진천이 끝.

압도적인 경지의 차이에 절망감까지 떠오를 상황이었으나, 이들은 백도 무림의 다음 세대라 일컬어지는 기재들이었다.

겨우 한 번의 패배에 무너질 정도로 약한 이들이 아니란 말이다.

“흡!”

용봉단의 전각은 거친 숨소리와 열기가 가득했다

3개가 있는 연무장은 해가 떠 있는 동안도, 심지어는 해가 진 이후까지도 좀처럼 비워지는 일이 없었다.

비무가 있던 날부터 닷새.

상위의 경지를 목도한 젊은 혈기들이 그리 패배를 이겨내고 수련에 목매던 와중이었다.

“임무가 떨어졌습니다.”

그들에게도 임무가 주어졌다.

용봉단의 단주실.

당화서가 손에 들고 있던 전서를 휙휙 젓자, 다섯 쌍의 눈동자가 그 움직임에 따라 눈을 굴렸다.

떠오른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드디어!”

목리원은 엉덩이에 꼬리가 달려있다면 지금 풍차처럼 회전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신난 기색이었고.

“결국은….”

제갈산과 혜운은 귀찮다는 기색이었고.

“흠.”

남궁진천과 일운은 무덤덤했다.

참으로 다양한 반응이라 보는 맛이 있었지만 거기까지.

당화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 인간들을 데리고?’

벌써?

“어디로 가는 것이오?!”

목리원의 물음에 당화서는 한숨이 턱 삐져나오는 것을 느꼈다.

사실이 따지면 그렇지 않나.

‘첩보는 힘들다.’

이들은 제갈산을 제외하곤 첩보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다.

그리고 하필 떨어진 임무는 첩보였다.

“…섬서로 갑니다.”

“섬서! 화산과 종남이 있는 바로 그 섬서 말이오오오!!!”

걱정은 항상 당화서의 몫이리라.

목리원은 그저 또 그놈의 낭만에 미쳐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다른 인원들 또한 외출에 대한 기대감만을 얼핏 보이고 있었다.

당화서는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출발까지는 이 주.’

강소소의 더욱 더 혹독한 교육이 필요했다.

*

염소소는 당화서의 부탁에 난감함을 느꼈다. 그녀로서도 꽤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것들을 첩보인원으로 만들란 겐가? 2주 만에? 나한테?”

“…죄송합니다.”

당화서는 너무 죄송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려 첫 임무다. 용봉단이 창설되고 받은 첫 번째 임무 말이다.

당연히 그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고, 당화서는 실적을 위해서라도 이번 임무에서 ‘일부의 성공’까지는 성과를 거둬야 했다.

물론 염소소도 그런 당화서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흐음….”

염소소가 침음을 흘리며 턱을 쓸었다.

그녀의 앞으로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망아지 넷이 있었다.

본업이 살수라 첩보라면 누구보다 능한 염소소였지만, 이들은 그런 염소소조차 곤란할 정도의 낙제생들이었다.

‘저 중 놈년들은 그나마….’

일운과 혜운은 대충 말하면 듣는 척이라도 한다. 일단 패면서 가르치면 되는 부류란 말이다.

하지만….

“…그냥 저 둘은 두고 가면 안 되겠느냐?”

염소소가 목리원과 남궁진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화서는 ‘그러고 싶다’라는 말을 꾹 참았다.

“그, 그게 무슨…!”

목리원은 제발 버리지 말아달라는 듯 당화서를 애처롭게 쳐다봤고, 남궁진천은 또 눈을 부릅 떴다.

당화서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결국 한숨이었다.

“…전 단원 출동 명령입니다.”

“에잉.”

염소소는 쯧 혀를 차다 다른 방도를 고민했다.

‘힘들구먼.’

정말, 맹세코 이렇게까지 곤란한 상황은 혈사가 있던 시대에도 몇 번 없었기에 염소소의 주름은 갈수록 깊어졌다.

그런 순간이었다.

염소소가 꽤 그럴싸한 방법을 떠올린 것은.

“아.”

염소소의 탄성에 당화서의 얼굴 위로 기대감이 맺혔다.

“방법이 있습니까?”

“방법이라면 방법이지만 말일세.”

염소소의 시선이 목리원과 남궁진천을 향했다.

“음, 이렇게 하는 거 어떤가. 여러 상황을 익히게 하기엔 무리가 있을 테니, 이번 임무에만 한정되는 한 가지 역할만 주입 시키는 걸세.”

시험으로 치면 한 문제만 확실히 파고드는 것.

염소소의 방책에 당화서의 얼굴이 슬쩍 피어났다.

*

낙제를 피한 세 명의 단원이 떠나간 자리.

당화서는 염소소의 곁에서 두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임무의 목적은 섬서에 숨어든 마인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음? 종남과 화산이 직접하지 않는 것이오?”

“그들도 움직이고 있으나 아무래도 따라다니는 눈이 있지 않겠습니까. 은밀하게 움직이기엔 너무 잘 알려진 얼굴들이니 미처 파고들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저희가 조사할 것은 그 부분들이구요.”

“그럼….”

“예, 저희는 변장을 하고 갈 것입니다.”

목리원의 눈이 빛났다.

변장이라 하니 벌써부터 어떤 인피면구를 쓸지 기대가 됐던 까닭이다.

하나 그런 목리원의 기대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 면구는 검룡과 저, 일운 스님만 씁니다.”

“어째서?!”

“목 소협은 얼굴이 그리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제갈 놈이야 워낙 연기에 능한 편이다 보이 인상착의로 들킬 일은 없고, 백봉 그것도 용봉지회가 아니고서야 밖을 나온 적이 없던 아이니.”

아무리 잘 만든 인피면구라 해도 어색함은 있었다. 그런 만큼 외부인들이 자신들을 볼 때 어색함을 덜 느끼게 하려면 몇 명 정도는 진짜 얼굴로 다녀야 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하기에 적합한 것이 3명.

이는 나름의 합리성을 더한 판단이었다.

목리원이 시무룩해지는 와중에도 당화서의 말을 이어졌다.

“저희 신분은 강서성에서 유람을 나온 지역 상가의 자제와 시종입니다. 검룡과 저, 목 소협은 자제 역할을 맡을 것이고 나머지 셋은 시종 역할이지요.”

남궁진천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흡족함이 깃든 얼굴이었다.

“썩 어울리는 신분이다.”

남궁진천은 모를 것이다. 그가 자제 역할을 하는 이유는 인피면구로 가릴 수 없는 시퍼런 눈깔 때문임을.

남궁진천은 이번 여정의 대부분을 마차 안에 갇혀있어야 할 터였다.

물론, 그런 뒷사정을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당화서는 짝짝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러니 오늘부터 2주. 두 분은 잘 먹고 잘 자란 철없는 상가 자제의 자세를 배울 것입니다.”

염소소가 끌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자, 그러니 지금부터 서로 욕해라.”

목리원과 남궁진천의 시선이 마주쳤다.

*

새삼스러운 말을 하자면 그랬다.

목리원은 어릴 적부터 남에게 험한 말이라곤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성격이 유순한 사람이었다.

감정이 격해져서 내뱉는 말도 상대를 힐난하는 형태는 아니었으며, 그런 만큼 남에게 험한 말을 하는 것에 스스로가 상처받는 순진한 면까지 있었다.

“처, 천바악…!”

목리원이 눈까지 질끈 감으며 말을 토해냈다. 부르르 몸을 떨며 어떻게든 말을 이어내 보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진 않았다.

그에 반해 남궁진천은 어떻던가.

“쓰레기 같은 놈.”

그는 태생이 오만하고 무도했다.

망나니 연기를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사실상 가진 무력만 떼어놓고 본다면 이미 훌륭한 망나니인 것이다.

목리원은 상처받은 듯 ‘흡’하고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남궁진천은 멈추지 않았다.

“주제를 알아라 버러지. 고개를 조아려라. 숨도 함부로 쉬지 마라. 감히 누구 앞이라고 그딴 얼굴을 하는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와도 같았다.

그것에 목리원은 컥컥 숨을 몰아쉬었다.

반격을 해야 하건만, 목리원은 저런 말에 반격할 과격한 말을 알지 못했다.

자연히 시선은 당화서를 향했다. 도움을 구하는 눈빛이었다.

당화서는 안쓰럽기까지 한 그의 모습에 절로 안타까움이 이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예의 바른 공자 역할을 시키는 것도….’

아니, 안 된다.

당화서는 고개를 휘휘 저어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섬서 행에서 중요한 것은 신분을 앞세우며 온갖 장소를 들쑤시는 일에 있다.

그런 일을 마차 안에 갇혀있는 남궁진천 대신 해야 할 이가 저 목리원이 아니던가.

당화서는 독해지기로 했다.

“목 소협! 그것밖에 안 됩니까!”

“하, 하지만…!”

“어서 반격하십시오!”

목리원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배신감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에 당화서는 속이 미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나 이 모든 것은 목리원을 위한 것이리라.

당화서는 기꺼이 악역을 자처했다.

염소소는 그 촌극을 보며 생각했다.

‘여하튼 심심할 틈은 없구나.’

제 일만 아니라면, 이들이 하는 꼴은 참 재밌는 구경거리 같다고.

*

맹의 복도를 걷는 목리원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벌써 일주일째. 이젠 다른 단원들까지 합세하여 온종일 나쁜 말만 들은 목리원은 잠시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는 상태라, 이리 몰래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묵룡?”

그런 중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금검 권표월의 것이었다.

목리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리고 환하게 밝아졌다.

“금검 대협!”

“무슨 일 있나? 안색이 많이 안 좋군.”

목리원은 그 말에 울컥 감동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차마 토해내지 못했던 억울함을 그에게 다 털어놓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하여 뻐끔뻐끔 입술을 달싹이며 하소연을 하려던 순간, 목리원의 눈에 권표월의 검집이 들어왔다.

“대, 대협! 검집이!”

“아, 이거 말인가.”

권표월의 검집은 더 이상 금색이 아니었다.

그는 여느 무인들이 쓸 법한 남루한 검집을 차고 있었다.

“내겐 아직 어울리지 않는 검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일세. 잠시 넣어두었다네.”

검집을 쓰다듬는 권표월의 얼굴 위론 얼핏 후련함으로까지 비치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목리원은 잠시 당황을 토해내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려.”

그의 심경에 무언가 변화가 있었던 것일 터. 목리원은 구태여 그것을 묻지 않았다.

그저 말했다.

“축하하오. 깨달음이 있었나 보구려!”

“작은 깨달음일 뿐이지.”

권표월은 큭큭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 재차 목리원에게 물었다.

“한데 자네 얼굴은 왜 그러나?”

그의 얼굴 위론 걱정이 걸려 있었다.

목리원은 또 가슴이 찡해지는 기분에 잠시 몸을 떨다, 한숨과 함께 고민을 털어놨다.

장장 일각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하소연이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권표월은 턱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확실히 어려운 일이긴 하지. 타인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는 것은.”

“그렇소! 내 어찌 죄짓지도 않은 사람한테 악독하게 굴란 말이오! 참으로 소저나 선배나… 특히 검룡이 제일 너무한다고 생각하오!”

권표월은 어색하게 웃었다.

‘검룡과 사이가 그리 좋진 않은가 보군.’

참 순진한 면모가 있는 친구라, 권표월은 목리원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첩보 임무라면 혈사의 시대에 넘치리만큼 해본 권표월은 자신이 교육 때 어떻게 어려움을 이겨냈는지를 되새겼다.

“…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떤가?”

목리원의 고개가 기울었다.

권표월의 미소는 조금 장난스러웠다.

그리고 그리 은밀한 대화가 오간 후, 다음날의 연무장.

“…세상에.”

당화서는 경악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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