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칠장 무림맹, 창단 (7)
* * *
목리원은 피부 위로 닿는 열기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스승님! 제가 무명을 얻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스승 목선오와 가족 같던 마일석.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들처럼 자신 또한 무림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는 것에 떠오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다만 그뿐이겠는가. 자신이 적을 두게 된 용봉단은 백도 무림의 최전선에서 싸워 나갈 집단이다. 앞으로 맞닥뜨릴 여러 사건은 자신을 좀 더 호협한 이로 만들어줄 것이다. 이제야 목리원은 실감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그 강서성 산골을 나와 본격적으로 무림에 발을 들였다는 것을.
목리원의 시선이 전방을 향했다. 무림맹에 기거하며 몇 번 안면을 익힌 일이 있던 금검이 그곳에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금색으로 번쩍거리는 그의 검집.
‘검을 뽑는 일의 값어치를 새기기 위해 저리했다고 하던가!’
이 또한 제갈산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금검 권표월은 검을 뽑는 일엔 억만금을 휘두르는 것만큼의 신중함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였다.
그런 만큼 진정 뽑아야 할 순간이 아니면 검을 뽑지 않는 이였다.
‘낭만적이다!’
검수가 검의 무게를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목리원도 익히 아는 것이기에, 목리원의 눈엔 동경심이 피어있었다.
[단주, 독봉 당화서!]
와중 권표월이 외치자 당화서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좌중을 향해 몸을 돌리며 포권을 취했다.
“와아아아아!!!”
함성이 일었다. 명확한 형태의 기대감이 그 속에 깃들어 있었다. 실로 어깨가 무거워질 만한 부담감이 있을 진대도 당화서의 낯은 평온했다.
목리원은 홀린 것처럼 그 모습을 바라봤다.
‘역시 소저는 아름답구나!’
저런 오연함을 뜻하는 말로 아름다움이 옳은가 싶었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목리원은 당화서의 모습에 아름다움 외의 감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화서가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어진 것은 다른 단원들의 소개. 하나 목리원은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당화서를 보고 있었다. 뒤늦게야 그것을 눈치챈 당화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무게를 잡으라 눈치를 줬으나, 애석하게도 목리원은 눈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당화서는 조바심이 났다. 저러다 목리원이 참지 못하고 호들갑을 떨면 어떡하나 하는 심정이 떠오른 탓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당화서의 조바심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목리원의 차례가 온 까닭이다.
[묵룡 목리원!]
목리원은 그 말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앞으로는 금검 권표월. 그리고 양옆과 뒤로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상황.
용봉지회때처럼 앞으로 있을 비무에 신경이 쏠린 것도 아닌 터라, 목리원은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앞으로 나섰다.
“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악!!!”
여느 때처럼 목리원의 차례가 되자 여인들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함께 울렸다. 하나 목리원은 그런 것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 그러니까 먼저 앞으로 나가서! 그다음에는 포권을 취하고!’
목리원은 허둥지둥 당화서에게 들은 내용을 복기했다.
다른 용봉들과 다르게 이런 격식을 배워본 일이 없던 만큼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어색함이 있었으나, 그것을 나쁘게 보는 이는 없었다.
아니, 도리어 전대고수들 사이에선 그 모습이 꽤나 기껍게 다가오고 있었다.
혈사의 시대를 살아온 고수들은 허례허식보단 무와 협에 대한 순수함을 더 중요시 여겼다.
“허허, 단상에서 저리 머쓱해 하는 걸 보니 생전 검만 익힌 모양이구려.”
“아암, 격식이 다 뭔가. 협의라는 것은 올곧은 마음과 세월을 베어 내리며 습득한 경험으로 완성되는 것이지.”
“걱정이구려. 저 친구는 허명에 취해 저런 순수함을 잃으면 안 될 텐데.”
걱정이 있고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흡족함이 있었다.
귀공자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순박하게 웃는 얼굴도, 그리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도도, 허리에 찬 세월이 묻어난 낡은 검도.
그 모든 것이 지난 세월을 살아온 이들에겐 그다지도 기껍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로써 단원들의 소개를 마치겠소! 이어 단주의 연설이 있겠소!]
당화서가 재차 앞으로 나와 단상에 섰다. 그리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또 지겨운 의례였으나 자리한 이들은 불만을 갖지 않았다.
백도 무림의 미래.
그리 칭하는 이들의 포부는 곧 다음 세대의 청사진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다만 이들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창단식은 그리 끝나가고 있었다.
*
의례가 모두 끝난 후에 있는 것은 연회였다.
이제 새하얗기만 한 단복을 벗어 던지고 평소의 착장으로 돌아온 목리원은 당화서의 곁에 붙어 뒤늦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소저! 너무 멋있고 아름다웠소! 나는 단상에 올라가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는데, 소저는 어떻게 긴장하지 않았던 것이오? 말을 하는데 조금도 떨지 않고 힘까지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오! 역시 단주는 소저가 하는 것이 맞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소! 소저는 너무 현명한 것….”
“그, 그만! 그만하십시오!”
당화서의 얼굴은 이미 새빨개져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대로 누군가 당화서의 뺨을 콕 찌르면 머리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이 그랬다. 사심이라곤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감탄에 뻔뻔하게 대응할 정도로 당화서는 면이 두껍지 않았다.
“그냥 한 것입니다! 준비도 철저히 했으니 실수를 하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지요!”
“역시! 소저는 준비성도 철저하….”
“제바알…!”
당화서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다른 단원들은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듯 그 꼴을 바라봤다.
이런 만담은 종종 있는 일이라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그럼에도 당화서의 반응이 너무 좋아 볼 때마다 재밌는 구석이 있었다.
하나 계속 이렇게 둘 수도 없는 일.
일운은 지그시 미소 지으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런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선 일운도 부단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자, 이제 그만하고 나가보지요. 이제 큰일을 앞두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단원들 사이에선 꽤 무거운 긴장이 흐르기 시작했다.
일운이 이른 대로, 이제 있을 연회의 식사자리에서 만날 이가 있는 까닭이다.
“…창성.”
창성(??) 사백운.
20여년 전 혈사의 영웅이자, 불성(??) 원명의 뒤를 이어 무림맹주의 자리에 오른 사성 중 하나.
지금부터 용봉단은 그를 만나야 했다.
당화서는 그 말에 긴장을 되찾았다.
“…군사께서 이르기론 소탈하신 분이라 크게 행동에 트집을 잡진 않을 것이라 하십니다. 하나 그것이 예의 없이 굴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그리 말하는 당화서의 시선은 남궁진천에게 딱 틀어박혀 있었다.
남궁진천은 팔짱을 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당화서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날 보는 것이지?”
남궁진천을 제외한 모두가 그 이유를 아는 의문이 튀어나왔다.
당화서는 차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시선을 거뒀다.
“…아닙니다.”
더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난 당화서의 시선이 향한 곳엔 목리원이 있었다.
목리원은 무언가 생각에 빠져있는 듯한 기색이었다.
“목 소협?”
“아, 아니오. 잠시 생각난 게 있어서.”
목리원이 싱긋 웃었다.
“자, 그럼 갑시다!”
*
창성 사백운에 관한 이야기는 목리원으로서도 꽤나 익숙한 것이었다.
이유야 하나였다. 사성육왕이라 일컬어지는 백도 무림 10대 고수의 이야기는 마일석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탓이다.
창성은 꽤나 독특한 놈이다. 제 입으론 패도를 논하며 무공조차 매서운 형태를 추구하나 본성은 유약하지. 즉 강한 척하는 겁쟁이란 말이다. 우스운 놈이지. 하나 협사로서의 면모를 따지자면… 그래, 그놈은 확실히 협사가 맞다. 막상 나서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 겁쟁이로서의 본성을 꾹 억누르고 앞으로 뛰쳐나가니까.
목리원이 들은 사백운은 꽤나 독특한 사내였다. 또한 목리원의 동경과 낭만을 자극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렴, 내면의 공포를 이겨내고 정의를 위해 나서는 이가 어찌 멋있지 않을 수 있던가.
하나, 그럼에도 목리원은 그를 만나야 하는 상황에는 거리낌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창성 사백운은 혈사가 끝을 맺던 날 자신의 처우를 두고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4명 중 하나였던 까닭이다.
…이른 대로 창성은 겁쟁이다. 작은 일에도 쉬이 불안해하고 혹 있을 위험의 싹은 그것이 트기 전에 잘라내야 함을 주장하는 사내지. 그날 창성이 반대에 표를 던진 것은 그런 면모와 관련이 있다고 보면 된다.
목리원은 기억하고 있었다. 마일석이 그리 말하며 보였던 미안함이 들어찬 표정을.
창성은 어쩌면 협객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보다, 네놈이 타고난 천성을 더 두려워한 것이다.
…네.
미울 수도 있다. 하나 이해는 해주었으면 한다. 그는 이 백도 무림을 너무나도 사랑하여 작은 위협도 용납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내일 뿐이니.
목리원은 이해했다.
천살성이라는 천성은 그것을 이고 사는 본인조차 감당이 어렵다 느끼는 경우가 있는 별일진대, 어찌 남에게 이해를 바랄 수 있겠나.
거기에다 사백운은 무려 마일석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내다. 남들 얘기를 할 땐 대부분 욕으로 장식하는 그가 사백운의 이야기엔 내내 호의를 보였단 말이다.
목리원의 기준에서, 그는 검증된 호인인 것이다.
‘…숨겨야겠지.’
스승의 동료다. 또한 협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강호의 선배다. 그럼에도 목리원은 그에게 제 정체를 숨겨야만 했다.
그 사실이 그를 씁쓸하게 만들고 있었다.
“목 소협, 괜찮으십니까?”
당화서가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 고개를 든 목리원은 어느새 자신이 연회장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괜찮소. 맹주님을 만난다 생각하니 긴장되어서!”
평온함을 가장해 미소 지으며 내뱉은 말에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지요.”
목리원은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소란스러운 연회장에서도 꽤나 조용한 자리. 왜인지 모를 적막이 감도는 식탁 앞으로 향한 목리원은 상석에서 두 번째로 먼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아직 사백운은 오지 않았다.
“직전까지도 일정이 있으셔서 조금 늦으십니다. 곧 오실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미리 와있던 군사 제갈무연이 말했다.
그 말에 당화서가 고개를 끄덕였고, 식사가 하나둘 식탁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연회장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이제 막 식탁 위로 고기 요리 하나가 올라온 순간이었다.
웅성거림이 일었다. 또 어딘가에선 탄성이 삐져나왔다.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던 까닭이다.
“맹주!”
누군가의 말이 도화선이 되어 분위기를 태워 올렸다.
단원들과 목리원의 시선 또한 입구 쪽을 향했다.
‘저분이 맹주.’
가장 먼저 드러나는 특징은 풍채였다. 창을 휘두른다기보단 철퇴를 휘두르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로, 그의 덩치는 목리원이 봐온 사람 중 가장 컸다.
이어 드러나는 특징은 완고해 보이는 인상과 새하얗게 센 머리. 그리고 남색의 멋들어진 장포였다.
검왕 남궁혁과 마찬가지로 그에게선 그 어떤 기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관자놀이쪽에 볼록 튀어나온 태양혈이 그가 제 기를 완벽히 숨길 수 있을 정도의 고수. 즉 초월지경의 고수라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창성 사백운.
그가 용봉단이 앉아있는 식탁의 상석으로 와 앉았다. 그의 옆자리론 왜인지 소담해 보이는 인상의 노파가 있었으나, 당장 용봉단은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와중 사백운이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내 백도 무림의 미래를 보니 참으로 흐뭇한 기분이 드는구려.”
그의 어조에 묻어난 것은 자식을 대하는 듯한 따스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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