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63화 (63/334)

〈 63화 〉 칠장 ­ 무림맹, 창단 (6)

* * *

창단식 당일의 무한은 소란스러웠다. 무림맹 주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커다란 도시 전체가 언뜻 광기로도 보이는 열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용봉단의 창단식은 다만 새로운 단이 생긴다 정도의 의미가 아닌 까닭이다.

“이례적인 일이야. 당대의 용봉이 모두 무림맹에 입단한 게 아닌가.”

“선룡만 빼고 말일세.”

“뭐, 사실 선룡이야 전쟁이 시작되면 합류할 거라 믿고 있네. 그것보다 자네는 저기 보이는가? 전대의 고수들이네.”

거리엔 당대의 무인이 아닌 이미 은거한 고수들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갈 때면 그 누구도 섣불리 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당연했다. 현 무림의 전대고수라는 말인즉슨, 혈천교의 준동 때 가장 앞서서 마인들을 척살했던 영웅들이란 뜻인 까닭이다.

그들의 기색은 사뭇 진중했다. 근 100여년 간 침묵했던 천마신교의 등장과 그것에 맞서기 위한 선전포고가 이뤄지는 날, 전대 고수들은 자신들이 지킨 강호무림의 현 주소를 파악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살벌하구먼.”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네. 이번 세대의 용봉이 어디 다른 때와 같던가.”

제왕성의 주인 검룡 남궁진천, 만독불침의 독봉 당화서, 100년 만에 나온 소림의 기재 권룡 일운, 당대 최고의 여걸이라 불리는 백봉 혜운과 진왕의 아들 괴룡 제갈산.

그것만으로도 호화롭기 그지없는 면면일진대, 그 모든 것을 제치고 가장 앞선 이름이 있었다.

“아무렴, 고금제일을 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내가 나왔지 않나.”

묵룡 목리원.

다른 화려한 수식어가 없었음에도 그날 용봉지회의 결승을 눈으로 봤던 이들은 하나같이 그리 말했다.

그라면 미래에 고금제일을 논할 무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이번 창단식이 대외 행사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내 드디어 그 묵룡을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참, 자네는 용봉지회를 구경하지 않았지.”

일전 용봉지회에서 묵룡의 우승을 점쳤던 사내는 끌끌 웃으며 친우에게 말했다.

“기대해도 될 걸세. 무공도 무공이지만 묵룡은 남자가 봐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미남이거든.”

“헹, 남자가 잘생겨봐야 무슨 감상이 들겠나.”

“보면 알걸세.”

소란스러운 거리 어딘가.

그렇게 어디서나 오가고 있는 대화가 다시 한번 오가던 와중이었다.

*

한편 용봉단의 전각.

목리원은 보급받은 단복을 입곤 호들갑을 떨며 당화서에게 외쳤다.

“소, 소저! 이곳 보시오! 무복에 금실이 달려있소! 진짜 금이오! 금실이 아니라 진짜 금!”

“예, 일전 무한까지 함께 왔던 운성표국에서 지원해준 단복입니다.”

“오오…!”

목리원은 눈을 반짝이며 연신 제 단복을 쓸었다. 흰색의 옷에 금을 수놓아 정갈함과 화려함을 한 번에 잡은 본새의 무복이었다.

멋도 멋이지만 목리원으로선 그랬다. 언제나 입던 회색 무복과는 다르게 천의 재질이나 통기성이 아주 우수해 절로 마음이 들뜨는 것이다.

당화서는 그 꼴에 쿡쿡 웃었다. 그리하며 목리원의 매무새를 다듬어줬다.

“흰옷이니 그리 날뛰면 먼지가 묻을 겁니다. 대외행사가 아니고서야 입을 일도 없는 옷이니 조심해서 입어야겠지요?”

“알겠소! 그나저나 소저도 참 무복이 잘 어울리오!”

목리원이 해사하게 웃었다. 언제나 붉거나 검은 옷만 입던 당화서가 처음 백색의 옷을 입으니 생경한 기분이 들었던 까닭이다.

“소저는 흰색도 잘 어울리는구려! 피부가 하얘서 그런 것 같소.”

그 말이 있자마자 당화서의 얼굴이 붉어졌다. 피부가 하얗다고 말했던 목리원이 무안해질 정도의 붉은 색이었다.

“무, 무슨 말을… 헛소리 말고 제갈놈이나 데려오십시오! 오늘은 늦으면 안 됩니다!”

“알겠소!”

목리원이 방정맞게 단주실을 나가 숙소로 향했다.

당화서는 그제야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바, 방심할 수가 없구나!’

저리 자각 없이 훅 들어오면 마주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심장이 떨리는지 좀 알았으면 싶다. 그러다가도 금방 그 생각이 스러지니, 이유인즉슨 목리원이 제 잘난 얼굴을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탓이었다.

참으로 오묘하고 갈대 같은 마음이라, 당화서는 손바닥으로 제 뺨을 꾹꾹 누르며 스스로를 타박했다.

‘정신 차려야지. 오늘이 보통 자리도 아니고.’

흡!

당화서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자리도 자리였지만, 오늘 행사에 참여하는 귀빈이 참 많았으니 허투른 모습을 보여선 안될 터였다.

‘맹주님과는 첫 대면인가.’

오늘은 그간 일정이 맞지 않아 인사를 드리지 못했던 무림맹주와도 식사 자리가 있었다. 당화서는 훅훅 숨을 내뱉으며 박동을 모두 진정시키곤 단주실을 나섰다.

그 앞에 있는 것은 일운이었다.

“아, 이제 출발하십니까?”

일운 또한 오늘만큼은 승복이 아닌 단복을 입고 있었다. 스님이 이런 걸 입어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으나, 다행히 소림에서도 그정도 유연함은 발휘하는 듯했다.

“검룡은 어디에 있습니까?”

“밖에서 혜운 스님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년은 또 나돌아다닐 생각을 하덥니까?”

“허허….”

당화서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내 이년을 그냥!’

명실상부 용봉단 최고의 사고뭉치.

당화서는 혜운을 떠올리자마자 천정부지로 치솟는 혈압에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갑시다. 제가 잔소리를 좀 해야겠어요.”

일운은 입을 꾹 다물고 한발 물러섰다.

이젠 일운도 알았다. 당화서가 작정하고 잔소리를 시작하면 한 시진은 기본으로 넘어가는 여인이라는 것을.

‘음, 창단식까지 두 시진 정도 남았구나.’

잠시 다른 데로 도망가 있어야 할 듯하다.

*

당화서의 잔소리는 정확히 한 시진하고 반 시진이 더 지나서야 끝났다.

그녀의 잔소리에 기겁한 다른 단원들이 몰래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당화서가 허락하지 않았다. 혜운을 들먹이며 ‘여러분들은 이래선 안 됩니다!’라고 화살을 돌려왔던 까닭이다.

결과야 어땠겠는가. 듣지 않아도 될 잔소리에 한껏 진이 빠진 단원들의 원망은 혜운을 향했다. 혜운은 그 눈초리들에 혀를 빼꼼 내밀며 당화서의 곁으로 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혜운의 방패가 되어줄 것은 당화서밖에 없었다.

“오셨습니까.”

창단식이 있는 회장의 대기실. 군사 제갈무연이 단원들을 맞이했다.

그는 멋들어진 무복을 맞춰 입은 단원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이리 보니 인물들이 걸출하시군요.”

“과찬이십니다.”

“과찬이긴요. 걸출하단 말로는 모자랄 정돈데.”

그리 말하는 제갈무연의 시선이 향한 끝에는 목리원이 있었다.

잘났다 보단 아름답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그림 같은 미남이었다. 얼굴 위로 떠오른 자신감 넘치는 미소나, 반짝거리는 눈에 담긴 생동감은 성별을 떠나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행사는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요.”

제갈무연의 시선에 당화서가 반응했다. 제갈무연은 그제야 ‘아’하는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의례가 진행 중이긴 합니다. 여러분 차례까지는 조금 시간이 있으니 조금 쉬시지요.”

“배가 고프오.”

“목아우, 조금만 참으면 진수성찬이 펼쳐질 걸세. 들었나? 오늘 연회의 음식을 책임진 이가 황실 숙수까지 맡았던 이라더군.”

“허억…!”

목리원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그런 사람까지…!”

“기대 중이라네. 무릇 연회란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는 곳이지 않나.”

제갈산의 눈빛이 왜인지 음흉했다. 제갈무연은 그 꼴에 미간을 팍 찌푸렸다.

“…맹의 이름을 떨어트리는 행위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걱정일랑 마십시오.”

제갈산이 껄껄 웃었다.

당화서는 또 신경전을 시작하는 피붙이들의 모습에 재빨리 중재에 나섰다.

“제가 잘 다독여 보겠습니다. 군사님도 이제 슬슬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잘 좀 부탁드립니다.”

제갈무연은 그리 말하고 대기실을 나섰다.

당화서는 한숨을 푹 내쉬다 단원들을 면면을 바라봤다.

‘일단 가르치기는 했는데….’

예식을 가르치긴 했는데 하나같이 불안하다. 당화서는 하늘에 빌었다. 무사히 오늘을 넘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

회장은 화려했다. 또한 웅장했다.

그 웅장함은 말하고 있었다. 백도 무림의 본산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럼 창단식을 시작하겠소.]

중후한 목소리가 회장을 뒤덮었다. 사회를 보는 사내의 이름은 권표월.

중원 무림에서 금검(?)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는 무림맹 백검대의 대주였다.

“와아아아아!!!”

울려 퍼지는 외침은 천지를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아니, 실제로 공간을 울렸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대부분이 백도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는 고수들이다.

그들의 내력을 실은 함성이 섞이니 능히 그런 기세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본격적인 행사를 앞둔 여러 의례가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초청받은 전대 고수의 연설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주인공들이 나올 차례가 되었다.

[…하여 무림맹은 새로운 바람이 필요함을 느꼈소. 20여년 전의 혈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번엔 먼저 검을 치켜들 것이오. 그 선봉에 설 이들을 소개하겠소!]

둥! 둥! 둥!

북이 울리고 회장 한가운데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여섯의 젊은 남녀가 그곳을 향해 걸어 나왔다.

하나 같이 백색의 무복을 입은, 그리고 그 기도가 범상치 않은 무인들이었다.

회장의 분위기가 폭발했다.

“검룡! 심마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더니 기도가 더 짙어졌다네!”

“독봉이 선두에 있군! 그녀가 단주를 맡은 것 같네!”

“권룡이 부단주인가? 자리를 보니 그게 맞는 듯하네!”

소란이 일었다. 그들의 기색과 걸어 나오는 순서를 고려한 여러 추측들이 내내 오갔다. 당연 그중에서 가장 큰 소란은 목리원과 관련된 것이었다.

“저자가 묵룡이로군!”

“허어…!”

“옥면검이라는 게 마냥 하는 말이 아니었군. 저런데 무력까지 출중하다고?”

“기도가 아주 날카로워. 생긴 것은 순진해 보이는데 검은 그렇지 않나 보군.”

여러 감상이 떠올랐다.

다만 용봉지회의 새로운 우승자라는 점에 주목하는 이가 있었고, 그의 외모에 주목하는 이가 있었고, 무력에 주목하는 이가 있었다.

감탄과 질시, 그리고 긴장이 한데 모인 분위기가 있었으나, 개중 전대 고수라 불린 이들의 반응은 그랬다.

그들은 목리원을 바라보며 심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검성이 은거해 한동안 백도 무림도 어두울 줄로 알았건만.”

“기우였던 듯하오. 역시 중원은 넓소이다. 세대마다 꼭 있지 않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저런 재능들이.”

그들은 목리원의 미소에 이젠 그 모습을 숨긴 누군가를 떠올렸다.

검성(?) 목선오. 혈사가 있던 20여 년 전 가장 찬란했던 별이었던 사내를.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라. 다만 그리 말하는 게 옳은 일이나 어쩔 수 없었다.

실로 지금의 목리원은 목선오와 똑닮은 미소를 짓고 있었던 까닭이다.

“글쎄, 과연 우연일까.”

와중 끌끌 웃는 소담한 인상의 노파가 있었다. 그녀의 곁에 있던 전대 고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지?’

이곳은 초대받은 이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자리다. 그렇다면 분명 그날의 혈사 때 함께 검을 든 여인일진대, 고수의 머릿속에 이런 인상의 여인은 없었다.

말해 무엇하겠나. 살성(??) 염소소였다.

그녀는 오늘 역시 존재감을 죽인 채 목리원을 구경하고 있었다.

‘언제쯤 말을 걸어볼꼬.’

그녀는 틈을 노리고 있었다.

목리원과 은밀히 대화를 나눌 틈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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