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62화 (62/334)

〈 62화 〉 칠장 ­ 무림맹, 창단 (5)

* * *

“백검대 말이오?!”

단주실. 목리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함박웃음을 띄운 채였다.

늘 상 있는 호들갑이라 할 수도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지금 당화서가 가져온 소식은 무림맹의 대표격 집단 중 하나인 백검대와의 대련 일정. 이는 자리한 다른 단원들로서도 꽤나 구미가 당기는 소식이었다.

“이거 참 공교롭구먼. 안 그래도 목아우와 금검(?) 대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소.”

“그래, 금검 대협께서 기꺼이 대련에 응해주시더구나.”

당화서는 제갈산의 말에 웃으며 호응했다.

목리원은 선망이 묻어나는 눈으로 당화서를 바라봤다.

아무렴, 그리도 원했던 무림맹 고수와의 대련을 선사해준 그녀에게 감사함이 떠오른 것이다.

“역시 소저밖에 없소! 소저는 너무 대단하오!”

주먹을 꽉 쥐고 눈까지 빛내며 건네는 칭찬은 당화서를 기쁘게 하는 형태였다. 당화서는 그간의 피로가 다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물론, 기분만 그런 것이었다.

“…여하튼, 창단식이 있고 일주일 뒤니 미리 대련을 준비하란 말을 하고 싶어 이리 모았습니다. 할 말은 끝났으니 다들 일과를 보러 가시지요.”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남궁진천이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가 가는 방향에 있는 것은 연무장이었다.

다음으로 일운과 혜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당화서에게 감사의 말을 남기곤 불공을 드리러 갔다. 일운이 헤운을 끌고 가는 형태였다.

남은 것은 제갈산과 목리원.

그것에 당화서가 물었다.

“두 사람은 안갑니까?”

“응? 우리도 가는 것이오?”

“그래야지요. 저는 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당화서가 미소 지었다. 하나 그리 힘 있는 미소는 아니었다.

목리원은 그걸 깨달았다.

‘소저가 고생이 많으시구나….’

돌이켜 보면 당화서가 단주직에 오른 이후 함께 시간을 보낸 일이 없었다. 한 번씩 찾아가면 자리를 비우거나 일하고 있던 때가 대부분인 까닭이었다.

무리라도 한 것인지 안색은 이전보다 확연히 그림자가 져 있었다.

목리원은 그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혹 내가 도울 일은 없소?”

“으음… 당장은 없습니다.”

“그, 그럼 심부름은 없소?”

“예, 외부 일정이 있진 않아서.”

당화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오…!”

목리원은 어색하게 웃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하고선 응원을 말과 함께 단주실을 나간 후 제갈산에게 물었다.

“제갈형!”

“왜 그러나?”

“소저가 많이 힘들어 보이오! 근데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소! 어떡하오? 저러다 소저가 쓰러질까 걱정이오!”

자네가 도움이 안 돼서 안 받는 것이라네.

라는 사실을 제갈산은 말할 수 없었다. 하여 그는 웃으며 목리원의 어깨를 토닥였다.

“많이 힘들면 도움을 청할 것일세. 누님이 원체 책임감이 강한 분이 아니시던가. 혼자 힘으로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테니 응원이라도 해주시게.”

“그런 것이오…?”

“아암.”

확실히 무리하고 있긴 하나, 그럼에도 제갈산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화서가 아닌가. 그녀라면 적절히 휴식을 취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목 아우는 수련이라도 열심히 하는 게 어떤가. 누님께서 기껏 마련해준 기회인데 멋진 모습을 보여야지.”

“으음, 그것도 그렇소….”

그리 말하는 목리원의 시선은 단주실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제갈산이 이리 말해도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는 까닭이었다.

하나 그렇다 해서 도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목리원은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

그 뒤로 며칠이 지난 날.

목리원의 얼굴엔 어찌할 수 없는 걱정의 그늘이 있었다.

당화서가 무리하고 있음을 안 순간부터 주의 깊게 그녀를 살핀 결과가 좋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정말 잠시도 쉬지 않으시는구나.’

당화서의 일과는 참으로 단조로웠다.

일. 일. 일. 그리고 취짐과 기상.

단언컨대 목리원은 그 사이에 그녀가 휴식을 취하는 꼴을 본 일이 없었다.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라 할 수도 없는 것이, 처음 강서 수양현에서 기루를 운영하던 당화서는 이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목리원은 생각했다. 당화서가 이리 바쁜 것은 단원들을 위해 개인 시간을 쪼개는 까닭이라고.

‘…도움은 되지 않지만.’

응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여 목리원은 단주실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소저, 안에 있소?”

­아, 들어오십시오.

목리원은 문을 열고 단주실 안으로 고개를 빼꼼 들이밀었다. 당화서는 수척해진 얼굴로 푸흡 미소를 흘렸다.

“왜 그러십니까. 혹 또 사고를 치신 것은 아니겠지요?”

“그, 그런 것 아니오!”

목리원이 화들짝 놀라 단주실로 들어왔다. 그리하고 말했다.

“내 소저가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걱정되어 와봤소. 아, 이것 좀 드시겠소? 숙수께 부탁한 차요. 피로에 좋다는구려.”

목리원이 내민 것은 잔 위로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는 차였다.

당화서는 눈을 끔뻑이다 이내 그것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이런 것까지….”

“고생하고 있잖소! 내 이런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구려.”

당화서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이었다.

‘그리 티가 났나?’

혹 피로가 묻어난 얼굴로 손님을 받아온 것은 아닐까. 이 순간조차 당화서는 지난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일에 매몰되어 버린 것이었다.

목리원은 그새 또 생각에 빠지는 당화서의 모습에 탄식하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 되겠소. 소저, 잠시 어깨 좀 내어주시오!”

탁.

당화서의 뒤로 간 목리원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순간 당화서의 몸이 멎었다.

“무, 무슨…!”

“내 안마를 해드리겠소!”

목리원은 기운차게 말했다. 목소리에 깃든 것은 자신감이었다.

“내 어릴 적부터 우리 스승님께 안마를 참 잘한다는 칭찬을 받고 자란 몸이오! 소저도 한번 받아보면 피로가 싹 풀려서 힘이 불끈불끈 날 것이오!”

당화서는 그제야 목리원의 의도를 깨닫고 긴장을 조금 풀었다. 하나 역시 커다란 목리원의 손이 어깨를 감싸는 중이라 심장이 콩콩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으음… 그럼 잠시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할 일이 태산 같긴 하나 이리 신나서 말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내뱉는 말이었다.

목리원은 특유의 어여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겠소!”

꾸욱.

목리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 큰 힘은 아니었다. 부드럽게 어깨를 문질러주는 듯한, 그가 자신한 대로 꽤나 그럴싸한 안마였다.

“어떻소? 좋지 않소?”

“예에… 확실히 일가견이 있으시군요.”

당화서는 놀랐다. 딱히 내공을 운용한 것 같지도 않은데 긴장된 근육이 살살 녹으며 몸에 힘이 빠지는 까닭이다. 당화서의 몸이 등받이에 깊이 파묻혔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기분은 또 처음이군요.”

“스승님께서도 그리 말하셨소! 나는 무인이 되지 않았다면 황궁의 안마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차마 부정은 못 하겠습니다.”

“가끔 부탁하시오! 내 소저를 위해서라면 백 번이고 해드릴 수 있소!”

당화서는 그 말에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면서도 몽롱한 기분에 답은 더 잇지 못했다. 당화서의 눈꺼풀은 점점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간 축적되어온 피로와 긴장이 녹으니, 육신이 자연스레 회복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이었다.

‘못 한 일이 더 있는데….’

이리 잠들면 안 되는데 너무나도 몽롱했다.

제 어깨를 누르는 목리원의 손길과 조곤조곤 귓가를 간질이는 목소리. 그리고 그것 외엔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단주실의 적막이 모두 몽롱함을 부추기고 있었다.

“소저, 나는 아는 게 별로 없는 천지이지만, 그래도 제대로 아는 게 하나 있다오.”

“예에….”

“바로 동료는 서로에게 등을 맡기는 존재라는 것이오. 그리고 우리는 동료이지 않소.”

“….”

“그러니 홀로 너무 무리하지 마시오. 나는 소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꽉 조이는 것만 같소. 그게 너무 아프오.”

“….”

목리원은 이젠 반쯤 감긴 눈으로 기계적인 답을 내뱉는 당화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리 편히 잠든 모습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 침실로 옮겨 드리겠소.”

목리원은 당화서를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그리고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당화서는 반쯤 잠에 취해 목리원에게 몸을 기댔다. 지금 제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기대있는 가슴이 너무 편해 몸을 더 웅크리고만 있었다.

그렇게 당화서가 잠에 빠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드셨구나.’

목리원은 콩벌레처럼 몸을 말곤 제 품에 안겨있는 당화서의 모습에 킥킥 웃음을 흘렸다. 그리하다 당화서의 숙소에 도착했다.

문을 열면 보이는 것은 양쪽으로 침구가 하나씩 있는 구성의 방.

당화서의 침구가 어떤 것인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그리고 머리맡에 서책 하나가 놓여있는 저 자리일 터였다.

목리원은 참으로 그녀다운 잠자리의 모습에 괜히 웃음을 흘리다 당화서를 바로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줬다.

“저녁에 봅시다.”

그리 말하고 조심스레 방을 빠져나갔다.

방안에는 당화서가 새근새근 숨을 내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

당화서는 해가 다 저물어가는 시간에야 스르르 눈을 떴다.

약 세 번, 그정도 눈을 깜빡인 직후 화들짝 놀란 당화서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런!’

낭패 어린 심정이 그녀의 속에 가득 찼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잠들어버린 상황에 심장이 덜컥해 버린 것이다.

당화서는 바로 방을 빠져나가 단주실로 달려갔다. 머리가 흐트러진 것은 정리할 생각도 못 한 채였다.

쿵!

그리 문을 연 당화서는 흠칫 몸을 떨었다.

“…검룡?”

단주실의 책상에 남궁진천이 앉아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제갈산은 구석 자리에 앉아 문서를 슥슥 넘기고 있었고, 일운은 그녀를 맞이하며 웃고 있었다.

“아, 깨어나셨습니까.”

“이게 대체….”

“일을 보고 있었지요. 당 시주님, 이리 일이 많은 것을 홀로 무리하고 계시다니요.”

일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미리 알아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늘 할 일은 다 끝내 두었으니 더 쉬러 가십시오. 다음엔 꼭 도움을 구하시구요. 그래도 제가 부단주 아닙니까.”

당화서는 그때까지도 멍한 기색이었다. 지금 들려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 없었던 까닭이다.

목리원이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아, 소저! 식사는 하셨소?”

“목 소협….”

“내 소저를 깨우기가 미안해 다른 분들께 도움을 청했소! 일을 다 해치우진 못했으나 할 수 있는 건 깔끔히 해놨으니 걱정일랑 마시오!”

엄지를 척 치켜세우는 모습에 당화서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아….”

자연히 놀란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호흡은 그제야 정상 범위 내로 돌아왔고 속에선 왜인지 모를 뭉클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당화서는 그제야 자신이 도움을 구할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안 믿고 있었구나.’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료를 믿지 않았다. 완벽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저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이리도 좋은 사람들일진대, 부담감에 눈이 가려져 사고뭉치로만 보고 있었다.

“소저, 일단 식사부터 하러 가는 것 어떻소? 내 소저가 좋아하는 어향장육을 숙수께 부탁드려놨소!”

당화서는 속이 간지러운 기분에 괜히 입술을 꾹 깨물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목리원은 그 모습에 환히 웃으며 손을 뻗어 당화서의 머리칼을 쓸었다.

“머리칼이 엉켰구려!”

“아!”

당화서의 얼굴이 붉어졌다. 재빨리 머리칼을 정리하려 손을 뻗었으나, 그보다 목리원의 말이 먼저였다.

“내가 해드리겠소!”

슥슥 목리원이 당화서의 머리를 쓸었다. 일운과 제갈산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당화서는 왜인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에 따라 어깨는 슬쩍 움츠러들었다.

“감사합니다아….”

가슴은 또 왜 이리 방정맞게 뛰는 것인지, 당화서는 부끄러운 와중에도 그만 설레고마는 제 모습에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창단식까지 이틀이 남은 날의 일이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