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61화 (61/334)

〈 61화 〉 칠장 ­ 무림맹, 창단 (4)

* * *

용봉단의 단원들이 새벽같이 일어나 수련을 시작하며 전각에 활기가 일었다. 그들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단 한 사람, 당화서만 빼고.

“대련이다. 나와라 묵룡.”

“안 되오! 눈을 뜨면 운기조식을 해야 한단 말이오! 검룡의 수련에 나를 이용하지 마시오! 정 하고 싶으면 오후에….”

“그땐 내가 명상해야 한다.”

“에잇! 그럼 어쩌란 말이오?”

“어허, 그냥 각자 수련하시오. 남궁형도 목아우도 대련이 급하진 않잖수?”

“제갈형은 수련을 안 하는 것이오?”

“목아우가 깨기 전에 이미 했네.”

“역시 제갈형!”

“쯧….”

당화서는 눈 앞에 펼쳐진 난장판에 멍한 얼굴을 만들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3개나 있는 연무장을 두고 이곳에 몰려 아침부터 입씨름을 하는 목리원과 남궁진천도, 굳이 수련하는 사람들 옆에 누워 낄낄대는 제갈산도, 아침 댓바람부터 외출을 나간 혜운도 이 일을 말리지 않은 일운도.

당화서의 시선이 일운을 향했다. 그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 곤란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래, 각오한 일이거늘.’

당화서는 눈을 감은 채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한 직후 부릅 눈을 뜨고 외쳤다.

“그냥 연무장을 나눠서 쓰십시오!”

제갈산이 수련을 안 한다니 딱 연무장 하나에 한 명씩 들어가면 될 일.

당화서가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까지의 소란이 한순간에 스러졌다.

“…소저는 안 써도 되오?”

그 와중에 목리원이 당화서의 수련을 걱정하며 말했다. 당화서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백봉, 그 망할 년 좀 잡아 오겠습니다.”

당화서는 수련보다 잠든 새 도망간 혜운을 잡아 오는 게 급했다.

앞으로의 생활을 위해서도 기강을 다져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게 정확히 2시진. 당화서는 무림맹 근처 여관 앞에서 무인 하나와 팔짱을 끼고 걷는 혜운을 발견하곤 그녀의 귀를 잡아당긴 채 용봉단의 전각으로 돌아왔다.

그날 아침 단원들은 당화서의 서슬 퍼런 기색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

“품위 유지.”

용봉단의 단주실, 상석에 앉은 당화서가 핏발 선 눈으로 말했다.

“언제나 품위에 신경 쓰시오. 저희는 언제나 맹의 주목을 받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게요. 아시겠소?”

오늘의 죄인인 백봉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빨개진 귓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무력을 떠나 당화서에겐 사람을 휘어잡는 기백이 있었다. 그녀가 화를 낼 때면 독불장군인 남궁진천조차 왜인지 모를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다.

당화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어지는 훈계는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각 안에서 치는 난리야 정도만 지킨다면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전각 밖에서도 그러는 건 안 됩니다. 용봉단의 자금 출처는 어디까지나 외부의 후원임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용봉단에 소속된 무인은 당화서를 제외하곤 언젠가 본가로 돌아갈 이들인 만큼 맹 자체적으로 오는 지원이 적었다.

이리 화려한 전각도, 내내 누리고 있는 호사들도 모두 외부에서 그들과 면을 트기 위해 보내온 후원금인 만큼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다.

이중 유일하게 자력으로 사업을 해본 당화서만이 그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함께 생활하는 첫날인 만큼 잔소리는 길게 이어가지 않겠습니다. 이만 식사나 하러 가지요.”

당화서가 기세를 누그러뜨리자 목리원과 제갈산이 유독 신난 얼굴을 만들었다. 그녀의 잔소리가 반 시진도 가지 않은 것은 역대급이라 해야 할 기록인 까닭이다.

“그래! 어서 갑시다!”

“목아우 그것 아나? 용봉단의 전각엔 전용 숙수가 배정된다더군!”

“오오…! 그럼 이곳에서도 소면에 죽엽청을!”

“말해 뭐하겠나!”

목리원과 제갈산이 뛰쳐나갔다. 그 뒤로 남궁진천이 여유롭게 걸어갔고 일운이 뒤를 이었다.

“저도 밥 먹으러 가도 되나요?”

혜운의 말이었다. 당화서는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를 표정을 짓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감내해야 할 터였다.

*

일운은 일생일대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고기가 많구나.’

들어온 식당. 일운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고기였다. 용봉단에 특별히 배정된 숙수가 고기 요리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라던가. 그 이야기까지 이미 알고 있던 일운은 군침을 꼴깍 넘기며 고뇌에 빠져 있었다.

‘…육식은 금해야 하는데.’

무릇 불공이란 생식을 통해 육신을 정결히 하고 허허로운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스님 된 입장으로선 이런 고기에 눈이 돌아가선 안 되는 것이다.

한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냄새가….’

냄새가 너무나도 향긋했다. 이리 터져 나오는 육향은 일운에게 일종의 고문과도 같았다. 하나만 집어먹고 싶었다. 딱 맛만 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과 자신을 믿고 이곳에 보내준 방장 원명에 대한 죄책감이 일운의 속에 뒤엉켰다.

그러던 중.

“일운 스님은 안 드세요?”

혜운이 우물우물 음식을 씹으며 물었다.

그것에 일운의 눈이 부릅 뜨였다.

“혜, 혜운 스님! 그것은…!”

혜운의 접시엔 고기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맛만 본다 수준이 아니라 아주 배가 터질 정도의 양이 담겨 있었다.

일운은 경악했다.

“이, 이 얼마나…!”

부러운 행위인가! 아니, 무도한 행위인가!

분명 혜운 또한 불가의 제자일 텐데 어찌 저리 화식을, 그것도 육식을 하는 것이냔 말이다!

일운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와중에도 혜운은 고개를 갸웃하기만 했다.

“뭐요?”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사실 애초에 이런 것에 죄책감을 가질 여인이었다면 그리 색을 밝히지도 않았으리라.

일운은 부러웠다. 그녀의 뻔뻔함이.

‘나, 나도…!’

그런 생각이 차오른 순간, 일운은 시선을 느꼈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린 곳에 있는 것은 제갈산. 그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일운의 심장이 차게 식었다.

그는 피눈물을 토해내는 심정으로 고기에서 눈을 돌렸다.

‘…나는 불가의 제자다.’

그리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편으론 생각했다.

‘제갈산만 없었다면….’이라고.

*

당화서는 바빴다.

그 정도가 다른 단원들이 개인 일과와 휴식을 겸하며 여유로운 때를 보내고 있는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룰 수준이었다.

아무렴, 단주 직을 맡은 만큼 해야 할 것이 많았던 까닭이다.

단원들의 관리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일부터 후원자들에게 보낼 전서를 적는 일.

맹의 다른 단주나 대주들과 안면을 트는 일과 행정 절차에 대한 보고 양식 작성법의 교육.

그것 외에도 앞으로 있을 일정에 대한 논의까지.

그 모든 것을 정해진 시간 내에 하려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것이다.

그럼에도 당화서는 차근차근 그 모든 일을 해내고 있었다. 더 이상 숨지도 않고 도망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까닭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당화서는 급한 불을 끄곤 집무실에 앉아 짧은 휴식을 취했다.

‘창단식은 일주일 뒤.’

꽤나 규모가 큰 행사가 될 것이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용봉단의 창단을 알리는 것이 아닌 중원을 침범한 천마신교에 대한 선전포고와도 같은 자리인 까닭이다.

본격적인 임무는 그 뒤에부터 하달받을 터, 당화서는 그 밑 준비를 해야 했다.

‘아마 다른 성으로 돌아다닐 일이 많겠지.’

왜 아니겠나. 용봉단은 그 단원들의 성격이야 둘째치고 무력만큼은 확실한 집단이 아니던가. 6명의 단원이 모두 절정지경, 그들 중 둘은 다른 무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지경에 서 있는 소수 정예 집단인 만큼 첩보 따위의 임무가 부과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이다.

‘정체를 숨기고 다니려면 필요한 게….’

인피면구, 위조 신분패, 그리고 단원들의 교육까지.

당화서는 생각을 이어가던 중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인간들을 어찌 교육해야 할까.’

하루라도 사고를 안 치면 좀이 쑤시는 것인지 꼭 하루에 한 번은 말썽을 피우는 인간들. 오늘에 와선 그나마 얌전하던 일운조차 난리였다.

세상에, 비무를 하는 중 제갈산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그를 실려가게 만든 것 아닌가.

믿고 있던 사람의 배신인 만큼 당화서의 배신감은 더욱 컸다.

‘…실수였다니 할 말도 없고.’

실제로 외공만 사용해 꽂은 일격이라 부상이 깊진 않았다. 창단식엔 무리가 없는 것이다.

당화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맹의 무인이 그녀의 집무실에 온 것은 그런 순간이었다.

“단주님.”

“…아, 오셨소.”

근래 들어 자주 안면을 익힌 이 무인의 이름은 고절, 군사 제갈무연의 부관이었다.

당화서는 지그시 웃는 얼굴로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

“오가느라 고생이 많으시오.”

“일이니 괜찮습니다.”

고절 또한 싱긋 웃었다. 그는 품에서 종이 몇 개를 꺼내 당화서에게 내밀며 말했다.

“각 단에서 전해 온 것들입니다. 직접 부탁을 드렸다지요?”

“아! 그것이구려.”

당화서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 고절이 전해오는 문서는 그녀가 손꼽아 기다리던 것 중 하나인 까닭이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각 단의 대련 일정과 합동 훈련 일정에 대한 표. 이것은 당화서가 제 단원들을 위해 얻어온 것이었다.

고절은 환한 당화서의 얼굴에 작게 웃으며 말했다.

“단원들의 훈련 일정까지 하나하나 신경 쓰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아무래도 사회성이 모자란 이들이 아니오. 다들 떠받들어지기만 한 인간들이니 나라도 신경 써서 맹의 인원들과 안면을 트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오.”

“단주로선 훌륭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을 위해 사적인 시간을 쓰고 계신 것 아닙니까.”

당화서는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일이 꼭 공을 위한 것은 아닌 까닭이다.

왜 아니겠나, 당화서는 목리원이 무림맹에 오기 전부터 내내 하던 ‘무림맹의 고수들과도 겨뤄보고 싶다!’라는 말에 이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즉,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적지 않게 이 일에 작용한 것이다.

“…내 고 대협께는 참 감사드리오.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겠소?”

“괜찮습니다. 군사께서 제가 조금만 자리를 비워도 난리를 치시는 분이라.”

고절이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살펴 가시오.”

고절이 방을 나섰다. 그제야 혼자남은 당화서는 문서를 이리저리 확인하며 훈련 일정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대충 이 주 후에 백검대와 대련 일정을 잡을 수 있겠구나.’

당화서는 기쁜 마음을 떠올렸다.

과정이 고되긴 했으나, 이 소식을 전해주면 목리원이 보일 표정에 대한 기대가 커 피로는 싹 날아가고 있었다.

당화서는 더 지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을 향했다.

이 시간대면 목리원이 검술 수련에 목매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연무장.

“제갈형! 방금 맹에서 금으로 된 검을 찬 사람을 봤소! 대단하더구려!”

“오오… 금검(?) 대협을 만났나 보군. 검이 금인 게 아니라 검집이 금인 걸세. 백검대의 대주님이시지.”

“크으…! 나도 멋들어진 검 하나만 있었으면!”

목리원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제갈산은 골골대는 꼴로 목발을 짚으며 목리원을 상대해주고 있었다.

당화서는 그 광경에 눈을 끔뻑이다, 이내 ‘푸흡’ 웃음을 터뜨렸다.

‘참….’

심심할 틈이 없는 인간들.

그런 생각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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