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60화 (60/334)

〈 60화 〉 칠장 ­ 무림맹, 창단 (3)

* * *

“단주라, 자네가?”

남궁진천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 속엔 얼핏 목리원을 까 내리는 기색까지도 느껴지고 있었다.

남궁진천의 입장에선 그랬다. 목리원의 무공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순진한 면모는 단주라는 직위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다른 용봉들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다는 개인적인 욕망도 있었으나,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남궁진천은 이곳에서 단주에 가장 어울리는 사내라는 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을 이끄는 방법은 아나? 행정 절차에 대한 지식은 있나? 아니, 애초에 단주가 무얼 하는 직책인 줄은 알고 있나?”

쏘아진 말이 목리원의 가슴에 푹푹 박혔다.

목리원은 그것에 몸을 움찔움찔 떨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무려 무림맹의 단주다. 이는 목리원이 사랑하는 강호협객전에서도 주연급의 인물은 되어야 차지할 수 있는 자리였다.

목리원은 그런 영광된 자리를 이리 쉽게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목리원에게도 근거라고 할 만한 것은 있었다.

“내, 내가 제일 세지 않소! 원래 단주는 제일 쎈 사람이 하는 것이오!”

쩌적.

남궁진천이 굳었다. 그의 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릅 뜨여 있었으며, 동시에 내비치는 기색엔 왜인지 상처받은 기색 또한 들어차 있었다.

남궁진천에겐 악몽과도 같았던 용봉지회의 결승.

그날의 일이 다시 떠오른 것이었다.

남궁진천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진정시켰다. 하나 그의 짙푸른 벽안은 아직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성적이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결국은 그랬다.

남궁진천은 남들 위에 서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내였다.

“…그래, 슬슬 두 달 정도가 됐지. 다시 서열 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군.”

남궁진천에게서 스멀스멀 기파가 피어올랐다.

목리원도 지지 않겠다는 듯 묵색의 기파를 피워 올렸다.

이어질 일이야 뻔했다.

목리원은 ‘빡!’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한 딱밤을 정수리에 맞았다.

당화서였다.

“목 소협! 이런 데서 기파를 피워 올리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아, 안 되긴 하지만은…!”

“하지만은 뭐가 하지만입니까! 그리고 검룡! 당신도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 용봉지회에서 도발은 통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한데 목 소협이 하는 말에 왜 그리 일일이 반응해가며 소란을 일으키십니까!”

목리원과 남궁진천의 입이 합죽이처럼 다물렸다.

큰소리를 내는 일이 잘 없는 당화서가 무자비한 진실로 폭행을 하자 할 말이 궁해진 것이다.

그런 중에도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당화서로 하여금 뒷골을 잡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애가 둘이구나!’

믿고 있었던 남궁진천의 밑천이 슬슬 드러나고 있었다.

수준이 아주 목리원이랑 똑같았다.

당화서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제까지 남궁진천이 고고해 보였던 것은 그저 그가 입을 다물고 있었던 이유라는 것을!

저건 그저 과묵한 목리원이라는 것을!

당화서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제갈산은 무엇이 그리 웃긴지 꺽꺽 숨을 몰아쉬며 웃고 있었고, 혜운은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 맹의 무인 하나를 잡아 말을 걸고 있었다.

일운은 곤란하다는 듯 웃고 있지만 그들을 제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당화서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망했다.’

용봉단은 망했다.

아주 대차게 망했다.

어찌 된 게 믿을 만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

군사 제갈무연은 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무어라 형용해야 할지 모를 얼굴을 만들었다.

먼저 목리원과 남궁진천. 용봉단의 무력을 책임질 두 사내는 왜인지 노기어린 얼굴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갈산은 속이라도 안 좋은 것인지 배를 부여잡고 끙끙대고 있었으며, 혜운은 힘줄이 잔뜩 돋아난 일운의 민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나마 평범한 것이 당화서였으나 그녀 역시 기색이 이상했다.

당화서는 왜인지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얼굴로 혼이 쏙 빠진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없지요. 아직은.”

당화서가 허허롭게 웃었다. 제갈무연은 그것에 슬쩍 호기심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이내 궁금증을 억눌렀다.

제갈무연은 젊은이들의 혈기에 어울려줄 정도로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이로써 다 모이셨군요. 선룡은 무당에 남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예, 앞으로의 일정을 듣고 싶습니다.”

당화서가 미간을 꾹 누르다 물은 말에 제갈 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전각은 정리가 끝났습니다. 나가시면 제 부관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그럼….”

“하지만 행정 절차는 끝나지 않아 창단까진 시간이 더 필요할 겁니다.”

“그리 절차가 많단 말입니까?”

당화서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가 알기론 제아무리 무림맹이라 한들 단 하나를 창설하는데 이렇게까지 시간을 쓰지 않는 까닭이었다.

“단은 맹주님의 승인으로 창설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 맹주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도리어 맹의 가장 높은 곳에서 단의 창설을 위해 힘쓰고 계시지요.”

“한데 왜….”

“창단식이 있을 겁니다. 꽤나 크게.”

제갈 무연의 말에 용봉의 시선이 모두 그를 향했다.

와중 제갈산의 미간이 좁혀졌다.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창단식? 뭘 그리 거창하게까지….”

말을 내뱉던 중, 제갈산은 ‘아’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생각해보니 이게 평범한 단은 아니었구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이는 없었다.

목리원만 빼고.

당화서는 목리원에게 따로 설명을 더 해줬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사기 진작을 위한 것일 터입니다. 더군다나 명문의 자제들을 이리 맹 소속으로 묶어 몰아넣는 만큼 신경 써야 할 시선도 많구요.”

“아! 그런 것이었구려!”

제갈무연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긍정의 뜻을 내비치며 이어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슬슬 일러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 말입니까?”

“단주와 부단주는 어찌 됩니까?”

그 말에 당화서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리고 정신 연령이 똑같은 두 사내는 또 눈에 쌍심지를 켰다.

목리원과 남궁진천의 시선이 부딪쳤다.

당화서는 뒷골이 확 당기는 기분에 이를 악물다, 이내 손을 들었다.

“제가 합니다.”

“앗! 소저!”

“제가 합니다. 반론은 안 받습니다.”

제갈무연은 그들의 의견조율이 끝날 때까지 그저 팔짱을 낀 채 오가는 대화를 들었다.

아무렴, 단에 소속된 인원 하나하나가 절정 급의 고수인데다 단주라는 직위가 단순히 무력만을 필요로 하는 자리는 아니었으니 저들의 의견을 모을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양상은 아주 일방적이었다.

“목 소협. 가만히 있으십시오.”

목리원은 당화서의 한마디에 깨갱 물러섰다.

“검룡, 당신도 단주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행정 절차를 다 도맡아 하실 수 있으십니까? 다른 단원들 뒷바라지할 생각은 있으십니까? 수련 시간을 쪼개 회의나 여타 일들에 참여할 의지는 있으십니까?”

남궁진천은 이어진 당화서의 말에 점점 기세를 죽여나갔다.

실제로 그는 남들 뒷바라지나 하는 일을 즐기지 않는 까닭이었다.

“제갈산, 백봉. 두 사람은 어차피 생각이 없을 테고. 일운 스님께선 남에게 쓴소리를 하기 싫으시겠지요.”

세 사람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당화서는 그제야 제갈무연을 돌아봤다.

“끝났습니다.”

“훌륭하십니다. 부단주는?”

“일운 스님으로 하겠습니다. 단주 재량으로.”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못 박는 말.

당화서의 입장에서 부단주로 쓸 인재는 그나마 멀쩡한 일운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그리 알고 창단식을 준비하지요. 식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일러드리겠습니다.”

제갈무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부관이 용봉을 불렀다.

“따라오시면 됩니다.”

당화서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일단 한고비 넘겼다.’

앞으로야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위험한 고개 하나는 넘은 상황.

당화서는 고개를 돌려 사고뭉치를 보는듯한 시선으로 용봉들을 바라봤다.

‘절대….’

절대 이들이 사고를 치게 둬선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는 와중이었다.

*

용봉단이 기거할 전각은 화려했다.

근처의 다른 전각들과는 한눈에 봐도 차이가 보일 정도로 돈을 칠한 흔적이 보인다면 설명이 될까.

“제갈형! 여기 야명주가 박혀 있소!”

“오! 그것 하나 떼서 가져다 팔면 돈이 되겠구먼!”

“제갈형! 이건 설마…!”

“옥이구먼! 이 조각은 통짜 옥이라네!”

“오오!!!”

어떻게 전각 하나에 이리 돈을 바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지원.

하나,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오대세가의 자제가 셋, 구파의 대표 후기지수가 둘.

목리원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하나하나가 이름 높은 명문의 소속들이었다.

그들의 소속 차원에서 들어오는 지원과 각종 상단에서 들어온 후원이 있는 것이다.

물론, 가장 높은 지분을 따져보자면 돈이 썩어 넘치는 오대세가에서 온 물품들이었다.

저 어딘가에 박혀 있는 야명주나 옥으로 조각된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당화서는 가라앉은 눈으로 야명주를 바라봤다.

저것의 출처가 사천당문임을 아는 까닭이었다.

‘…분명 좋은 소리는 안 나왔을 텐데.’

안휘의 서현에서 당운경과 그리 갈등을 빚고 돌아온 길이다.

거기에 더해 무림맹에 적을 두며 당문과 확실히 멀어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참이다.

한데도 저리 지원을 해오는 당문, 정확히는 가주의 속을 당화서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당화서는 의도적으로 야명주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당장 그들이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던, 무림맹에 있는 이상 다른 속내를 내비칠 수는 없는 일이니 지금 해야할 일에 집중하는 게 옳다는 판단이었다.

짝짝.

당화서가 박수를 쳐 이목을 모았다.

“자, 구경은 그만하고 슬슬 방을 배정하겠습니다.”

용봉단의 전각은 꽤나 큰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으나 숙소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소속된 무인 자체가 여섯이 끝이다 보니 숙소에 할애할 공간을 연무장이나 여타 시설들로 채워버린 것이었다.

“방은 총 셋. 2인 1조 구성으로 배정하려 합니다. 당연 저는 백봉과 방을 쓸 테고 여러분은….”

당화서는 눈을 좁히며 견적을 냈다.

‘목 소협과 검룡은 절대 떨어트린다.’

붙여놓으면 또 사고를 칠 게 뻔하다. 오늘 하루만 해도 벌써 몇 번은 충돌을 하고 있었으니 잠까지 같이 자라 말하면 얼마나 많은 사고가 일어나겠나.

그것은 절대 안 될 일.

당화서는 두 사람을 다른 방으로 배정할 결심을 마치고 이어 고민을 더했다.

‘생각할 것은 둘, 제갈산과 일운 스님.’

마음 같아선 목리원에게 일운을 붙이고 싶었다.

아무렴 제갈산과 같이 지내면 그에게 나쁜 물이 들어버릴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하나 마냥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저 제멋대로인 남궁진천에게 제갈산을 붙여놨다간 그를 통제할 사람이 없어진다.

“후으….”

감정과 이성 사이의 고민이었다.

당화서는 한참이나 골머리를 썩히며 생각을 이어가다, 결국 그리 결론을 내렸다.

“일운 스님, 검룡과 함께 방을 써주십시오.”

“아, 그리 하겠습니다.”

당화서는 일운에게 남궁진천을 맡겼다.

목리원과 제갈산이야 옳다구나하며 기뻐했지만, 당화서의 마음은 썩 편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혜운이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였다.

“그냥 저희 방 하나씩 쓰고 네 명을 같은 데 몰아넣는 건 어떠신지?”

당화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혜운을 보며 코웃음 쳤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혜운이 혼자 방을 써봐야 그 안에 사람이 하나일 리가 없음을 누가 모르겠나.

하루가 멀다하고 남자가 들어와 그녀의 숙소를 구경하다 갈 것이다.

당화서는 제 스스로를 희생해가며 이런 배치를 한 것이었다.

“외부인을 데려올 생각은 꿈에도 마시오.”

당화서는 그녀가 남자를 노릴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일 심산이었다.

혜운은 ‘쯧’하고 혀를 찼다.

“눈치만 더럽게 빨라선.”

다 들으라는 듯 내뱉는 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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