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59화 (59/334)

〈 59화 〉 칠장 ­ 무림맹, 창단 (2)

* * *

호북성의 북쪽에 있는 무당산.

그곳엔 백도의 구파 중 하나인 무당파가 있었다.

오늘도 도인들이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수련을 이어가는 그 산의 어딘가, 당대의 장문인인 태허 진인은 눈앞의 청년에게 물었다.

“정말 가지 않을 것이냐?”

“예, 저는 무당에 남아있고 싶습니다.”

그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다름 아닌 선룡 현공.

그의 말에 태허 진인은 진한 아쉬움을 토해냈다.

“다른 용봉들은 모두 무림맹으로 향했다 들었건만… 아니, 내가 강요할 바는 아니구나.”

태허진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무당에 남고 싶다는 아이에게 강요를 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거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허허, 이리 욕심이 없어서야 너는 천상 도인이구나.”

다른 용봉들이 명예를 위해 나서는 중에도 도를 닦는 것에 집중하는 현공이 태허 진인의 눈엔 참으로 기껍게만 보이는 것이다.

현공은 그저 웃었다.

그리하며 생각을 떠올렸다.

‘굳이 운신에 제약을 둘 필요가 있을까.’

평생을 첩자로 살아와 누군가를 속이는 일엔 자신이 있다.

하나 그럼에도 무림맹은 눈이 너무 많았다.

현공은 굳이 만들어둔 기반을 버리면서까지 무림맹에 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

‘아무렴….’

백도 무림에 파고든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으니, 그곳의 일은 다른 이에게 맡겨두면 되는 것이다.

*

용봉단의 창단.

이는 분명 강호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소식이었고, 또한 흉흉한 현 무림에 희망을 더해줄 소식이었다.

하나 그런 것과 별개로 생각하면 그랬다.

“새로운 단을 만드는 일이 그리 쉬울 리는 없지요.”

무림맹이 어디 동네의 영세 문파던가.

거대 집단인 무림맹인 만큼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일은 필히 그에 따른 여러 준비가 필요한 법이었다.

이들이 지낼 막사부터 생활을 이어갈 건물, 그리고 수련을 위한 연무장까지.

그저 있는 장소를 내어주는 것으로는 안 됐다.

용봉에 드는 이들은 목리원을 제외한 전원이 명문의 소속이다.

무림맹의 입장에서도 그런 이들에게 그저 그런 전각을 내주는 것은 면이 상하는 일인 것이다.

“어렵구려….”

목리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고운 미간을 구겼다.

수련이야 흙밭에서도 잘만 하고, 지붕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수 있는 목리원으로선 이렇게까지 체면을 차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당화서는 굳이 목리원에게 더 설명을 잇지 않았다.

직위에 따른 입장의 변화나 체면의 중요성 같은 것은 직접 몸으로 겪지 않는 이상 그 중요성을 체감하기 힘든 종류인 것을 아는 이유였다.

“여하튼, 그런 만큼 당분간 저희는 이 전각에서 지내게 될 터입니다.”

“그동안은 뭘 해야 하오?”

“딱히 할 일은 없지요. 아, 그렇지.”

당화서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맹의 서고에라도 들러보시겠습니까?”

“서고 말이오?”

“맹의 무인에게 내려주는 비급이 있는 서고 말입니다. 목 소협도 궁금해하셨잖습니까.”

목리원의 눈이 빛났다.

“갈 수 있는 것이오?!”

“그럼요. 이제 엄연한 맹의 무인인데.”

“가고 싶소­!”

목리원이 벌떡 일어났다.

이제 완전히 돌아온 활기찬 기색에 당화서는 그저 기쁜 미소만 띄워 올렸다.

*

당화서는 서고 앞에 목리원을 세워두고 그리 말했다.

“그럼 저는 다른 일을 보고 올 테니 얌전히 기다리셔야 합니다?”

“알겠소!”

목리원은 달아오른 듯 연신 움찔대며 서고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당화서는 괜한 걱정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목 소협, 혹 모르는 사람이 따라오라고 하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해야 하오!”

“…그래요.”

마음 같아선 같이 있고 싶지만 창단을 앞둔 만큼 당화서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당화서는 그저 아무 일도 없길 바라며 목리원을 두고 돌아섰다.

그제야 홀로 남은 목리원은 서고에 들어섰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책 냄새가 나는구나.’

서고에 들어서자마자 퀴퀴한 서책 냄새가 폐부로 스며들었다.

왜인지 마음을 진정시키는 냄새와 분위기라, 목리원은 그것에 지그시 웃으며 서고를 둘러봤다.

‘맹의 비급이라….’

종류가 참으로 많았다.

저잣거리에서도 구할 수 있는 삼재검법과 토납법부터 영세 문파들의 비급, 그리고 어디선 볼 수 없는 맹의 합격진에 관한 비급까지.

본디 맹에 들어왔다고 바로 볼 수는 없는 비급도 있었으나, 목리원이 가진 용의 별호는 그것들까지도 열람할 자격을 그에게 쥐여주었다.

목리원은 한참이나 서고를 둘러보다 하나의 비급을 꺼내 펼쳤다.

옥뢰진검이라는 이름의 검법서였다.

‘최대한 많은 검에 대해 알아야 한다.’

목리원은 교만하지 않았다.

또한 향상심이 높았다.

그리고 더 강해지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이제는 이름을 알게 된 권마 패웅추.

그를 제대로 상대하기 위해선 이전까지와 같은 방법의 수련으론 모자람을 느낀 것이다.

‘체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체득해야 한다. 내 검에 녹여낼 수 있는 것은 모두 녹여내야 한다.’

목리원은 다시는 그런 비참한 패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스륵.

책장이 넘어갔다.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 목리원은 서고의 비급들을 탐독하며 머릿속에 검결을 그려 나갔다.

*

늦은 밤, 용봉단이 임시로 배정받은 연무장.

그곳에서 목리원은 검을 뽑아 들었다.

‘수확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제부터 과실을 수확할 것이었다.

목리원은 오늘 낮 동안 계속 읽어내렸던 비급들을 되새기며 몸을 움직였다.

초식을 해체하는 것이다.

‘필요한 부분만 가져갈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엮은 새로운 검을 만들 것이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이 목리원만 아니었다면 필히 그런 말이 나올 터였다.

당연한 말이었다.

지금 목리원이 하는 행위는 무공의 창안.

한 무공의 대종사(大??)가 되려는 행위였으니.

하나 천살성이다.

그는 이 땅에 내려온 가장 위대한 무재 중 하나다.

그의 대종사로서의 자질은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다.

‘유성칠검은 후반초로 넘어갈수록 노골적인 강기공의 형태를 띤다.’

매 싸움마다 유성칠검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당장 권마와의 싸움만 해도 무리한 기공의 운용으로 내력이 바닥나지 않았던가.

‘초식만으로 위력을 낼 수 있는 무공이 필요하다.’

목리원의 검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다 경로를 바꿔 가로로 움직였다.

아주 느린 속도로 펼쳐지는 검은 오늘 익힌 검법들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형태였다.

그 속에 어찌할 수 없는 어색함이 있었으나, 밤이 깊어갈수록 그 검식은 점점 자연스럽고 오묘한 묘리를 띠기 시작했다.

‘덜어내고 깎는다. 검식 사이의 어색함은 감각이 이끄는 대로 끼워 맞춘다.’

이것은 전수를 위한 검이 아니었다.

목리원이 오직 스스로를 위해서만 만드는 검이었다.

그런 만큼 습득 난이도나 전수에 관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터.

‘내게 가장 적합한 형태의 검을.’

가장 잘 다룰 수 있을 검을.

‘더 많은 변수를.’

상대가 초식에 익숙해질 수 없을 검을.

‘그러니 같은 검초는 두 번 사용하지 않는다.’

목리원은 뼈대를 만들어가는 검에 그리 이름을 붙였다.

‘만련이검(??理?).’

일 만개의 검식을 엮어 하나의 법도를 만드는 검이라.

아직 이 속에 얽혀 있는 검초는 십여 가지 남짓이었으나, 목리원은 언젠가 이 안에 일만의 검초를 녹여낼 심산이었다.

무림맹의 밤이 깊어갔다.

*

맹에서의 생활이 약 삼 주 정도 더 이어진 날이었다.

그간 새로운 검을 완성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수련에 목매던 목리원은 오랜만에 밖을 나섰다.

“오늘 오는 것이구려!”

오늘이 바로 용봉지회에서 만났던 다른 인연들을 맞이하는 날인 까닭이다.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듣기론 권룡과 검룡은 함께, 백봉은 따로 온다고 들었습니다.”

“백봉만 따로 말이오?”

“아무래도 위치가 정 반대이지 않습니까.”

목리원은 그제야 납득을 끝냈다.

아미파가 있는 사천은 호북에서 왼쪽, 소림과 안휘는 지리상으로 오른쪽에 있으니 백봉이 굳이 그곳까지 갔다가 돌아올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럼….”

누가 먼저 올까.

목리원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저 멀리서 한 인영이 싱글벙글하며 손을 흔들었다.

당화서의 입에서 ‘쯧’하는 소리가 나왔다.

“…백봉이 먼저 왔군요.”

다가오는 새하얀 여인은 백봉 혜운이었다.

그녀는 오는 길에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참으로 개운해 보이는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뵈어요.”

“반갑소!”

“목 시주님도 잘 지내셨어요? 세상에, 그동안 더 이뻐지셨네?”

혜운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하자 목리원의 몸이 움찔 떨렸다.

왜 갑자기 친한 척을 하는지 의문이 든 것이다.

자연히 당화서의 등 뒤로 목리원이 숨은 형태가 되었고, 그것에 혜운은 웃음을 ‘빵!’ 터뜨렸다.

“안 잡아먹습니다. 안 잡아먹어요. 이미 오는 길에….”

신나서 말을 잇던 혜운이 돌연 입을 닫았다.

그리하곤 주위를 살피다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하여튼 그래요.”

목리원의 목뒤로 꼴깍 침이 넘어갔다.

당화서는 뒤꿈치로 목리원의 발을 밟았다.

제갈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미혼에다 헤픈 백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남궁형이 늦는구만.”

차라리 남궁진천이 목리원을 보고 분해하는 얼굴이 더 재밌겠다는 생각에 흘린 말.

그 바람을 하늘이 이뤄주기라도 한 것일까.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스님 하나와 벽안이 인상적인 귀공자가 걸어왔다.

그들의 등장에 제갈산의 얼굴이 밝아졌다.

“스님! 남궁형! 여기요!”

둘의 반응은 극명히 갈렸다.

일운은 제갈산을 보자마자 움찔 몸을 떨며 어색하게 웃었고, 남궁진천은 제갈산에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목리원만을 노려봤다.

목리원은 남궁진천의 기색에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오! 그동안 잘 지내셨소?”

목리원은 남궁진천에게 사감이 없었다.

아무렴, 뭐가 됐든 검술에 진심인 강호의 동도였고 마지막으로 봤던 그는 무력 외에도 많은 것을 고려하려는 듯한 기색이었으니 친분을 다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잘 지냈느냐라.”

남궁진천은 그리 읊조리다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 잘 지냈다.”

그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도리어 호승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나 지금은 자리가 좋지 않았다.

남궁진천은 당장에라도 목리원에게 비무를 걸고 싶었으나, 그 감정에 취해 해야 할 일을 잊을 정도로 멍청한 이가 아니었다.

그는 다른 용봉들을 헤치곤 맹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따라와라. 일단 보고를 해야 할 터이니.”

“꼭 지가 단주라도 된 것처럼 말하네요.”

혜운이 당화서에게 속삭였다.

당화서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말을 들은 남궁진천은 당연한 소릴 왜 하냐는 듯 되물었다.

“내가 단주인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오만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자리한 이들이 쩌저적 굳었다.

와중 목리원만큼은 욱하는 마음에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

“무, 무슨 소리요! 단주는 내가 할 거요!”

목리원이 단주직에 나서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멋있으니까.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떠올랐다.

당화서는 멍하니 그 꼴을 보다 머리를 짚었다.

‘이거….’

벌써부터 뒷골이 당겨왔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