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육장 표행, 인연 (7)
* * *
사실 곽칠이 이곳에 온 것은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정확히는 본격적으로 목리원이 초식을 운용하기 직전, 두 사람이 대화를 시작했을 때부터라고 보는 게 옳았다.
왜 절정지경의 고수들이 곽칠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느냐.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목리원은 피부가 따끔거리는 살기와 패웅추의 마기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패웅추 또한 제 혈관을 내달리는 마기에 이지가 흐려진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행한 생사결이었던 것이 이유였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뭐가 됐든 지금 상황의 핵심은 곽칠이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이었으니.
천살성.
마인.
그리고 협.
곽칠은 그 모든 대화에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렴, 천살성이 어떤 별인지는 강호에 발을 들이지 않은 양민이라도 아는 내용이었으니 당연했다.
곽칠의 행동이 늦은 이유도 결국 그것이었다.
그리고 곽칠이 목리원을 도운 이유도 그것이었다.
나는 마협의 이야기에 너무 큰 감명을 받았소!
곽칠은 이제야 목리원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곽 대인….”
“괜찮으시오? 몸은 움직일 수 있겠소?”
곽칠은 그저 목리원을 걱정했다.
그의 몸을 잠시 살피다, 그가 걸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단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목리원은 그때까지도 불안한 마음으로 곽칠을 살폈다.
그러다 곽칠이 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
“…돌아갑시다. 방금 마인이 신호탄을 쏜 것으로 미뤄보면 저쪽도 상황이 끝났을 것이오.”
곽칠의 말에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느닷없이 닥친 재앙은 그런 끝을 맺었다.
*
총 일곱의 표사가 죽었다.
부상자는 열셋, 개중 중상자가 일곱이었다.
그런 만큼 행렬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으니.”
당화서는 목리원에게 그리 말했다.
이는 그저 하는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당화서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표사들을 살렸다.
제갈산 또한 마인들이 표사들을 노릴 수 없도록 그가 가진 옥돌의 전부를 사용해 혼란을 일으켰다.
그들의 공이 그리도 컸음을 이곳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
하나, 그 누구도 섣불리 감사의 인사를 하지 못했다.
직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이의 시신을 마주하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었으니.
“…이게 강호구려.”
목리원은 낮게 읊조렸다.
그의 속은 남들의 배만큼 쓰라렸다.
‘나를 잡으러 왔다.’
권마라는 자는 분명 그리 말했다.
즉, 이 모든 참사는 자신에 의해 벌어진 것이었다.
꽈악.
목리원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의 눈엔 진득한 절망이 깃들어있었다.
형편없이 찌그러진 얼굴엔 물기가 서려 있었다.
‘내가….’
자신이, 그리고 자신이 지고 있는 별이 이런 참사를 만든 것이다.
목리원은 천살성이 어떤 별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번은 운이 좋은 것일 터다.
다음은 더 심각한 재난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땐, 저기 누워있는 시신이 제 친인일지도 몰랐다.
“목 소협….”
당화서가 목리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목리원은 그것에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휙 돌아간 고개가 당화서를 향하며 눈이 맞았다.
당화서는 당황했다.
목리원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당화서는 단언컨대 목리원의 이런 모습을 본 일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얼굴로 그가 우는 모습은 상상 속에서도 있어 본 일이 없는 것이었다.
마음이 아려오는 것은 당연했다.
당화서는 속이 다 시큰거리는 기분에 팔을 뻗어 그를 품에 안았다.
“괜찮습니다.”
톡.
톡.
목리원의 등을 두드렸다.
그저 그가 울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기인한 행동이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 일의 성질이 하나 있었다.
채 토해내지 못하고 억누른 감정이 그 말과 행위에 그만 역류해버린다는 것이다.
“끄윽….”
목리원의 몸이 잘게 떨렸다.
입에선 날 것의 울음이 삐죽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아이처럼 울었다.
강호초출의 목리원은 강서에서 안휘를 떠나 무한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그의 생애 첫 번째 패배를 맛봤다.
*
행렬의 짐이 늘었다.
이제 행렬은 귀금속과 더불어 일곱 구의 시신을 더 운반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닷새를 더 상처 입은 몸을 이끌어 호북에 도착했다.
“고생하셨소. 이리 함께 길을 떠나주어 감사하오.”
이번 표행을 이끌던 표두가 포권을 취했다.
당화서는 그것에 마주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게다가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하지 않았소.”
표두는 씁쓸하게 웃다 고개를 저었다.
“모든 이들이 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리 많이 살아남은 것은 분명 대협들의 공이었소. 자부심을 가지시구려.”
“이제 어떡할 것이오?”
“어떡하긴, 계속 표행을 해야 하지 않겠소.”
표두는 말했다.
형제를 잃고 슬픔에 빠졌으나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음을.
언제나 그랬듯 다시 일어서 길을 나아갈 것임을.
강호는 그런 곳임을.
“대협들께선 이제 무림맹으로 가는 것이오?”
“그리할 것이오.”
“부탁하오.”
표두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여전히 그 슬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마인이 나왔소. 또 강호는 환란에 빠질지도 모르오. 그러니, 대협들께서 꼭 그것을 막아주시오.”
“…그리하겠소.”
“고맙소.”
표두는 그제야 슬픔을 조금 지워냈다.
그 대화를 듣던 목리원은 속이 뒤집히는 기분을 느꼈다.
제 탓에 희생된 사람이 있다.
그것에 슬퍼하는 이가 있다.
목리원은 그들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표국을 나서는 순간까지 목리원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은 거리로 빠져나왔다.
“대협!”
그 순간 곽칠이 목리원을 불렀다.
*
곽칠은 그날 이후 목리원과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못했다.
당연 고민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곤 하나 천살성은 두려웠다.
또한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목리원은 남은 닷새 내내 우울함에 잠겨 있어 곽칠이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렇게 오늘까지 온 것이었다.
이제 목리원을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순간까지 와버린 것이었다.
곽칠은 이대로 그를 떠나보내는 일에 망설임을 느꼈다.
별 대단한 각오나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그랬듯이, 목리원 또한 누군가의 위로로 기운을 차렸으면 했다.
그의 곁엔 독봉이 있고 괴룡이 있었지만, 그들이 목리원의 천살성을 알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 아니던가.
“…떠난다고 들었소.”
곽칠은 목리원을 불러세운 후 한적한 골목으로 가 그리 말했다.
목리원은 쓰게 웃었다.
“그렇소. 내 이제는 가야 할 때가 되었으니.”
목리원은 낯은 초췌했다.
그리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어 그 초췌함까지 아름다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곽칠은 지금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곽칠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사실 말이오. 그날 들었소. 마인과 대협의 대화.”
흠칫.
목리원의 몸이 떨렸다.
이윽고 고개를 든 그의 얼굴 위에 맺혀있는 것은 경악이었다.
그리고 옅은 두려움이었다.
목리원은 저 말의 의미를 단번에 눈치챘다.
주춤.
목리원의 발이 뒷걸음질 쳐졌다.
곽칠은 그 순간 한 발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말하지 않을 것이오! 내 평생 누구에게도!”
곽칠은 근 이십 년 동안 내본 것 중 가장 큰 소리로 말했다.
사실, 이곳에 오기까지 미리 떠올려둔 말이 참 많았으나 곽칠은 이 순간 그런 것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가 전하는 것은 날 것의 진심이었다.
“약속하겠소! 내 협의를 걸고. 인생을 걸고.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삶이었다.
하여 곽칠은 걸 것이 많이 없었다.
‘곽칠’로서 걸 것은 많이 없었다.
곽칠은 더듬더듬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다 쥐어 짜내듯 말을 내뱉었다.
“…곽칠표라는 내 필명을 걸겠소.”
순간, 목리원의 숨이 끊어졌다.
그는 곽칠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짓다, 이내 찢어질 듯 눈을 커다랗게 만들었다.
“그게 무슨….”
“나요. 내가 곽칠표요. 대협께서 그리 칭찬하고 치켜세우던 못난 작가가 나요.”
곽칠은 쓰게 웃었다.
막상 이리 말을 토해내니 또 허탈하다는 생각 탓이었다.
그간 꽁꽁 숨겨왔던 비밀은 이다지도 말하기 쉬운 것이었다.
“내 이름을 걸겠소. 나는 대협에게 내려진 운명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소. 그러니 말이오. 내 말 좀 들어주시오.”
목리원은 혼란스러웠다.
그저 마음이 맞는 동도였던 이가 강호협객전의 저자라는 것도, 그가 자신의 별을 알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것을 말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참 많은 의문이 있었다.
그리고 망설임이 있었다.
그런 중 목리원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은 하나였다.
생각하고 내뱉는 질문은 아니었다.
“…어째서요?”
그는 그저 떠오른 의문을 내뱉었다.
“내게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왜 내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것이며, 왜 그것에 그리 중요한 필명까지 내거는 것이오? 나는 모르겠소. 나는….”
천살성은 배척받는 별이다.
아니, 혐오가 마땅한 별이다.
이젠 목리원조차 그것을 알았다.
다만 자신이 살기를 억누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 별은 목선오의 말대로, 자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의 모든 것을 살기로 뒤덮는 별이었다.
한데도 이런 말을 하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목리원의 말이 서서히 끊어졌다.
그는 고통스러웠다.
곽칠의 대답이 돌아온 것은 목리원의 얼굴 위로 떠오른 슬픔이 다른 감정을 다 집어삼킬 즘이었다.
“그럼에도 대협께선 협을 바라지 않소.”
곽칠은 그리 말했다.
“그럼에도 대협께선 아직 협객이 되고자 하지 않소. 그것으로 누군가를 구하지 않았소.”
“구하지 못했소. 나는….”
“아니, 구했소.”
곽칠이 허리를 곧게 폈다.
그는 볼품없는 미소와 함께 포권을 취했다.
“대협께선 나를 구했소. 대협이 내게 건넨 말은 나를 고통에서 건져주었소.”
목리원의 얼굴 위로 의문이 감돌았다.
곽칠은 그것에 말했다.
“나는 마협의 이야기가 싫었소. 그 탓에 너무 많은 비난을 받았던 까닭이오. 그 탓에 다시는 붓을 들 수 없게 되었던 까닭이오. 나는 내 자식을 미워하게 된 것이오.”
“….”
“그런 이유 탓에 20년 동안 붓을 들지 못했소. 하지만, 이젠 아니오. 대협은 내게 일러주었소. 마협의 장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일러주었고, 이제껏 나를 괴롭히던 것은 타인의 비난이 아닌 내가 가진 두려움이라는 것을 일러주었소. 하여 나는 더 이상 괴롭지 않소.”
곽칠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나를 구해주어 고맙소. 나는 대협이 어떤 별을 지니고 있던, 또한 어떤 검을 휘두르건 대협이 협객이라 생각하오.”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목리원은 고개 숙인 곽칠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조심스레 입술을 뗐다.
“…나 때문에 죽은 이들이었소.”
“마인 때문에 죽은 것이오.”
“그들이 온 이유는 나요.”
“세상에 피해자에게 죄를 묻는 법도는 없소. 대협 또한 피해자요.”
“앞으로도 나는 주위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릴지도 모르오.”
“하나, 역시 대협의 잘못은 아니오.”
목리원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돌연 목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말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목리원은 턱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꽉 물어 떨림을 수습했다.
이윽고 어딘가 간절함이 느껴지는 애원조로 물었다.
“…나는, 협객이 될 수 있는 것이오?”
목리원은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살겁을 일으키는 별을 이고 태어나 강호에 나와, 결국 그 운명으로 사람의 명을 달리하게 했으니 그저 두려웠다.
하여 묻고 싶었다.
자신에게 협을 가르친 스승 중 하나에게.
곽칠에게.
곽칠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의 눈꺼풀이 슬쩍 뜨였다가, 이내 부드럽게 가라앉으며 휘었다.
“대협께선 이미 훌륭한 협객이시오.”
그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목리원은 끅끅 숨을 내쉬었다.
“거듭 말하여, 대협께선 나를 구하….”
“아니, 아니오.”
목리원은 소매로 눈물을 벅벅 닦았다.
그리하며 고개를 젓다, 이내 울음기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인… 곽 대협께서 나를 구한 것이오.”
목리원은 포권을 취했다.
아직 슬프고 고통스러웠으나, 저 말 어딘가에는 분명 목리원을 토닥여주는 따스함이 있었다.
그를 일으켜 세워주는 응원이 있었다.
“대협께서 나를 구하셨소. 아주 오래전부터, 오늘까지.”
처음 제 살심을 깨달은 날, 목리원을 구한 것은 마협의 장이었다.
한 번씩 수련이 힘겨울 때마다 목리원을 일으켜 세워 준 것은 강호협객전의 영웅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어쩌면 무너져내렸을 그를 구해준 것은 그 저자인 곽칠이었다.
목리원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대협께선 이런 나도 협객을 꿈꿔도 됨을 일러주었소. 포기하지 않게 해주었소. 이리 나를 일으켜주었소.”
목리원의 겹친 손은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 또한 젖어 든 떨림이 있었다.
“곽 대협이 나를 구하였소. 너무 고맙소.”
곽칠은 그 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과찬이시오.”
그리 말하는 곽칠의 망막에는 오로지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웃는 사내가 있었다.
소년과 같은 순수함으로 정도를 나아가는 사내가 있었다.
닥친 운명이 고난하여, 필시 고통스러운 길을 마주할 사내가 있었다.
하나 쓰러질 것 같지 않은 사내였다.
곽칠은 영감이 움트는 것을 느꼈다.
왜인지 붓이 쥐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너무나도 큰 과찬이시오.”
곽칠은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생각했다.
맑은 미소로 묵색의 검을 휘두르며 역경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쓰고 싶다고.
20년 만에 다시 타오른 열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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