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육장 표행, 인연 (5)
* * *
마인(?人).
순리를 역행한 무공을 익혀 이지를 상실해가는 괴인들.
분명 사전적인 의미는 그러했으나 목리원에게 마인은 분명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어쩌면 되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삿된 모습.
천살성과 극마지체라는 체질을 타고난 목리원으로서는 당연 그런 감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마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없었다.
감각적인 부분을 떠나, 그가 제 입으로 실토한 말이 있는 까닭이다.
“나는 권마(??)다!”
한차례 수를 나눈 그가 어깨를 펼치며 외친 말에 행렬이 바짝 굳었다.
스스로를 권마라고 자칭한 사내는 그 기색이 못내 기껍다는 듯 웃으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권룡(??)이 되고 싶다!”
사내의 검지가 뻗어 목리원을 향했다.
“너처럼!”
목리원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권마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하여 물었다.
“…마인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
“너를 찾아왔다.”
목리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권마 패웅추는 더 말을 더하지 않고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마기를 터뜨렸다.
일반적인 기파와는 달랐다.
정종의 무공을 익히면 흘러나오는 기파는 흩어지는 안개와 닮아있었으나, 마기를 운용해 만든 기파는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케 하는 형태였다.
패웅추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발을 디뎠다.
쿵.
순식간에 목리원의 코앞까지 들이닥친 패웅추가 주먹을 뻗었다.
노리는 곳은 정확히 목리원의 미간.
목리원은 고개를 살짝 뒤틀며 검을 뻗었다.
견제를 위한 수인 만큼 깊지 않은 공격이었고, 역시 막혔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기파가 충돌했다.
그 충격에 두 사람의 거리가 살짝 벌어졌다.
목리원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물리적인 충격이 없었음에도 거리가 가까워지면 선연히 느껴지는 마기 탓에 이지가 흐려지는 이유였다.
극마지체는 본능적으로 마기를 갈구한다.
또한 천살성은 마기를 흡수하면 기세가 강해진다.
그것 외에도 문제는 존재했다.
어쩔 수 없는 경험의 부재였다.
목리원은 생사결을 모른다.
그나마 생사결에 가까웠던 표산과의 비무조차 기량의 차이로 찍어누를 수 있었기에 목리원을 자극하진 못했다.
하나 지금의 상황은 달랐다.
‘절정의 끝.’
저 권마라는 사내의 내력은 적어도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다 이제까지 느껴본 일 없던 진한 살기를 토해내고 있는 만큼, 목리원은 공세와 더불어 그의 살기에 따라 떠오르는 충동도 이겨내야 했다.
“흐읍!”
목리원은 눈을 부릅뜨며 숨을 가다듬었다.
턱끝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으나 그것을 인지할 새도 없었다.
패웅추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은 까닭이다.
“왜 이렇게 맥아리가 없나!”
검붉은 기파가 쏘아진다.
귄기를 허공으로 뻗어내는 수에 목리원 또한 같은 방법으로 응수했다.
절정의 중입에 오르며 깨달은 기예였다.
허공에서 부딪치는 핏빛과 묵빛의 기파.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쏘아지는 두 사내의 몸.
그것이 맞붙으며 이는 충돌음.
그런 것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 다른 쪽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권마 패웅추는 홀로 나타나지 않았다.
“끄아악!”
표사 하나의 명치에 검이 꽂혔다.
그대로 검이 내리그어지며 표사가 절명했다.
당화서는 ‘쯧’하고 혀를 차며 기파를 흩어냈다.
애심(?心).
그녀가 절정지경에 이르며 터득한 독이었다.
용봉지회때처럼 허투루 흩어내는 것은 아니었다.
품에서 꺼내든 비수에 독기를 흘려 비수가 꽂힌 바닥에서부터 반경 1장.
딱 그 정도의 범위에만 미치는 독을 흩뿌리는 것이었다.
지독하리만치 세심한 내공의 운용법이었으나, 언제나 그랬듯 당화서에겐 당연히 해내야 할 기예였다.
“누님!”
제갈산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 당화서의 눈에 마인 다섯에게 둘러싸여 간신히 공세를 회피하고 있는 제갈산이 비쳤다.
당화서는 그곳에 비수 하나를 던져 제갈산의 숨통을 트여준 후 생각을 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마인들의 수준이 꽤나 높았다.
당장 목리원이 상대하고 있는 권마라는 마인만 해도 자신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뒤 따라온 스무 명 남짓한 마인도 개개인이 일류로 분류되는 수준이었다.
그에 비해서 행렬은 어떻던가.
개중 가장 나았던 일류의 무인 다섯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어하고 있다.
나머지 이류나 삼류의 무인들은 추풍낙엽처럼 쓸려가고 있다.
당화서는 빠르게 판단을 이었다.
‘전력을 보존해야 한다.’
즉, 저들의 부담이 줄어들도록 자신이 모든 시선을 끌어야 한다.
당화서는 심호흡을 하고 기파를 더 짙게 만들었다.
암녹색의 물결이 그녀의 몸 주위로 흐르며 께름칙한 기류를 만들기 시작했다.
탓!
당화서가 발을 디뎠다.
향하는 곳은 물자를 지키는 삼류 무인들이 썰려나가던 자리.
당화서는 그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마인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
곽칠은 전신이 벌벌 떨리는 공포를 느꼈다.
‘이, 이게 무슨….’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의 주인은 전날까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동료들.
풍기는 혈향 또한 그들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삼류무인이라곤 하나 눈치만큼은 빨라, 본능적으로 안전한 자리에 가 있던 곽칠은 스스로의 모습에 진한 혐오를 느끼면서도 움직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무렴, 생을 향한 갈망은 모든 생물의 공통적인 바람이 아니던가.
“아아악!”
허리가 두 동강 난 표사 하나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마차 아래 숨어있던 곽칠은 그 표사와 눈이 마주쳤다.
생기를 잃은 눈은 아득하리만치 텅 비어있어, 그것에 곽칠의 공포가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곽칠은 애써 그곳에서 시선을 돌렸다.
돌린 시선이 향한 끝엔 목리원이 있었다.
저를 권마라 소개한 봉두난발의 괴인과 수를 나누는 그의 얼굴에는 지난날 봐왔던 순진한 기색이 조금도 자리해있지 않았다.
‘대, 대체….’
눈으로 보고도 쫓아갈 수 없는 공방이었다.
그만큼 빠르고 기괴하게 오가는 수였고, 그보다 먼저 충돌하는 기파의 색이 너무 짙어 인영을 구분하는 일조차 힘든 수였다.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조차 두 사람이 거리를 벌리며 잠시 움직임이 멈춘 덕이라 하면 설명이 될까.
곽칠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공포 앞에서 숨어버린 자신과 저리 흉악한 마인을 상대하는 목리원을 비교하며 재차 자괴감을 느꼈다.
함께 협을 논하고 올바른 협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주제에 막상 닥친 순간에 이리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어찌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곽칠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여러 감정이 얽혀있는 눈물이었고, 개중 객기라 해야 할 제 자신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크게 자리한 눈물이었다.
‘나, 나는…!’
협사이기를 바랐다.
이리 비루한 무공을 지니고 있음에도 협을 행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강호협객전을 쓴 것이었고, 그것을 쓰지 못하게 된 이후로도 무림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망설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엔 역시 분노가 있었다.
곽칠은 스스로를 다그쳤다.
왜 자신이 무림인을 동경했는지, 그 이유를 내내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이윽고, 곽칠이 훅훅 숨을 몰아쉬며 마차 아래에서 기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
패웅추는 껄껄 웃음을 토해냈다.
“더! 더 해보거라!”
이리 싸움을 해본 것이 얼마 만이던가.
그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제 목숨까지 걸어가며 행하는 비무는 그로서도 근 몇 년 만에 겪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신교는 신중했다.
도둑맞은 별을 되찾기 위해 그 열기까지 억누르며 인내해왔었다.
쾅!
패웅추가 진각을 밟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권법이 아닌 각법을 사용했다.
선 자세 그대로 허리만 뒤틀어 쏘아낸 다리가 목리원의 무릎을 노렸고, 목리원은 검날을 세워 그것을 막아냈다.
검날과 정강이가 맞붙은 상황이었으나, 목리원에겐 안타깝게도 패웅추의 정강이가 잘려 나가는 일은 없었다.
쿵!
그런 소리와 함께 목리원의 몸이 먼 곳으로 날아갔다.
패웅추는 그를 쫓았다.
이미 싸움이 이어지던 중 행렬에선 한참이나 멀어져 버린 상황.
목리원은 다급함을 느꼈으나, 이는 패웅추가 의도한 상황이었다.
“왜 머뭇거리나!”
신교는 도둑맞은 별을 찾고자 한다.
저 묵룡이라는 사내에게 깃들어버린 천살성을 되찾고자 한다.
하나, 패웅추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살귀의 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하여 목리원을 도발했다.
“천살성이 아닌가!”
덜컥.
일순 목리원의 몸이 굳었다.
패웅추는 공세를 더하지 않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살귀의 별이 아닌가! 한데 왜 그리 낑낑대기만 하는 것이야!”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목리원이 허망한 어조로 말을 흐리자, 패웅추는 껄껄 웃으며 답을 이었다.
“알고 싶으면 힘을 내야지!”
그리하곤 다시 진각을 밟았다.
이번 역시 백중지세의 양상이었다.
*
목리원은 진한 당황을 느꼈다.
난생 알지도 못하고 있던 마인의 입에서 제 비밀이 튀어나오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길게 이어졌으나, 당연하게도 답이 나올 리는 만무했다.
목리원은 그저 입술을 꽉 깨문 채 쏘아지는 권격을 막아냈다.
하나, 버틸수록 불리한 것은 목리원이었다.
목리원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패웅추의 살기는 그다지도 짙었고,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마기는 계속해서 목리원의 심상을 자극했던 까닭이다.
용봉지회때처럼 그 살기를 이용할 수조차 없었다.
본능이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용해선 안 되는 감각이라고.
사아아.
묵색의 기파가 흔들렸다.
패웅추는 그 틈을 노려 유효타를 먹였다.
빠악!
목리원의 허리에 패웅추의 주먹이 꽂혔다.
목리원은 ‘꺼억!’하는 신음을 내며 형편없이 날아갔다.
패웅추의 얼굴 위로 불만스러움이 떠올랐다.
“이게 끝인가?”
그의 마기가 불꽃의 형상에서 용암의 형상으로 변했다.
감정에 영향을 받는 마기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묵룡! 천살성을 이고 보여준다는 게 그게 끝이냐 물었다!”
패웅추의 어조에 분노가 깃들었다.
흰자위의 실핏줄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투둑투둑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살기가 짙어질수록 강해진다! 마기가 짙어질수록 강해진다! 그런 몸이지 않았나! 한데 왜 아직도 좀생이 같은 수만 쓰는 건가!”
목리원은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이윽고 입술을 꾹 깨물며 재차 몸을 일으켰다.
허락한 것은 겨우 한 번의 일격이었으나 반동은 끔찍했다.
“겨우 그걸 보고자 이곳에 온 게 아니다!”
감정이 짙게 묻어난 외침에 목리원은 답했다.
“…나는 살귀가 되기 위해 검을 든 게 아니오.”
목리원은 검을 고쳐 쥐었다.
비틀거리는 몸은 의지로 바로 잡았다.
권마가 누구인지 모른다.
저자가 왜 제 비밀을 알고 있는지도, 또한 왜 이렇게 자신을 자극하는지도 몰랐다.
하나 그런 중에도 그의 의도만큼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귀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전해진 말에 대한 목리원의 답은 분명하게 존재했다.
“나는 협사가 되기 위해 검을 든 것이오. 살기에 집어삼켜지기 위한 검 따윈 휘두르지 않을 것이오.”
“헛소리! 그 일이 가능하리라 보는가!”
“불가능이라 말한들 내 뜻은 바뀌지 않소.”
목리원의 기파가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갔다.
그의 검 위로 선명하게 덧씌워졌다.
목리원은 절대 그의 뜻대로 놀아날 생각이 없었다.
“나는 협사가 될 것이오. 내 검은 악귀를 베기 위한 검이오.”
목리원은 패웅추를 노려보며 자세를 잡았다.
기수식이었다.
“무릇, 협객은 가장 어려운 길을 걷는 자를 일컫는 말이오.”
목리원이 쏘아져 나갔다.
살기와 마기가 터져 나오는 한 가운데를 향해, 자신의 본을 이루는 감각들을 외면하며.
그가 살아생전 배운 것을 오롯이 행하고자 검을 휘둘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