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육장 표행, 인연 (4)
* * *
곽칠은 삼류 무사였다.
아주 어린 시절, 그가 처음으로 목검을 집어 들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삼류무사였다.
재능이 없는 까닭이다.
저 강호를 주유하는 협객을 동경함에도 그들과 같아질 수 없는 저주받은 재능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곽칠은 협객을 동경했다.
그는 무(?)와 협(?)이라는 그 두 글자의 낭만에 흠뻑 빠진 사내였다.
다행히, 그런 그에게도 제 협의를 표출할 만한 재능이 있었다.
곽칠은 재담꾼이었다.
또한 우수한 문장력이 있었다.
그는 차마 검으로 협을 부르짖을 수 없음에, 붓으로 협을 행하고자 했다.
그것이 [강호협객전]이라는 잡서의 탄생 비화였다.
물론, 잡서라곤 하지만 정말 쓸모없는 책은 아니었다.
왜 아니겠는가.
한 사내가 일평생을 동경해온 협의 정수가 깃든 이야기일진대.
“내 이 책으로 내가 생각하는 협을 온 세상에 알릴 것이다!”
젊은 날의 곽칠은 ‘곽칠표’라는 필명을 걸고 그리 자신만의 강호를 나섰다.
그렇게 검협의 이야기와 인협의 이야기 같은 온갖 멋들어진 협객의 이야기를 써내려 그의 이름을 드높였다.
그는 그리하여 별호를 얻었다.
필협(??) 곽칠표.
붓으로 협을 행한다는 낭만이 가득한 별호였다.
아마, 그것이 곽칠의 욕심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는 더욱 낭만적인 협과 더욱 가슴을 울리는 협을 부르짖고 싶었다.
곽칠 인생 최대의 실수인 마협은 그런 이유로 세상 밖에 나왔다.
곽칠은 그저 말하고 싶었다.
세상 모든 이의 가슴에는 협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그것에 신분이나 위치나 살아온 삶 같은 것은 전혀 중요치 않음을.
정말 순수한 꿈이었고, 그렇기에 현실에 좌절된 꿈이었다.
현실은 곽칠이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잔혹했다.
곽칠이 마인을 옹호한다!
어디서 나온 소문인지 곽칠은 모른다.
어떻게 퍼져나간 소문인지도 곽칠은 모른다.
확실한 것은 어느 순간 퍼져나간 소문에 그의 인생을 걸었던 ‘강호협객전’의 평가가 나락으로 처박혔단 것이다.
곽칠은 두려웠다.
내내 자신을 지지해주던 사람들이 등을 돌린 것이 두려웠고 이대로 무림맹에 잡혀가는 것이 두려웠고 비난받는 일이 두려웠다.
그리하여 숨었다.
그는 차라리 평생을 쥐어온 붓을 꺾고 침묵 속에 살길 선택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선택이었다.
시간은 참으로 공평하고 관대하여, 다행히 곽칠의 마음도 조금 무뎌지게 만들었다.
물론, 시간이 무뎌지게 한 것에는 그의 열정도 끼어있음은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 20년이었다.
“미, 미안하오!”
목리원이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그의 얼굴 위론 너무나도 진한 당황이 서려 있어, 도리어 보고 있는 사람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곽칠은 끅끅 울음을 터뜨리는 중에도 미소 지었다.
“아니오. 내 묵룡 대협탓에 우는 것이 아니오.”
노인의 눈물은 그리도 추했으나, 그것을 정녕 추하다 여기는 이는 없었다.
울음기 어딘가에 피어난 미소가 참으로 애처롭고 아릿하여 지켜보던 이들은 그저 동정의 빛을 띄워 올렸다.
“내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러오.”
곽칠은 투박한 움직임으로 눈매를 슥슥 닦았다.
“…그래,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러오. 이리 도란도란 모여 이야기를 하자니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괘, 괜찮은 것이오?”
“괜찮소. 암, 너무 괜찮지.”
곽칠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노인은 이제야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후련함과 먹먹함에 울며 웃었다.
“내 추태를 보여 미안하오. 그래, 그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주시겠소?”
“이야기라면….”
“마협의 이야기 말이오. 내 묵룡 대협의 의견을 조금 더 듣고 싶소.”
곽칠은 여전히 자신이 곽칠표라는 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이야기를 끝맺지 못한 채 도망간 작가가 어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겠는가.
하나, 그럼에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의 말은 그다지도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어 곽칠은 염치도 없이 부탁했다.
목리원은 환히 웃었다.
“그럼! 밤새도록 할 수도 있소!”
“밤새는 하지 않아도 되오. 내일도 길을 가야 하지 않소.”
“아차!”
목리원이 그리 소리를 내자 함께 있던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목리원은 쑥스럽다는 듯 뒤통수를 긁다,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긴긴밤 이어진 어떤 협의 이야기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의 동경을 담고 있었다.
*
당화서는 먼 자리에서 목리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목리원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저 표사는 왜 울린 것입니까?”
“내가 울리지 않았소!”
목리원이 기겁하며 말했다.
이어지는 것은 역시나 긴 해명.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만큼은 그 해명을 함께해 줄 제갈산이 있었고 이야기 자체도 꽤나 타당한 면이 있었기에 당화서는 납득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나 보군요. 다행입니다.”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이었소!”
목리원은 그리 말하며 연신 수다를 떨었다.
곽칠이라는 사내와는 꽤나 마음이 맞는 부분이 많았다는 이야기.
내일도 저녁 시간엔 술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한 일과 이젠 자신들의 천막을 스스로 치겠다고 말하고 온 일까지.
당화서는 그것에 쿡쿡 웃었다.
그리하며 늦은 밤을 즐거이 보냈다.
표행 이틀 차의 일이었다.
*
안휘에서 무한으로 통하는 산맥의 고개에는 꽤나 큰 규모의 산채가 있었다.
산적들의 은신처였다.
하나 본디 산채라고 하면 떠오르는 바와 다르게, 지금 그곳에 펼쳐져 있는 광경은 기이했다.
이르길, 산적들의 은신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황폐하고 비릿한 꼴이었다.
목책은 다 쓰러져 있었다.
집의 역할을 하던 것은 하나 같이 어디 한군데가 무너져 휘청거리고 있었고, 곳곳에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냄새로 봐도 그랬다.
씻지 못한 남정네들의 퀴퀴한 냄새나, 똥간에서 흘러나온 똥내 따위가 있어야 할 산채에서 풍기는 것은 오직 혈향과 시취였다.
그곳에 자리를 깔고 앉은 이들이 있었다.
“대주. 왔습니다.”
흑색 무복을 입은 사내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 예를 받은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사내의 행색 역시 기이했다.
직전 고개를 숙인 사내와 같은 흑색 무복을 입고 있었으나, 그와 다르게 깔끔함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더러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봉두난발이 되어 이리저리 휘날리는 머리, 흰자위가 모두 핏발선 눈, 그리고 듬성듬성 난 수염은 그 모든 것이 광인의 것이라 할 만한 형태였다.
“묵룡이라, 우스운 이름이구나.”
사내가 웃었다.
“마귀 주제에 용의 행세를 하는 게 어찌 우습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달싹이는 입술과 함께 사내의 누런 이가 드러났다.
예를 치르던 깔끔한 사내의 고개가 더 깊이 처박혔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 억울하지 않느냐. 그런 인간도 용이 되는데 왜 우리만 마귀라 불리어야 하느냐.”
사내의 웃음기가 진해졌다.
내뱉는 말의 형태에는 억울함이 묻어 있었으나, 사내의 기색은 실로 기꺼운 형상이었다.
“나도 권마(??)가 아닌 권룡(??)이 되고 싶다.”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 이 억울함을 풀어야겠구나.”
흰자위의 붉은 기운이 짙어졌다.
권마(??) 패웅추.
그는 즐거움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숨을 내뱉으며 대로가 있을 방향을 바라봤다.
*
표행이 닷새에 접어들었다.
오늘 역시 별다른 위험 없이 이어진 표행에 표사들의 긴장도 조금씩 풀리는 와중.
목리원은 오늘따라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한 채 길을 걷고 있었다.
“소저, 그거 아시오?”
“무엇 말입니까?”
“야명주는 사실 거대한 옥을 쪼개서 일정한 크기로 만든 후 파는 것이라고 하더구려! 나는 그게 처음부터 다 똑같은 크기인 줄로 알았소!”
“확실히 커다란 야명주를 본 일이 없으면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소저는 커다란 야명주를 본 적이 있는 것이오?”
목리원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당화서는 쿡쿡 웃었다.
“이래 봬도 잘 사는 집에서 자라지 않았습니까.”
물론 안 좋은 기억밖에 없는 본가였으나, 가진 바 재물이나 위상은 강호에서 손에 꼽히는 게 사천당문이었다.
그런 만큼 당화서 또한 어지간한 보화는 다 봐본 일이 있는 것이다.
목리원은 그제야 ‘아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구려…. 소저가 놀랄 만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깝소.”
“그것도 곽칠이라는 사내가 이야기해준 것입니까?”
“그렇소. 곽 대인은 참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더구려.”
“세월에서 오는 연륜이라는 것이겠지요. 살아온 시간만큼 많은 것을 봤을 테니까요.”
요 며칠 늘 있어 온 대화였다.
해가 지면 곽칠에게 달려간 목리원이 그에게 강호의 여러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낮동안 당화서에게 말한다.
개중엔 당화서가 아는 이야기도 있었고, 당화서로서도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기에 두 사람의 대화는 꽤나 다채롭게 이어져가고 있었다.
“뭐, 그런 걸 따져도 곽칠이란 사내는 아는 것이 참 많은 듯 보이더군요. 저로서도 하북의 꼬리만 새하얀 여우 영물의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음! 그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소! 오늘은 소저도 함께 이야기를 듣는 게 어떻소? 곽 대인은 말재주가 참 좋아 내게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오.”
“괜찮습니다. 저는 이것도 나쁘지 않으니.”
이것 또한 요 며칠 내내 있어온 권유와 거절.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느긋하게 이어지는 여정은 당화서에게도 각별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 닷새만 더 가면 여정의 끝이리라.
그런 마음에 당화서가 묘한 아쉬움을 떠올리는 순간.
“…적.”
목리원이 그리 읊조렸다.
목리원의 표정이 화악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에 당화서 또한 빠르게 기감을 넓혔다.
‘…있다.’
기파에 잡히는 무리가 있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당화서가 외쳤다.
“적이오!”
행렬이 멈췄다.
그리고 표사들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다, 이내 근처 수풀이 흔들리는 것을 보곤 무기를 뽑아 들기 시작했다.
둥!
둥!
둥!
북이 울렸다.
“적이다!”
“경계! 경계 태세로!”
표사들의 외침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그런 와중,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뛰쳐나간 이가 있었다.
목리원이었다.
스릉.
목리원이 칼을 뽑고 표행의 선두로 내달렸다.
그의 몸에선 이미 묵색의 기파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살기.’
이것은 살기였다.
그냥 살기도 아닌, 이제까지 목리원이 살아생전 느껴본 것 중 가장 진한 살기였다.
목리원의 심장이 거칠게 박동했다.
호흡은 정상 범위를 벗어나 빠르게 튀기 시작했으며 사고는 일 점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다르다.’
그저 살기라기엔 기묘한 느낌이었다.
위기감과 동시에 떠오르는 먹먹함이 있었다.
굳이 이것을 일러 표현하길, ‘안락함’이라 해야 할 것이었다.
목리원은 의문을 품으며 선두로 향했다.
그리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있는 힘껏 검을 뻗었다.
콰아앙!
그곳엔 어느 순간 뻗어 나온 핏빛 기파가 대열의 선두를 노리고 있었다.
목리원의 기파가 핏빛 기파를 물리쳤다.
그러자 수풀에서 괴한이 튀어나왔다.
“반갑다아!”
봉두난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나타난 괴한이 주먹을 말아쥔 채 목리원을 향해 뻗었다.
목리원은 검면으로 그것을 흘렸다.
두 사람의 거리가 좁아진 순간, 또 눈이 맞은 순간.
목리원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마기(??).’
그의 본능이 말했다.
이것은 마귀의 기운이라고.
표행 닷새째의 정오.
목리원은 생애 처음으로 마인(?人)을 만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