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육장 표행, 인연 (3)
* * *
두 사내가 행렬로 돌아왔다.
하나는 목리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곽칠이었다.
곽칠은 목리원의 눈을 피하며 제 일행이 둘러 앉아있는 곳을 향했다.
“음? 곽형, 얼굴이 왜 그렇게 새하얗소?”
“아니, 아무것도 아니네. 똥이 잘 나오지 않아서.”
“저런, 변비에 걸리셨구먼.”
곽칠은 쿵쿵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아직도 느껴지는 목리원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소설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실이 곽칠을 옭아매는 것이었다.
아니, 사실을 따져보자면 그의 소설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적을 것이 옳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참담함에 몸을 떨었다.
그에게 [강호협객전]은 역린과도 같은 것이기에.
자신의 삶을 이리도 나락으로 처박은 어린 날의 치기였기에.
곽칠은 외면하고 싶었다.
‘말 걸지 마라…!’
그 소설과 관련된 이야기를 제게 건네는 모든 이들을, 그것과 함께 떠오르는 과거를 외면하고 싶었다.
*
목리원은 아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곽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당화서는 그 모습에 고개를 기울였다.
“목 소협, 왜 그러십니까?”
목리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는 마침 잘 물어봤다는 듯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글쎄 들어보시오. 소저! 내 한창 수련을 하던 중 저기 보이는 저 표사 분을 만났소!”
“저자가 수련을 훔쳐본 겁니까?”
당화서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러자 목리원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휙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오!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저 표사 분의 이름이 곽칠이지 뭐요! 딱 들어도 강호협객전의 저자이신 곽칠표와 비슷하지 않소? 그래서 내 기쁜 마음에 강호협객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목리원이 안타까움을 호소했으나, 당화서는 공감할 수 없었다.
‘곽칠’과 ‘곽칠표’라는 이름을 강호협객전으로 엮는 것부터 그것을 화제로 상대와 대화하려는 생각이나, 상대가 대화에 어울려주지 않았다고 상심한 것까지 모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니만큼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그랬군요.”
당화서는 무조건적인 지지를 해주었다.
이는 상대의 말에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도 부드럽게 대화가 이어지게 해주는 좋은 기술이었다.
목리원의 말은 한참이나 이어졌고 당화서의 ‘그랬군요’도 그만큼 이어졌다.
대화라기엔 일방적인 푸념이 어울리는 양상이었으나 서로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어찌 되었거나 목리원은 푸념할 상대를 찾아 좋은 것이었고, 당화서는 목리원의 고운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좋은 일인 것이다.
물론, 제 3자의 입장은 달랐다.
‘이게 무슨 대화야?’
어딜 가도 괴인으로 꼽히는 제갈산이었지만 이 광경은 그에게도 이해 밖에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나.
분명 안휘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목리원이 저런 행동을 보일 때면 당화서가 그때그때 기행을 잘라냈었던 것을 생각해보라.
한데 이제와서는 그것에 같이 어울려주니 혼란스러움만 속에 가득 차 버리는 것이다.
제갈산은 자신의 상식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속에서 독봉 당화서라는 여인의 평가는 한없이 바닥으로 처박히고 있었다.
제갈산은 이 대화를 더 들어줄 자신이 없었다.
“…그럼 저리 가서 술이라도 한잔 하는 게 어떤가.”
목리원의 고개가 제갈산을 향했다.
제갈산은 고개를 갸웃하는 목리원에게 이어 그리 말했다.
“저 곽칠이라는 표사와 대화가 나누고 싶은 것 아닌가. 보아하니 술을 마시고 있는 것 같은데, 내 함께 가줄 테니 한잔 걸치며 대화를 나눠보게.”
“오오…! 그것참 좋은 생각이오!”
“그렇지, 가는 김에 앞으로 우리 천막은 우리가 치겠다고 말하고 오면 되겠어. 어떻소 누님?”
당화서는 눈을 끔뻑이다 허락의 뜻을 내비쳤다.
“뭐, 알아서 하거라.”
“소저는 같이 안 가시오?”
“제가 저기 끼여 무엇하겠습니까. 시끄러운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다녀오십시오.”
당화서가 손을 휙휙 저었다.
본디 시끄럽게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녀는 이 틈에 명상이나 할 셈이었다.
“알겠소! 그럼 다녀오겠소!”
목리원은 그저 신나서 곽칠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
“실례되지 않는다면 합석해도 되겠소?”
제갈산이 특유의 족제비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쪽 팔을 목리원의 어깨에 불량하게 두른 상태였다.
자리에 있던 표사들은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다, 이내 환한 미소와 함께 환호를 보내왔다.
“아, 얼마든지 오시오. 잠시만! 여기 자리를 만들어 주겠소.”
“이 사람아! 옆으로 조금 당겨보시게!”
표사들로선 바라마지 않던 상황이었다.
아무렴, 무려 용의 별호를 가진 기재들이 함께 술잔을 나누고자 찾아온 상황이 아닌가.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분명 어디서 자랑할 만한 거리가 되겠지만, 그것 외에도 그랬다.
고수와 함께하는 술자리인 만큼 그들에게 수련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는 것이다.
“고맙소. 이거 방해한 건 아닌가 싶구려.”
“바, 방해라니! 당치도 않소!”
나름의 겸양을 떨어가며 제갈산이 분위기를 푸는 와중.
남들과는 다른 표정을 한 사내가 둘이 있었다.
하나는 곽칠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는 목리원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시선에 부담스러워하는 곽칠이었다.
하필 목리원이 앉은 곳도 곽칠의 바로 옆자리.
“또 만나는구려!”
“바, 반갑소….”
곽칠은 어색하게 웃으며 목리원을 응대했다.
속이 쓰린 기분에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하나, 그런다 해서 물러날 목리원이 아니었다.
“아까는 이야기를 많이 못 나눠서 아쉬웠소!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마저 할 수 있겠소?”
어딘가 간절함까지 묻어나는 어투였다.
곽칠은 눈을 질끈 감으며 참담함을 토해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시, 실례될 것이 무에 있겠소.”
“아, 다행이구려! 사실 말이오. 내 이 강호협객전이라는 책을 너무나도 좋아하는데 대화할 상대가 마땅찮아 항상 아쉬웠다오!”
칭찬의 말이었다.
곽칠은 저 칭찬에 더 속이 쓰린 기분을 느꼈다.
튀어나오는 말은, 그런 감정을 조금은 묻혀낸 말이었다.
“…그래봐야 잡서 아니겠소. 그것도 괜한 사상 같은 걸 넣었다가 강호의 비난을 받았던.”
“음? 무슨 사상 말이오.”
“….”
곽칠은 입술을 달싹였다.
섣불리 토해내지 못할 말이 입안에서 감돌다, 이내 옅은 짜증과 함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 말이오. 마협의 이야기. 묵룡 대협께선 아직 어리셔서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은, 그 이야기 탓에 곽칠표라는 작자가 무림 공적으로 몰릴 뻔했다오.”
목리원의 얼굴이 멍해졌다.
곽칠은 그 표정에 ‘역시 몰랐던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헛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소. 마인이 협을 행한다니,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이오. 강호의 입장에서도 그랬을 것이오. 그 서사는 어딘가 마인을 옹호하는 점이 있었으니 작가의 사상을 의심할 수도 있는….”
“그렇지 않소!”
목리원이 외쳤다.
꽤나 큰 소리였기에 자리해 있던 이들의 시선이 단번에 그를 향했다.
하나, 목리원은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것은 마인을 옹호하는 내용이 아니었소! 협이란 모든 이의 가슴 속에 존재함을 외치는 아름다운 서사였소!”
곽칠의 표정이 멍해졌다.
목리원은 그런 중에도 조금은 분노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마협의 이야기는 누구나 협객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내용이었소! 나는 그것을 아오! 당연하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또한 그 이야기였으니까!”
목리원의 입장에선 그랬다.
이 자리는 간만에 강호협객전이라는 명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를 부풀리며 온 자리였고, 그런 만큼 예상치 못한 소설의 비난적 시각에 억울함이 찬 것이었다.
“어린 날의 나는 분명 그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소. 마협의 이야기는 휘두르는 검이 어떤 형태이건 그 속에 품은 뜻이 의롭다면 협을 칭할 수 있음을 말하는 명저 중의 명저였소!”
“목 아우, 진정….”
“에잇!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소?!”
목리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콧방귀까지 ‘흥!’하고 뀌며 말을 이었다.
“곽 대인! 외치시오! 강호가 무어라 하던 마협의 장은 명저 중의 명저요!”
목리원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곽칠은 이어진 그의 말에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 가슴이 확 조이는 기분이 들었으나, 곽칠은 충분히 감상에 빠지지 못했다.
“…목 아우, 곽 대인이 곤란해하지 않나. 그저 세간의 시선이 그렇다 하는 것을 말했을 뿐인데 그리 몰아붙이면 기분이 좋지 않을 걸세.”
“앗…!”
목리원은 그제야 머리에 피가 쏠려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미, 미안하오. 내가 너무 흥분해서… 생각해보니 그렇구려.”
목리원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졌다.
곽칠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오. 그런 것이 아니오. 나 또한 묵룡 대협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소!”
말을 내뱉은 이후, 곽칠은 ‘아차’하는 심정을 떠올렸다.
자연히 시선은 주변을 향했다.
이는 곽칠의 오랜 불안감에서 나온 본능적 행동이었다.
그리고 곽칠은 놀랐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구나.’
방금 자신이 백도 무림인답지 않은 말을 했을진대 그 누구 하나 험악한 시선을 보이는 이가 없었다.
그들이 보이는 것이라곤 목리원의 머쓱한 표정에 대한 유쾌한 웃음 뿐이었다.
“묵룡 대협은 참으로 그 이야기를 좋아하시나 보구려. 딱 10살 난 내 아들놈이랑 똑같아.”
“그, 그런….”
“에이, 칭찬이오. 그리 협의 본질을 생각할 정도로 열정에 차 있다는 것 아니오. 내 오늘 개안했소. 나이가 차며 생각해본 일이 없던 것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됐구려. 내가 왜 무림인이 되고 싶었나 하는 것 말이오.”
“맞소, 나 또한 그랬지. 어린 날에 우리 마을에 들렀던 백검(??)의 뒷모습이 그리도 멋있어 보여 무림인이 되려고 했었어.”
곳곳에서 지긋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리한 이들은 하나같이 추억에 잠겨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곽칠은 멍한 기분이었다.
‘왜 아무도….’
마협의 이야기에 대한 욕을 하지 않는 것인가.
왜 누구도 돌을 던지지 않는 것인가.
이는 곽칠로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협의 이야기는 당시에 그리도 많은 비난을 받았던 까닭이다.
마인을 옹호하는 서사라는 지탄을 받아 곽칠표를 벌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던 까닭이다.
곽칠은 지난 20년을 되새겼다.
자신이 그 책의 저자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다시 붓을 들었다간 추격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붓을 꺾었다.
그렇게 조용히 살아가며, 더 이상의 열의를 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세월이었다.
주르륵.
곽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것이 자신의 두려움에서 파생된 헛된 망상이란 것을 깨닫자, 후련함과 먹먹함에 자연히 나온 눈물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목리원에겐 자신이 그를 울린 것이란 판단을 하게 만드는 눈물이었다.
“미, 미안하오!”
목리원은 크게 기겁하며 무릎을 꿇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