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오장 용봉지회 (19)
* * *
혈향이 짙어진다.
박동이 더 선명해진다.
그제까지 몸을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은 이제와 기분 좋은 떨림으로 화하고 있었다.
겨우 한 꺼풀, 그 정도만 벗겨냈음에도 이 정도였다.
목리원은 그 황홀하기 그지없는 감각에 절로 마음이 동하는 것을 느꼈다.
한 꺼풀만 더.
아니, 그보다 조금만 더.
그리하여 이 감각에 조금만 더 취하고 싶다는 마음이 떠오르는 것이다.
목리원은 입술을 깨물어 피를 냈다.
‘…정신 차려라.’
살행을 위해 벗어던진 껍질이 아니다.
그저 우열을 가리기 위해 일시적으로 벗겨낸 허물일 뿐이다.
이 승부에서 바라는 것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
검은 지배가 아닌 협을 위해 존재함을 그에게 이르는 것.
‘그것을 위해.’
나 자신이 시련이 되는 것.
감히 비무대 위에서 살심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만큼은 목리원이 허락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검룡께는….’
나중에 사과하자.
그의 살기를 끌어내기 위해 이런 도발을 했으니, 꼭 사죄해야할 터다.
목리원은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그는 이전처럼 무심하게 검을 휘둘러오지 않았다.
참으로 얄밉게도 그는 변화를 눈치채자마자 신중함을 더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 감각에 오래 노출되면 될수록 후유증은 진해질 터다.
더 오랜 기간 이 감각이 잔류해 내내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러니 빠르게 승부를 내야 했다.
“오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가겠소.”
목리원은 그리 말하고 발을 디뎠다.
채앵!
검이 부딪쳤다.
*
이해할 수 없는 변화였다.
물리적인 변화가 아닌 그저 직감에 기인해 느낀 변화.
그렇기에 남궁진천으로선 곤란하기 그지없는 변화였다.
‘검로가 달려졌다.’
좀 더 날카롭고 세밀해졌다.
아니, 그것보단 사나워졌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리라.
목리원의 검이 순식간에 쏘아졌다 거둬진다.
앞선 현공과의 비무 때처럼 강검으로 몰아붙이다 돌연 쾌검으로 식을 바꾸고 다시 환검으로 눈을 어지럽힌다.
그렇게 이어지는 매 공격이 매서웠다.
물론 그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궁진천이 이리 공세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힘이 빠져있다.’
마치 무언가를 노리는 사람처럼 목리원의 연격은 그저 정신만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리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슬쩍슬쩍 틈을 내비치고 있었다.
조심해야 하는 게 맞았다.
하나, 남궁진천은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그의 오만이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언제나 으뜸으로 군림해온 그의 별은 상대의 미끼에 겁먹는 행위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본능은 그저 말하고 있었다.
그저 저 틈을 찔러 정면으로 적을 깨부수라고.
그리하여 압도적인 격차를 증명하라고.
남궁진천은 굳이 그 목소리에 저항하지 않았다.
‘무슨 수가 나오든 부숴버리면 그만.’
그런 생각으로, 그는 검을 뻗었다.
…그것이 실수였다.
*
비무장의 관객석.
당화서는 멍하니 비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내내 환호성을 내지르던 비무장이 침묵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경악에 몸을 떨고 있는 것이었다.
“저게, 대체 뭐야….”
당화서의 곁에 있던 혜운의 중얼거림이었다.
하나, 답해 줄 이는 없었다.
이 자리에 지금 목리원이 해내는 수를 이해할 수 있는 이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채애앵!
남궁진천이 내리그은 검이 막힌다.
목리원의 쾌검‘이었던’ 강검에.
단순히 하나의 수를 끝내고 다음 수를 잇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들이 이런 경악을 토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검이… 변했어요.”
목리원은 쾌검으로 검을 내지르던 중 그 동작이 끝맺기도 전에 다른 성질을 입혔다.
빠르게 그어 내리던 검의 속도를 정지 수준까지 줄여 역으로 그어 올린 것이다.
그리하며 검에 더 큰 힘을 부여했다.
“…저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짓이야.”
혜운의 동공이 형편없이 떨렸다.
저건 성립할 수 없는 수였다.
그제까지 검이 운동하는 방향에서 역으로 움직이며 더 큰 힘을 싣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수란 말이다.
한데 그런 현상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정신이 남아있을 수가 있겠나.
저것은 고작 변칙 따위가 아니었다.
혜운은 그 본인이 백봉이라 불리는 기재이기에, 또한 시대를 이끌어갈 검수이기에 알았다.
저리 그어지는 중에도 검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것을 상대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문제를 당면하게 된다는 것을.
저것은 검수에게 그 무엇보다 잔인한 고문법이라는 것을.
채앵.
남궁진천의 검이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이번엔 중검으로 내리그어지던 검이 갑작스레 환검으로 바뀌며 일어난 현상이었다.
“저게….”
“검룡은 저걸 막을 수 없어요.”
“…어째서?”
“모르니까.”
당화서의 미간이 좁아졌다.
혜운은 그런 당화서에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검이 언제 어느 시점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검룡은 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오.”
“생각해보세요. 당 시주님이 상대하는 검수가 저런 수를 쓴다면요. 언제 어느 시점에 어떤 식으로 꺾일지 모르는 수를 쓴다면 당 시주님은 그 검을 상대로 주먹을 뻗을 수 있어요? 상대가 검을 가로로 긋는다고 허리를 숙일 수 있어요? 세로로 긋는다고 옆으로 피할 수 있어요? 그 순간 검이 꺾일지도 모르는데?”
당화서의 숨이 멎었다.
그러는 중에도 혜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겨우 그 정도면 고상하지. 저건 그것보다 더 심하잖아요. 고작 방향이 아니라 속도도, 무게도, 그 성질까지도 모두 변해버리는데. 그러면서도 더 큰 힘이 실리는데 어떻게 저기다 검을 찔러넣어요? 그러다 빈틈이 드러나면 바로 죽는 건데 어떻게 그래요?”
혜운의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그 속엔 얼핏 불합리함에 대한 울분까지 차 있었다.
아니, 실로 그녀는 울분을 느끼고 있었다.
‘저런 건….’
뛰어넘을 수가 없다.
제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제아무리 갈구하고 발악한다 한들 닿을 수 없었다.
저것은 오로지 타고난 직감과 재능으로만 해낼 수 있는 수였다.
허탈함, 그리고 탈력감이 혜운의 몸을 짓눌렀다.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남궁진천을 향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정돈데….’
당하는 입장에선 어떨까.
혜운은 감히 그 기분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남궁진천은 살아온 매 순간을 군림해온 이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그와 함께한 제왕의 별, 그것이 그를 그리 만들어 주었다.
푸르른 벽안은 남궁이 지향하는 창공과 같기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그는 남궁세가의 주인이었다.
별과 함께 내려온 무재는 경이롭기 그지없었기에 그는 살아온 매 순간의 승리자였다.
하여 남궁진천은 제게 내려오는 영약에 감사하지 않았다.
경이로운 재능에 당연히 따라올 보상이었기에.
당장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고수들을 선망하지 않았다.
결국 몇 년 뒤면 자신이 추월할 이였기에.
군림자의 별은 그리도 치밀하게 그의 앞길을 보여줬다.
하여 남궁진천은 완벽한 청사진을 따라 걸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이리도 무정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무료함에 빠져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남궁진천이 이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채애앵!
또 한 번 검이 힘없이 튕겨 나간다.
남궁진천은 생애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마주했다.
‘통하지 않았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기분.
다다를 수 없는 풍경을 바라보는 기분.
너무나도 완벽하게 앞길을 보여주는 제왕의 별은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저주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남궁진천은 외면하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목리원이 해내는 수는 자신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형태라는 것을.
채애앵!
검명이 불협화음을 이룬다.
흔들리는 심상에 따라 검 끝도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패배?’
패배가 눈앞에 드리워진다.
그 순간 남궁진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과 아득함을 느꼈다.
자극을 찾아 헤매던 과거의 행적이 그제야 우습게만 보이기 시작했다.
제 무료함은 너무나도 복에 겨운 무료함이었던 것이다.
남궁진천은 자신이 패배와 실패라는 것에 그리도 극렬한 거부감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채앵!
그런 깨달음 중에도 팔은 움직인다.
발악이었다.
패배하고 싶지 않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하나, 결국 의미 없는 몸부림이었다.
채앵!
목리원의 검은 남궁진천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행 끝에 만들어진 것인 까닭이다.
목리원은 배운 것이 없었다.
그저 기본과 기본과 기본의 무한한 연속과 탐구였을 뿐이다.
그렇기에 목리원은 응용에 목말라 있었다.
이 검은 그 갈증의 끝에서야 나오게 된 것이었다.
목리원은 자신이 유일하게 아는 검무를 파헤쳤다.
다만 초식과 초식을 분리하는 것이 아닌, 초식 내의 동작을 분리하는 것도 아닌, 동작 자체를 조각조각 분해해 수만 갈래로 쪼개는 것.
그리 흩어진 조각을 무한한 형태로 다시 조립하는 것.
그는 검을 배운 이후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쉬지 않고 그런 고행을 이어, 이 검을 만든 것이었다.
채애앵!
결과물은 끔찍했다.
목리원의 검은 내리그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수만의 변화를 속에 품으며 상대에게 질문한다.
다음 이 검이 향할 자리는 어디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하게 한다.
그리하며 절망에 빠뜨린다.
목리원의 검은 단 한 번도 틀려선 안 되는 선택을 무한히 강요하는 검이었다.
채애앵!
남궁진천은 목리원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검을 바라봤다.
이미 사고는 더 이상을 집중을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몰려 있었다.
그의 찰나는 이미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늘어져 있었다.
목리원의 검이 거의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수준의 집중.
하나, 그럼에도 남궁진천은 답을 알 수 없었다.
‘환검? 강검? 아니면 그대로 쾌검?’
이리 목리원의 검이 멈춰있는 중에도 그 가능성이 무한히 뻗어나간 까닭이다.
이대로 올려 베면 저 검이 휘어 허리를 찌른다.
막고자 검을 몸에 붙이면 저 검은 하단을 노린다.
선공하겠다고 기파를 터뜨리면 저 검은 그 힘을 이용해 더 빠르게 쏘아질 것이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남궁진천은 사고를 이어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선택을 이어갔다.
아득히 이어지는 의문에 점점 중심을 잃어갔다.
그럴수록 이어지는 결론은 하나로 굳어진다.
불가해(不??).
목리원의 검은 이해의 범주를 넘어있었다.
남궁진천의 눈이 데구르르 굴러 목리원을 향했다.
순간 마주친 목리원의 눈엔 핏빛이 감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싹.
남궁진천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아….’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빠진다.
그런 중에도 다시 쏘아진 검이 답을 강요한다.
그리고, 이번에 남궁진천이 고른 것은 오답이었다.
채애앵!
검이 반토막 난다.
떨어진 검이 아주 느릿하게 하늘로 떠오른다.
소리가 멀어진다.
시야가 좁아진다.
‘…졌다.’
그 사실만이 선명해진다.
여기 한 개구리가 있다.
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던 개구리.
남궁진천이라는 이름의 개구리는 어느날 우물 위로 드리운 그림자를 바라봤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다만 제가 으뜸인 우물의 일부일 것이라 치부하며 그림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그렇게 오만하여 깨닫고 만 것이다.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우물밖엔, 포악하기 그지없는 뱀이 도사리고 있음을.
척.
남궁진천의 목젖에 앞에서 목리원의 검이 멈췄다.
[무, 묵거어어엄!!! 스으으으응!!!]
목리원이 웃었다.
“내가 이겼구려.”
22세의 어느 날, 남궁진천은 그리도 늦은 나이에 겨우 패배를 배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