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오장 용봉지회 (18)
* * *
둥. 둥. 둥.
북이 거대하게 울린다.
그 뒤를 따라 온 세상이 다 울리는 듯한 함성이 뒤따른다.
“와아아아아!!!”
용봉지회의 결승.
그 막이 오른 것이다.
다름 아닌 결승전을 치르는 날인 만큼 본 비무에 앞선 행사 또한 이전까지와는 궤를 달리했다.
온갖 기인들이 행하는 신통방통한 묘기가 있었고, 그 뒤를 이은 현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는 중견 고수들의 비무, 거기에 더해 검왕 남궁혁이 직접 단상에 올라 행하는 연설까지.
호화롭다는 말로도 모자란 온갖 행사가 있었으나, 그것이 관객들의 목마름을 채워주진 못했다.
당연했다.
오늘 이들이 이 자리에 온 것은 겨우 이런 것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으니.
오늘은 그간 절대 깨지지 않으리라 평해졌던 검룡 남궁진천의 무패 신화가 깨질지도 모르는 날이었으니.
관객들은 어쩌면 이후 강호 역사에 전설로 남을지도 모르는 비무의 시작을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다행히 기다림이 아주 길지는 않았다.
[그럼 본 비무를 시작하겠소! 먼저 검룡 남궁진천! 비무장에 오르시오!]
“와아아아아!!!”
푸른 벽안의 미남자가 검을 들고 비무대로 오른다.
언제나 그랬듯 공간을 짓누르던 그의 중압감은 오늘따라 유독 그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다음! 묵검 목리원! 비무장에 오르시오!]
“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악!!!”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혼이 쏙 빠지는 기분을 일게 하는 사내가 비무장으로 올라왔다.
사람을 홀리는 요괴가 있다면 꼭 그와 같은 꼴을 하고 있으리라.
회색 무복과 낡은 철검.
하나, 그것으로는 가릴 수 없는 요사스러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맴돌고 있었다.
마침내 비무장 위에서 두 사내가 마주했다.
아직 비무는 시작되지 않은 상황.
하나, 비무장의 분위기는 오늘 중 가장 뜨겁게 고조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목리원은 말했다.
“지난 일은 미안하오.”
“무엇이?”
“검룡께 흑도 같다는 말을 한 것 말이오. 내 생각이 짧았소.”
목리원은 그리 말하며 남궁진천의 반응을 살폈다.
당화서의 말을 잊지 않고 건넨 사과.
마침내 돌아온 답은 참으로 남궁진천다웠고, 그렇기에 목리원으로선 만족스럽지 않은 답이었다.
“신경 쓰지 않는다.”
목리원은 쓰게 웃었다.
‘너무 메말라 있구나.’
그는 정말 감정을 모르는 사내가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어 떠오르는 감정은 역시 안타까움.
저런 환경과 운명을 타고난 주제에 너무나도 무정한 것 같다는 생각에 이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렇게, 목리원이 쓰라린 마음을 달래려 심호흡을 하던 중 남궁진천이 입을 열었다.
“삼 초.”
“음?”
“삼 초를 버티라 말하는 것이다. 말했던 대로.”
남궁진천은 목리원을 내려다보며 말을 덧붙였다.
“분명 그리 일렀지.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이라고.”
“그렇소.”
“증명해보라.”
목리원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이내 곱게 접히며 미소로 화했다.
“후회할 것이오. 처참하게 당해버리면 체면이 상하지 않겠소?”
“도발은 내게 의미를 갖지 못한다. 독봉이 가르쳐 주지 않던가?”
“그런 것치곤 도발에 능숙하시구려.”
대화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관객들은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자 기감을 넓게 펼쳤으나 헛수고였다.
비무장 위는 남궁혁이 직접 펼친 기막에 가로막혀 있었기에.
다만 그들과 같이 비무장에 올라있던 사회자만이 그 살벌한 내용들에 침을 꼴깍꼴깍 삼킬 뿐이었다.
“이제 시작해도 좋소.”
“아, 알겠소!”
목리원의 말에 사회자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곤 손을 높게 올리며 외쳤다.
[그럼 시작하겠소!]
목리원과 남궁진천이 기수식을 펼쳤다.
직후, 사회자의 손이 천천히 떨어지며 비무가 시작되었다.
채애앵!
선공은 남궁진천이었다.
*
화려한 기교는 없었다.
너무나도 정직해 차라리 투박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정말 의미 그대로의 세로 베기였다.
끼기긱.
그럼에도 무거웠다.
그것이 남궁진천의 검이었고, 이 중원 땅에서 유일하게 하늘을 칭하는 가문의 검이었다.
창궁무애검법(??無???).
끝없는 푸른 하늘을 이르는 검이리라.
또한 그 하늘 끝에 서 더 다다를 곳이 없음을 이르는 검이라.
오만하기만 한 검이었으나, 그럼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검이었다.
남궁세가의 검은 그리도 무거운 검이었다.
“일 초.”
남궁진천이 무심하게 선고했다.
목리원은 전신의 힘을 다 끌어올리며 그의 검을 버텨냈다.
하나, 겨우 그 정도로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면 남궁진천에게 ‘차기 천하제일인’이란 칭호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초.”
화아악!
푸른색의 기파가 비무장 위를 뒤덮는다.
남궁진천은 검째로 목리원을 쪼개버리겠다는 듯, 공간 전체에 압박을 걸어 그를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드드득.
기파에 버티지 못한 비무장 바닥이 뜯겨 나간다.
너무나도 짙은 푸르름에 공기가 다 짓이겨진다.
목리원은 그것에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겨우….’
겨우 기파를 발한 것만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버틸 수 있겠나.”
남궁진천이 물었다.
목리원은 눈을 부릅뜬 채, 기파를 뿜어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사아아.
아련한 묵색의 빛이 떠오른다.
마치 새까만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시린 빛이었으나,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품은 빛이었다.
흘러나온 기파가 응집하고, 또 덩치를 불린다.
그렇게 창공에 맞서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화아악!
마치 낮과 밤의 드잡이질을 보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극명한 색과 성질의 대비가 있었다.
남궁진천의 푸른 기파는 한없이 강압적이었다.
그에 반해 목리원의 묵색 기파는 그 음울한 색과는 다른 부드러움을 품고 있었다.
이리도 서로가 다른 검이 있을까.
또 이리도 서로가 다른 기가 있을까.
그리 드잡이질을 하는 기파의 일렁임은 어딘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당사자에게까지 낭만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끄읍…!”
목리원은 이를 빠득빠득 갈며 남궁진천의 검을 걷어내기 위해 힘썼다.
하나 역시 무거웠다.
두 배에 달하는 공력의 차이.
제아무리 무공이 내공으로 결정되는 승부가 아니라 한들, 그리도 극명한 체급 차이가 난다면 격차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이 초다.”
남궁진천은 계속해 목리원을 몰아붙였다.
본디 이런 재촉을 하는 이가 아니었음에도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왜 아니겠는가.
목리원의 존재는, 그리고 그가 행했던 선언과 보인 기개는 그 자체로도 남궁진천에게 자극이라 할 만한 것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하여 남궁진천은 바라는 것이다.
그가 다만 말만 앞서는 쭉정이가 아니기를, 그런 말을 뱉을 정도의 실력은 가진 이이기를, 제게 자극을 줄 만한 이이기를.
드드드득!
쓸려나간 비무장의 바닥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러는 만큼 남궁진천의 압박은 진해졌다.
“아직…!”
목리원은 눈을 빛냈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소!”
끼기긱!
목리원은 손목에 힘을 풀었다.
그리하자 남궁진천의 검이 빠르게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그것보다 더 빠르게 목리원의 몸이 회전해 검로를 빠져나갔다.
상대의 힘을 연료로 삼아 속도를 더하는 부드러움의 묘리를 행한 것이었다.
“꽤….”
남궁진천은 기꺼워했다.
그리하며 이번엔 가로로 검을 그었다.
이번 역시 투박하기 그지없는 움직임이었고, 그 결과는 끔찍했다.
콰아앙!
목리원은 검로를 벗어나고도 그의 검에 당했다.
검을 감싼 기파가 목리원을 후려친 것이었다.
순간 몸이 붕 떠올랐으나 다행히 목리원은 바르게 착지할 수 있었다.
하나, 몸은 이미 만신창이었다.
허름한 회색 무복은 여기저기 찢겨 붉게 물든 살을 내비치고 있었고, 검을 쥔 손끝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눈 또한 어딘가 초점이 나가 있는 것만 같았다.
누가 봐도 곧 쓰러질 것만 같은 꼴.
남궁진천은 감회어린 눈빛으로 잠시 그 꼴을 살피다, 이내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이것으로 삼 초. 훌륭했다. 꽤나 흥미로웠어.”
딱 삼 초.
그는 그만큼의 수로 목리원을 짓이기곤 미련 없이 기운을 갈무리했다.
아직 서 있긴 하나 그뿐이리라.
이미 내력에 직격당한 이상 더 비무를 이어갈 필요도 없을 것이리라.
그런 판단에 기인한 행동이었다.
남궁진천은 몸을 돌려 사회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비무를 끝내라 말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였다.
…달싹이기만 했다.
오싹.
말보다 먼저 한발 앞서 느껴진 소름 끼치는 기운에,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
비무의 시작 전 승리를 자신한 목리원이었지만, 그도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모자라다.’
본인이 남궁진천에 비해 모든 것이 모자라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온갖 진귀한 영약을 밥 먹듯이 먹어온 남궁진천에 비하면, 목리원은 인면지주의 내단이 먹어본 영약의 끝이었다.
다만 그뿐이었겠는가? 심공을 통한 내공의 수급도 철저히 억제되어왔다.
성련신공은 섣부른 내공의 상승을 지양하는 까닭이다.
그렇다 해서 그걸 메꿀 정도로 경험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온갖 고수를 초빙해 대련하며 성장해온 남궁진천과 다르게, 목리원은 목선오와의 지도 대련이 살아생전 해온 대련의 끝인 사내였다.
어디로 보나 질 것이 뻔한 승부.
하나, 그런 중에도 목리원이 남궁진천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다.
‘무재.’
무공의 재능.
이 중원 땅에서 제일로 쳐야 마땅할 압도적인 재능.
그리고 직감.
천살성은 무재다.
극마지체는 살인을 위해 지어진 몸이다.
그것이 한데 얽혀 형성된 목리원이라는 사내는, 검을 휘두름에 있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완벽한 기교를 행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러니 그것에 기대 자칫 도박수로도 비칠 수 있는 수를 쓰는 것이다.
‘모자란 내공은 괜찮다.’
경험으로 메꾸면 된다.
‘그 경험이 모자란 것도 괜찮다.’
비무 중에 쌓으면 된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스으으.
목리원은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바로 섰다.
그리고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 위로, 이 용봉지회의 시작 이후 처음으로 감정이 묻어났다.
놀라움이었다.
이제야 사람같이 보이는구나.
그런 생각에 목리원은 웃었다.
“도망가시는 것이오?”
“….”
“말했잖소.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소.”
“의지는 칭찬할 만하다. 하나, 너는 그 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
“있소.”
“있다 한들 그 몸으론 안 된다.”
무엇이 안 된다는 것일까.
그는 대체 무엇으로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일까.
“겁먹은 것이오?”
남궁진천의 미간이 좁아졌다.
“…자네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
“도발은 안 통한다더니, 꽤나 잘 통하는 듯하오.”
“그리 앓아눕는 것이 소원이라면.”
화아악!
남궁진천이 재차 기파를 터뜨렸다.
목리원은 정상 궤도에 올랐던 호흡이 다시 한 번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하나, 그럼에도 웃을 수 있었다.
‘좋다.’
이런 압박감이 필요했다.
이런 살기가 필요했다.
너무나 달콤하여 그것에 푹 빠져 눈을 감고만 싶은 살기가, 필요했다.
탁.
목리원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을 음미했다.
그리하며 속으로 그의 스승에게 사죄의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원아, 억누르고 또 억누르거라. 그리하여 살기를 모두 지우거라. 그리해야만, 너는 사람을 해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저를 염려해 그리 슬픈 얼굴로 당부하던 말을 정면으로 어긴 것에 대한 사죄였다.
‘하지만 스승님.’
그럼에도.
‘지고 싶지 않습니다.’
이기고 싶었다.
아니, 그것보단 질 것이라면 협을 아는 검에 지고 싶었다.
다만 야망을 향해 뻗는 검에 스러지고 싶지 않았다.
물론, 목리원은 그런 억지에 가까운 마음만으로 본성에 눈을 돌린 것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혹여 살기를 주체하지 못해 남궁진천을 해할까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발악에 발악을 더해도 결국 그의 목까지는 검을 뻗지 못하도록, 힘을 쭉 빼두었다.
또한 모든 금제를 풀진 않을 것이었다.
목리원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내내 억눌러 두었던 제 마음속 응어리를 바라봤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망가트릴 응어리였고, 그럼에도 떨쳐낼 수 없어 무작정 외면했던 응어리였다.
사고를 제한하고, 무공을 제한하고, 또한 감정을 제한하여 겨우 억눌렀던, 그런 응어리였다.
살귀의 별.
목리원은 그것을 마주하며 되새겼다.
‘딱 오늘만입니다.’
그렇게 제가 평생 억눌러두었던 본성을 딱 한 꺼풀만 벗겨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