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오장 용봉지회 (17)
* * *
참 우스운 말이지만, 목리원에게도 나름의 낭만이랄 것이 있었다.
강호에 출두한 후 처음 맞은 비무회.
그곳에서 만난 강자와 검을 나누며 서로의 의와 협을 논하는 그런 낭만 말이다.
이번 용봉지회를 들어보자면 그 상대로는 남궁진천을 꼽는 것이 옳을 터.
그런 만큼 목리원은 분을 참지 못했다.
아니, 억울함을 참지 못했다.
의와 협을 논하고 싶은 상대에게 소아성애자로 오해받고 있으니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인 것이다.
“아니오! 나는 정말 그런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소! 나는 어른스럽고 날카로운 인상의 미녀가 좋단 말이오!”
속에서 울분을 쥐어 짜내는 듯한 외침.
그것에 뒤늦게 남궁진천을 뒤따라온 하인들이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날카롭고 어른스럽다니….”
“이거 꼭 독봉….”
“갔네. 갔어. 아주 뿅 가버렸구먼.”
하인들의 말에 목리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엄멈머, 얼굴 빨개지는 것 좀 봐.”
“세상에….”
목리원은 수치스러움에 목을 매달고만 싶었다.
하나 남의 장원에서 그럴 수는 없는 일.
제발 누군가가 이 상황을 중재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목리원의 속에 가득 차오르던 와중.
“소아야, 방으로 가거라.”
남궁진천이 나섰다.
그는 예의 무심한 표정으로 하인에게 남궁소아를 건네곤 손을 휘적휘적 저었다.
하인들이 떠나갔다.
남궁소아는 목리원을 흘끔거리며 ‘어른스럽게’, ‘날카롭게’ 따위의 말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 검룡! 나는 정말 그런 취향이…!”
“해명할 필요 없다. 궁금하지 않으니.”
남궁진천은 그리 말하고 몸을 돌려 떠나가려 했다.
“자, 잠깐!”
“왜 그러지?”
“내가 너무 억울해서 그러오! 나는 확실히 소아에게 말했소! 나는 네 서방이 될 수 없다고!”
“궁금하지 않다고 했다. 자네가 괴상한 취향을 가졌든, 소아가 자네를 서방으로 여기던.”
멈칫.
목리원의 움직임이 멎었다.
표정 또한 의문을 담은 채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속에 차오르는 설명할 길이 없는 이질감 탓이었다.
“…여동생에게도 말이오? 소아의 일에도 관심이 없는 것이오?”
아마 그 때문이리라.
분명 피를 나눌 가족일 텐데, 남궁진천은 제 여동생을 향해서도 아무런 감정을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
아니, 그것 외에도 여태까지의 일을 돌이켜보면 그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었던 듯했다.
예컨대, 그의 꼴이 꼭 감정이란 게 모두 메말라 있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궁금해해야 하나?”
남궁진천의 시리도록 푸른 눈이 목리원에게 쏘아졌다.
목리원은 어찌 답해야 할지 모를 상황에 뺨을 긁적이다, 이내 머뭇머뭇 말을 내뱉었다.
“으음… 그래도 피붙이인데 그 정도 관심은 가져도 되는 것 아니오?”
“그게 이유가 되나?”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오. 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소. 무릇 협객이라면 제 가족부터 지킬 줄 아는 이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리 알고 있소.”
“협객이 되겠다고 말한 일은 없는데.”
저게 무슨 말일까.
목리원은 그런 의문을 떠올렸다.
말의 속 뜻 따위를 헤아리는 의문이 아니었다.
정말 문장 그 자체에 대한 원론적인 의문이 떠오른 것이었다.
목리원의 고개가 기울었다.
“협객이 되지 않을 거면 검은 왜 배우는 것이오?”
“힘은 수단이지.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 특히 이곳 무림에서는.”
“…무엇을 위한 수단이란 말이오?”
“천하.”
남궁진천은 그 말을 하면서도 무미건조했다.
“내가 당연히 손에 쥐어야 할 것을 쥐기 위한 수단.”
목리원의 눈이 슬쩍 커졌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손끝이 말려 펴진 손이 주먹이 되었다.
내뱉는 말엔 어찌 수습하지 못한 실망감이 슬쩍 묻어있었다.
“…당신은 그저 베기 위한 검을 깎는 이구려.”
“모든 검은 베기 위해 존재하지. 목숨이던, 명예건, 지위건.”
“지키기 위한 검도 있소.”
“검의 용도에서 벗어난 일이다. 검은 베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을 휘두르는 것은 사람이오. 검을 든 사람이 지키기 위해 검을 든다면, 그것은 지키는 검이 될 수 있소.”
“비효율적이다. 진정 무언가를 지키길 바란다면 차라리 방패를 들어야지. 그도 아니면 감히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철옹성을 짓거나.”
“그 비효율을 사랑하기에 협객이 되는 것이오.”
“거듭 말하여, 나는 협객이 되겠다 이른 일이 없다.”
목리원은 비로소 남궁진천이라는 사내를 이해했다.
그는 비정한 사람이었다.
아니, 무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언젠가 목선오에게 들었던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검에는 눈이 없단다. 검은 상대를 가리지 못하고, 또한 선악을 말하지 못한다. 검에게는 오직 그것을 휘두르는 검수만이 있을 뿐이야.
본성을 깨달은 저를 위로하기 위해 내뱉던 말이, 그 순간의 기억이 부상하는 것이었다.
조금 사악한 검이면 어떻더냐, 또한 보기 흉하게 생긴 검이면 어떻더냐. 그걸 휘두르는 네가 협의를 안다면 그것으로 족한 이야기가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그 검은 협객의 검이 아니더냐.
목선오의 말마따나 검수가 검을 결정짓는다고 말해보자면, 그의 검은 무정한 검일 터다.
그의 가치관은 목리원이 살아생전 배워온 가치관에 정면으로 위배 되는 가치관일 터다.
물론, 그것에 대해 목리원이 왈가왈부할 권한은 없었다.
백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개 모두가 다른 것이 사람의 가치관이란 것이었으니.
하나, 그럼에도 목리원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어째서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하필 이런 가치관을 가진 것이 검룡 남궁진천인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제왕의 별이다.
이 땅에 군림할 이름이다.
한데, 양민들을 위해 품에 흘러넘치는 사랑을 가져야 할 그가 저리 비정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룡께선 베풀 수 있지 않소. 그럴 능력도, 지위도 힘도 있지 않소.”
자신과는 다르지 않던가.
그는 별을 타고났다는 것만으로도 만민의 기대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 축복으로 세상을 더 의롭게 만들 수 있는 이가 아니던가.
“휘두르기 위해 힘을 쌓는다니… 그것은….”
목리원은 말을 머뭇거렸다.
이 말이 실례가 됨을 알기에 떠올리는 머뭇거림이었다.
하나, 결국 목리원은 그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것은, 꼭 흑도나 할 법한 생각이 아니오…?”
남궁진천의 눈썹이 슬쩍 들렸다.
“다르다.”
“무엇이 다르단 것이오.”
“그들에겐 질서가 없다.”
그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사람처럼, 눈곱만큼의 감정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들에겐 질서가 없다. 하나, 나에게는 있다. 나는 확고부동한 질서 아래 내 뜻을 세울 수 있으니, 내가 이룩할 것은 정도(??)에 어울리는 이상이다.”
목리원은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 사내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 사내는 참으로 오만하고 확고부동하여 그 속에 틈이랄 것이 없는 사내였다.
하나, 다행인 일이 있었다.
꽈악.
목리원의 주먹이 쥐어졌다.
입매 또한 일자로 굳어졌다.
그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얼굴로 남궁진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검룡께선 증명하셔야겠구려.”
“증명이라, 내가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진대.”
“아니, 하셔야 하오. 다름 아닌 나에게.”
남궁진천은 목리원의 안색을 살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런 말을 들어본 일이 없기에, 그로선 꽤나 생소한 감상이 떠오르고 있는 와중이었다.
“무엇을?”
“당신의 이상이 진정으로 옳다는 것을,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이라는 것을.”
목리원의 기파가 새어 나왔다.
채 갈무리되지 못한 감정과 함께.
“이곳은 강호 무림, 검룡께선 힘으로 내게 그 자격을 증명해야만 하오.”
“어려울 것 없는 일이다.”
“어려울 것이오.”
목리원은 가늠했다.
그와 자신의 수준 차이를, 제 쪽이 한참은 뒤떨어지는 내공의 총량과, 이제까지 보아온 그의 기교, 또한 아직 자신이 보이지 않은 수까지.
목리원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구나.’
이 또한, 목리원의 삶을 지배하는 어떤 서적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논쟁이었다.
그는 그것에 기꺼움을 느꼈다.
“강호협객전 1장의 주인공, 검협은 말했소.”
강호협객전이라는 잡서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가진 1장의 주인공.
그는 한 오만한 무인에게 가르침을 내리며 그리 말했다.
“시련을 쉬이 생각하는 자는 진정한 무인이 될 수 없다고.”
목리원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마협이었다.
제 본성조차 이겨내 협을 이룩한 그 위대한 의지였다.
하나, 지금만큼은 달라도 괜찮을 것이리라.
목리원은 그 누구보다 빛날 사내에게, 협을 일러줄 시련이 되고자 했다.
“…오만하다.”
남궁진천은 그리 답했다.
불쾌한 기색은 아니었다.
“하나, 기대하지.”
그는 생전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도발에 나름의 기꺼움을 표하고 있었다.
“삼 초는 버텨 보라.”
그리 말하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
*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장원의 숙소.
당화서는 돌아온 목리원의 표정이 평소와 다른 것에 그런 의문을 토해냈다.
목리원은 그제야 번쩍 고개를 들더니 그것을 좌우로 저으며 답했다.
“음! 아니오. 잠시 검룡을 만났었소!”
“검룡을요?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앞으로 있을 비무에 관한 이야기였소.”
당화서는 놀라움을 느꼈다.
목리원에 대한 것이 아닌, 그런 대화에 남궁진천이 어울려줬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그가 그런 얘기에 어울려주덥니까? 신기한 일이군요. 저는 그가 비무에 관한 이야기를 한 일을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었습니다.”
“으음… 일방적인 대화기는 했소.”
목리원이 머쓱하게 웃었다.
당화서는 그제야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쿡쿡 웃었다.
‘왜인지 그림이 그려지는구나.’
저 붙임성 좋은 인간이 남궁진천을 붙잡고 내내 수다를 떨어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폐는 끼치지 않았지요?”
목리원은 움찔했다.
그것은, 꼭 흑도나 할 법한 생각이 아니오…?
대화가 이어지던 중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 건넨 말.
그것은 분명한 모욕의 의미였던 까닭이다.
당화서의 눈이 좁아졌다.
목리원은 그제야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 아주 큰 실수는 아니었소! 검룡도 내 말에 그리 분노하지 않았고!”
“분노를 드러내지 않은 게 아니라?”
“….”
사실 그런 감이 없잖아 있기도 했다는 생각에, 목리원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당화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반성하십시오. 꼭 사과도 하시구요.”
“알겠소….”
목리원이 시무룩해졌다.
당화서는 그 꼴이 꼭 혼쭐이라도 난 강아지 같다는 생각에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다, 그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이어 물었다.
“그래서, 비무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언제나!”
“다행입니다. 저는 목 소협이 꼭 비무에서 좋은 성과를 냈으면 합니다.”
“그럴 것이오. 나는 내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자신감은 좋지만….”
“확신이오.”
당화서는 눈을 끔뻑거렸다.
목리원은 그 특유의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단언했다.
“검룡은 나를 이길 수 없소.”
당화서는 그 말에 무슨 답을 건네야 할지 몰라 입술을 달싹였다.
자신감은 물론 좋았다.
또한 비무를 앞두고 웃는 그 기개 또한 목리원다워 보기 좋았다.
하나, 그럼에도 수준 차이라는 것이 있지 않던가.
남궁진천은 절정의 끝자락에 다다라 있었다.
가진바 내공은 이미 어지간한 초절정 고수의 수준이다.
그에 비하면 목리원의 내공은 이제 1갑자, 절정 고수의 평균.
검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하지만, 기파의 섬세함이나 폭발력으로 보면 남궁진천에 비해 한창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하여 당화서는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리 확신하십니까?”
목리원은 제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멈춘 것을 느꼈다.
또한 당화서의 눈빛 속에 깃든 걱정을 읽었다.
하여 그녀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시원스레 미소지으며 말했다.
“나는 협객이 아닌 자에게는 절대 지지 않소.”
내뱉는 것은 역시 참으로 그다운 답이었다.
어찌 우습다고도 할 수 있는 일.
승부에 나서는 양측이 모두 제 승리를 확신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하나, 승부라는 것은 결국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아직 그 누구도 승패를 확신하지 못하는 용봉지회의 마지막 비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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