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오장 용봉지회 (16)
* * *
성련문.
11대 제자.
그리고 소문주.
한마디 말에 담긴 3개의 뜻을 통해 남궁혁은 알 수 있었다.
“살아있었군.”
검성 목선오가 아직 그 명을 달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남궁혁은 기꺼움을 느꼈다.
그에 따라 채 갈무리하지 못한 기세가 포악하게 터져 나왔고, 목리원은 그 중압감에 숨을 턱 틀어막았다.
“어디에 있나.”
남궁혁이 재차 물었다.
그의 눈엔 왜인지 번들거리는 빛이 떠올라 있었다.
“검성은 어디 있나. 그래, 걸왕 그놈도 검성과 같이 있겠지? 말해 보라.”
공간을 이루는 모든 기운이 비명을 내지른다.
짓이고 으깨져 바닥으로 처박힌다.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낸 것도 아닌 고작 흘러나온 기운.
그것만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초월지경(??之?).
이 넓은 중원 강호의 온갖 기재들 중 최고로 꼽히는 이들만이 간신히 그 문턱을 밟을 수 있다는 지고의 경지는, 그리도 아득한 기운을 품은 채 목리원을 짓누르고 있었다.
“큽…!”
목리원은 눈을 부릅떴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붙잡아 포권지례를 유지했다.
누군가가 목을 틀어쥔 채 조르는 기분.
금방이라도 혼절해버릴 것 같은 멍한 감각까지 떠올랐으나, 목리원은 쓰러지지 않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검왕께선 스승님을 찾는 이유를 일러주시지 않은 까닭입니다. 저는 제 스승님의 안위에 위협이 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목리원이 남궁혁을 바로 응시했다.
남궁혁은 목리원을 짓누르며 그의 눈빛을 살폈다.
굳은 결의와 다짐을 보이는 눈빛.
남궁혁은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침묵을 유지하다, 이내 기운을 갈무리했다.
“…지극히 옳다. 무인으로서, 또한 제자로서.”
남궁혁은 그리 말하곤 이어 말을 더했다.
“품위 없는 모습을 보였다. 사과하지.”
아득히 어린 후배다.
또한 영문도 모른 채 예까지 온 사내다.
그런 사내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순간의 감정을 갈무리 하지 못한 것에 남궁혁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제야 트이기 시작하는 숨통에 목리원은 후욱 숨을 내뱉었다.
그리하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나, 거듭해 묻겠다. 검성은 어디 있나.”
목리원의 몸이 움찔 떨렸다.
얼굴 위론 곤란함이 맺히기 시작했다.
‘제자리구나.’
대화가 진행이 되지 않는다.
그에겐 마일석이 말한 포악함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저 꼬장꼬장한 성정은 차라리 포악함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당황을 일게 하고 있었다.
“죄소….”
“위해를 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목리원의 고개가 들렸다.
남궁혁은 그 특유의 굳은 얼굴로 읊조리듯 말을 이었다.
“다만 정리해야 할 은원이 있을 뿐.”
“은원이라 하심은….”
“아직 그와 결판을 내지 못했다. 비무를 해야 한다.”
목리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순간 마일석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까닭이다.
검왕 그놈이 얼마나 뻔뻔한 놈인지 아느냐? 형님과 비무를 했다 하면 백전백패!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주제에 끈덕지게도 달라붙어서 하는 말이 ‘아직 결판을 짓지 못했다’였다. 웃기는 놈이지. 그놈은 제가 진 비무는 비무로도 치지 않는 게야. 검왕(?王)은 무슨, 차라리 검치(??)가 어울리는 놈이지.
깊게 공감되는 말이었다.
어디까지나 마일석의 편향된 시선이 가미된 말이었으나, 그럼에도 목리원은 그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해야 하나….’
목리원은 고민을 이었다.
일단 그가 자신에게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음에도 천살성의 ‘천’자도 꺼내고 있지 않은 까닭이다.
그뿐이던가, 그는 검성의 위치를 물으면서도 그에게 그 어떤 부정적 감정을 토해내지 않았다.
그저 호승심.
검왕 남궁혁에게서 보이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하라.”
“스승님과의 비무는 왜 원하시는 겁니까.”
“….”
남궁혁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일었다.
그 기색은 언뜻 보기에 황당함으로도 비치는 형태였다.
“이유가 필요한가?”
남궁혁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생을 넘지 못한 강자가 있다.
끝끝내 미련으로 남은 승부가 있다.
무릇 무인이라면, 또한 검수라면.
그런 상대가 있음에 포기하고 물러서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란 말이다.
“그저 승부를 내고 싶은 것뿐이다.”
“….”
목리원은 황망하기 그지없는 기분을 느꼈다.
이런 기분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것이 언제였던가.
10세에 이르던 어느 날, 마일석이 ‘오늘은 고기가 먹고 싶다’라며 올가미 하나를 던져주고 토끼를 잡아 오게 한 이후 처음이었다.
목리원이 진이 쭉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하면서도 문득 드는 확신이 있었는데, 바로 남궁혁이 재촉하는 답에 관한 것이었다.
“…강서성에 계십니다. 이 이상은 말할 수 없습니다.”
“강서성. 내 분명히 들었다.”
남궁혁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어딘가 흡족함으로도 보이는 얼굴이었다.
목리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고는 없겠구나.’
뭐가 됐든, 남궁혁의 볼 일은 비무가 끝인 듯했다.
“이제 나가보라.”
남궁혁은 그리 말하고 눈을 감았다.
그 어떤 미련조차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다.
목리원은 그 모습에 아직 속에 남은 작은 불안을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을 떠올렸다.
“…하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무엇인가.”
“검왕께선 저에 대해 다른 사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분명 제게 내려온 별을….”
“중요한가?”
“…예?”
남궁혁이 눈을 떴다.
볼 일을 마친 그의 눈빛엔 무심함만이 가득했다.
“네놈은 고작 별 따위가 검을 결정짓는다 생각하는 건가?”
목리원의 눈이 슬쩍 커졌다.
남궁혁은 그 얼굴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무엇이 되었든 결국 네놈은 검수다. 그뿐인 일이다.”
검왕 남궁혁.
그는 진정으로 검에 인생을 바친 사내였다.
그에겐 검을 휘두른다는 행위 이외엔 그 어떤 것도 중요치 않았다.
이는 혈사가 끝나던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웃기지 마라. 지금 네놈은 검을 놓겠다 말하는 것이냐?
검을 놓겠다는 것이 아니오. 이름을 내려놓겠다는 것이지.
내가 그 핏덩이를 찢어 죽이면 번복할 텐가?
검왕, 내 결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오.
….
그는 목리원의 태생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사내였다.
굳이 관심을 가져본다면, 그가 배운 검과 그의 무재에 관한 것이 끝일 터.
“이제 나가보라.”
“…예, 실례했습니다.”
목리원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를 감정에 속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온 중원에 지탄받아야 할 운명을 타고난 그에게 자신의 태생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상대라는 것은, 또한 제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그리도 감회어린 일이었다.
비록 그것이 배려가 아닌 무관심일지라도.
목리원은 그대로 몸을 돌려 처소 밖을 나갔다.
남궁혁은 그제야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놈이 훨 낫군.’
제 손자 되는 남궁진천과 목리원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볼 만하겠구나.’
초월지경의 무인은 확신했다.
제왕은 살귀를 이기지 못한다.
그저 오만할 줄만 알기에, 제 세상을 그 오만함 안에 가두었기에 결국 무너지게 되리라.
하나, 중요한 것은 그다음일 터.
‘과연….’
제 손자는 오만을 벗어던지고 나아가고자 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심마에 사로잡혀 무너져내릴 것인가.
무엇이 되었든 준비가 필요할 듯했다.
*
재차 나선 장원.
목리원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장원 한 구석에 있는 연못을 향했다.
푸르른 소나무가 듬성듬성 그늘을 만들어 꽤나 서늘한 연못이었다.
‘검수일 뿐이다.’
목리원은 그 말을 되새겼다.
그리하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는 검수다. 검으로 협을 이루는 사람이다.’
기쁨이 있었다.
또한 벅차오르는 감정이 있었다.
목리원은 그 말을 되새기며 미소 짓던 중, 그간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어떤 심상이 흐릿하게 비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일종의 작은 깨달음이라고 해야할 것이었다.
무(?)와 협(?), 그리고 의(?)와 검(?).
그 본질에 관한 깨달음이었다.
상념에 가까운 흐린 빛이라 붙잡기엔 꽤 난색이 이는 깨달음이었으나, 목리원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돌아가 명상이나 해봐야겠구나.’
이리 흐릿하게 모습을 보인 이상, 언제나 그랬듯 깨달음이란 것은 제 손아귀 안에 들어올 것이기에.
손이 근질거렸다.
어서 가서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 벌떡 몸을 일으키던 중.
“흐에….”
아주 앳된 목소리가 지근거리에서 들려왔다.
목리원은 ‘아차’하는 마음을 떠올렸다.
상념에 빠져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는 것에 괜히 부끄러워진 것이었다.
목리원은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멍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고 있는, 이제 겨우 대여섯은 될 법한 어린 여아였다.
“음?”
“흐에….”
여아의 눈빛이 꿈을 꾸듯 몽롱하게 빛났다.
통통한 뺨이 말갛게 타오르는 것이 꽤나 사랑스러운 꼴이었다.
‘남궁가의 자제인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여아가 입고 있는 옷은 한눈에 봐도 귀한 재질임이 보이는 옷이었다.
“아가야, 너는 누구니?”
목리원이 시원스레 웃으며 물었다.
여아는 그 미소에 흠칫 놀라며 눈망울을 빛냈다.
“소, 소아….”
“그래, 소아구나. 혹 길을 잃은 것이냐?”
이리 귀한 옷을 입고 있는데도 곁을 봐주는 이가 없어 건넨 질문.
저를 소아라 소개한 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아니이….”
그리곤 손끝을 꼼지락거렸다.
목리원이 그 꼴에 고개를 갸웃하던 와중.
와락.
소아가 목리원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서방님…!”
소아는 눈을 질끈 감고 재차 외쳤다.
“서방님이야…!”
목리원은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웬 어린아이가 나와 저를 서방님이라 칭하는데, 세상 누가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목리원은 곤란한 듯 뺨을 긁으며 웃다, 이내 소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나는 네 서방님이 아니란다.”
쿠궁!
소아는 세상이 무너져내린 듯한 얼굴로 황망하게 목리원을 바라봤다.
“아니야…?”
“아니란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목리원은 머리도 좋고 눈치도 나쁘지 않은 사내였으나, 그와 별개로 아직 사람이라는 생물에 무지한 점이 많은 사내였다.
특히 아이에겐 더욱 그러했다.
이제까지 교분을 나눠본 사람이라곤 연장자나 동년배밖에 없는 목리원은 아이의 동심이나, 또한 아이가 품은 동경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
소아의 얼굴 위로 울먹거림이 더해졌다.
“서방님 없어졌어….”
“없어졌다는 말은 틀렸단다. 없어진 것은 있었던 게 사라진 것을 말하는 것이고, 소아의 서방님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 ‘서방님이 없다’가 더 옳은 표현인 게지.”
주제에 조리있게 말했다는 생각을 떠올린 목리원이 흡족하게 웃었다.
하나, 악수였다.
“히끅…!”
어린아이에게 진실이란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었으니.
소아의 울먹거림이 짙어졌다.
목리원은 그것에 당황을 토해냈다.
“왜, 왜 우는 것이야…!”
“서바앙…!”
“응? 서방? 서방님이 없어서 우는 것이냐? 울지 않아도 된다! 너도 나이가 차서 어른이 되면 분명 멋진 서방님을 만날 테니!”
“서바앙…!”
“너, 너는 아직 너무 어려서 서방님을 만들 수가 없단다! 그러니까 그만 뚝!”
목리원은 숨도 안 쉬고 아이를 몰아붙였다.
이쯤 되면 ‘내가 네 서방이다’라고 한마디 정도는 해도 될 일이었지만, 입바른 말만 할 줄 아는 목리원에게 기대하긴 힘든 일이었다.
소아, 성까지 합해 남궁소아라고 불리우는 이 여아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생떼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다.
하필 그것이 눈이 번쩍 뜨이는 엄청난 미남.
화라도 냈으면 다행이겠으나 목리원의 외모는 너무나도 파격적이었다.
아무렴, 남궁소아의 인생에 이리 바라만 봐도 화가 풀리는 얼굴은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
안되면 될 때까지.
그녀의 삼촌인 창성검 남궁운이 항상 내뱉던 말처럼, 남궁소아는 생애 처음 끈기라는 것을 발휘해봤다.
“서방님!”
남궁소아가 목리원의 다리에 매미처럼 매달렸다.
목리원은 그 우렁찬 외침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던 중.
“소아야.”
사내의 목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남궁진천이었다.
남궁소아는 고개를 빼꼼 들어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오라버니?”
“이리 오렴.”
남궁진천은 무심한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남궁소아는 머뭇머뭇 목리원과 남궁진천을 번갈아 보다 이내 입술을 삐죽이며 남궁진천에게로 향했다.
남궁진천이 남궁소아를 안아 들었다.
그리하곤 목리원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
“….”
불편한 침묵이었다.
그 끝에서, 남궁진천은 쌀 한 톨만큼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묵검, 자네는 소아성애에 취미가 있는 건가?”
“아니오!”
목리원은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