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9화 (39/334)

〈 39화 〉 오장 ­ 용봉지회 (12)

* * *

그저 늦은 시간까지 귀가하지 않는 당화서가 걱정되어 나온 길이었다.

그녀를 찾아 나설 때까지 목리원의 마음은 그랬다.

‘오늘은 내가 잔소리를 할 것이다!’

언제나 늦게 들어오면 몇 시진이고 잔소리를 하던 당화서가 마침 늦은 날, 목리원으로선 오늘에야말로 그동안의 수모를 갚아줄 것이리라는 마음으로 한껏 신나 나온 길인 것이다.

그렇기에 목리원은 마침내 목도한 장면에 당황을 느꼈다.

하여 기척을 숨겼다.

­오랜만입니다. 소가주님.

소가주.

목리원은 그 호칭만으로 저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당문.’

사천당문.

당화서의 본가.

오랜만에 가족과의 해후인가.

그런 생각은 떠올리지 않았다.

왜 아니겠는가.

제아무리 하는 짓이 어벙한 목리원이라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당화서는 당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당문의 이야기를 할 때면 그녀가 그다지도 슬픈 얼굴을 하지 않았나.

당문에 관한 이야기는 당화서와 목리원 사이에서 일종의 불문율로 자리한 것이었다.

하나, 그렇다 해서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는 법.

목리원은 이어지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할수록 표정을 굳혀갔다.

­가출은 이만하면 되지 않았습니까?

그녀의 동생으로 예상되는 이의 말속에는 조롱이 있었다.

­가주께서 아주 만족하고 계십니다. 설마 집을 나가신 소가주님이 그런 기인을 손에 쥘 줄은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그녀를 향한 무기질적인 비아냥이 있었다.

그리고, 혐오가 있었다.

­참 너무하십니다. 소가주님께 그 기파를 심어주신 분이 아닙니까. 한데 어찌 그리 말할….

­그래, 이걸 심어줬지. 바라지 않았음에도.

목리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들은 가족이 일진대,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 사랑해야 하는 관계일진대 저리도 날이 서 있는 것이.

차갑게 벼려진 비수를 서로의 목에 들이대는 것이.

생각할수록 이해되지 않는 일.

하나 목리원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타인의 일을 단편적으로만 바라보고 나서는 일은 협이 아닌 폭거임을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목리원은 참으려 했다.

그것이 당화서가 숨기고자 한 가정사를 존중해주는 일임을 알고, 상대를 존중하는 법임을 알기에.

­만독불침, 이 빌어 처먹을 만독불침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나는 가주를 용서했을 것이다.

정확한 이야기는 추후에 당화서가 마음을 다스리면 들어도 될 일이기에.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구나. 어찌 가주가 내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게냐?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참으려 했고.

참을 수 없었다.

­내게 미래를 빼앗아놓고, 아이를 가질 기회조차 빼앗아놓고. 어찌 나를 사내와 엮는 것이란 말이냐.

말을 듣는 순간, 목리원은 순간적으로 사고가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언제나 뜨겁게 뛰던 심장이 그 찰나에 차가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동정이나 안타까움, 분노 따위의 감정이 떠오를 수도 있었으나 그보다 먼저 목리원의 속에 자리한 감정이 있었다.

자괴감이었다.

그것은 언젠가 당화서의 만독불침을 보며 ‘역시 당문은 대단하다’ 따위의 말이나 내뱉은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었다.

동정과 분노는 그 다음이었다.

목리원은 제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범람에 복잡해진 머리를 부여잡았고, 직후 제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을 들었다.

­…못 할 건 뭡니까?

목리원은 감히 바랐다.

­소가주님, 당문에는 계집이 많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계집이요.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임을.

저 말을 하는 것이 제 마음속에 있는 나쁜 조각이기를.

저런 추악한 자가 존재하는 현실이 차라리 거짓이기를.

하나, 그리 바란다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묵검의 씨를 대신 받아줄 여인이 있단 말입니다. 당문의 모두가 눈 감아 줄 것입니다. 소가주님은 그저 그 아이를 제 아이처럼 기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우습게도, 그 순간 목리원이 떠올린 생각은 당화서가 떠올렸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비수구나.’

저것을 언어로 만든 비수였다.

오로지 상대의 마음을 찢어발기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렇기에 존재해선 안 될 비수였다.

툭­. 하고, 목리원은 제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더는 못 들어주겠구려.”

목리원은 기척을 풀어헤쳤다.

그리하고 그들이 자리한 골목을 응시했다.

목리원은 그제서야 당화서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 소협….”

당화서의 얼굴 위로 떠올라 있는 것은 낭패, 수치심, 그리고 절망이었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목리원은 목구멍이 틀어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아, 묵검?”

이어 들려온 말에 차가워진 가슴이 재차 뜨거워졌다.

그 속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분명한 형태의 경고음이었다.

­살심을 품지 말라.

그가 살아온 매 순간 뒤를 따라다니던 당부의 말.

그리고 절대 어겨서는 안 될 명제.

목리원은 이제껏 단 한 번도 그 명제에 어긋나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그 일이 너무나도 힘들게 느껴졌다.

“반갑습니다! 꼭 뵙고 싶었소. 저는 당운경….”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말을 토해냈다.

그리하며 웃었다.

목리원은 징징 울리는 속을 애써 억누르며 그를 바라봤다.

­살심을 품지 말라.

그 명제에 균열이 일었다.

숨이 가파르게 튀어 오른다.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며 계속해서 검을 향하려 한다.

그리고 묘한 갈증이 일기 시작한다.

“…해서, 대협을 당문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순간적으로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이대로 검을 뽑은 자신이 당운경의 목을 베고 지나간다.

이후 저 뒤로 보이는 사내들을 하나하나, 앞에서부터 목을 베어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모두 침묵도록 한다.

그리하면 이 속이 조금 편해지리라.

속을 뒤흔드는 경고음이 스러지리라.

아니, 더 이상 경고음을 낼 것 따위는 없어질 것이리라.

­살심을 품지 말라.

다시 한 번 그런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목 대협?”

인간이 아닌 것이 자신을 협이라 칭한다.

구역질이 났고, 그것에 경고음이 선명해졌다.

‘살심을 품지 말라.’

속으로 그 말을 되뇐다.

그리하며 목리원은 답을 내뱉었다.

“…올해로 나이가 몇이오?”

다행히도 나온 목소리는 평온했다.

그 고저가 참으로 부드러워 당화서가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면 설명이 될까.

하나, 그 평온함이 소름 끼치도록 작위적인 음성임이 드러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 스물입니다. 내 목 대협보다는 형님이 되는 것이지요. 원하신다면 저를 형….”

“다행이오.”

목리원이 웃었다.

마치 인형과 같은 굳은 얼굴 위로 입꼬리만 끌어올린 채로.

“당신이 용봉지회에 나오지 않아, 나는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오.”

아니, 그것으론 모자랄 것이다.

목리원은 이 순간 그와 말을 섞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진한 혐오를 느꼈다.

당장 분질러 버려도 모자랄 목이 계속 소리를 토해내게 내버려 두는 일에 죄책감까지 느꼈다.

­살심을 품지 말라.

하여 목리원은 경고음에 더욱 집중했다.

‘웃거라.’

웃었다.

안면근육을 억지로 뒤틀어 입꼬리를 더욱 끌어올렸다.

눈 아래 근육에 힘을 줘 눈웃음 또한 만들었다.

하나 역시 억지 미소라, 그것을 바라보는 당운경이 느낀 감상은 기괴함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의 외모가, 그리 뒤틀어지는 것에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 것이었다.

“무슨….”

“당신이 회에 나왔다면 말이오. 나와 같은 비무대 위에 섰다면 말이오.”

목리원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가 터져 나오려는 열기를 그저 억누르려 하며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랬다면….”

하나 역시 힘든 일이었다.

속을 다 짓이기는 기이한 열기가 아무리 눌러내도 담기지 않아, 마치 아주 작은 패물함에 사람을 구겨 넣는 기분이 들어.

목리원은 넘쳐흐르는 열기를 저도 모르게 토해냈다.

“…당신의 목을 분질러버렸을 것만 같소.”

목리원의 동공이 좁아졌다.

그와 함께 채 누르지 못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덜컥­.

당운경의 몸이 뒷걸음질 쳐졌다.

숨은 턱 틀어막혔고, 그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사고는 꽉 멎어버렸다.

순간 당운경이 떠올린 생각이 있었다.

‘…뱀.’

그의 눈이 꼭 뱀의 것과 닮아 있었다.

그저 산을 기어 다니는 뱀이 아닌, 그 언젠가 봤던 당문의 금지에 똬리를 튼 검은 영물.

질시할 수조차 없어 경이였고, 공포가 그 위를 덮어 경외가 된 괴물의 그 눈빛이 꼭 저것과 같았단 말이다.

아득함이 당운경의 속에 자리했다.

더 떨릴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진동하기 시작했음에도, 당운경은 감히 그것을 멈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것은 일종의 신호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리 두려워하는 나를 살려달라는 뜻의.

“소저, 갑시다.”

목리원은 당화서의 손목을 잡아채 그녀를 끌고 자리에서 떠나갔다.

그 순간까지 목리원은 제 얼굴을 당화서에게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떠나간 직후.

풀썩­.

자리에 주저앉은 당운경이 뒤늦게 숨을 토해내며 제 목을 번잡하게 쓸었다.

눈꼬리엔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꺽꺽 튀어나오는 호흡은 그제야 그에게 제 생존을 일러주고 있었다.

‘살, 살았….’

우습게도, 당운경이 목리원이 떠나가고 떠올린 것은 그저 생존에 대한 안도였다.

*

당화서는 내내 목리원에게 끌려갔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왜 당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냐고, 또 왜 나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냐고.

차오르는 의문이 그리 많았음에도 그녀는 아무런 말을 더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그에게 끌려갈 뿐이었다.

수치심 탓이었다.

자신의 치부를 그리 들킨 것에 대한 수치심이었고, 그 순간 당운경의 말에 상처 입던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이었다.

골목이 변한다.

어둑한 서현 구석에서 대로로, 그곳에서 다시 장원으로.

마침내 장원의 숙소 앞에 도착하고서야, 당화서는 자신의 손목을 붙잡는 힘이 사라짐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목리원은 여전히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에 짧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으나, 다행히 오래가지는 않았다.

“…참견해서 미안하오.”

목리원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언제나 당화서가 봤던 순박한 얼굴의 목리원이 있었다.

“소저가 너무 불편해 보여서 내가 오지랖을 부렸소. 혹, 내가 잘못한 것이오?”

마치 혼이 나는 아이처럼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평소와 같아서, 도리어 당화서는 불안함을 느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분명 자신과 당운경 사이에 오갔던 말을 모두 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자라온 과정이나 지금 당문의 가주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기껏 숨겨왔던 자신의 치부까지.

한데도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니 그것에 왜인지 모를 불안함이 차올라버리는 것이다.

이윽고 참지 못한 의문이 터져 나왔다.

“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십니까?”

“무엇을 말이오?”

“시치미 떼지…!”

“소저.”

목리원은 해사하게 웃었다.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소. 사실 그 자리에서 소저를 신경 쓰느라 못생긴 사내의 말에 집중하지도 못했소. 음, 부끄러운 일이구려.”

당화서의 눈이 슬쩍 커졌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충분히 느낀 까닭이었다.

그는 직전의 일을 잊겠다 말하고 있었다.

목리원이 한참이나 멍한 당화서를 바라보다, 서서히 다가가 그녀의 양손을 감쌌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소저, 나는 소저가 숨기고 싶어 하는 일 앞에서는 바보천치가 될 것이오.”

전해진 말에 당화서의 입이 꾹 다물렸다.

주먹 또한 슬그머니 쥐어졌다.

당화서는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 걱정마시오. 이 목리원은 이 중원에서 가장 참을성이 뛰어난 사람이라, 소저가 비밀을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

당화서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

너무나도 따스해 기대고 싶은 마음이 차올라, 그것을 떨쳐내려 하는 것이었다.

하나 불가능했다.

그의 말과 직전까지 처해있던 상황 사이엔 그리도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헤집어진 마음을 어떻게든 메꿔주겠다는 듯, 그가 내뱉은 말과 짓는 표정은. 그리고 뻗어와 제 손을 감싸는 온기는 따스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눈구멍이 다 타들어 갈 것 같은 기분이 일었다.

이를 악 물고 숨을 참으니, 도리어 몸속의 열기가 더 뜨거워지는 기분이 일었다.

심장이 거세게 두방망이질 쳤다.

“뭐 그딴….”

겨우 말을 꺼내 보지만 이어지지 못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당화서는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헛웃음을 토해냈다.

‘아.’

알게되는 것이 있었던 까닭이다.

당화서는 너무나도 옹졸한 마음이라 마주하지 못한 스스로의 진심을 마주했다.

감히 사랑을 바랄 수도 없고, 그 사랑에 결실을 맺지도 못하는 몸이라 외면했던 마음이 제 눈앞에 드리워진 것이었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바보 같은 정도로 협의에 집착하고, 또 바보 같은 정도로 매사에 진심이어서 맑게 갠 하늘을 보는 기분이 들어버린다.

하여 그 곁에 있자 하면 선선한 바람에 우울함을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아진다.

그리하여 위로받아 버린다.

그렇기에 바라보게 된다.

문득, 당화서는 겨우 몇 마디의 말에 가슴이 씻겨져 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에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소저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소. 그러니, 나는 오늘 소저가 늦게 들어온 것에 잔소리를 하지 않을 것이오!”

어느 순간, 자신이 이 멍청한 사내에게 연심을 품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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