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7화 (37/334)

〈 37화 〉 오장 ­ 용봉지회 (10)

* * *

비무장의 참가자 대기실.

목리원은 그리 크지 않은 방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상념을 이었다.

떠올리는 것은 일주일 전, 일운과 현공의 비무를 본 이후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었다.

‘왜 살심을 품었는가.’

현공은 왜 살심을 품었는가.

그는 어째서 의와 협을 품어야 할 그 가슴속에 악의를 품었는가.

단순히 그를 악인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그가 무당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라 치부할 수도 있었다.

하나, 목리원은 그리 쉽게 결론 내고 싶지 않았다.

­협객이란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란다.

그의 스승인 목선오가 언제나 그런 말을 했던 까닭이다.

‘개인적인 원망?’

현공은 일운을 증오하는 것인가.

‘외부의 압력?’

문파간의 알력 다툼인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살생을 즐기는 것인가.

“….”

목리원의 눈이 뜨였다.

그 속에 깃든 것은 어딘가 공허하게도 느껴지는 깊은 그늘이었다.

“가보면 알 일이지.”

목리원은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이리 대기석 안에 있음에도 울려 퍼지는 함성.

그것으로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그림자를 떨쳐내며, 걸음을 옮겼다.

*

검왕 남궁혁.

그는 비무장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채,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노파에게 말했다.

“이런 일에는 관심이 없을 줄 알았소.”

“외유 삼아 나온 게요. 늙으니 괜한 호기심만 늘어가는 게 아니우?”

끌끌 웃으며 답을 해내는 노파는 참으로 소담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에 남궁혁의 주위를 지키던 이들이 속에 궁금증을 피워 올렸다.

‘대체 저 노파는 누구인가.’

언제나 위계를 중시하던 남궁혁이 옆 자리를 허락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필시 전대의 고수일 터.

한데 그들이 아는 고수 중엔, 저런 소담한 인상의 노파가 없었기에 떠올리는 의문이었다.

말해 무어 할까.

노파의 정체는 살성(??) 염소소.

남궁혁과 같은 사성육왕(四??王)의 일원이었고, 20여 년 전 혈사에서 그와 함께 어떤 선택을 한 이였다.

“…묵검을 노리는 건가.”

“외유 삼아 왔다니까. 그러는 검왕께서도 그 아이를 노리는 것이오? 이미 그런 손자까지 두고 있으면서.”

“글쎄.”

남궁혁은 가만히 아직은 텅 빈 비무장 위를 바라봤다.

묵검 목리원.

지금 강호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떠오르는 신예.

남궁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기억이 있음을 부정하지 못했다.

­당신이 검룡이오?

자신감 넘치는, 그러면서도 오만하진 않았던 사내.

최후의 그 순간까지 결코 넘어서지 못했던 사내.

묵검의 등장에, 남궁혁은 이젠 검성이라 불리지 못할 한 사내를 떠올려버린 것이었다.

‘만약 검성이 끝내 그 아이를 키워냈다면.’

혈사의 끝에서 거둔 아이가 무사히 자랐다면, 그 아이가 딱 지금 목리원의 나이대일 터다.

남궁혁은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정말 검성의 뜻을 이은 아이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리도 뛰어넘고 싶었던 사내가 스스로의 이름까지 버려가며 키운 아이는 그 뜻대로 자랐는지.

검성은 스스로의 뜻을 관철한 것인지.

…그리고 살아는 있는 것인지.

“…나 또한 여흥인 것으로 치지.”

“끌끌, 여전히 재미없는 분이시구려.”

호위들이 기겁하며 염소소를 바라봤다.

염소소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비무장을 바라봤다.

마침 두 사내가 비무장 위로 오르고 있었다.

‘음, 참 어여쁘게 생겼구나.’

목선오의 젊을 적과는 다르게 이쁘장한 목리원의 얼굴.

염소소는 그것이 참 얄궂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

함성이 더없이 커진다.

사람이 몰리며 생긴 열기가 습기로 화해 피부 위로 들러붙는다.

그 한가운데서 목리원은 선룡 현공을 바라봤다.

“잘 부탁드립니다.”

포권을 취하며 허허롭게 웃는 사내.

목리원은 그를 마주한 채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물었다.

“왜 살심을 품은 것이오.”

“예?”

“일운 스님과의 비무. 이리 말하면 알겠소?”

멈칫­.

현공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목리원은 그 반응에 떠올린 가정에 확신을 더할 수 있었다.

하나, 돌아온 반응은 시원찮았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현공은 그저 허허롭게 웃을 뿐이었다.

목리원은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고 포권을 풀었다.

“더 말할 필요는 없겠구려. 알겠소.”

사회자가 물러서서 손을 들어 올린다.

목리원은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올렸다.

답은 듣지 못했다.

하나, 느낄 수 있었다.

질문을 건네는 동시에 전신으로 퍼진 찌르는 듯한 살기.

그것이 그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되어 준 것이다.

“당신과는 협을 논할 수 없겠구려.”

사회자의 손이 아래로 떨어진다.

동시에 목리원이 쏘아져 나갔다.

채애앵­!

비무의 시작이었다.

*

서현에서 묵검 목리원을 논할 때면 항상 화두가 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어떤 검을 구사하는 검수인가.’

그런 주제였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목리원은 이제까지 용봉지회에 참석하며 단 한 번도 일 초 이상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

그 일 초마저 상대의 검을 동강 내는 기교로 끝내버린 이였으니.

누군가는 말했다.

­강검! 강검 밖에 없지 않소! 묵검은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검수요!

또 다른 이는 말했다.

­강검은 무슨! 그는 중검을 사용하는 이네! 칼을 두동강내는 기교가 어디 힘만으로는 되는 것이던가? 정확히 무게를 실을 자리를 알고 그곳에 힘을 집중하는 것으로 하는 기예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을 모두 부정하는 이는 말했다.

­나는 묵검의 검이 무당과 같은 흐름의 미학을 담았다고 생각하오. 그렇지 않소? 그는 절대 먼저 검을 휘두르지 않았소. 상대가 검을 휘두르고 나서야 뒤늦게 검을 뽑았지. 그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상대의 힘을 이용해 검을 동강 냈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소.

오늘이 오기 전까지 그 누구도 확실한 답을 내지 못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논쟁을 펼치던 수많은 이들은 오늘에서야 그의 검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쾌검….”

그의 검은 압도적인 속도로 연격을 퍼부어 상대를 찍어누르는 쾌검의 묘리를 담고 있었다.

하나, 그 예상도 오래가지 못했다.

목리원이 보인 다음 수가 쾌검이라 보기엔 그 움직임이 너무나도 기이했던 탓이다.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흔들리다 촉새처럼 튀어 오르고 또 어느 순간에는 움직임을 뚝 멈춘다.

“환검?”

그리도 보였단 말이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눈에는 그렇다는 것이었다.

조금 더 검을 볼 줄 아는 고수들.

그러니까 이곳에 자리한 중원 각지의 명문들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수에 시선을 틀어박았다.

“아니다. 그 무엇도 아니야.”

이미 초인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었다.

자연지기라는 것을 형상화해, 그 속에 깃든 흐름을 볼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아는 것이다.

“…변칙.”

저것은 변칙이다.

중검에서 강검으로, 그것을 흔들어 환검으로 흩어내고 다시 쾌검으로 찌르는.

강호의 모든 검수가 바라마지 않으나 누구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뭐 저런 터무니 없는….”

저것은 그저 재능이라는 축복에 빌어 휘두르는 방만이었다.

그를 지켜보던 명문의 누군가가 읊조렸다.

“…당장 협상을 준비하거라.”

그 말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석 곳곳에서 서로 다른 소속을 가진 사람 몇이 빠져나갔다.

경이적인 재능.

본디 무력으로 바로 서는 이 무림에서 질시와 원망을 받아 마땅한 것이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묵검 목리원은 소속이 없다.

즉, 그 재능은 손에 쥘 수 있는 재능이다.

그 사실만으로 그는 경이가 아닌 보물로, 탐욕으로 바라봐야 할 기연으로 이들의 눈동자에 새겨지고 있었다.

멈춰있던 강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목리원은 쉴새 없이 현공을 몰아쳤다.

그가 그 어떤 수를 꺼내도 감히 발악할 수 없을 정도로.

또한 감히 내비친 살심을 찍어누를 수 있을 정도로.

본디 이렇게까지 전력을 다해 상대할 생각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이리 마음을 바꿔먹은 이유는 하나였다.

‘그른 마음이다.’

선룡 현공의 마음가짐이 그르다는 판단.

그럼에도 그가 협을 알았으면 한다는 바람.

언젠가 마일석은 말했다.

­명문 놈들만큼 삿된 길로 빠지기 쉬운 것들이 없지.

­왜요? 명문은 언제나 협객들을 바라보며 자라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이다. 언제나 군림할 줄만 아니까 버르장머리가 없어지는 게지. 실제로 오만함에 취해 사파나 할 법한 짓거리를 행하는 후기지수가 세대마다 나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뭐, 우리 세대 때는 형님이 다 두들겨줬지만.

­스승님이요?

­그래, 청룡비무제 때 말이다. 형님과 맞붙었던 놈 중에 그 검왕 놈이 있었다. 어찌 그리 싸가지가 없었는지 말도 걸기 싫은 놈이었는데, 형님한테 두드려 맞고 나더니 조금 얌전해지더구나.

­걸개야, 너도 만만치 않았다.

­아오, 형님! 그 얘기는 안 하기로 했잖습니까!

­어이쿠, 말실수를.

명문의 후기지수일수록 삿된 길로 빠지기 쉽다고.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이일수록 방만해지기 쉽다고.

­원아.

­네!

­너도 언젠가 걸개가 말한 이들을 만나게 될 터다. 그땐 말이다. 조금만 온정을 발휘해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겠느냐?

­네! 꼭 그렇게 할 게요!

­옳지. 참 착하구나.

그렇기에, 협을 아는 이들이 그들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고.

채애앵­!

현공의 검이 튕겨져 나갔다.

목리원이 재차 쏘아지자, 현공은 숨을 멈추며 무당의 무학을 발휘했다.

태극.

삼라만상의 조화를 원 안에 담아 휘두르는 무당의 극치.

그리고 이 중원 무림에서 가장 우아한 반격기.

목리원이 휘두른 힘이 재차 그에게 되돌아갔다.

하나, 목리원은 그것을 손쉽게 피해냈다.

휘익­.

검이 허공을 찌르는 순간, 목리원은 손목을 흔들어 검을 튕겼다.

사아아­.

묵색의 기파가 검을 감싼다.

동시에 백청색의 기파가 현공의 검을 감싼다.

검기와 검기의 싸움.

가진 공력은 비슷한 두 사람이라, 이제부턴 그 운용에서 결판이 날 터였다.

“당신은 반성해야 하오.”

목리원은 그리 말하며 검을 휘둘렀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흐름이었다.

내내 변칙을 사용해 여러 태세의 검을 사용하던 목리원이, 처음 정형화된 자세를 취한 것이다.

초식(??).

무학의 정수를 물리적인 형상으로 도식화한, 그리하여 그 한 수에 무리를 담아내는 무공의 꽃.

묵색의 기파가 아련하게 빛났다.

온통 묵칠을 한 듯 칙칙한 색이었으나, 그럼에도 그것이 빛을 발한다는 착각이 일 정도로 특이한 울림이었다.

목리원은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유성칠검(??七?)은 별의 운행을 재현하는 일곱 가지 검형.’

목리원은 검을 최대한 당겼다.

명백한 찌르기의 자세.

찰나의 순간, 목리원은 세상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태산이 되었다.

­1식은 북두칠성을 본 따 지어졌단다. 가장 빛나는 별이오, 또한 흔들리지 않는 영원을 담았으니. 우리의 조사께선 그것을 바라보며 일곱 번 하늘을 찔러, 이 검을 완성하셨지.

절대 무너지지 않을 일곱 번의 연격.

유성칠검의 1식, 칠성극검(七???).

탁­.

목리원이 발을 디뎠다.

그와 동시에 빛살처럼 쏘아진 검이 현공의 어깨를 노렸다.

현공은 기파를 어깨에 둘렀으나, 의미 없는 발악이었다.

꽈직­.

께름칙한 소리와 함께 현공의 왼쪽 어깨가 무너졌다.

실제로 검을 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와 함께 쏘아진 기파로 관절을 비튼 것이었다.

“끄읍…!”

현공의 눈이 커졌다.

목리원은 멈추지 않았다.

바로 다음 수로 오른쪽 어깨, 폐부, 심부, 몸을 지탱할 오른쪽 허리와 무릎, 발을 연속해 찔렀다.

현공의 자세가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목리원이 초식을 끝마치고 마무를 위해 검을 재차 휘두르려던 중.

‘…미소?’

현공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확인했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의한 찰나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것에 목리원의 몸이 순간 굳어지던 중.

쨍그랑­.

현공의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묵검! 스으으응!!!]

동시에 울려 퍼진 사회자의 외침과 뒤를 이은 환호성.

그리고 쓰러진 현공.

목리원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확신했다.

‘방금….’

현공은 일부러 초식에 당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검을 놓은 것은, 힘이 빠져서가 아닌 자의였다.

그의 미소가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다.’

현공은 애초에 질 생각으로 이 승부에 나왔다.

*

남궁혁은 의자의 팔걸이를 으스러질 듯이 쥐었다.

“알고 있었소?”

“무엇을 말이오?”

남궁혁이 험악하게 염소소를 째렸다.

그리고 기파로 장막을 만들어 소리를 가둔 후, 이어 말했다.

“유성칠검. 내가 그것을 못 알아보리라곤 생각하지 않았겠지.”

남궁혁은 실제로 화가 나 있었다.

목리원에 대한 분노가 아닌, 눈앞의 노파에 대한 분노였다.

“애초에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자리에 올 군상이 아닌 걸 알고 있소. 그래, 날 능멸하는 것은 즐거웠소?”

그녀는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이다.

저 묵검이라는 청년이 검성의 아이라는 것을.

혈사가 끝나던 그날의 아이라는 것을.

남궁혁의 기세가 험악해졌다.

기막 밖의 호위들은 몰랐지만, 염소소는 그의 몸에서 들끓고 있는 내력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염소소는 끌끌 웃으며 말했다.

“어떻소? 그 노친네가 꽤 그럴싸한 걸 만들지 않았소?”

“….”

남궁혁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의 시선이 어벙한 얼굴을 한 목리원을 향했다.

‘검성….’

남궁혁은 목리원을 보며, 그가 보인 1식을 떠올리며 이내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살아있다는 말이겠지.’

꽈득­.

의자의 팔걸이가 부서졌다.

혈사 이후 내내 꺼져있던 그의 가슴속 불길이, 다시 한번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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