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오장 용봉지회 (9)
* * *
당화서가 4강에 올랐다.
이는 참 많은 것을 시사하는 말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당화서는 혜운과의 승부 하나로 그간 자신을 향했던 여러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게 된 것인데.
첫째로 무공의 부진.
혹자들은 그녀의 무공이 지난 실종 기간 동안 퇴보했을 것이라 말했으나, 그녀는 그 소문이 틀렸음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둘째로는 당문과의 불화.
일각에선 그녀가 당문과 불화가 있어 대외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라 말했으나, 그녀는 이 용봉지회에 당당히 참여함으로서 그 논란을 불식시켰다.
사실을 따져보면, 이는 당화서의 의도가 적중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가문은 대놓고 나를 겁박할 수 없다.’
가주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저들의 얼굴이 될 자신과의 불화다.
아니, 정확히는 그 불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가주는 사천당문이라는 이름을 제 스스로의 자존심보다도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비굴해질 수 있는 사내였으니 이리 자신이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는 동안은 그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화서는 고민을 이었다.
‘물론, 아예 접근하지 않으리란 건 안일한 판단.’
용봉지회에 있는 동안 당문에서 접근해 올 것이다.
회가 끝나는 대로 자신을 ‘회수’하기 위해, 여러 협박이나 회유책을 더할지도 몰랐다.
‘…슬슬 움직여야 한다.’
이제 권룡 일운에게 본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당문이 자신을 찾기 전에.
“소저?”
생각에 빠져 있던 중, 목리원이 입을 열었다.
당화서는 그제야 상념에서 벗어나 그를 바라봤다.
“아, 네.”
“긴장이 많이 되시나 보오! 암,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오! 이제 용봉지회의 꽃인 4강이 아니겠소!”
“예, 결국 여기까지 오긴 했군요.”
“함께 4강에 오를 수 있게 되어 기쁘오. 대진표를 보니, 우리가 비무대에서 만나려면 결승까지 가야겠더구려!”
기대감이 가득한 목리원의 말에 당화서는 쓰게 웃었다.
“아마, 저는 결승에 가지 못할 것입니다. 다음 상대가 남궁진천이니까요.”
“그, 그런게 어딨소!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것 아니겠소!”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만 아는 것이겠나.
당화서는 목리원의 이런 긍정적인 면을 참 좋아하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그것을 곤란하게 느꼈다.
‘5년 전에도 넘을 수 없는 벽이었거늘.’
이젠 더 차이가 벌어진 와중인데 어찌 그와 자웅을 겨루겠나.
당초 목적도 이루었으니, 이제 당화서에게 남은 것은 일운을 통해 소림에 가는 것.
그리고 그곳의 방장을 만나….
‘…무림맹에 입맹 한다.’
당문이 어찌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하나 그런 속내를 모두 말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당화서는 얼버무리는 말을 내뱉었다.
“…예, 제가 벌써부터 약한 소리를 했군요. 한 번 노력해보겠습니다.”
“암! 나는 결승에서 소저와 만날 것을 기대하겠소!”
목리원은 그제야 싱글벙글한 낯으로 소면을 후루룩 마셨다.
영양도 신경 써야 할 텐데, 매 끼니를 저것으로만 채우니 문득 걱정도 드는 와중.
‘…아니, 무슨 반찬까지 신경을 쓰는 게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어린애취급 하는 건 아닐까 싶어, 당화서는 떠오른 생각을 털어냈다.
그리하며 입을 열었다.
“목 소협의 다음 상대는 일운 스님이나 선룡 중 하나겠군요.”
“음! 일운 스님과 겨루고 싶소!”
“높은 확률로 그리되긴 할 것입니다. 선룡은….”
당화서는 지난날 만났던 선룡을 떠올렸다.
언제나 허허롭게 웃으며 침묵을 지키던 사내.
그리고 비무대에 오르는 순간조차도 그 허허로움을 벗어던지지 않았던 사내.
“…음, 확실히 용의 별호를 받을 실력은 되나, 그가 일운 스님을 이기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군요.”
“소저도 잘 모르는 것이오?”
“예, 밝혀진 것이 많지 않은 사내라.”
선룡 현공은 많은 것이 가려진 사내다.
오죽하면 그 남궁진천을 상대하면서도 진심을 내보이지 않았다는 말이 돌 정도로, 그는 언제나 적정 수준의 수를 나누고 나면 기권으로 비무를 끝냈다.
그리 승패나 성적에 관여하지 않는 허허로운 용이라 하여 선룡(??).
‘이번 역시 그럴 테지.’
그는 이번에도 일운과 어느정도 수를 나누다 기권할 것이 뻔했다.
“뭐, 내일이 되면 알겠지요.”
당화서는 그리 말하고 젓가락을 들었다.
내일이 바로 조별 결승의 마지막, 당화서는 승리한 일운을 축하하고 그와 접선할 생각만 가득이었다.
*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었다.
[선룡! 승!]
“우와아아아아!!!”
당화서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비무대 위를 바라봤다.
그곳엔 언제나처럼 허허로운 꼴로 포권을 취하는 선룡과, 그 앞에 처참히 무릎 꿇은 일운이 있었다.
‘이게 무슨….’
이해할 수 없었다.
선룡이 이긴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수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운은 강했다.
언제나처럼 그 특유의 단단함과 올곧음으로 권을 내질렀고, 그리하여 비무장이 다 으깨질 정도로 강한 연격을 이어갔다.
선룡을 그것을 슬쩍슬쩍 피하는 것으로 대처했고, 그 끝에서 딱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일운은 그 일 검에 무릎을 꿇었다.
당화서는 목리원을 바라봤다.
그라면 무엇인가 알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던진 시선이었으나.
“…목 소협?”
목리원은 바짝 굳은 얼굴로 선룡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당화서는 그의 표정에 깃든 속내를 헤아리고자 했다.
‘경악? 분노? 그것도 아니면….’
모르겠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언제나 환한 얼굴을 하던 그였다.
한데 그런 그가 인상을 찌푸린 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선룡을 노려보고 있으니, 문득 걱정까지 차오르는 것이다.
“목 소협.”
“아….”
당화서가 팔을 붙잡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목리원이 시선을 돌렸다.
당화서는 걱정스레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오. 잠시 생각할 거리가 있었던 터라.”
목리원은 그리 말하며 표정을 풀었다.
“일운 스님께 가봐야 하지 않겠소? 그래도 교분을 쌓았던 사이인데 위로 정도는 해야 할 것 아니오.”
“예, 그럴 생각입니다.”
용건은 다음에 물어도 그 정도는 하는 게 옳을 터.
당화서는 일그러진 계획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돌아오는 일운을 맞이했다.
*
언제나 찾던 객잔의 한구석.
그곳엔 네 남녀가 우중충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앉아있었다.
당연, 일운의 기색 탓이었다.
일운은 분하다는 듯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주먹은 더 꽉 쥐어질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어간 상태였고, 눈빛에는 그답지 않은 분노까지 깃들어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다.
한참을 그리 떨던 일운은 이내 숨을 크게 내뱉으며 말했다.
“…면목이 없군요.”
쓴웃음이 걸려 있었다.
“죄송합니다. 목 시주님. 꼭 시주님과 비무대 위에 서고 싶었는데.”
“아니오. 비록 패배였다곤 하나, 일운 스님의 무학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훌륭했소. 그리 자책하실 필요 없소.”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일운은 크게 심호흡하며 안색을 가다듬었다.
“자, 제 탓에 식사도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어서 드시지요.”
“그… 힘내시우.”
그 경박한 제갈산조차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일운은 그것에 그만 피식 웃음을 흘려버렸다.
“목 시주님 말대로 이미 패배해 버린 것을요. 이번 기회에 저의 모자람을 깨달았으니, 더 수련에 박차를 가해 다음에 이기면 되는 일이겠지요.”
그저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일운은 실로 소림의 미래라는 말에 맞게, 차오른 분노나 안타까움을 향상심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그리하며 부동심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
목리원은 그런 일운은 가만히 응시하며 생각했다.
지난 비무에 관한 것이었다.
‘선룡의 일 수.’
당화서는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목리원은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다.
무당의 본이라 할 수 있는 ‘태극’.
그 묘리를 이용해 쏘아지는 힘을 그대로 일운에게 돌려준 것이었다.
하나, 단순히 그것이 끝이었다면 목리원은 이리 심각한 낯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목리원이 비무장에서 그리 표정을 굳혔던 이유, 아직까지도 이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분명 살수였다.’
살기라는 것에 한해서는 그 누구보다 탁월한 감지 능력을 가진 그이기에 아는 것이었다.
그 순간 선룡의 검에 깃든 것은 살심이었다.
그리고 그 검이 향하는 끝에 있는 것은 일운의 목젖이었다.
그는, 일운을 죽이려고 했다.
‘마지막에서야 경로를 뒤틀어 검을 멈췄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하나, 그럼에도 목리원은 분노했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 그런 살심은 서로의 무학을 뽐내고 교류하기 위한 비무대에서 보여도 될 것이 아니었다.
꽈악.
목리원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
본선이 시작되기까지 일주일.
그 사이 서현에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어찌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무려 용봉지회의 4강.
어느 시대가 되었든, 그 정도 성적을 낸 이들은 다음 세대의 강호를 이끌 얼굴이 되었으니 그들의 면면을 익히려는 자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중원 무림 각지의 명문들도 있었다.
“저기 보시게. 하북팽가의 극도(??) 팽도월이네.”
“저쪽 좀 보시오. 화산의 명검(??) 진명이오!”
“저기는… 그래, 딱 봐도 개방이구먼.”
다른 때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았을 이들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이번 용봉지회는 그런 이들조차 움직여야 하는 회란 말이었다.
“묵검의 파급력이 엄청나구려.”
“말해 뭐하겠나. 이미 새로운 용이 될 것이 확정된 사내네. 이번 비무에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이후 강호의 판도가 달라지는 것이지 않나.”
“허… 하긴, 묵검이 특별한 소속이 없다고 했지. 그를 영입하려는 이들도 있겠구려.”
“명가라면 그를 데릴사위로 들이려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묵검은 독봉과….”
“사랑이 어디 밥 먹여 주던가. 당문도 물론 최고의 혼처 중 하나이긴 하나, 조건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곳에 갈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서현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이야기의 끝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끝을 맺었다.
지난 날 있었던 당화서와 혜운의 비무.
그 사이 수라장과도 같았던 관계가 안주거리로 화해 와전되며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독봉만 불쌍하게 되었구려.”
“에이, 설마 독봉이 그를 놓치려 하겠나? 거 백봉의 명치에 주먹을 갈기고 웃던 모습을 떠올려보게.”
“확실히….”
“그건 됐으니 어서 우리도 가세나. 곧 비무가 시작이야.”
수군대던 사내들이 분주히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향하는 끝에 있는 것은, 본선 때보다 더욱 거대한 크기의 비무장이었다.
여길 봐도 사람, 저길 봐도 사람.
사내들은 그 번잡스러움에 짜증을 낼 법도 했으나, 도리어 웃는 얼굴을 하며 수근거림을 더해갔다.
“세가와 문파만 온 게 아니군. 저기 보시게, 저 추레한 노인. 전대 고수인 패권(?) 벽권웅이야.”
“저 치는 왜 온 것이오?”
“제자를 찾고 있다는 소문을 듣긴 했네. 젊을 땐 그리 막 나가더니, 늙어서야 뒤를 책임져줄 이가 필요해진 것이겠지.”
사람 구경 자체가 재밌는 상황이었다.
사내들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고수들이 모인 것에 흥분을 금치 못했다.
그러던 중.
두웅!
북이 울렸다.
그것에 장내에 긴장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두웅!
이리 분위기가 급변하는 이유는 하나.
“드디어 오시는구먼.”
“내 살며 저분을 실제로 뵐 줄은….”
지금 들어오는 이가, 이 백도 무림의 살아있는 전설인 까닭이다.
20여년 전 강호를 피로 물들였던 혈사.
그것을 끝낸 백도 무림의 정상 중 하나인 까닭이다.
두웅!
북소리와 함께 열린 대문으로 거구의 노인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젠 칠십에 달하는 나이일 진대도 조금도 굽혀지지 않은 허리.
깊게 가라앉아 위엄을 뿜어내는 눈빛.
그리고 허리에 찬 세월이 묻은 검.
“검왕(?王)…!”
검왕 남궁혁.
그가 이 안휘에서의 용봉지회를 직접 주관하기 위해 등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