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오장 용봉지회 (7)
* * *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목리원이다.
낯선 이와의 만남은 그에게 새로운 자극과 경험이었고, 누군가와 교분을 쌓으며 맺는 관계 또한 그에겐 하나 같이 소중한 보물이었다.
하나, 그런 목리원조차 거리끼는 부류의 사람은 분명 존재했다.
바로 자신을 향해 음흉한 눈길을 보내는 부류.
그 예로 지금 눈앞에 있는 백봉 혜운을 들 수 있을 것이고, 또 강서 수양현에서 만난 기녀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목리원은 그런 음흉한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이면 왜인지 모를 거부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수련하다 오셨나 봐요. 몸이 땀에 젖어 있네요.”
“그, 그렇소….”
주춤주춤 목리원이 뒷걸음질 쳤다.
혜운은 그런 그의 모습에 장난기가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 울리고 싶다.’
저 이쁜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거리면 얼마나 짜릿할까.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입술을 앙 깨물면 그것은 또 얼마나 짜릿할까.
마침내 욕망에 져버려 가쁜 숨을 내뱉는 얼굴은, 그런 그를 바라보는 당화서의 얼굴은….
“…킥.”
저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나온다.
떠오른 상상에 뺨을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목리원은 그 모습에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그, 그럼 나는 갈 길이 급해 이만…!”
혜운이 접근하면 자신에게 오라는 당화서의 말.
목리원은 그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여 곧장 그녀에게서 도망치고자 했지만.
털썩.
“아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목리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곳엔 바닥에 엎어진 채 제 발목을 매만지는 혜운이 있었다.
비구니 주제에 복장이 참 요사스러워 새하얀 발목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버렸네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정도 이름 있는 무인이 고작 돌부리 하나에 걸려 발을 삐끗하는 것은 흑도가 빈민들을 돕는다는 것만큼 어이가 없는 소리란 말이다.
하나, 당장 당황이 차오른 목리원의 생각이 그곳까지 뻗어나가진 못했다.
“괘, 괜찮소?”
목리원은 걱정 어린 얼굴로 혜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방심의 대가는 참혹했다.
덥썩.
“잡았다.”
혜운이 장난스레 웃으며 목리원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을 붙잡는 순간 느껴진 떨림, 서서히 공포로 물들어가는 얼굴과 어쩔 줄 몰라 하며 뒤트는 몸은 혜운에게 그 무엇보다 짜릿한 미약이었다.
“이것 놓으….”
“왜 도망치려 하십니까?”
“도, 도망치려던 게 아니라. 갈 길이 바빠서.”
“정말이십니까? 저는 그리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는 목 시주님과 친해지고 싶어 말을 건 것인데, 그리 피하기만 하시니 아무리 저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는답니다?”
용봉지회가 시작되고도 일주일이 훨씬 넘은 이 시점까지.
혜운이 섣불리 그에게 접근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 존재했다.
숙련된 사냥꾼이 사냥에 앞서 사냥감의 습성을 파악하는 것처럼, 혜운은 그간 목리원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관찰한 것이다.
‘이리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하는 것에 약한 사람이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순진한 면이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
목리원은 울분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이야!’
왜 자신을 못살게 구는 것인가.
자신은 그녀에게 그 무엇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그녀는 자신을 겁박하는 것인가.
“혹시 당 시주님이 제 욕을 하시던가요?”
순간 건네진 질문에 목리원의 눈이 떨렸다.
혜운은 그 찰나의 망설임에 퍽이나 가련해 보이는 얼굴을 하며, 비운의 여인처럼 읊조렸다.
“역시… 당 시주님은 제가 마음에 들지 않겠지요. 승부욕이 강하신 분인 만큼 저와 같은 선상에 놓이는 것에 분을 느끼셨을 수도 있으실 테구요. 예전부터 그런 이유인지 계속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신세 한탄이라 할 것엔 분명 당화서와의 사이를 이간질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혜운의 목적은 하나.
이리 순간적인 의심을 심어 둘 사이로 자신이 파고드는 것.
하나, 이것은 악수였다.
“…소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목리원이 처음으로 제대로 반박했다.
그의 얼굴엔 직전까지의 당황과는 다른, 굳은 분노가 맺혀 있었다.
“…네?”
“소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사과해주시오.”
“무슨….”
“혜운 스님의 말대로, 소저는 자존심이 참 강한 분이오. 하나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비겁한 이가 아니란 말이오.”
‘어라.’
혜운은 당황했다.
아무래도 역린을 건드린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먼저 수습. 그리고 이쪽은 다시 건드리지 말고….’
빠르게 생각을 이어간 후 내뱉는 말은 사과의 형태였다.
“아, 제가 말실수를 했….”
“보통은 그런 것을 말실수라고 하지 않소. 혜운 스님이 한 것은 분명 이간질이오.”
백봉은 어처구니가 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게 그리 중하십니까?”
“이것이 중요하지 않으면 무엇이 중요한 일이오?”
목리원은 혜운의 손목을 떨쳐내고 일어나 ‘흥!’하고 콧김을 뿜으며 말했다.
“소저는 정정당당한 사람이오! 그리고 언제나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오! 그것뿐만 아니오! 금전이 모자란 나를 위해 언제나 식비를 대줄 정도로 베품에 인색함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오!”
팔짱까지 끼고 이어가는 말은 당화서를 찬양하는 형태.
혜운은 문득, 그런 목리원의 모습에 ‘부모님 자랑을 하는 꼬맹이 같다’라는 생각을 떠올려 버렸다.
“뭔….”
“소저는 머리도 좋소! 강서에서 이곳까지 오는 중, 어떤 도시를 들러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 지를 전부 머릿속으로 그려가면서 올 정도로 지리에 밝소! 그뿐인 줄 아시오? 소저는 읽은 책도 많아 길을 가다 보이는 풀이나 꽃들이 무엇인지를 전부 알려주는 사람이오!”
목리원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늦은 밤이었지만, 이곳이 한참 용봉지회가 이어지고 있는 서현인 만큼 그 소란에 구경을 나오는 무인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몰려드는 구경꾼에 혜운은 당황을 토해냈다.
“모, 목 시주님. 잠시….”
“또 소저는 엄청난 미인이오! 매 도시를 들를 때마다 당 소저를 보며 얼굴을 붉히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단 말이오!”
주변이 부산스러워졌다.
저게 무슨 일이오?
모르겠군. 저 사내는 묵검인 듯한데, 직전부터 백봉을 앞에 두고 독봉에 대한 칭찬을 늘어 놓는 게 아닌가.
세상에, 설마 묵검과 독봉이…!
그럼 백봉은 묵검에게 다가갔다가 대차게 까이고 있는 게로군? 저런, 임자 있는 사람을 건드리면 쓰나.
쉿! 쉿! 이 사람아! 그런 얘기는 함부로 하고 다니는 게 아닐세!
저들끼리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스스로의 말에 심취해 있는 목리원은 몰랐지만, 그것을 앞에서 듣고 있던 혜운은 주변의 속삭임까지 모두 들을 수 있었기에 얼굴이 잔뜩 붉어진 상태였다.
‘이, 이런….’
한밤중에 이게 웬 망신인가.
아니, 그보다 저 목리원이라는 사내는….
‘…완전 미친놈이잖아?’
미치광이가 따로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낯부끄러운 말을 하면서 수치심을 못 느끼는 것인가.
왜 도리어 자랑스러워하는 것인가.
혜운은 목리원의 웅변에 자신이 다 부끄러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 이제 그마안….”
“소저는 손 또한 곱소! 권법과 조법에 조예가 있어 굳은살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소저는 적절한 내기의 운용으로 신체에 돌아오는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사람이오! 내 한 번 당소저와 손을 마주 잡은 일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꿈을 꾸는 것만 같았소!”
주변에서 ‘오오…’하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개중에 박수를 치는 사람까지 나왔다.
혜운은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와중.
“…목 소협.”
자리에 또 다른 주인공이 나타났다.
바로 야밤의 소란에 ‘혹시?’하는 불안감이 차올라 나와본 당화서였다.
혹시는 역시였다.
목리원이 ‘당 소저는 엄청난 미인’이라는 말을 할 때부터 수치심에 몸을 떨며 틈을 노리던 당화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기분이 들어 이리 앞으로 나섰다.
“아! 소저!”
목리원의 얼굴이 해맑게 피어났다.
당화서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는 기분에 바닥을 바라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중에도 붉어진 귓불은 온 천하에 드러나 있었다.
“내 혜운 스님이 소저에 대해 오해하고 있길래 풀고 있었소! 어서 이리 와보시오!”
탁!
당화서가 목리원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하고선 마치 경공을 사용하는 듯한 걸음으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 구경꾼들이 환호했다.
혜운은 그제까지도 멍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혜운은 난생처음, 남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말았다.
*
아마 중원에 수치심으로 죽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것은 분명 자신이리라.
당화서는 돌아온 장원의 숙소에서 목리원을 무릎 꿇린 채 뜨거운 얼굴을 식혔다.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기서…!”
움찔.
목리원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당화서는 그 모습에 더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혜운 스님이 소저를 욕보였소… 그래서….”
기껏 해낸다는 변명은 그런 형태.
아주 사고뭉치도 이런 사고뭉치가 없었다.
아니, 만나면 도망치라고 했거늘 거기서 자신의 칭찬을 하는 건 대체 무슨 맥락인가.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목이라도 매달고 싶은 심정이 떠올랐으나, 그런 중에도 분명 당화서의 속 어딘가에선 기쁨이라 할 것이 피어나고 있었다.
내 한 번 당소저와 손을 마주 잡은 일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꿈을 꾸는 것만 같았소!
자신을 결국 그 자리로 끌어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런 말에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조금만 깊이 해보면 답이 나올 수도 있었으나, 당화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그 바로 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하여튼, 그 색봉을 물리친 건 잘했습니다.”
목리원은 활짝 웃었다.
오늘은 잔소리가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 탓이었다.
“하지만.”
“…!”
“다시는 그러지 마십시오. 다시는. 절대.”
“아, 알겠소!”
“가서 주무십시오.”
“소저도 잘 자시오!”
목리원이 헐레벌떡 방을 나섰다.
당화서는 또 탁상에 머리를 처박은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뒤늦게 소문을 들은 제갈산이 낄낄 웃으며 나타났다가 명치를 얻어맞은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
[묵검! 승!]
“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악!!!”
이튿날, 조별 비무의 결승.
목리원은 이번에도 상대를 일합에 쓰러트리고 비무장을 내려왔다.
돌아온 대기석엔 당화서가 웃으며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잘하셨습니다.”
“가뿐했소!”
목리원은 해맑게 웃으며 이어 말을 더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소저의 차례가 아니오? 소저도 꼭 승리를 쟁취하시구려!”
당화서가 속한 삼조는 목리원의 사조와 함께 오늘 결승을 치른다.
그런 만큼, 비무장은 목리원의 승리로 달아오른 분위기를 채 지우지도 못한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 꼭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당화서는 옅게 웃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백봉….’
오늘의 상대.
도통 마음에 들 수 없는 여자였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부진에 빠져있던 지난 5년, 그녀가 먼저 절정의 벽을 넘겼다는 것.
당화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승산은 낮다.’
하나, 그것이 패배를 뜻하는 것은 아니리라.
자신의 무공은 검술을 상대로도 절대 뒤처지지 않았고, 그간 해온 수행과 오늘을 위한 준비는 차고 넘쳤으니.
가진 금전의 반 절 이상을 다 투자해 독기를 흡수했다.
거기에 잔혈곡에서 구해온 인면지주의 독샘 또한 확실히 정제해 흡수를 마쳤다.
공력은 모자라지 않는 것이다.
져선 안 될 일이었다.
‘4강에 올라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자신이 그 정도는 건재함을 세상에 일러야 했다.
생각이 한참 이어지던 와중.
[삼 조의 조별 결승을 시작하겠소!]
사회자가 외쳤다.
*
강호인들에겐 무시할 수 없는 습성이 있었다.
바로 위업을 이룬 무인에게 ‘별호’라는 것을 붙일 정도로, 남들 이야기에 많은 관심이 많다는 것.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지난밤 묵검의 웅변과 그 사이에 있었던 두 여인의 이야기가 이들의 관심사가 된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일인 것일 터다.
본래도 호적수로 치부되던 두 여인.
이제 그들이 한 사내를 두고 부딪치게 되었다는 이 상황은 관객들에겐 비무를 더 뜨겁게 달굴 최고의 장작이었다.
“독봉! 꼭 사랑을 지키시게나!!!”
목리원과 당화서의 사랑을 응원하는 이부터.
“백봉!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네!!!”
사랑은 곧 쟁취라 이르며 혜운에게 목리원을 뺏을 것을 종용하는 이.
“그냥 셋이서 사이좋게 지내버리시게! 묵검! 다다익선이네! 다다익선!!!”
…하다하다 다다익선을 부르짖으며 셋이서 사이좋게 지내라는 사람까지.
웃음꽃이 피어난 비무장.
하나, 웃지 못하는 사람이 두 명 있었다.
“….”
“….”
당화서와 혜운이 비무대 위에서 서로를 바라봤다.
두 여인의 얼굴 위론 진한 수치심이 잔뜩 걸려 있었다.
비무장에 올라와 함성을 듣는 순간, 이들은 그제까지의 굳은 결의도 긴장도 모두 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소!]
들려온 말에 두 여인은 드물게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일 초에 끝낸다.’
빨리 이기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