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오장 용봉지회 (6)
* * *
안휘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본선 첫날의 열기가 조별 비무 내도록 그대로 이어진 결과였다.
이제 이곳 서현은 어딜 가도 그날 있었던 비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용봉지회는 지난 몇 년간 고착되어온 용봉의 서열이 격렬히 흔들리고 있었으니.
가장 먼저 6년간의 침묵을 깨고 돌아온 독봉(??).
그녀가 사천당문의 후계라는 이름에 걸맞는 무위를 선보이며 조별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모두가 예상한 백봉(白?) 혜운이었고, 당장 나흘 뒤가 둘의 대결인 만큼 그 승패를 점치며 도박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독봉이지! 6년 전의 일을 벌써 잊었는가? 독봉이 결승에 오르기까지 그녀에게서 단 삼 초를 버틴 이가 없었네!”
“그땐 백봉이 다른 조였지 않소! 게다가 그 독봉조차 결승 상대였던 검룡에겐 삼초지적이었고!”
“검룡은 논외지 않나! 아니, 그 이전에 이번 상대는 검룡이 아닌 백봉이 아닌가! 나는 독봉에 걸겠네. 도저히 그녀가 질 것이란 생각이 안 드는군.”
“글쎄, 나는 백봉에 걸지. 6년간 독봉이 무얼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간 꾸준히 무위를 증명해온 백봉에 거는 게 더 합당하다고 보오.”
승패를 두고 은자가 던져지는 곳은 또 있었으니.
바로 괴룡(??) 제갈산과 권룡(??) 일운, 그리고 선룡(??) 현공이 있는 이조의 승부에 관한 것이었다.
“이건 권룡이지! 권룡은 소림에서도 백 년 만에 나왔다 일컬어지는 기재네! 그를 두고 누가 4강에 올라가겠나!”
“무슨 소리! 당신들은 선룡이 비무대에 올라 표정을 찌푸리는 일을 본 적이 있소? 그는 그 남궁진천을 상대하면서도 부동심을 유지하던 사내요! 이조의 우승은 선룡이 당연하지 않소!”
“권룡이네!”
“선룡이오!”
그 누구도 제갈산의 우승은 점치지 않았다는 것이 우습다면 우스운 점일까.
이제껏 이리 많은 용이 한 조에 몰린 일이 없었던 만큼, 당장 내일 조별 4강이 치러지는 이조는 ‘죽음의 조’라 일컬어지며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었다.
하나, 역시 그런 것들을 제치고 이번 용봉지회에서 가장 화제로 오르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바로 검룡(??) 남궁진천과 묵검(??) 목리원이었다.
“…역시 검룡은 명불허전이구려. 이제까지 승부에서 한 번 이상 검을 휘두른 일이 없소. 일조의 우승은 그가 확실하겠구려.”
“묵검이라는 사내도 대단하네. 그 또한 검룡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모든 승부를 일 초에 끝내지 않았나.”
이번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아직 조별 결승조차 끝나지 않았음에도, 경기를 지켜본 모든 무인들은 그 두 사람의 4강 진출을 확신했다.
검룡이야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고, 목리원 또한 마찬가지.
그는 본선 첫날 남궁진천을 향해 노골적인 도발을 행하던 그 오만함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모두가 기행이라 치부하던, 첫 초에 상대의 검을 부러뜨리는 묘기를 행함으로써.
“…사실상 일조와 사조의 우승자는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군.”
“어디 그뿐이겠나. 일각에서는 그 묵검이라는 사내가 다른 용봉들을 제치고 결승에 오를 것이란 말도 돌고 있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지 몇 달도 채 되지 않은 무인이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 그럼에도 목리원은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곳은 검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중원 무림.
목리원은 그 검으로 증명을 끝마친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난다면 그곳은 결승이겠구려.”
“그렇소. 일조와 삼조가 만나고 이조와 사조가 만나 4강을 치를 테니.”
“검룡이야 당연히 결승에 오를 테고, 묵검이라는 사내는….”
“이조의 우승자와 붙어 우열을 가려야겠지.”
객잔이 정적에 휩싸였다.
과연 묵검이라는 사내가 저 죽음의 조를 뚫고 올라온 용의 상대가 될 것인가.
그런 화두에 의한 것이었다.
“…나는 이조의 우승자가 권룡이라면, 그에게 걸겠소.”
“나는 선룡이 나온다면 그에게 걸지.”
“나는 묵검에 걸겠소.”
“음?”
“왜인지 그런 기분이 드는구려. 그가 이번 용봉지회에서 새로운 용의 이름을 받을 것이라고.”
한 사내의 말에 두 사내가 웃었다.
하나, 그것이 비웃음의 의미는 아니었다.
“그것 또한 유쾌한 변수겠군. 기대가 되오.”
“언제 새로운 고수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바로 이 무림이니.”
세 사내가 잔을 번쩍 들었다.
“뭐, 그래도 아시지 않소.”
이제까지 당화서와 일운의 우승을 점쳤던 사내가 말했다.
다른 사내가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암, 어차피 우승은 검룡이지.”
딱.
잔이 부딪쳤다.
백도 무림의 새로운 신성이 떠올랐으나,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 있었다.
검룡 남궁진천.
이번 세대의 주인은 바로 그라는 것.
서현의 어느 밤, 객잔의 세 사내는 이어질 승부를 고대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
“목아우, 그 말 들었나?”
“음? 무슨 말 말이오?”
“목아우에게 새로운 별호가 붙었네.”
“오오!!!”
장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객잔.
오늘도 소면에 죽엽청으로 끼니를 떼우던 목리원이 벌떡 일어났다.
당화서 또한 마찬가지, 아직 조별 비무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 그에게 새로운 별호가 붙었다고 하니 속에 호기심이 떠오른 상태였다.
“빠르구나, 그래서 별호가 뭐라 하더냐?”
“옥면검(???)이라 하더구려.”
“….”
목리원의 몸이 쩌저적 굳었다.
표정 또한, 충격에 잔뜩 굳어진 채였다.
“…어?”
“옥면검 말일세, 옥면검. 비무를 끝내고 한숨을 내쉬는 모습조차 한 폭의 그림 같다던가, 그런 말을 들은 것으로 기억하네.”
목리원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얼굴 위론 불퉁한 기색이 가득 차올랐다.
쾅!
“나, 나는 그런 별호는 싫소!”
목리원이 식탁을 내려치자 제갈산은 낄낄 웃으며 몸을 뒤틀었고, 당화서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목 소협, 제갈 놈이 장난치는 것이잖습니까. 실제로 그런 얘기가 오가고 있다고 한들 누구도 그것을 별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별칭으로 아는 것이지.”
“그, 그래도…!”
“그래도?”
당화서가 서늘한 눈으로 목리원을 노려봤다.
목리원은 너무 억울해 죽을 것 같은 심정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반박하진 못했다.
목리원은 잔소리가 무서웠다.
‘소저도 참 너무하는구나!’
자신이 이리 모멸적인 별호에 민감한 것을 알면서도 이해해주려 하지 않으니 문득 원망이 차오른다.
눈매는 그런 마음에 따라 자연히 쏘아보는 형태로 바뀌었으나, 그래봐야 목리원의 얼굴이었다.
“과연! 옥면검은 새침한 얼굴도 일품이군!”
“제갈형!”
“끄흐흐흫… 미안하네!”
빠악!
“억!”
“나이 처먹고 아우나 괴롭히고 잘하는 짓이구나.”
제갈산의 장난기는 다행히 당화서에게 제지당했다.
당화서는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며 목리원의 죽엽청을 뺏어 마셨다.
“앗, 그건….”
“제 돈으로 산 것 아닙니까.”
“….”
목리원이 쭈그러들었으나 당화서는 그것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녀는 그 정도로 잔뜩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옥면검은 개뿔이.’
어쩐지 목리원이 출전하는 순서에만 계집들 비명소리가 그리 울리더니 뒤에서 그런 얘기가 오간 듯싶다.
열불이 나서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드는 와중.
참, 이런 순간조차 당화서는 가문에 대한 원망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빌어 처먹을 만독불침.’
술기운조차 죄다 해독해 버리는구나.
탁!
“…미안합니다. 속이 답답해서.”
“아니오. 그… 나도 미안하오. 이런 별호가 붙은 것이 소저 탓은 아닌데….”
목리원은 돌려받은 죽엽청을 양손으로 소중히 감싼 채 당화서의 눈치를 봤다.
그러는 중에도 데구르르 구르는 눈동자가 참 맑았다. 또한 아래로 눈이 내리깔리며 도드라지는 속눈썹이 가지런했다.
당화서는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심장이 삐걱거리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도 위험한 외모였다.
“…목 소협. 제가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혹 모르는 여인이 다가와 목 소협의 비무를 칭찬하거든 꼭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음? 알겠소.”
“그래요. 이 무림이 얼마나 험한 곳인데, 노인과 아이는 몰라도 여자는 꼭 조심하십시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리 성정이 물러터져서야, 엄한 생각으로 접근하는 여인들에게 못 볼 꼴을 당할 것이란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아니, 이미 선례로 남은 일이 있지 않은가.
‘백봉…!’
자신의 결승 상대인 백봉.
당화서는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비무회에서 계속 자신과 목리원을 예의주시하며 웃고 있었음을.
빠득.
당화서의 이가 갈렸다.
‘추잡한 창년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절대 목리원만큼은 안 된다고.
당화서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재차 투쟁심을 불태웠다.
물론, 그런 당화서의 속마음을 모르는 목리원과 제갈산은 그저 그녀가 무서울 뿐이었다.
*
시간이 흘러 다음 날.
비무장은 이제까지와 다른 열기를 띠고 있었다.
바로 죽음의 조라 불리우는 이 조의 4강.
괴룡과 권룡의 비무가 있는 까닭이다.
사실상 조별 결승을 앞둔 마지막 경기인 만큼, 관객들의 기대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스님, 살살 부탁드리오.”
“아미타불.”
온통 번잡스러운 와중, 일운은 합장한 채 불공을 외며 숨을 가다듬었다.
제갈산은 그런 일운의 기색에 왜인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제갈 형! 힘내시오!!!”
저 멀리서 목리원이 응원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리 큰 도움은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겠소! 괴룡 제갈산! 권룡 일운!]
사회자가 손을 높이 들었다.
제갈산은 품에서 옥돌을 꺼내 손안에 굴리며 단전의 내공을 풀어헤쳤다.
순간.
쾅!
빛살처럼 쏘아져 나온 일운이 제갈산의 발등을 노리고 주먹을 뻗었다.
제갈산은 그것을 눈치채고 빠르게 권을 피했으나, 그런 중에도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얘진 상태였다.
“무, 무스은….”
“아미타불.”
비무장 바닥이 으깨졌다.
저것이 저리 쉽게 으깨질 재질이 아닐 텐데도, 일운이 주먹을 거두자 돌 부스러기가 흘러내릴 정도로 잘게 으깨져 있는 것이다.
“스, 스님…?”
“아미타불.”
일운이 지그시 웃었다.
“우와아아아아아!!!”
일운의 권법에 관객들의 환호성이 더해졌다.
제갈산은 그제야 느꼈다.
‘이거….’
잘못하다간 이승에서 하직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미타불.”
제갈산이 삐걱삐걱 일운을 바라봤다.
아직도 ‘아미타불’하고 중얼거리는 일운의 눈에 서늘한 기색이 가득 자리해 있었다.
그랬다.
그는 아직도 제갈산의 입을 다물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쯤되면 믿고 내버려두어도 되겠지만, 하필 제갈산의 평소 행실이 너무 경박 했던 게 문제였다.
일운이 생각해낸 방법은 하나.
차마 살계까지 열 수는 없는 만큼 압도적인 무력의 격차를 보여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 공포를 심는 것.
“아미타불.”
제갈산의 판단은 빨랐다.
“항보….”
쾅!
“…옥. 항복! 항복! 항보오오오옥!!!”
제갈산은 기겁하며 도망쳤다.
일운은 그제야 만족스레 웃으며 또 합장했고, 관객들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끝난 승부에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뭐야?”
언젠가 객잔에서 권룡이 4강에 오를 것이라 점지했던 사내는,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를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
같은 날 밤.
수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목리원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낮의 일을 되새겼다.
‘일운 스님, 과연 엄청나셨다.’
제갈산이 빠르게 항복해 많은 수를 보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권에 실린 무학 정도는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분명 소림의 72예(?) 중 하나인 금사장(??)일 테지.’
장법이 아닌 권법이긴 했으나, 비무장을 바닥을 으깬 그 힘의 원천이 금사장인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맨바닥을 으깨던 그의 주먹에서 내공은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외공으로도 그런 일이 가능하구나.’
흥겨움이 더해진다.
목리원은 그 주먹에 내공까지 실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기대감에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아무렴, 목리원은 자신의 다음 상대로 일운이 올라오길 바라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이틀 뒤엔 자신의 조별 결승.
다음 주면 각 조의 우승자들끼리 경합하는 4강.
조바심과 설렘이 섞이며 기분 좋은 떨림을 자아내는 것에 목리원이 흥겹게 걸어가던 중.
“어머, 목 시주님?”
여인의 목소리가 목리원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오싹.
전신에 돋아나는 닭살.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끝.
삐걱삐걱 고개를 돌린 목리원의 시야에 보이는 인물은.
“이것 참, 기막힌 우연이네요?”
자신을 보며 싱긋 웃는 백봉 혜운이었다.
“히익!”
달조차 구름 뒤에 숨은 어두운 밤.
목리원은 허여멀건 혜운의 모습에 귀신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펄쩍 뛰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