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오장 용봉지회 (5)
* * *
짙푸른 동공을 마주한 순간, 목리원은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찰나가 무한히 늘어나는 감각.
또한 이 세상에 그와 자신만이 남아있는 듯한 감각.
그와 함께 떠오른 감정은 목리원으로서도 무어라 정의해야 할지 애매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굳이 닮은 것을 꼽아보자면 열기, 투쟁심, 이끌림 따위의 단어가 있을 것이리라.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그 감각은 계속해서 심장을 두드리며 외쳤다.
집어삼켜라.
라고.
‘제왕성(?王?).’
제왕의 별.
군림자의 별.
그리고 축복의 별.
전혀 다른 극단에 있는 새로운 별의 등장에, 그의 심상 속에 깃든 별이 기지개를 켜는 것이었다.
목리원의 시선 끝, 남궁진천의 미간이 슬쩍 좁아졌다.
그러다 원래의 안색을 되찾으며 목리원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목리원은 그제야 멀어졌던 소리와 감각들이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목 소협?”
“…아, 아니오. 잠시 멍해졌구려.”
목리원은 머쓱한 듯 웃으며 당화서의 부름에 답했다.
그리하며 마지막으로 남궁진천을 흘긋 보곤 시선을 거뒀다.
당화서는 그 모습에 헛웃음을 턱 내뱉으며 말했다.
“겨뤄보고 싶으십니까?”
“음?”
“딱 그런 얼굴이셔서.”
목리원은 입가를 매만지다가, 그제야 자신이 미소를 짓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
그런 것이었나.
“그럴지도 모르겠소.”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손이 근질거렸다.
저 나이에 저 정도의 무학을 쌓은 이를 마주하자니 왜인지 수련이 하고 싶어졌다.
목리원은 남궁진천과의 비무가 어떨지를 떠올리니 좀처럼 몸이 통제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곳엔 대단한 사람이 많구려.”
“그러니 ‘용봉지회(??會)’인 것이지요.”
용(?)과 봉(?)의 연회.
과연이라 해야 할까.
“음, 하지만 말이오.”
목리원은 씨익 웃었다.
그리하고선 주변엔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당화서에게 속삭였다.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드오.”
자리한 이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전한 진심.
당화서는 눈을 크게 뜨다,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목 소협 답습니다.”
“소저, 내가 이들을 모두 꺾는다면 용(?)의 별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이오?”
“모두 꺾지 않아도 증명만 한다면, 가능하지요.”
“음! 좋소!”
목리원은 허리를 바로 세운 후 자신감 넘치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내 이번 용봉지회를 기점으로 협룡(??)의 칭호에 도전해보겠소!”
그놈의 협.
당화서는 그런 생각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미소를 떠올려버렸다.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제갈산은 낄낄 웃으며 목리원에게 말했다.
“글쎄, 일단 목아우도 알다시피 별호는 원하는 대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네. 내 생각에는 목아우가 용의 별호를 얻으면 옥룡(??) 정도가 아닐까 싶군.”
“어허! 제갈형도 너무하시오! 나는 옥이 아니라 협이 좋소!”
“어련하실까요.”
세 사람 사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백봉 혜운은, 갑작스레 자신만 소외된 상황에 묘한 감상을 느꼈다.
이를 굳이 표현하자면 그랬다.
감히 날 앞에 두고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인가.
‘정말….’
재밌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함락시키는 맛이 있는 것이겠지.
혜운은 얼핏 위험하게도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목리원을 바로 바라봤다.
목리원은 그 눈살에 그제야 잊고 있었던 혜운을 떠올리며 움찔 몸을 떨었다.
몸은 또 주춤주춤 당화서의 뒤로 숨기는 와중.
“멋진 목표입니다. 아, 어서 대진표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싱긋.
혜운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저도 목 시주님의 검을 견식 해보고 싶은지라.”
오소소.
목리원은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기분을 느꼈다.
“그, 그렇소…?”
목리원은 맹수 앞에 홀로 내던져진 토끼처럼 덜덜 떨며 당화서의 소매를 붙잡았다.
혜운은 등골이 짜릿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에 따르는 당연한 수순으로 당화서의 얼굴에 분노가 자리했다.
“대진표는 곧 나올테니 그리 채근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저 기대감을 표출한 것이지요.”
“글쎄, 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목 소협이 스님과 붙는 일은 없을 것 같구려.”
당화서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 손등 위로 울긋불긋 튀어나오는 힘줄에 제갈산이 ‘히익’ 소리를 냈다.
“스님은 목 소협을 만나기 전에 날 먼저 볼 것 같거든.”
“꺾고 올라가겠네요. 제가.”
“자신감과 오만은 다른 개념인 줄로 아오.”
한 치도 물러섬 없는 공방.
그 권룡 일운조차 마른침만 꼴깍대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 혜운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예, 그것 또한 재밌겠네요.”
혜운이 검지로 제 입술을 두드렸다.
그러다 목리원을 핥듯이 훑어보곤 싱긋 웃으며 물러섰다.
“아, 그럼 저는 이만. 다른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지라.”
“살펴 가시오.”
가다가 똥이라도 밟아버려라.
당화서는 속으로 그런 저주를 퍼부으며 떠나는 혜운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목 소협.”
“으음…?”
“저 색봉이 또 다가오거든 무조건 도망치십시오. 아니, 저한테 오십시오. 저년 눈빛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목리원은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
연회는 그리 끝이 났다.
이튿 날 아침, 목리원은 장원의 대문 앞쪽으로 붙은 대진표를 보며 ‘오!’하는 소리를 냈다.
“사조요! 당 소저는….”
“삼조군요.”
당화서는 그리 답하며 대진표를 유심히 살폈다.
찾는 사람은 하나, 저 어딘가에 있을 백봉 혜운의 이름이었다.
바삐 눈을 굴리길 잠시, 당화서는 드디어 찾은 혜운의 이름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삼조.’
같은 조다.
대진 순서로 보면 삼조의 결승에서 그녀와 만나게 될 터.
“딱 좋은 자리군요.”
으드득.
당화서가 손을 풀자 살벌한 소리가 일었다.
목리원은 덜덜 떨리는 시선으로 그녀를 훔쳐보다, 이내 눈을 돌려버렸다.
‘음, 소저는 백봉과 사이가 많이 안 좋구나.’
괜히 자극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이조구먼!”
제갈산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 곁엔 어느새 다가온 일운이 지그시 웃으며 말을 받고 있었다.
“저와 같은 조군요. 아, 저기 선룡(??)도 저희 조에 있습니다.”
제갈산은 왜인지 서늘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에 서늘함을 느끼곤 애써 웃는 상을 만들었다.
“그… 사, 살살 부탁하오.”
“그리해서야 되겠습니까. 비무대회인데 최선을 다해야지요.”
“….”
이 스님이 왜 이럴까.
제갈산의 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제갈산은 모를 것이었다.
지금 일운이 그의 입을 다물릴 방법을 수십수백 가지나 떠올리고 있음을.
“남궁진천은 일조군요.”
와중 튀어나온 당화서의 말에 이들의 시선이 대진표를 향했다.
그녀의 말대로, 남궁진천은 다른 용봉이 없는 일조에 홀로 떨어져 있었다.
제갈산의 눈이 좁아졌다.
“…조작 아니오?”
“조작은 무슨.”
“그렇지 않소. 이번 용봉지회를 주관하는 것이 남궁세가잖소.”
“남궁진천이 어디 조작이 필요한 사내더냐. 뭐, 만약 조작을 한다 해도 의도는 그런 것이겠지.”
당화서의 눈이 좁아졌다.
“…최대한 자리를 줄 테니까 올라올 수 있는 만큼 와봐라.”
참으로 오만한 발상.
하나,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자리한 이들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검룡 남궁진천은 독보적이다.
이번 대의 후기지수 중, 정사를 통틀어 그와 견줄만한 이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이것이 조작된 대진표라 한들, 자리한 이들은 그 오만함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세인 것이다.
“으음… 그 정도로 대단하단 말이오?”
목리원은 저들끼리 무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일행을 보다,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못 이길 정도는 아닌 듯한데.’
분명 내력은 자신이 뒤처지고 있긴 하나, 본디 비무라는 것은 공력의 싸움이 아닌 검과 검을 맞대어 우열을 겨루는 것이 아니던가.
무공의 사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주 못해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그런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아직 그의 검을 제대로 모르는 만큼 속단은 일렀으나 목리원은 자신이 있었다.
‘창성검보단 못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남궁친전은 초절정에 이른 창성검보다는 훨씬 뒤떨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검술로 모자란 공력을 메꿀 수 있었다.
“…목 소협이라면 뭐, 그래도 좋은 승부는 보일 것 같군요.”
당화서는 쓰게 웃으며 속에 걱정을 띄워 올렸다.
‘너무 상심하진 않아야 할 텐데.’
남궁진천의 무위를 실제로 보지 않은 이들의 대부분이 목리원과 같은 생각을 한다.
무공은 공력으로 결정되는 싸움이 아니니 자신도 해볼 만할 것이라고.
‘…공력 싸움이 아니기에 이길 수 없는 것일진대.’
검룡 남궁진천.
그의 진면모는 절정의 끝자락에 이른 공력이 아닌, 검 그 자체에 있었다.
*
나흘이 더 흐른 날.
용봉지회가 막을 열었다.
“와아아아아아!!!”
거센 함성 소리가 고막을 두드린다.
또한 사람이 모이며 응집된 열기가 피부 위로 내려앉는다.
목리원은 그 광경들에 눈을 반짝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람이 정말 많소!”
“예, 참가자인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당화서는 그리 말하며 비교적 널널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숨을 돌렸다.
참가자들의 대기석인 비무장 북쪽 좌석을 제외한 다른 삼방향은, 앉을 자리도 없어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모두 예선에서 탈락한 이들이거나, 먼 곳에서 이 회를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구경꾼들이었다.
“총 64강. 조별로 16강을 치른 뒤 조의 우승자들이 4강에 오르는 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음! 다행이오! 제갈형과 소저가 모두 다른 조니, 우리 모두 결승에 오를 것 아니오.”
“제갈 놈은 모르겠습니다만… 예, 저는 확실히 4강에 오를 생각입니다.”
혜운을 찢어발기고 올라가리라.
그런 생각에 당화서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럼 용봉지회의 첫 경기를 시작하겠소!]
와중, 내력이 실린 거대한 목소리가 회장을 가득 메웠다.
자연히 커지는 함성과 혼란.
그 속에서 당화서는 말했다.
“잘 봐두십시오.”
비무장 위로 두 사내가 올라온다.
[먼저, 하북의 섬도(??) 양허!]
허름한 옷을 입은 지저분한 사내가 허리춤에 도를 찬 채 올라선다.
예선 경기에서 특출난 모습을 보인 하북 출신의 낭인이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
[상대는 이 회의 우승 후보! 백도 무림의 미래라 일컫는 용 중의 용!]
짙푸른 동공이 인상적인 날카로운 미남자가 검을 든 채 올라선다.
그의 등장과 함께, 회장의 분위기는 더없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검룡(??) 남궁진천!]
“와아아아아!!!”
목리원은 그 모든 눈에 담았다.
‘저것이 차기 천하제일인.’
드디어 그의 검을 견식 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속엔 묘한 긴장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꽈악.
목리원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럼 시작하겠소!]
사회를 보던 이가 손을 높게 든다.
그리고.
채애앵!
일 초에 승패가 갈렸다.
*
압도적이다.
그리고 무겁다.
목리원이 남궁진천의 검을 보고 내린 평가였다.
두 무인의 공력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쌓은 위명의 차이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검(?) 하나만을 보고 내린 평이었다.
경기의 시작과 동시에 빛살처럼 뻗어 나간 양허의 검이, 그리 빠르지 않게 내리그어지던 남궁진천의 검에 두동강 났다.
다른 구경꾼들은 그저 압도적인 승부에 함성을 내지르기 바빴겠지만, 어느 정도 공력을 쌓은 이들은 그 일 초에 깃든 묘리에 벽을 느꼈으리라.
세간은 남궁의 검을 이르러 말한다.
제왕의 검.
이 무림의 하늘 위로 군림하는 검이라고.
남궁진천의 검은 그런 말이 찰떡같이 어울릴 정도로 중압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내가 한다면….’
목리원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상상했다.
그와 같은 검을 펼칠 스스로를.
‘…할 수 없다.’
아니, 정확히는 ‘흉내’ 정도밖에 낼 수 없을 것이다.
재능의 차이가 아닌, 배우고 익힌 무학의 차이였다.
성련신공과 유성칠검은 끊임없는 흐름을 본으로 삼는 무학이다.
내공을 억지로 밀어 넣어 순간의 파괴력을 싣는다 한들, 그것이 옳게 무공을 사용하는 법은 아닌 것이다.
인정한다.
남궁의 검은 강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성련이 저 검에 뒤처지는가?’
재차 떠오른 질문.
그리고 목리원은 확신했다.
‘절대 아니다.’
성련은 강하다.
자신은, 그리고 목선오의 가르침은 남궁의 검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4조의 경기를 시작하겠소!]
내력이 실린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목리원은 슬그머니 눈을 뜨고 정면을 바라봤다.
“다녀오겠소.”
“응원하겠습니다.”
목리원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비무장 위에 섰다.
[자, 이곳에 새로운 신예가 나타났소! 그간 정체되어있던 후기지수들의 서열에 감히 도전장을 내민 젊은 고수! 강서의 수양현에서 단신으로 흑도를 괴멸시킨 협사!]
비무장에 그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묵검(??) 목리원!]
“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악!!!”
함성소리가 귀를 찌른다.
온 전신이 다 울릴 정도로 그 소음이 커져간다.
그런 중에도 목리원은 가라앉은 마음으로 정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하며,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갈 뿐이었다.
‘겨뤄보고 싶다.’
남궁진천과 우열을 가리고 싶다.
혹여 있을 자신의 모자람.
그것을 깨닫고 극복하기 위해선 그와의 비무가 필요하다는 직감이 목리원의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상대는 조가장의 장남, 조철!]
목리원은 상대를 바라봤다.
어딘가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젊은 사내가 있었다.
‘미안하오.’
목리원은 그에게 미리 사과했다.
지금 목리원의 안중에 이제 겨우 일류 중입에 오른 젊은 무인은 없었기에.
스릉.
자신이 바라보는 것은 더 높은 곳이었기에.
[시작하겠소!]
목리원은 그를 다만 이용할 것이었다.
채애앵!
비무의 시작과 동시에 조철의 검이 두동강 났다.
높게 떠오르는 검날의 반쪽.
비무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
썩어도 무인이라.
이 비무회를 구경 온 이들 모두가 그 한 수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꼭 축제의 시작에서 남궁진천이 썼던 것과 같은 수.
거력을 실은 중검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그 수에 담긴 의미를.
‘도전장.’
이것은 신인이 왕좌에 도전장을 내미는 행위였다.
목리원의 시선이 남궁진천을 향했다.
남궁진천 또한, 직전보다 확연히 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재차 함성이 울렸다.
오늘 나온 함성 중 가장 큰 소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