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1화 (21/334)

〈 21화 〉 사장 ­ 안휘 (2)

* * *

목리원에게 묵검이란 별호가 생기고도 몇 주가 지난 날.

두 사람은 드디어 안휘성에 도착했다.

“오오…!”

대로를 따라 보이는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양옆으로 쭉 이어진 상점들.

소란스러운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는 거리에 목리원의 표정은 맑게 개고 있었다.

“소저! 저것은 무엇이오?”

이리 번화한 곳에 오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질문.

당화서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런 목리원의 질문에 답을 건넸다.

“노점상입니다. 주로 간단한 주전부리 같은 것을 파는 곳이지요.”

“닭 냄새가 나오.”

“예, 닭고기군요.”

목리원의 목젖이 꼴깍 움직였다.

먹을 것이라니 구미가 당기는 듯했다.

당화서는 이리 나온 김에 못 사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노점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저기 저 분 좀 봐!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생길 수가…!

­옆에는 누구야? 지가 뭔데 저기 있어?

젊은 여인들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꽂혔다.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진 탄성들.

어딜 가도 시선을 끄는 목리원의 외모에 대한 감탄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일이었으나, 마지막에 들려온 말이 당화서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

‘지가 뭔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은 대체 무슨 예의범절인가.

당화서는 눈에 쌍심지를 켠 채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나 보자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 있는 것은 허리에 검을 찬 젊은 여인들.

입고 있는 옷은 하나 같이 새하얀 무복이었다.

당화서의 미간이 팍 좁아졌다.

‘…아미파.’

구파일방 중 하나인 아미파의 비구니들이었다.

머리카락이나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니 속가제자인 듯했다.

‘그래, 슬슬 저런 것들도 보일 곳에 왔단 말이지.’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여승들의 모습에 당화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주먹은 불끈 쥐어지고 있었다.

차오른 화를 참기 위함이었다.

‘…다음 마을이 회장이다.’

용봉지회가 열리는 곳까지 앞으로 마을 하나.

아미파의 여승들이라면 분명 그곳에 참여할 터이니, 저 발칙한 주둥아리를 벌하는 일은 미뤄도 될 터.

당화서는 괜히 차오르는 짜증에 혀를 쯧 하고 차며 목리원에게 말했다.

“목 소협, 이만하고 가지요.”

“으응? 알겠소!”

당화서가 불편한 심기를 가득 드러내며 걸음을 옮겼다.

내내 닭고기나 바라보고 있던 목리원은 시무룩해진 얼굴로 당화서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

마을 중앙의 객잔.

당화서는 이번에도 소면과 죽엽청으로 끼니를 떼우는 목리원을 보며 생각을 이었다.

‘용봉지회에 참여하는 목적은 하나.’

당문에서 함부로 자신을 노리지 못할 공개적인 장소가 필요한 이유다.

숨어 움직이는 일은 불가능함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 반대로 행적을 만천하에 알려 그들의 발을 묶어버리는 것이다.

‘비무회가 이어지는 동안은 당문에서도 나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게 옳았다.

가주의 성격상, 가문의 인간이 대외 행사에서 이름을 높이는 걸 막을 리가 없었으니.

‘목표는 권룡(??)과 접선하는 것.’

이번 세대 소림을 대표하는 후기지수, 권룡 일운을 만나야 했다.

그를 통해 소림의 방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면 안휘에서의 일은 끝.

곧장 그와 함께 소림사로 향하면 회가 끝난 후에도 가문은 자신에게 간섭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당화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제 안휘에서 일을 끝내면 목리원과도 헤어져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아니, 헤어지는 게 맞긴 했다.

애초에 용봉지회까지만 함께하기로 한 약속이었고, 이후의 일정은 그와 함께하긴 곤란한 구석이 많지 않던가.

돌연 당화서는 왜인지 속이 답답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너무 정이 들어버린 건가.’

어쩌면 헤어진 이후에 온종일 곁에서 재잘대던 그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소저?”

“아, 예.”

“밥은 안 드시오?”

당화서는 목리원을 바로 바라봤다.

목리원은 제 몫의 식사를 다 끝내곤 그녀의 앞에 있던 생선 요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드시겠습니까?”

“그래도 되오?!”

“드십시오. 저는 입맛이 없어서.”

목리원이 해맑은 얼굴로 생선살을 콕 찝어 먹었다.

그리하고선 얼굴을 이리저리 펴며 행복한 기색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너무 맛있구려…!”

어찌 먹는 것 하나로도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잡생각이 확 달아나는 기분.

당화서는 ‘이게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는 기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길 잠시.

“소협, 저는 잠시 들를 데가 있는데 혹 잠시만 혼자 계실 수 있겠습니까?”

“음?”

“홀로 다녀와야 하는 장소여서 말입니다.”

당화서는 목리원에게 그리 일렀다.

이리 홀로 움직이려는 이유는 하나.

수양현을 떠날 적 부하들에게 맡겨둔 조사 결과를 들으러 개방에 가야 했던 까닭이다.

개인적인 사정인 만큼 그가 깊게 연관되어 변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내뱉은 말에 목리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나 혼자서 거리를 구경하고 있겠….”

“아니요. 가만 앉아 있으십시오.”

당화서의 표정이 굳었다.

목리원은 움찔 몸을 떨다, 조심스럽게 당화서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렇소…?”

“길이라도 잃으면 어떡합니까. 또 모르는 사람을 따라갔다 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목리원은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 빵!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소저도 참! 내가 무슨 어린애요? 그런 걱정을 다하게.”

어린애가 맞으니까 이런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라는 말을 면전에 대고 하기엔 당화서의 마음이 너무 여렸다.

“…아무튼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여기 앉아 계십시오.”

“구경….”

“대답.”

“…알겠소.”

시무룩해진 목리원의 표정에 당화서는 미안함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당화서는 진심으로 그가 걱정됐다.

지금 당장만 해도 여기저기서 그를 훔쳐보는 여인들이 보이는데 넓은 곳으로 나갔다간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는 것 아닌가.

당과를 사주겠다고 하면서 그를 꼬드기는 색녀가 있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알겠지요. 소협? 모르는 사람이 어딜 가달라고 부탁해도 함부로 들어 주면 안 됩니다. 특히 당과를 사주겠다는 사람은 조심해야 해요. 아, 함께 술잔을 기울이자는 사람이 있으면 꼭 무공을 배운 이인지 확인하셔야 하고….”

차오르는 걱정에 이어가는 잔소리.

목리원은 ‘나는 어린애가 아니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아야만 했다.

괜히 잔소리가 더 길어지는 것은 원치 않는 까닭이었다.

*

당화서가 떠난 객잔의 구석 자리에서 목리원은 술잔을 기울였다.

거리 구경을 막는 당화서에 대한 불만이 조금은 있었으나, 그럼에도 목리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제아무리 인간관계에 무지한 목리원이라고 해도, 그녀가 자신에게 얼마나 잘해주는 것인지 모르진 않던 까닭이다.

왜 아니겠는가.

처음 강호로 나온 수양현에서 지내던 중,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잘 알아내지 않았던가.

‘소저는….’

목리원은 당화서에 대한 생각을 이었다.

역시 처음 생각했던 대로 엄청난 미인.

목리원은 수양현에서 이곳 안휘까지 오며 당화서보다 예쁜 사람을 본 일이 없었다.

그것뿐이던가, 당화서만큼 타인에게 친절한 이도 본 일이 없었다.

‘소저를 따라오길 잘했다!’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봐도, 협객이 되기 위해선 당화서를 따라오는 게 맞다는 확신이 차오르는 와중.

목리원은 심장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언제쯤 오실까.’

돌연 떠오른 어서 당화서가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탓이었다.

어느새 얼굴 위로 피어난 미소.

그에 따라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목리원의 모습에 누군가가 또 상사병을 앓기 시작하는 와중.

“이보시게!”

탁­!

누군가가 목리원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목리원은 고개를 들었다.

“음?”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사내였다.

꼭 족제비 같은 얼굴이라 말해야 할 인상.

쭉 찢어진 눈과 날카로운 콧대, 그리고 능글맞은 미소에 목리원은 가장 먼저 그것을 물었다.

“형장은 누구시오?”

“아,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구려!”

히죽히죽 웃는 얼굴.

그리고 그 어딘가 묻어나는 장난스러운 기색.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목리원에게 말했다.

“본인은 왕모라 하오. 다름이 아니라 이리 홀로 술을 기울이는 형장을 보니 그 사연이 궁금해져 와보았소.”

목리원은 눈을 끔뻑이며 사내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머쓱한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일행을 기다리는 중이오. 관심은 감사하나, 갈 길을 가셔도 될 것 같소.”

“으, 응? 아니, 그러지 말고….”

“미안하오.”

목리원의 미소가 진해졌다.

하나, 언제나와 같은 순박한 미소는 아니었다.

“일행이 갑작스레 찾아오는 무인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말이오.”

“무슨….”

“특히 일류 이상의 무인이라면 말이오.”

사내의 몸이 흠칫 떨렸다.

잠시 그 표정이 흔들렸으나, 이내 웃는 낯으로 돌아갔다.

“에이, 형장도 무슨 농을 그리하시오. 날 보시오. 입고 있는 이 의복이 보이지 않소? 그리고 여기 이 붓과 서책도. 나는 관직에 오르기 위해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학도….”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사내의 말이 이어지던 중 돌연 목리원이 던진 젓가락이 있었던 까닭이다.

텁­!

사내는 미간 한가운데로 쏘아지는 젓가락을 손으로 잡았다.

그러자 목리원이 말했다.

“학도라고 말하기엔 내기가 실려있는 것도 잘 받아내는구려?”

목리원은 기색은 사뭇 날카로웠다.

‘정체를 숨긴 이들을 조심하라 했던가.’

당화서의 당부가 아니었더라도, 이리 강호에 내려오기 전 목선오와 마일석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경고한 내용 중 하나였다.

목리원은 낭만과 풍류에 대한 기대감을 품은 이었으나, 또한 타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이였다.

뜻밖의 만남이라며 그를 반기기엔 그의 내력이 너무 의심스러운 것이다.

사내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것이….”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다.

사내는 목리원에게서 피어오르는 기운에 난처함을 드러내었고, 목리원은 이런 와중에도 변명하지 못하는 사내의 모습에 의심을 더하고 있었다.

순간.

“뭐 하는 짓거리더냐.”

맑은 미성이 둘 사이를 파고들었다.

목리원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환하게 얼굴을 밝혔다.

“소저!”

그곳에 있는 것은 시린 눈빛으로 사내를 쏘아보는 당화서였다.

목리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당화서에게로 향해 싱글벙글 말을 쏟아냈다.

“일은 잘 끝마치고 오셨소? 꽤 빨리 끝나셨구려!”

“예, 소협도 자리에 잘 계셨군요. 잘하셨습니다.”

당화서는 목리원을 향해 싱긋 웃어준 후, 재차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는 이제와 김이 빠진 듯한 얼굴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에이, 벌써 오시면 어떡하오.”

목리원의 눈이 깜빡였다.

지금 사내가 건네는 말은 분명, 당화서를 향한 것인 까닭이다.

또한 그 어조엔 당화서와 안면이 있는 듯한 기색이 묻어있는 까닭이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목리원이 멍한 얼굴을 만들던 중, 사내가 다시 한번 말을 덧붙였다.

“오랜만이오. 누님.”

당화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몇 번째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네놈 누이가 아니다.”

“소, 소저…?”

당화서는 목리원의 말을 흘려넘기곤 재차 사내에게 말했다.

“다시 물으마.”

“음?”

“내 일행에게 무슨 짓거리를 하려던 것이었느냐.”

당화서의 어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이어 그녀가 내뱉은 것은 사내의 이름.

“제갈산.”

목리원의 입이 떡 벌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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