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사장 안휘 (1)
* * *
목리원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하루가 더 지난 날이었다.
깨어난 곳은 잔혈곡의 출구에서 말을 타고 반나절은 더 가야 하는 마을.
일정을 늦출 수 없었던 당화서가 그를 업고 그곳까지 간 것이었다.
“으음….”
“일어나셨습니까.”
귓가에 꽂히는 날 선 목소리에 목리원은 눈을 굴렸다.
낯선 천장과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
그리고 따스한 온기가 가득한 방 안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것은.
“소저?”
화난 얼굴의 당화서였다.
목리원은 눈을 끔뻑였다.
그러던 중, 차갑게 식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던 당화서가 입을 열었다.
“팔자 좋습니다?”
다짜고짜 내뱉는 말이었으나, 그 기색이 참으로 날카로워 목리원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이 깨어나는 것은 빨랐다.
목리원은 깨어나기 전까지 있었던 일과 몽롱한 중 느꼈던 감각이 단번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흠칫 몸을 떨었다.
‘큰일 났다!’
이건 분명 혼이 날 만한 일이라는 생각에 삐질삐질 식은땀까지 흐르는 순간.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한숨을 푹 내쉰 당화서가 손을 뻗어 목리원의 이마에 댔다.
“몸은 어떠십니까?”
당화서의 손은 차가웠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눈 밑이 거뭇거뭇한 것이 잠을 설친 것처럼도 보였다.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사실.
쓰러진 자신을 이곳까지 나른 것은 당화서고, 그녀가 이리 피곤해 보이는 이유는 자신을 간병하느라 잠을 설친 까닭이리란 것.
목리원은 어깨를 움츠리며 답했다.
“괘, 괜찮소…. 폐를 끼쳐서 미안하….”
“미안한 줄은 아십니까?”
찌릿.
당화서가 눈을 흘기자 목리원은 입술을 꾹 오므렸다.
“왜 그러셨습니까?”
“그, 그게….”
“피독주가 남지 않았으면 미리 말을 하셨어야지요. 그럼 제가 다른 방책이라도 찾았을 것 아닙니까.”
“죄소….”
“말로 넘어갈 생각일랑 추호도 하지 마십시오.”
당화서의 눈이 화르륵 타오르는 것 같은 기분은 착각일까.
이어진 일은 목리원에게 교훈으로 새겨질 일이었다.
“잘 들으십시오. 몸이 아프면 말을 하는 것이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예절이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소협이 그리 죽고 못 사는 협에 어긋난 일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 저는 도통 이해가 안 되는데, 이미 지나간 일이니만큼 이 부분에 대한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다가는….”
이날의 목리원은 깨달았다.
앞뒤 안 재고 냅다 일을 저지르면 당화서가 몇 시진이나 잔소리를 한다는 것을.
*
깨어난 이후의 회복은 빨랐다.
애초에 육신보단 내상이 깊어 쓰러져있었던 것이었고, 그 내상 또한 당화서가 부단히 노력하며 독기를 빨아낸 덕분에 그리 심한 손상을 입히지 않은 까닭이다.
그것뿐만이겠는가.
천운이 닿았다고 말하는 게 옳은 일.
목리원에겐 지금 인면지주의 내단이 있었다.
영물이 살아생전 모은 자연지기가 단약의 형태로 꽁꽁 뭉쳐진 그것 말이다.
독기를 밀어내고 손상된 내기를 회복하기에 이만큼 좋은 상황이 없으리라.
스으으.
목리원은 당화서가 미리 가공해둔 내단을 섭취한 후 가부좌를 튼 채 내기를 운용했다.
3성에 이른 성련신공의 내력에 내단의 내기가 더해져, 공력의 크기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세 개의 별이 목리원의 심상 속에서 아스라이 빛났다.
그 별을 잇는 반투명한 길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언제나 자세히 집중하지 않으면 그 흐름을 관측할 수 없었던 길이, 지금은 들여다보는 순간 그 흐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진해져 있는 것이다.
길의 완성이 코앞에 있었다.
이는 별과 별을 잇는 성련의 이치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일 갑자가 코앞에 있구나.’
60년치의 내력에 해당하는 1갑자가 코앞이다.
약 5년 치 정도의 공력만 더하면 될 터.
성련은 무분별한 성장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무공이다. 심기체의 합일. 그리고 신공의 각 구성요소의 균형적인 성장으로만 그 웅혼함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게야. 그러니 원아, 너는 섣불리 내력을 늘리는 선택을 해선 안 된다.
경고를 하던 목선오가 이어 한 말이 있었다.
‘별 세 개째에 일 갑자.’
그리고 별 다섯 개째에 이 갑자를, 그 후로 8성까지는 일 갑자당 별 한 개를 더 이어야 한다고 했다.
8성 이후는 아직 먼일이니만큼 제쳐두고.
당장의 현상만 따지면, 목리원은 이제 진정으로 성련의 3성을 완성 앞에 두게 된 것이다.
‘3성의 완성은 곧 절정지경의 완성.’
아직 초입에 이른 자신을 완전한 절정으로 만들 순간.
즉, 성련신공의 입문과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목리원은 내기를 수습하고 눈을 떴다.
그를 반기는 것은 침대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당화서였다.
“끝났습니까?”
“호법 고맙소!”
“호법은 무슨, 그냥 방에 앉아있었을 뿐인 것을.”
당화서는 그새 기운을 차린 목리원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참 속 터지게 만들다가도, 이리 웃는 모습만으로 사람 기분이 풀어지게 만드니 요망해도 이리 요망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치밀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마저 묵고 갈 것입니다. 슬슬 해가 지고 있으니, 식사만 끝내고 다시 돌아와 자도록 하지요.”
“알겠소!”
그리 말하고 일어나는 순간, 목리원은 멈칫 몸을 멈춰 세웠다.
“…잠깐, 여기서 말이오?”
목리원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사실 하나가 있었다.
지금 잡은 방은 자신의 간병을 위해 당화서와 함께 쓰던 방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은 모든 독기를 털어내고 멀쩡히 일어났다.
즉, 오늘은 맨정신으로 당화서와 함께 자야 한다.
화아악!
목리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떠오르는 엄한 상상에 눈을 핑글핑글 돌아가고 있었다.
‘마, 망측하여라!’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했거늘 어찌 과년한 남녀가 한 방에서 밤을 지세운단 말인가!
아니, 이것은 혹시 소저의 치밀한 계략일 수도….
빠악!
이어지던 생각이 당화서의 딱밤에 끊겼다.
“끄윽!”
“엄한 생각은 집어치우십시오. 나이도 어린 게 벌써부터 그리 밝혀서야.”
“무, 무슨 소리를…!”
“눈빛이 음흉합니다.”
목리원이 바로 쭈그러들었다.
당화서는 그 꼴에 헛웃음이 턱 나오는 것을 느꼈다.
‘이러니 혼자 둘 수가 있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보이는 주제에 거짓말도 못 친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라곤 아이들이 하는 수준에서 그쳐 버리니, 당화서로선 그를 보며 남자보단 돌봐야 할 동생이라는 생각을 먼저 해버리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저 이쁜 얼굴로 헤프게 웃고 다니다 엄한 색녀에게 끌려가면 그보다 속 터지는 일이 또 어딨겠는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간 뒷골이 확 당겨 화병으로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정신 차리고 나오기나 하십시오. 소협이 그리 좋아하는 소면에 죽엽청으로 사드릴 테니.”
“응? 오오!”
목리원이 바로 기운을 차리곤 쫄래쫄래 당화서의 뒤로 따라붙었다.
“가서 괜히 큰 소리 내지 마시구요.”
“응? 왜 그렇소?”
그야 시선이 몰리지 않는가.
“식사하는 다른 분들께 폐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구려!”
어찌 이리 해맑을까.
당화서는 신나서 콧노래를 부르는 목리원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버렸다.
“갑시다.”
그리 말하며 계단을 내려가던 당화서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목리원을 향해 몰리는 시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
객잔은 분주했다.
본격적인 도시로 나온 만큼 사람이 많았고, 개중엔 듬성듬성 허리에 칼을 찬 무인들 또한 있었다.
목리원은 언제나 그랬듯 마시듯 소면을 흡입하며 당화서에게 말했다.
“소저! 사람이 참 많….”
“삼키고 말하십시오.”
꿀꺽.
“사람이 참 많소!”
“이제 안휘가 코앞이니 당연하지요.”
“무인들도 많소!”
“예, 용봉지회가 열리는 만큼 몰려드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목리원의 고개가 기울었다.
“용봉지회는 초대받은 이들만 입장할 수 있는 게 아니요?”
“회장은 그렇습니다만 그 주변은 아니지요. 용봉지회가 열리는 시기면 다음 세대를 이끌 명가의 자제를 보려 하는 이들과, 모인 이들과 겨뤄보려는 이들이 그 동네를 가득 메우기도 합니다.”
“오오…!”
목리원의 얼굴 위로 기대감이 떠올랐다.
“그것 참 구미가 도는구려! 나도 그들과 비무를….”
“목 소협은 저랑 회에 참여해야지요.”
“아차.”
목리원이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당화서는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런 목리원에게 말했다.
“꽤 좋은 볼거리일 겁니다. 너네 가문보다 우리 가문이 낫니, 올해 청룡비무회 우승은 우리 문파일 것이라느니. 저들끼리 싸우는 꼴을 보고 있으면 퍽이나 유쾌해지지요.”
씨익 웃는 모습이 어딘가 위험해 보였다.
목리원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차갑게 웃는 당화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다, 당소저는 싸움 구경을 좋아하는구나…!’
새로운 정보였다.
“아무튼, 올해면 만날지도 모르겠군요.”
“음? 누구 말이오?”
“남궁진천.”
목리원의 얼굴 위로 의문이 떠올랐다.
그제야 그가 강호의 소문에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은 당화서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남궁가의 소가주입니다. 검룡(?)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고, 세간에서 그를 평하길….”
당화서의 말에 목리원이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고개까지 앞으로 쭉 빼밀며 다음 이어질 말을 기다리던 중.
“자네, 그 소문 들었나? 강서성 수양현에서 새로운 젊은 고수가 나타났다더군.”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말에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
짧은 순간, 서로를 바라본 두 사람은 이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낭인으로 보이는 무인이 술잔을 기울이며 맞은편의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음? 젊은 고수 말인가?”
“그렇네! 무려 절정지경의 고수지! 듣기로는 많아 봐야 이십 대 초반쯤일 것이라 하더군. 글쎄 단신으로 흑도에 쳐들어가 그곳을 괴멸시켰다고 하지 않나.”
낭인의 말이 이어질수록 당화서의 얼굴이 멍해졌다.
‘저거….’
암만 봐도 목리원의 이야기였다.
어떻게 그 소문이 벌써 여기까지 퍼졌나 하는 것은 둘째치고, 말을 듣는 순간 당화서의 신경이 몰리는 곳은 한군데였다.
“소협?”
목리원의 시선이 낭인을 꿰뚫을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얼굴 위로 떠오른 기색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기대감.
지금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에,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세상에, 그 젊은 나이에 절정지경에 올랐단 말인가? 헛소무….”
“예끼! 이 사람아!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이 몇인데 내가 헛소문을 들고 왔겠나!”
“그, 그렇다면…!”
“출신은 모르네. 그곳에서 그를 봤던 이들은 그가 어딘가에 은거해있던 신비 문파의 후계자라는 말을 하더군!”
멈칫.
목리원의 몸이 떨렸다.
당화서는 눈을 좁힌 채 목리원이 하는 꼴을 바라봤다.
‘진짜인가?’
당황하는 꼴을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그런 생각이나 하던 중.
“글쎄 벌써 그 무인에게 별호까지 생겼다는게 아닌가.”
"오오!"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말이 나왔다.
이번엔 당화서의 고개까지 낭인을 향했다.
목리원은 찢어질 것처럼 크게 뜬 눈으로 낭인을 강하게 바라봤다.
낭인은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로, 그런 두 사람의 시선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묵검(??).”
“묵검?”
“그의 검기가 꼭 묵으로 칠한 듯한 빛깔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더군.”
*
돌아온 여관방.
당화서는 의문이 묻어나는 얼굴로 목리원을 바라봤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지금 목리원의 얼굴이 너무 뚱해져 있는 까닭이었다.
“목 소협?”
“…왜 부르시오?”
목리원은 팔짱은 낀 채 미간을 팍 좁히고 있었다.
얼마나 인상을 지은 것인지 미간의 내 천(川)자가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것만 같았다.
웃긴 점이라면 그런 와중에도 미모만큼은 조금도 바래지지 않고 있다는 점일까.
‘또 왜 저런담.’
그가 그리 바라던 별호를 얻은 것 아닌가.
게다가 묵검(??)이라 하면 별달리 부끄럽지도 않고 직관적인 멋들어진 별호가 아니던가.
왜 이제와서 저리 기분이 나쁜 것일까.
그런 생각에 당화서는 물었다.
“별 건 아니고, 별호를 얻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서 말입니다. 안 기쁩니까?”
홱!
목리원의 고개가 돌아갔다.
드디어 바뀐 표정은 할 말이 아주 많다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치! 별호를 얻었지! 한데 그게 문제요! 묵검이지 않소?!”
“묵검이 왜 문제입니까? 꽤 괜찮은….”
목리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별호가 너무 사파같소!”
당화서의 얼굴 위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묵검이라니! 검기가 새까매서 묵검이라니! 꼭 강호협객전에 나오는 사파 고수같은 별호가 아니오! 나는 협객이란 말이오!”
양 주먹까지 꽉 쥐면서 열변을 토해내는 모습에 당화서의 얼굴은 이제와 인형과도 같은 꼴을 하기 시작했다.
“더 좋은 별호가 많지 않소! 묵검협객이라던지, 협검이라던지! 인협검객이라던지!”
그렇구나.
별호에 협객이 들어가야 하는 거구나.
그게 문제였구나.
목리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화서의 얼굴엔 감정 없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목 소협.”
시린 어조.
그것에 목리원의 몸이 흠칫 떨렸다.
뒤늦게야 당화서의 기색이 이상함을 깨달은 것이었다.
“으, 음…?”
당화서는 가만히 손을 들어 침대를 가리켰다.
“가서 잠이나 자십시오.”
당화서는 생각했다.
다른건 몰라도, 일단 목리원이 작명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