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8화 (18/334)

〈 18화 〉 삼장 ­ 동행, 귀곡 (3)

* * *

전투는 길지 않았다.

아니, 순식간이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빨리 끝났다.

쉬이익­.

정확히 이등분으로 갈라져 죽은 인면지주.

그 몸은 외피 곳곳이 다 녹아내리고 머리 또한 무언가로 얻어맞은 듯 으스러져 있었다.

녹아내린 흉은 영물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당화서의 독기를 버티지 못해 생긴 것이었고, 이등분으로 갈린 것은 당연히 목리원에 의한 것이었다.

당화서는 후읍 숨을 가다듬으며 대기 중에 남은 인면지주의 독을 흡수했다.

‘훌륭하다.’

도주한 이후 이만큼 진득한 독을 마셔본 것은 거의 처음.

적응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내력을 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이던가.

인면지주는 분명 독샘을 가진 영물이다.

그 독샘만 따로 빼내 가공한다면 꽤나 그럴싸한 영단이 될 터였다.

생각을 이어가던 당화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치들을 그리 원망하면서도 그들의 무공은 잘만 사용하는구나.’

당가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면서도 그들의 무공은 십분 활용하는 자신의 꼴이 왜인지 모순적으로 느껴진 까닭.

하나 당화서는 그것에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이 괜한 자존심으로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님은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쓸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써야 한다.’

생각을 정리한 당화서는 목리원을 바라봤다.

“으븝!”

어느새 검을 갈무리한 목리원이 눈을 반짝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엔 피독주가 꽉 물려 있었지만, 당화서는 왜인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그놈의 명문세가의 무공이 어쩌고 하는 말이겠지.’

자신이 당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난 그가 어땠던가.

장정 3시간에 걸친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질문 세례를 이어가지 않았던가.

이번 역시 그 연장이리라.

‘피독주가 참 열심히 일하는구나.’

당화서는 싱긋 웃었다.

그 모습에 목리원은 팔을 붕붕 젓다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이유는 하나였다.

당화서의 예상대로, 그는 그녀의 무공에 다시 한번 감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호들갑이 떨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일단 지금은 넣어두지요. 챙겨야 할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읍!”

“내단과 독샘을 뽑아오겠습니다. 저기 멀리 가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목리원이 헐레벌떡 동굴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어찌 뛰는 뒷모습만으로도 저리 감정이 다 드러날까 싶어, 당화서는 목리원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제 일을 시작했다.

*

동굴을 나서자 예의 꿉꿉하고 악취 나는 공기가 두 사람을 반겼다.

동굴 입구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와중, 당화서는 직전 동굴에서 갈무리해온 내단을 목리원에게 보였다.

딱 이곳에 오기 전 목리원이 먹었던 당과와 같은 크기.

“목소협께 드리겠습니다.”

“으븝?!”

목리원이 화들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그러다 이리저리 팔을 휘저으며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 양심이나 챙기는 모습이 참 그답다고 해야 할까.

당화서는 쿡쿡 웃음을 흘리며 목리원의 손에 억지로 내단을 쥐여줬다.

“저는 독샘이면 족합니다. 사실 이런 내단 보다 그 독샘을 가공해 만드는 약이 더 도움이 되는 몸인지라. 그리고 애초에 목 소협이 아니었다면 발견도 못 했을 영물 아닙니까?”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다.

무릇 무인이라면 정당한 자신의 몫 정도는 알아서 챙길 줄 알아야 할 터인데, 저리 마음이 여리니 어디가서 사기나 당하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알겠지요? 이런 일일수록 계산은 철저히 해야 하는 겁니다.”

“으븝…!”

목리원의 얼굴 위로 감동이라도 받은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당화서는 눈망울까지 글썽거리는 모습에 무심코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똥개.’

목리원이 주전부리 하나만 던져줘도 눈을 빛내며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똥개 같다는 생각이었다.

실례되는 생각.

그리 판단한 당화서는 빠르게 생각을 지워냈다.

그러던 중, 연신 눈을 반짝이던 목리원이 피독주를 뱉어내곤 말했다.

“고맙소, 소저! 내 이 은혜는 평생이 가도 다 못 갚을 것이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음으로?”

끔뻑끔뻑.

목리원은 이어갈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잠시 고민하다, 이내 그런 답을 내뱉었다.

“멋진 협객이 되어 보겠소!”

아무렴, 상대방의 선의가 더 큰 선의로 돌아오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 탓이었다.

당화서는 그 어처구니없는 답에 웃음을 터뜨렸다.

“됐으니 이만 일어나지요. 이제부턴 정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테니까.”

“으븝!”

어느새 피독주를 입에 문 목리원의 답.

두 사람은 다시금 잔혈곡을 걷기 시작했다.

*

예상치 못한 소득에 달아오른 분위기였다.

당화서는 품속에 갈무리한 독샘에 한껏 기분이 좋아져 있었고, 목리원 또한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경험을 하며 한껏 들떠있었다.

이대로 잔혈곡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끝이다.

그런 기쁜 미래만을 떠올리느라 두 사람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곳은 잔혈곡.

20여년 전의 혈사에 수많은 양민이 희생당한 장소.

그리고 혈사 이후 그 어떤 집단도 출입하지 않은 장소.

두 사람이 도착한 마을엔 아직 그때의 참혹함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

내내 신나 하던 목리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화서 또한 마찬가지.

그저 대충 훑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참혹한 흔적에, 그녀는 표정을 왈칵 일그러트렸다.

‘끔찍하구나.’

이제까지 봐온 무인들의 시신과는 양상이 아예 달랐다.

폐허.

그리 말하는 것이 좋을 썩은 판자촌은 온통 검게 굳은 핏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시신들은 모두가 달아나다 실패한 사람처럼 마을의 중심을 등친 채 백골이 되어있었고, 그 어딘가에는 서로를 끌어안거나 등진 채로 굴러다니는 백골도 있었다.

일방적인 학살의 현장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 터였다.

당화서는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그것을 쭉 살피다, 목리원을 바라봤다.

“…소협?”

이런 광경에 충격을 받진 않았을까 싶어 불렀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목리원은 그저 가라앉은 얼굴로 그 모든 것을 눈에 담고만 있었다.

저벅­.

목리원이 발을 내디뎠다.

당화서는 왜인지 그를 제지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가만 뒤를 따랐다.

‘무얼 하는 것이지?’

목리원은 백골을 유심히 보다 주변을 살폈다.

무엇인지 모를 자국들과 반파된 판자집, 그리고 그 어딘가에 떨어진 녹슨 농기구들까지 모두 확인하며 마을을 살폈다.

그랬다.

목리원은 지금 이곳에 일어났던 일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언젠가, 조금 더 자라 13세가 된 날 목선오에게 추가로 들었던 잔혈곡의 일을 되새기며.

­그곳의 양민들은 구하셨나요?

­…할 수 있는 만큼은 구했단다. 하나, 모든 이를 구할 순 없었지.

­그럼….

그날의 목선오는 쓰게 웃었다.

목리원은 언제나 당당한 협객이었던 그가 드물게 그런 표정을 짓는 때를 알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안타까워할 때였다.

­아느냐, 원아. 세상엔 더 도망칠 곳이 없을 정도로 낭떠러지에 몰린 이들이 있단다. 도망치고 도망쳐도 살아날 방법이 보이지 않아 이젠 포기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야.

­그 양민들이 그랬나요?

­그래, 그들은 세금으로 낼 작물조차 손에 쥐지 못해 산으로 도망친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 갈 곳이 없었지.

­피난은….

­시키지 못했단다. 아니, 그들이 그걸 바라지 않았지. 이젠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던 까닭이다.

어린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떠올린 의문이 있었다.

­맞서 싸우면 안 되는 거였을까요…?

­이것도 알려 주어야겠구나.

­네?

목리원은 그날, 낙엽이 떨어지는 앞마당을 바라보며 목선오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세상 모든 이들이 닥친 고난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다.

­어째서요?

­그들이 약자이기 때문이지. 저항하는 것조차 힘이 필요하기에, 그들은 그저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데….

­한데?

­…그리 가여운 이들일 진대도, 세상은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법이더구나.

*

목리원은 하염없이 마을을 살피며 하나하나 그곳의 흔적을 살폈다.

‘이곳은 포목점이구나.’

포목점이라 말하는 것이 옳을까.

있는 것이라곤 가죽과 천 쪼가리라는 말도 아까울 넝마들이었으나, 그것들이 진열되어 썩어가는 걸 보면 그리 표현하는 것이 옳을 터였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것은 계산대로 보이는 탁상.

그리고 그 아래로는 원래 무엇이었는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검고 마른 물질.

아마 풀이나 약초일 것이다.

이곳의 화폐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포목점의 한가운데엔 목뼈가 달아나 있는 백골이 있었다.

아마 이 허름한 가게를 지키려 했던 것이겠지.

목리원은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재차 걸음을 옮겨 그 옆의 푸줏간을 향했다.

고기랄 것은 눈곱만큼도 걸려 있지 않음에도 푸줏간이라 확신한 것은, 마찬가지로 그곳에 누워있는 백골 탓이었다.

널브러진 백골의 손 위로 쥐어져 있는 도축용 칼이었고 벽 쪽에 달려 있는 것은 고기를 걸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갈고리이니 다른 생각이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양민 역시 자신의 가게를 지키려 한 것이겠구나.’

목리원의 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가게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몇 개의 판자촌을 지나 민가로, 그리고 다시 외곽으로.

당화서는 그런 목리원을 걱정스레 지켜봤다.

참상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사내의 발걸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고, 그것에 지켜보던 여인은 결국 그런 말을 내뱉었다.

“목 소협, 이제 그만….”

그만하고 길을 떠나야 한다.

이곳의 참상에 마음이 아픈 것은 알겠으나, 그런 감정에 휩쓸려 시간을 지체했다간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다.

그런 말을 내뱉으려던 찰나였다.

자박­.

먼 곳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노골적이리만치 인위적인, 필히 발소리라 말해야 할 것이었다.

기감이 예민한 두 무인이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은 목격했다.

“여아?”

어린 소녀.

도대체 이해되지 않으나,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은 건물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민 어린 소녀였다.

탁­!

소녀가 달아났다.

워낙 순식간이라 이목구비까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하나 그것이 무에 중요하겠는가.

목리원은 그곳을 향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당화서가 그런 그를 막았다.

“잠시, 수상합니다.”

당화서는 똑바로 목리원을 노려봤다.

“이곳에 여아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미 20년 전에 망한 잔혈곡이고, 이곳은 목 소협도 느끼고 있듯이 사기와 독기로 가득 차 양민은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분명 뭔가 있어요.”

목리원은 가만 당화서를 바라보다 물고 있던 피독주를 뱉어냈다.

“하지만 분명 여아였소.”

“정확히는 여아‘일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목리원의 미간이 슬쩍 좁아졌다.

“그게 무슨….”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에 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영물이오.”

“그렇지요. 영물이지요.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당화서는 이제야 느껴지는 기이한 인과에 따라 떠오른 추리를 그에게 말했다.

“겨우 20년입니다. 영물이 발생하고 그만큼 커지기엔 한참이나 모자란 시기입니다. 저 여아를 보기 전까진 영물이 터를 옮긴 것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만….”

방금 보았던 여아.

그것은 분명한 사실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누군가 그 영물을 그곳에 옮겨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요.”

“그렇다는 말은….”

“여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니, 인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영물과 마찬가지로.”

당화서는 생각했다.

이곳엔 누군가가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이 있고, 그것은 알아 봐야 득 될 것 없는 비밀이리라고.

“인간이 아니면 무어란 말이오.”

“예상되는 것은 있지요.”

당화서의 시선이 여아가 사라진 건물 뒤를 향했다.

“이곳은 사기와 독기로 범벅된 땅입니다. 있는 것이라곤 인간의 시신밖에 없지요. 그리고 그곳에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 있습니다.”

목리원 또한, 당화서가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달았다.

“…강시.”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저 여아가 이 귀곡의 특수성에 의해 생겨난 강시일지도 모른다고.

*

대치는 길었다.

당화서는 제발 이번만큼은 그가 기이한 호기심을 발휘하지 말았으면 하는 기도를 했고, 목리원은 깊은 고민에 빠져 그런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긴장된 순간.

당화서가 눈까지 질끈 감으며 이어가던 기도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역시 가야겠소.”

“목 소협, 제발!”

“혹 진짜 여아일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오. 이곳에 발을 잘못 들인.”

“그렇다면 도움을 청했겠지요!”

“우리를 악적으로 봤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소.”

“…그만!”

당화서는 그리 외치며 생각했다.

‘강하게 나서야 한다.’

실로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곤 말할 수 없으나, 정말 ‘없지는 않다’ 수준의 가능성이다.

여기서 이 인간의 고집을 들었다간 괜한 위협에 처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희는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이미 인면지주까지 처치한 상황이니, 혹 이곳에 남았다가 영물을 이곳까지 가져온 이와 마주칠 수도 있단 말입니다! 아니, 저 여아의 형상을 한 것이 모습을 비친 것 자체가 그의 미끼일 수도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순히 영물을 처리하는 것과 살린 채로 옮기는 것엔 말도 안 될 정도의 난이도 차이가 있다.

최소한 초절정의 끝, 그 이상 초월지경의 무인일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된단 말이다.

“목 소협, 낭만도 좋지만 항상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강호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노인과 여성, 그리고 아이임을.”

“….”

“대답!”

목리원의 입은 여전히 꾹 다물려 있었다.

화서는 그만 뒷골이 확 당겨오는 기분을 느꼈다.

어지간하면 그의 고집을 들어주던 당화서로서도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가 없는 지라 재차 말을 내뱉으려던 순간.

“소저의 말은 도의적으로 옳소.”

목리원이 그리 말했다.

“하나 협객으로선 틀렸소.”

덜컥­.

당화서의 몸이 멈춰 섰다.

이젠 기가 다 차서 헛웃음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무슨….”

“소저, 나는 언제나 궁금한 것이 있었소.”

목리원이 당화서를 지나쳐 여아가 사라진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알지, 소저가 하는 말은 나도 알아. 약자의 탈을 쓴 악적만큼 두려운 것이 어딨겠소. 그들만큼 악독한 이가 어딨겠소. 그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오.”

“목 소….”

“한데 말이오. 그럼 말이 이상해지지 않소.”

목리원은 그리 말하며 걸음을 멈췄다.

“협객은 약자를 지키는 이오. 그리고 약자의 방패가 되어주는 이오. 그런 것이 협객일진대, 소저의 말을 따라버리면 그런 협객이 약자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 되지 않소.”

목리원은 주르륵 생각난 바를 읊었다.

짧게 품어온 의문은 아니었다.

이 고민은, 그가 협객이 되고자 마음먹고 걸왕에게 무림의 여러 격언을 듣던 순간부터 언제나 이어오던 고민이었다.

“협객은 약자를 지키는 이오. 한데 협객이 조심해야 할 것은 약자요. 그렇다면 말이오.”

좀처럼 풀 수 없었던 의문이었다.

“협을 보여야 할 이들을 경계한다면, 그것은 대체 누구를 위한 협이오?”

목리원이 당화서를 바라봤다.

씁쓸한 미소였다.

당화서는 덜컥 몸을 멈춰 세웠다.

당장 할 말은 많았다.

이 상황은 그 말을 대입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부터 당신이 한 말은 자칫 악적을 옹호하는 발언이 될 수 있다는 말.

그것뿐만 아니더라도, 그런 낭만이 목숨줄을 잡아주진 않는다는 것 등.

하나, 당화서는 이 순간만 해도 떠오르는 수십 개의 말들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역시 저것이 정론인 까닭이다.

자신 또한 그런 정론에 구원받은 사람인 까닭이다.

떠오르는 온갖 말들은 결국 나오지 않는 말들이었기에, 당화서는 입술을 달싹이다 한숨을 내쉬며 다른 질문을 이었다.

“…인간이 아닐 확률이 9할 이상입니다.”

“1할은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구려.”

“9할의 확률로 사지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당화서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성적이지 않은 질문이었으나, 그럼에도 당화서는 물었다.

“…만약, 함정이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목리원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그러다 다시 초승달 모양으로 접혔다.

허락의 뜻을 이해한 모습이었다.

얄밉게도, 그는 이 순간조차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상관없소.”

나오는 말은 역시.

“그런 위협을 무릅쓰는 것이 협객이니, 그러기 위해 힘을 키우는 것이 협객이니.”

이번에도 정론이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무를 갈고 닦은 것이지 않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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