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삼장 동행, 귀곡 (2)
* * *
화서의 불안과 별개로 목리원은 잔혈곡을 향하는 내내 어딘가 들떠있는 기색을 흩뿌렸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잔혈곡은 단순히 혈사가 있었던 자리가 아닌, 그의 스승이 남긴 발자취가 아니던가.
그런 만큼 목리원의 수다는 평소보다 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잔혈곡의 전투에 나섰던 선배들 중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그 무명을 드높였다 들었소. 아니, 그러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겠지! 무려 혈천교의 다섯 악귀 중 하나인 악천혈귀를 무찌른 일이 아니오!”
대체 무엇에 취한 것인지 ‘크!’하는 소리까지 내며 이어가는 말.
당화서는 이제 슬슬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그것에 대충 답했다.
“예, 검성이라는 별호가 이 강호에 나타난 순간이기도 했지요.”
당화서도 그에 대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검성 목선오.
지금은 완전히 종적을 감춘 전대의 천하제일.
그리고 중원 무림에서 별호에 별 성(?)을 찍은 최초의 무인.
‘별빛과도 같은 검기 탓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했었지. 거기에 사성(四?)이란 것도 애초에 검성을 흠모하던 고수들이 그 별호를 따라가며 생긴 것이었고.’
그들이 하나같이 절대 고수가 되어 정파 무림의 기둥이 된 것은 또 다른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멍하니 그런 생각이나 떠올리며 길을 걷던 중, 당화서는 문득 목리원의 입이 꾹 다물린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뭐하십니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한껏 어깨를 부풀린 목리원.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대체 또 뭐 때문에 저러나 싶다가도, 조금 생각해보니 그 이유가 얼추 짐작이 되었다.
‘아, 그래. 저 인간도 검성 추종자겠구나.’
협객이라면 아주 눈깔을 뒤집고 달려드는 인간이다.
거기에 강호협객전이 무슨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떠받드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검성에게 관심이 없다고 하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리라.
조금 감상에 빠져있게 두고 싶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만하고 어서 따라오십시오. 해가 지기 전까진 잔혈곡의 입구에 도착해야 하니.”
“아! 알겠소!”
목리원이 빠른 걸음으로 당화서의 옆까지 다가왔다.
그래도 말은 잘 들으니 참 다행이라고.
당화서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를 안도를 떠올렸다.
*
귀곡(??).
마침내 도착한 잔혈곡은 그리 말하는 게 딱 어울릴만한 장소였다.
높게 자라난 나무들이 우거져 하늘을 가린다.
그리고 그 아래 햇빛이 사라지며 차오른 음기에 곰팡이나 버섯이 가득 피어있었고, 우중충한 주변 탓에 괜히 음산함은 끝도 모르고 치솟는 와중.
“시체구려.”
목리원은 곳곳에 굴러다니는 백골들을 보며 그리 말했다.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제부터 잔혈곡을 벗어나기 전까지 지겹게 보게 될 것들이지요.”
백골이라 말하기도 미안한 것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흙먼지와 세파에 이미 뼈는 누렇게 올라와 있었고 그 위로는 무엇인지 모를 잡초들이 가득 자라있었던 까닭이다.
‘슬슬 사기가 올라오는 구나.’
당화서는 호흡할 때마다 속을 헤집는, 그러다가 단전으로 스며들어 좁쌀만 한 내력으로 화하는 사기를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목 소협, 피독주를 입에 무십시오.”
“아직은….”
“어서.”
목리원이 시무룩해져선 봇짐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 한 후 작은 구슬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으븝….”
구슬을 입에 문 상태로 말을 내뱉을 수 있으면 그 또한 초인적 능력이라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당화서는 이제야 조용해진 목리원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자, 갈 길이 바쁘니 어서 걸어볼까요?”
“으븝…!”
목리원이 축 늘어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잔혈곡인데, 스승의 발자취가 남은 곳인데 이곳의 대단함을 말하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아픈 와중이었다.
*
잔혈곡의 사기는 내부로 들어갈수록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죽은 것인지, 길을 걷다 보면 십 보에 한 번은 뼈가 발에 밟힐 정도였다.
아니, 그것도 문제였지만 역시 만독불침에 이른 당화서조차 괴롭게 하는 것이 따로 있었다.
‘악취가 너무 심하다.’
악취.
공기가 가둬지며 썩어들어가는 듯한 악취가 온갖 곳에서 피어오른다.
그뿐이던가, 습기는 또 얼마나 꿉꿉한지 그 악취에 무게를 실어 불쾌함을 더하고 있었다.
본디 악취를 혐오 수준으로 싫어하는 당화서였다.
그런 만큼 그녀는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안타깝게도 이룰 수 없는 바람이었다.
‘잔혈곡의 중심은 한참 멀었다.’
잔혈곡은 화전민이 살던 마을이었다.
즉, 아직 마을조차 발견하지 못한 자신들은 잔혈곡에 제대로 들어왔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시도 때도 없이 치미는 짜증.
그것에 당화서의 표정은 시시각각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그런 중에도 목리원은 해맑았다.
‘무공의 흔적!’
목리원은 곳곳의 바위나 나무들, 그리고 뼈에 난 상처들을 유심히 살피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그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연상 되는 것이 있는 까닭이다.
이리 멍청하고 순박해 보여도 결국 천살성이라, 하늘이 내린 무재를 타고난 이라.
그는 이런 흔적들을 엮어 이곳에서 있었던 전투의 양상을 대강이나 파악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무도 자랐을 걸 고려해 생각해보면….’
아마 전투는 지금 보이는 것보다 더욱 치열했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두개골은 왼쪽 아래턱부터 눈까지 길게 이어지는 흉터가 있었다.
이것은 분명 올려 베기에 의한 상처일 터.
그리고 검상의 끝부분이 불안정한 것을 생각해보면 이 흉을 만든 이도 그 순간 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동귀어진이 확실했다.
나무에 박힌 저 검은 또 어떤가.
검의 양식은 중원의 것과 조금 거리가 있으니 아마 혈천교의 무인이 쓰던 것일 테다.
박힌 각도나 깊이 정도로 봤을 때, 다른 곳을 향하던 검로가 외부의 압력으로 뒤틀려 저곳에 꽂힌 것일 터.
아마 저 검을 들고 있던 이도 그 찰나의 사고에 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목 소협.”
당화서는 계속 멈칫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목리원을 다그쳤다.
“호기심은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갈 길이 너무 멀어요. 그만하고 어서 따라와 주십시오.”
“으븝!”
“느껴지는 기운은 있습니까? 혹 살아있는 이들이라거나….”
“으브븝!”
목리원은 고개를 저었다.
목리원의 기감에는 그 어떤 인간의 내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자신들을 향하는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리 호기심을 채우며 쏘다닌 것이었지만, 그런 목리원도 하나 이상하게 느낀 것이 있긴 했다.
“으브븝!”
피독주를 문 상태라 몸으로 말을 해야 하는 상황.
목리원은 팔을 이리저리 저어대며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당화서의 얼굴 위로 의문이 짙어졌다.
“예?”
“으브브븝!”
목리원이 양팔을 크게 펼쳤다.
그러더니 검지를 세운 채 허공을 푹푹 찌르기 시작했다.
당화서의 입이 꾹 다물렸다.
얼굴 위론 멍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뭐라는 거야?’
당최 알 수 없는 행동.
당화서는 그것에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피독주 좀 빼고 말해보십시오. 잠깐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습니까?”
“음! 알겠소! 피부 위로 따갑게 닿는 것이 있소!”
“예?”
“인간의 살기는 아니오! 한데 단순한 공기의 흐름이라기엔 생동감이 느껴지오!”
그리 말하고 목리원은 다시 피독주를 물었다.
눈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또 뭔가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 듯했다.
평소였다면 별거 아니겠지 하며 그 눈빛을 그냥 넘어갈 당화서였으나, 지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뭔가 있다고?’
이곳이 잔혈곡인 까닭이다.
이 귀곡에, 지금 목리원이 말한 것과 부합하는 것이 있는 까닭이다.
살아있는 것.
인간이 아닌 것.
그리고 사기가 가득 들어찬 이 장소.
‘…설마.’
당화서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설마라고 생각하기엔 정황이 꽤나 그럴싸했다.
그리고 군침이 돌았다.
“…잔혈곡에 도는 소문이 있었지요.”
“으븝!”
“예, 영물 말입니다.”
목리원이 방방 뛰었다.
그리하며 손을 뻗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지금까지 향한 곳과 조금 어긋난 방향.
하나, 화서는 목리원을 제지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한데….”
당화서는 턱을 살살 쓰다듬으며 생각을 이었다.
무릇 영물이라 하면 수백에서 수천 년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운을 머금어야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그런 만큼 이제 사기가 들어찬 지 2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이런 장소에 있을 리가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 가능성에 걸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이유는, 당화서 또한 부정할 수 없는 무인인 까닭이었다.
무릇 영물의 내단이라 하면 무인에게 천고의 영약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그냥 넘어가기엔 아쉬운 마음부터 떠올라버리는 것이었다.
당화서의 시선이 목리원이 가리킨 방향을 향했다.
‘암벽이다. 뭔가 있다면 저 어딘가에 있는 동굴이라 보는 게 옳겠지.’
머릿속으로는 빠르게 계산이 이어진다.
조금 급하게 움직이면 저곳에 들르는 정도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목리원이 딴 길로 새지 않도록 멱살을 부여잡으면 될 일.
그뿐이던가.
목리원은 검기상인의 경지에 이른 무인, 자신은 강호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독을 내력으로 바꿔 이용할 수 있는 만독불침의 무인이다.
‘잔혈곡은 사기가 넘실거리는 땅. 또한 사기가 생긴지 20년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땅이다.’
그 말인즉, 이곳에 정말 영물이 있다면 생겨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개체이거나, 다른 곳에서 자리를 옮긴 아직 환경에 적응하는 개체이리란 뜻.
“정말로 있을지는 불확실하나, 그렇다고 해서 안 가면 병신 소리를 들어야겠지요.”
“으븝!”
“예, 가봅시다. 목소협께서 큰일을 하셨군요.”
목리원이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
당화서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 이리 어여쁠 수가 없구나.’
헛소리도 안 하고 꼭 필요할 때는 온몸으로 표현하니 참으로 좋다고.
역시 사내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말이 옳았다.
*
결정을 내린 후의 걸음은 빨랐다.
목리원은 영물을 실제로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미 눈이 뒤집혀 다른 곳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당화서 또한 뜻밖의 행운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리 악취와 습기가 가득한 와중에도 짜증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암벽.
목리원의 감에 의존해 이리저리 그곳을 뒤지던 중, 두 사람은 꽤나 커다란 동굴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허, 진짜 있군요.”
“으븝!”
목리원의 얼굴이 해맑게 피어올랐다.
피독주를 문 채 그것을 뚫고 올라오는 사기를 막느라 내력을 소모한 상태였으나, 그런 피로조차 그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직도 느껴지십니까?”
목리원은 잠시 피독주를 뱉어내곤 답했다.
“확실하오! 오면서 계속 느낀 기이한 감각이 진해졌소! 분명 살아있는 생물의 것이오!”
“좋군요. 자, 이제부턴 긴장하고 가보지요.”
당화서는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어떤 영물일까….’
사기가 가 찬 땅에 있는 만큼 독을 쓰는 영물일지도 몰랐다.
아니, 이리 동굴 속에 자리해 있는 것을 보면 그럴 확률이 9할은 넘으리라.
‘독.’
내단만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겐 영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당화서는 우드득 손을 풀며 기감을 벼렸다.
목리원 또한 봇짐에서 작은 기름지를 꺼내곤 그 위로 불을 붙였다.
화르륵.
어두운 공간을 밝히는 불빛.
그리고 그 불빛에 의존해 동굴 안으로 발을 들인 두 사람.
그들이 동굴 깊숙이 걸음을 옮긴 후 본 것은 그랬다.
사사삭.
여덟의 다리.
그리고 곤충의 머리와 커다란 배 위로 나 있는 울부짖는 사람의 얼굴 같은 무늬.
거대한 산짐승 크기의 그 커다란 거미가 거미줄 위에 웅크려 여러 개의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인면지주(人???).”
그것도 꽤나 독기를 뿌려댈 줄 아는 개체.
독기가 폐부로 스며든다.
그것이 속을 짓이기려다, 기세를 잃고 양분으로 화해 몸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너무나도 좋은 양분이었다.
“운이 좋군요.”
당화서가 희번뜩한 얼굴로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