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삼장 동행, 귀곡 (1)
* * *
여정을 떠난지 사흘 째 되는 날.
강서성 어딘가의 작은 마을 시장통.
당화서는 겸허히 인정했다.
‘…잘못 생각했다.’
이 동행은 해선 안 되는 동행이었음을.
자신이 동정심 탓에 일을 그르친 것임을.
이제야 여실히 깨닫게 되는 현실이 당화서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한 것이었다.
‘촌놈!’
목리원은 촌놈이다.
그것도 상식 자체가 텅텅 비어있는 산골짜기 원시인이다.
그런 목리원이, 이런 사람과 문명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했어야 한단 말이다.
당화서는 장담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문장은 다름 아닌 ‘소저! 이것은 무엇이오?’이리라고.
“소저! 이것은 무엇이오?”
마침 그 질문이 나왔다.
수양현을 떠나고 사흘간 하루에 수십 번은 더 들었던 질문이었다.
“…당과입니다.”
“당과! 내 이것에 대해 알고 있소! 강호협객전 3장의 주인공인 산협이 이 당과를 입에 물고 권각술을 수련했지!”
“예, 그러시겠지요.”
당화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신을 향해 눈을 반짝이는 목리원.
이어진 일은, 이제까지 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보게, 주인장. 거기 당과 하나만 주시게.”
“오오…!”
입에 뭐라도 물려놓으면 먹는 동안은 얌전해지겠지.
그런 생각이나 하며 품에서 동전을 꺼내자 목리원이 크게 환호하며 말했다.
“고맙소. 소저! 한데 소저는 당과를 안 먹는 것이오?”
“단 걸 즐기지 않습니다.”
“으음…! 그렇구려!”
당화서는 목리원을 흘끔 바라봤다.
그는 어느새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고 당과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잘 생기지만 않았으면….’
정말 꼴도 보기 싫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말하면 이리 뒷골이 당기는 짓을 하고 있음에도 용서될 정도로 그가 말도 안 되는 미남이라는 말이었다.
‘…이럴 때가 아닌데.’
생각하니 또 한숨이 나온다.
용봉지회가 열리기까지 앞으로 한 달, 안휘성의 회장까지는 부지런히 말을 달린다 해도 삼 주는 걸리는 거리였다.
이곳 또한 이미 어제 지나왔어야 할 마을이었으나, 목리원의 호기심을 채우다 보니 겨우 오늘 낮에야 도착한 상황.
이대로 가다간 용봉지회에 가지 못하고 계획도 어그러지는 상황이 나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다, 달콤하오! 내 살아생전 이렇게 달콤한 것은 처음 먹어보오!”
들려오는 목리원의 감탄사.
생각에 빠져있던 당화서는 그것에 그를 바라봤다.
‘해맑기도 해라.’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턱 나온다.
대체 당과 하나에 뭘 저리 좋아하는 건가 싶어진다.
“좋으십니까?”
“그럼! 너무 좋소! 소저랑 같이 다닌 이후로 온통 새로운 것만 보니 매 순간이 즐겁소!”
흠칫.
당화서는 갑작스레 찔러 들어오는 말에 몸을 흠칫 떨며 뜨거워진 얼굴을 손부채질했다.
“무, 무슨 말을….”
얼굴.
역시 얼굴이 문제다.
저 얼굴로 저런 말을 하니 괜히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당화서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속에 짙은 당황을 떠올려내며 목리원에게 그리 일렀다.
“아부는 됐으니 그만 가지요. 이제 이 시장통에서 더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됩니다.”
“음! 알겠소!”
목리원이 당과를 까드득 깨물어 삼켰다.
그러곤 당화서에게 말했다.
“여기서 말을 구하는 것이오?”
“예, 아무래도 빨리 가려면 그 수밖에 없겠지요.”
“신법으로 달려서 가면….”
“굳이 체력을 뺄 이유가 있습니까? 그리고 산길을 냅다 달려서 길은 어찌 찾으시려고 그러십니까?”
상식이 없는 목리원이 고려하지 못한 문제를 콕 집은 말.
목리원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그냥 조용히 따라오십시오.”
목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
마침내 도착한 마구간.
당화서는 짙은 당황을 토해내며 그곳의 주인에게 되물었다.
“말이 없단 말인가? 한 마리도?”
“그, 그렇소…. 있는 말이라곤 그저께 이곳을 지났던 상단이 모두 대여해간 터라….”
“아니, 대체 누가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짓거리를…!”
“처, 천하상단이오….”
멈칫.
당화서의 움직임이 멎었다.
마구간의 주인은 그런 당화서의 눈치를 보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이, 이게… 가격을 시중의 열 배로 쳐주는 게 아니겠소. 말이고 노새고 할 것 없이 죄다 사들여 물자를 싣고 가더구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마을 하나에 있는 말을 죄다 시가의 열 배나 써가며 사가는 상단도, 그 가격에 팔아버린 이 마을도.
하나 당화서는 다른 말을 더할 수 없었다.
‘천하상단…!’
그 말같지도 않은 일을 해낸 것이 천하상단인 까닭이다.
“소저, 천하상단이 무엇이오?”
“중원에서 가장 큰 상단이지요. 아니, 정확히는 근 15년 새에 급격히 세를 불려 대륙 제일이 된 상단입니다.”
“그들이 말을 다 사가 버린 것이오?”
“그렇지요. 저희로선 운이 없었다고밖에 할 말이 없군요.”
당화서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얼굴 위론 한껏 찌푸려진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최악이다.’
이제 다음 마을까지는 최소 사흘의 거리가 있었다.
더해, 그곳은 이곳보다도 작고 비루한 마을이라 말이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곳이었다.
즉, 이곳에서 말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발이 묶여 계획이 무너진단 말이다.
“일주일 정도 있으면 상단이 돌아올 터요. 그때쯤이면 팔아줄 수 있….”
“너무 늦다네.”
“그럼 뭐….”
마구간의 주인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로서도 떠오르는 다른 방책이 없는 듯했다.
침잠되는 분위기 속.
목리원은 당화서와 마구간의 주인을 슥슥 번갈아 보다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소저. 지름길로 가면 되지 않겠소?”
“지름길 말입니까? 그런 게 있다고요?”
당화서의 얼굴 위로 황당함이 떠올랐다.
강호라곤 생판 모르는 이 촌놈이 자신도 모르는 지름길을 입에 담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하나, 이 자리엔 지금 목리원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이가 있었다.
“무, 무슨! 설마 그 곡으로 가려는 것이오?!”
마구간의 주인이 크게 기함하며 외쳤다.
“안되오! 거긴 귀곡(??)이오! 잘못 갔다간 그대로 목숨줄이 끊어진단 말이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뱉는 말에 당화서의 미간이 좁아졌다.
“길이 있긴 있단 말인가? 이보게, 그 얘기 좀 자세히 해보게.”
마구간의 주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절대, 그 무엇도 얘기하지 않겠다는 기색을 잔뜩 흩뿌리는 모습이었다.
‘귀곡?’
대체 이게 무슨말인가 싶어 당화서는 목리원을 바라봤다.
“소협. 지금 말하는 지름길이 어딥니까?”
그가 꺼낸 이야기인 만큼 그는 알 것이란 생각에 건넨 질문.
목리원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잔혈곡(?血?)이오!”
큰 소리로 외친 답.
그것에 마구간의 주인은 ‘히익!’ 소리를 내며 기겁했고, 당화서는 멍한 얼굴을 만들었다.
그런 중에도 해맑던 목리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소! 혈천교와의 전쟁 때 정파 무림의 선배들이 투쟁했던 곡이지!”
*
세상에 무지한 목리원이 이 중원에 대해 아는 몇 가지가 있었다.
바로 목선오가 그에게 이야기로 풀어줬던 과거의 협행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목리원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천둥소리가 유독 심하던 어느 비 오는 날 밤.
아직 7살이던 자신을 재우기 위해 목선오가 해주었던 이야기를.
“잔혈곡이요?”
“그래, 한때 수많은 백도의 영웅들이 혈천교를 막아서기 위해 필사의 의지로 막아섰던 골짜기란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강서성 북쪽의 산골짜기에 있는 곳이지. 나와 아우도 그날 그곳에 있었고.”
“아우는 걸왕님이시죠?”
“기억하고 있구나.”
“헤헤….”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참으로 따스했다.
또한 목선오가 장난기 넘치는 어조로 건넨 말은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많은 피가 흘렀단다. 잔혈곡은 강서에서 안휘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고, 그곳이 점령당하면 안휘까지 혈천교에게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거든. 그날의 일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잔혈곡에 살던 양민들은 혈천교에 의해 모두 희생되었고, 무림맹의 고수들도 악천혈귀(??血?)의 도법에 유명을 달리했단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어떻게 되긴….”
목리원은 기억했다.
쿠르릉 하고 목선오가 말을 늘어트린 순간 내리쳤던 번개를, 그다음 이어진 말을.
“…이 스승이 악적을 모두 해치웠지.”
번개가 번쩍하며 환해진 방 안에서 보였던 목선오의 멋들어진 미소를.
*
마구간을 나와 근처 객잔으로 온 당화서는 심각하게 굳은 낯빛으로 목리원을 바라봤다.
소면에 죽엽청.
맞은편의 목리원은 객잔에 들어오자마자 그것을 시켜 흡입하듯 먹으며 웃고 있었다.
‘잔혈곡.’
당화서도 익히 알고 있는 장소였다.
그곳이 바로 이 위에 있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왜 귀곡이라 불리는지 정도는 안단 말이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상식이 결여된 그가 어떻게 잔혈곡에 대한 것은 알고 있는지,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차올랐다.
‘스승? 그래, 높은 확률로 스승이겠지.’
그의 스승이 혈사에서 활약했던 전대의 고수일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얼핏 봤던 그의 무공에선 참으로 정순하고 고강한 내력이 느껴지지 않던가.
문득 그의 스승에 대한 것이 더욱 궁금해졌으나, 당화서는 굳이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 말 많은 인간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으니.’
아마 그가 스승에 대한 것을 숨기고 있다 보는 것이 옳을 터.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이미 은거한 고수에게서 무공을 사사 받은 이들이 굳이 출신을 밝히지 않고 움직이는 일은 종종 있지 않던가.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행적.
당화서는 다시 한번 잔혈곡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확실히 잔혈곡을 지나면 빠르게 강서성을 빠져나갈 수 있다.’
산세가 험하고 쉴 자리가 마땅치 않긴 하나, 그 문제야 경지에 이른 무인인 자신과 목리원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
하나 역시 문제는 그것이었다.
‘잔혈곡엔 아직 혈사의 흔적이 남아있어.’
잔혈곡은 그 전쟁 이후 누구도 출입하지 않아 시체와 사기가 득실거리는 곳이다.
그런 만큼 땅에 내려앉은 사기 탓에 악한 영물이 자리 잡았다는 소문까지 도는 곳.
‘영물은 헛소리겠지만… 사기만큼은 진짜다.’
영물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잔혈곡이 그리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민들이 그곳에 발을 들였다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문이 도는 이유는, 그곳에 들어간 이들이 사기에 범벅되어 죽어버린 까닭일 테지.
‘나는 괜찮다.’
과정이야 끔찍했지만, 어찌 되었든 만독불침을 이룬 몸이다.
제아무리 극악한 독이라 해도 이 몸뚱어리는 그것을 모두 양분으로 삼아버리니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 눈앞의 남자는 다르다.
“음? 소저, 식사가 입에 맞지 않소?”
“아닙니다. 생각할 것이 있어서.”
당화서는 그리 말하곤 자세를 고쳐 앉은 후 말을 이었다.
“목 소협, 혹 말 하나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오?”
“수련 중에 해독에 관한 것을 배우셨는지요.”
목리원은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력으로 독기를 밀어내는 법 정도는 알고 있소. 그것 외에도 스승님께서 챙겨주신 피독주 몇 개를 들고 있기도 하고.”
제 봇짐을 가리키며 그리 말한 목리원은 이어 그런 질문을 건넸다.
“한데 그건 왜 물으시오?”
“잔혈곡, 가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오!”
목리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자 자연스레 객잔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아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몽롱하게 젖어 든 목소리.
그가 존재감을 발휘한 순간, 또 누군가가 상사병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화서는 그 소리를 흘려들었다.
처음에야 기겁했지만 이제 그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평소와 같은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인 당화서는 이어 그런 말을 내뱉었다.
“아마 잔혈곡엔 사기가 넘실거릴 것입니다. 거의 20년 넘게 방치된 땅이니, 시취가 땅을 오염시켜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독기에 몸이 상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에 마땅한 준비를 해두십시오.”
“알겠소! 내 오늘은 운기조식에 더욱 박차를 가해 내공을 잘 다스려야겠구려!”
뭐가 그리 신나는 것인지, 목리원은 소면을 국물까지 쑥 마셔버리곤 벌떡 일어나 객잔의 2층으로 향했다.
본인 숙소였다.
당화서의 눈이 좁아졌다.
‘괜찮나?’
목리원이 저리 신나 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불안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