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3화 (13/334)

〈 13화 〉 이장 ­ 강호초출, 그리고 요녀 (7)

* * *

목리원이 떠난 경화루의 최상층.

화서는 아직 멍한 기운이 남은 채로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는 풍경은 수양현에서 가장 커다란 대로였고, 그 끝에 있는 것은 일륜회의 장원.

­다녀오지.

아직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가 있었다.

주제에 멋있는 척을 하며 웃던 얼굴이 있었다.

꽈악­.

화서는 멍하니 그것들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멍청한….”

세상에 그리 멍청한 인간이 있을 수가 없다고.

역시 오래 살긴 그른 인간이라고.

그런 생각이나 떠올리며 그를 외면해보려 했으나, 불가했다.

결국, 그의 말은 정론이었던 까닭이다.

­선인은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오. 사실은 그 반대지.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것은 악인이오.

그의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대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만드는 말이었던 까닭이다.

­협객은 악적에게 지지 않소. 이는 강호협객전의 제 1장에 나오는 검협의 대사요.

의심할 줄 모르는 선의는 맑고 어여쁘기 그지없어서, 화서는 표정을 이리저리 구겼다.

“…향아.”

“예.”

“표산의 경지가 어떠했느냐.”

“저희가 도주할 당시 절정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5년이 지났구나. 지금은 어떠할 것 같더냐.”

“…표산은 가주가 특히 아끼던 이였습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절정에 이르고 경지에 완숙해지기까지 삼 년이었으니, 최악의 경우 지금은 절정의 끄트머리까지도 보고 있겠지요.”

소향의 머리는 더욱 깊게 숙여지고 있었다.

화서는 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그가 이길 확률은 없겠구나.”

목리원을 떠올리며 내뱉는 말이었다.

화서는 알았다.

그는 확실히 재능이 있는 이었다.

누구에게 배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 전대의 이름 높은 무인에게 온갖 영약과 대법을 받으며 남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수련 과정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나이에 그 무위가 나오는 것이겠지.

‘하나….’

문제 또한 그것이었다.

그는 너무 어리다.

그 나이에 일류 끝자락으로 추정되는 무위를 쌓은 것은 경외 받아 마땅하나, 이 넓은 강호에 그 경지에 이른 사람이 어디 한둘이던가.

당장 그가 맞서고자 하는 이부터가 절정의 끝에 다다른 무인이었다.

“…멍청하지.”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낭만이나 추구하며 사지로 뛰어 들어간 그도, 아직까지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려하는 수족들도.

그리고 자신도.

화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

“가자꾸나. 그래, 그 멍청한 인간이 맞는 말 하나는 하지 않았더냐.”

소향은 고개를 들어 화서를 바라봤다.

저 멀리 창밖을, 일륜회의 전각 방향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 위로 맺힌 것은.

“애초에, 죄짓지 않은 우리는 도망칠 이유가 없는 것이야.”

퍽이나 후련해 보이는 미소였다.

화서의 시선이 소향과 다른 수족들을 향했다.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삶이라면 끝에 한번은 저항해보자꾸나.”

그녀가 손을 뻗었다.

소향은,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

표산은 목리원을 바라봤다.

‘검기라.’

묵색의 검기를 줄줄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것은 자랑스러운 정파 무림의 새로운 별이 될지도 모르는 사내였다.

아니, 저 어린 나이에 검기를 발출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필히 그리될 것이다.

‘안타깝구나.’

자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리되었으리라.

절그럭­.

표산은 허리춤에 매어둔 비수를 꺼내 들었다.

각 손의 손가락 사이에 세 개씩, 총 여섯 개의 비수였다.

“부디 원망은 말게나.”

청년의 말은 실로 옳았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은 선배들이 드높인 정파 무림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위.

하나,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행위였다.

그는 대의보다 충성을 우선시하는 사내였던 까닭이다.

“내가 자네를 기억하지.”

표산의 팔이 흔들렸다.

신기루처럼 흩어진 비수.

그것들이 일제히 목리원에게 쏘아졌다.

채앵­!

목리원은 검을 휘둘러 그것을 튕겨냈다.

그리하며 표산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 순간.

사아아­.

목리원은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기분을 느꼈다.

'살기!'

이변을 느낀 목리원은 몸을 뒤틀어 등 뒤를 바라봤다.

쏘아지고 있는 것은 암청색의 기를 품은 채 허공에서 경로를 뒤틀어 쏘아지는 여섯의 비수였다.

푸욱­.

쏘아진 비수가 목리원의 몸에 박혔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목리원은 덜컥 몸을 멈춰 세우며 제 몸의 비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으득 이를 갈곤 그것을 손으로 잡았다.

“흐읍­!”

기합과 함께 몸에 박힌 여섯 개의 비수를 뽑아낸다.

그리하며 한껏 찌푸려진 얼굴로 표산을 노려본다.

표산은 그 기백에 감탄을 흘렸다.

“영웅의 상이로구나!”

이길 수 없는 적을 상대로도 상처투성이의 몸을 일으키는 모습은 분명 그리 이르러야 할 본새였다.

그렇기에 표산은 이 만남에 얄궂음을 느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한 수 가르침을 내려줄 수도 있는 것임을.’

얄궂고도 얄궂은 운명이리라.

하필 자신이 정당할 수 없는 이런 순간에, 이곳에 자리한 일조차 없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런 순간에 그를 만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살려 보낼 순 없었다.

‘오늘 일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해야 한다.’

다시 모셔갈 화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죽음으로 스스로의 침묵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표산은 손가락을 튕기며 내기를 흘렸다.

그리하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비수가 둥실 떠올라 빠른 속도로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사아아­.

표산의 전신에 암청색의 기파가 떠올랐다.

“다시 가겠네.”

그리 말하자 목리원이 숨을 내뱉으며 검을 고쳐 쥐었다.

표정은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호흡에 따라 들썩이는 움직임은 거칠었다.

표산은 알았다.

저리 젊은 고수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문제가 무엇인지.

‘경험의 부재.’

고강한 무공과 웅혼한 내력.

그리고 최고의 스승.

명문 정파 후기지수들의 9할이 그런 환경에서 자라났고, 그렇기에 가지는 문제였다.

온실 속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꽃은 세파가 얼마나 험난한지를 모른다.

표산은 재차 비수를 쏘아냈다.

그리하며 높이 뛰어올라 달려오는 목리원과 거리를 벌렸다.

푹­!

이번엔 세 개.

각각 목리원의 오른쪽 어깨와 팔뚝, 그리고 왼쪽 허벅지에 박혔다.

하나 끝이 아니었다.

표산의 무공은 절정지경에 다다라 기를 발출하게 되면 진가를 발휘하는 암기술이었다.

암영비도(????).

허공으로 빗나간 비도에 내력을 심어, 상대방에게 그림자처럼 쏘아지는 비도술.

땅으로 떨어지려던 빗나간 비수들이 암청색 기를 품는다.

그리하고선 재차 목리원을 향해 쏘아진다.

푸욱­!

일방적이었다.

이번엔 등짝에 세 개가 제대로 꽂힌 상태.

목리원은 이번에도 그것을 뽑아냈고, 표산은 망아지처럼 달려드는 목리원을 피하며 비수를 다시 손에 쥐었다.

아마 다음 수나 다다음 수에서 끝나리라.

그런 생각을 떠올린 표산은 숨을 가다듬으며 재차 비수를 쏘아냈다.

그리고.

채애앵­!

그의 예상은 허무할 정도로 정확하게 빗나갔다.

*

15세의 목리원이 가진 의문이 있었다.

“스승님, 저는 언제 활용을 배웁니까?”

“음?”

“그렇지 않습니까. 강호협객전에 나오는 모든 협객들은 자신이 가진 무공을 십분 활용하여 사용하는데, 저는 아직 스승님께 초식의 원형과 체력단련법밖에 배우지 못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배움이 너무 느리다는 것.

아니, 목선오가 자신에게 내리는 가르침이 너무 적다는 것.

당시의 목리원은 한창 배움에 목마를 시기였다.

또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는 것에 슬슬 염증을 느끼던 혈기왕성한 시기였다.

왜 아직도 자신은 기본밖에 가르치지 않느냐.

15세의 목리원이 건넨 그 물음에 돌아온 목선오의 답은, 지긋한 미소였다.

“너는 배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란다.”

“네?”

그날의 목선오는 목리원의 머리 위로 손을 얹고 살살 쓰다듬으며, 다만 그런 말을 더했다.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될 것이니, 너는 그것에 대한 어떤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뜻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또한 답답함을 치밀게 하는 말이었다.

사실을 따지자면 18세가 되어 강호 무림에 나온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있었던 말.

목리원은, 그 말의 뜻을 이 순간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

목리원은 쏘아진 여섯 개의 비수를 삼 회의 검초로 모두 튕겨냈다.

그리하며 기감을 펼쳤다.

‘돌아온다.’

느껴지고 있었다.

기의 흐름이 묘하게 뒤틀리는 것이, 또한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살기가.

그 살기가 향하는 신체 부위가 따끔하게 아려오는 것이.

‘등에 세 개. 양 무릎 뒤쪽으로 하나씩, 그리고 뒷목.’

각각 심장과 폐, 위, 관절과 척추.

하나하나가 맞으면 즉사나 치명상으로 이어질 살초들.

목리원은 숨을 가다듬으며 몸을 뒤틀었다.

채애앵­!

다시 한번 그것들을 튕겨냈다.

‘이것으로 끝.’

앞선 두 번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비수의 움직임을 뒤트는 것은 한 번이 끝이다.

사실 당연했다.

허공을 자유자재로 노니는 비수라니, 그것은 초월지경에 이르러야 사용할 수 있다는 어검술(???)의 경지가 아니던가.

상대는 확실한 절정지경.

그리고 저 무공의 원리는 비수에 실어둔 내공으로 계산된 위치에 다시 비수를 쏘아내는 형태일 터.

목리원의 눈이 시리게 빛났다.

‘지금!’

단전에서 풀어낸 내공을 전신으로 퍼뜨린다.

3성에 이른 성련신공의 공력이 묵색의 검기를 짙게 물들였다.

언제나 포악할 줄만 알던 목리원의 내기는 참으로 오랜만에 날뛸 자리를 찾고 기쁜 비명을 토해냈다.

쾅!

단지 바닥을 딛는 것만으로도 굉음이 인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속도로 쏘아지는 목리원의 모습에 표산이 헛숨을 들이킨다.

이 순간, 그는 처음으로 허리춤에 매어두었던 소태도를 꺼내 들었다.

채애앵­!

검과 검이 맞붙는다.

내공과 내공이 드잡이질을 한다.

암청색과 묵색의 기파가 서로를 씹어먹으려 덩치를 불리는 와중, 표산은 짙은 당황을 느꼈다.

‘어떻게?’

어떻게 암영비도의 경로를 예측한 것인가.

어떻게 단 두 수만으로 암영비도의 약점을 파악한 것인가.

암영비도는 은밀함을 본으로 하는 무공이다.

그런만큼 단순한 기파만으로는 그 비도가 노리는 자리를 확실히 알 수 없는 무공이란 말이다.

끼기긱­!

검이 마찰하며 불똥이 튀었다.

표산은 으득 이를 갈며 목리원을 노려봤다.

표산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저항하지 마시오!”

입바른 소리나 지껄이는 젊은 고수.

그가 타고난 별이 무엇인지를.

채애앵­!

천살성.

그것은 하늘이 내린 살겁의 별이다.

그저 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살인이라는 행위에 특화되는 별이다.

그에 따라 드러나는 특성이 있었다.

목선오와 마일석은 알았고 표산은 모르는 그의 특성.

목리원은 살기를 읽을 수 있었다.

살기가 쏘아지는 방향, 그 목적, 속에 든 악의의 농도와 감정까지도.

살겁을 위해 태어난 이는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 자신을 향한 악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뿐이겠는가.

그것만으로 살겁의 별이라며 이 땅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것이겠는가.

아니었다.

채앵­!

채애앵­!

검이 맞붙고 떨어진다.

서로를 빗겨나가고 짓이기고 다시 흘려낸다.

표산은 그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성장…!’

지금 검을 맞대고 있는 상대가, 매 수를 나눌 때마다 성장하고 있었다.

아니, 자신의 검에 적응하고 있었다.

표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과였으나, 이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채애앵­!

다시 말하길, 목리원이 이제까지 배운 것은 초식의 원형과 체력단련법이 끝이다.

이것은 철저히 목선오와 마일석에 의해 계획된 일이었다.

목리원의 스승된 두 사람은 이 강호로 목리원을 내보내며 오로지 한 가지만을 걱정했다.

­살심을 억제해라.

바로 그의 살심을, 피만 보면 광분에 빠지는 그의 기벽을 통제하는 것.

이유는 하나였다.

아무리 이쁘게 포장해봐야 무공의 본질은 상대를 해하는 데에 있다.

즉, 살인에 있다.

그리고 천살성은 살겁을 위한 별이다.

3대 천마 이무백이 그랬듯, 검귀 서우진이 그랬듯, 마검 오춘이 그랬듯.

목리원 또한 그랬다.

무공이 살인을 위한 기술인 이상, 그는 이 세상에 둘도 없을 무공의 귀재다.

무공이 살인을 위한 기술인 이상, 그는 본능의 영역에서 무한에 달하는 초식의 응용을 할 수 있는 이다.

애초에, 무공의 기본만 배웠다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장애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서걱­.

표산의 오른 손목이 썰려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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