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이장 강호초출, 그리고 요녀 (3)
* * *
새삼스러운 말 하나를 해보자면 그랬다.
목리원은 여인을 모른다.
아니, 여인이 아닌 ‘타인’이라는 개념을 모른다.
이는 그의 기형적인 성장 과정에 기인한 특성이었다.
나고 자란 곳은 모두 강서 어딘가의 깊은 산골.
살아생전 만나본 이라곤 그를 키워준 목선오와 마일석이 끝.
목리원의 머릿속에서 그 둘 이외의 사람은 모두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허구였으며, 이는 그로 하여금 타인이라는 개념에 조금 이상한 선입견을 더하게 했다.
목리원의 세상에 타인은 세 가지 부류였다.
협의를 행하는 협객과 그것에 감사를 표하는 양민, 그리고 협객의 대척점에 있는 악적.
그렇기에 목리원으로선 그 세 가지 중 협객으로도 양민으로도 보이지 않는 그녀를 악적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즉, 그는 지금 이 심장의 떨림을 그녀의 사술에 의한 것으로 판단해 버린 것이다.
‘요녀다! 저것은 분명 요녀야!’
사실 오해라 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나, 안타깝게도 이곳에 그 오해를 풀어줄 만한 친절하고 인내심 있는 이는 없었다.
그의 앞에 있는 여인, 화서는 신분을 숨긴 도망자의 입장이다.
또한 그녀를 호위하고 있는 살수들은 모두 목리원의 내력에 긴장해있는 상태다.
갑작스레 칼을 뽑아 든 의문의 고수.
이것은 도망자인 그들에게 그저 위협적인 요소였다.
“쳐라!”
화서가 외쳤다.
천장이 ‘쾅!’하고 무너져내리며 일곱의 살수가 그를 향해 쏘아졌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것이 분명한 깔끔한 합격기(???).
하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쩌어엉!
내공이 실린 타격.
목리원이 검면으로 살수 하나의 어깨를 내려치자 합격기의 중심이 무너졌다.
교묘하게 맞물려 일말의 빈틈도 주지 않아야 완성되는 합격기의 특성상, 이리 커다란 빈틈이 생긴다면 남은 여섯의 살수가 순간적으로 당황을 하는 게 당연한 일.
목리원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쩌어엉!
감정을 수습하고선 뒤에서 찔러 들어오는 살수 하나의 허리를 두드린다.
살수가 날아가며 뒤이어 달려들던 이와 부딪쳤고, 그 틈에 목리원은 다른 방향의 적들을 처리했다.
이어진 것은 단 이수(二手).
핵심을 찔러 들어가는 움직임에 모든 살수가 바닥에 엎어졌다.
화서는 멍한 얼굴을 만들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제아무리 초입이라 하나, 이들 모두가 일류의 경지에 올라 있는 이들이다.
그것뿐이던가.
이들의 합격기는 어쭙잖은 시장통의 무공이 아닌, 도망쳐 나온 가문에서도 비전으로 취급하는 기술이란 말이다.
한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파훼 될 수가 있는 것인가.
‘…좋지 않다.’
화서는 눈을 굴렸다.
유일한 도망칠 구석이라 해 봐야 그가 막아서고 있는 뒤쪽의 창.
빈틈을 노린다면 얼마든지 뛰어나갈 수 있을 것도 같으나….
‘…이들을 버리고 갈 순 없어.’
자신을 살리겠다고 목숨을 걸고 함께 가문을 나온 이들이다.
그런 이들을 고작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화서의 고민이 깊어지던 중,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지며 복면인 하나가 뛰쳐나왔다.
그녀의 측근인 소향이었다.
“아가씨! 피하십시오!”
그리 외치며 단도를 뽑아 든 소향이 목리원을 덮쳤으나, 이미 그것을 알고 있던 목리원의 일수에 그녀 또한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쩌엉!
“커헉…!”
“향아!”
새 된 비명과 함께 화서가 해낸 것은 썩 이성적이지 못한 판단이었다.
화서는 눈을 부릅뜨며 단전의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하고선 주먹을 말아쥔 채 목리원에게 달려들었다.
“어, 엇?!”
목리원은 당황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상황을 인지한 순간,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떠오른 생각이 있었던 까닭이다.
‘부, 분 냄새가…!’
그녀가 다가오면 저 밑의 기녀들처럼 분 냄새를 풍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 된다면 또 직전처럼 부끄러움에 몸이 뒤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찰나의 머뭇거림이었으나, 완숙한 일류의 경지에 있는 화서에겐 큰 빈틈이었다.
화서는 눈을 빛내며 오른손을 펼쳤다.
그리고 손톱을 휘둘렀다.
좋은 시도였다.
상대가 목리원만 아니었다면 통했을 정도로.
탁. 탁. 탁.
반사적으로 움직인 목리원이 검지로 그녀의 몸을 찔렀다.
단순한 찌르기가 아닌 내공을 실은 찌르기.
그녀의 혈도를 눌러 내공과 움직임을 봉하는 점혈(??)의 수법이었다.
“끅…!”
콰당!
화서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끓어오르던 내공이 단 순간에 막혀버리고 몸조차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마비된 상태.
절망과 분노.
그것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서가 증오를 담아 목리원을 노려봤다.
목리원은 그 눈길에 허둥지둥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 어떡하지…!’
뭔가 아닌 것 같았다.
분명 예상대로라면 요녀가 본색을 드러내 색공으로 자신의 이지를 흐려야 했을 텐데, 마지막 순간 그녀가 사용한 것은 다름 아닌 조법(??)이지 않았나.
아니, 그런 부차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분명 그녀는 내공이 봉해져 있는 상태일 텐데 가슴의 두근거림은 여전하지 않나.
목리원의 눈이 핑핑 돌았다.
입은 어버버하며 벌어지고 있었다.
올라가라! 상층에 소란이 생겼다!
당황스러운 와중, 목리원의 귓가에 그런 외침이 들려왔다.
아래층에서부터 들려오는 것이었다.
당황과 흥분.
그리고 왜인지 모를 수줍음에 머리가 온통 어지러워진 목리원은 그 외침에 그만.
덥석!
화서를 어깨에 짊어진 채로, 눈을 질끈 감은 채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아가씨!”
그렇다.
납치였다.
*
신법(??)까지 발휘해가며 달린 목리원이 멈춰 선 것은 한 시진이 더 지난 이후의 일이었다.
‘여긴….’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주변은 숲이었다.
목리원은 뒤늦게야 아차 하는 마음을 떠올리며 입을 쩍 벌렸다.
‘너무 멀리 왔다!’
생각 없이 뛰어오느라 수양현으로 돌아가는 길도 모르는 상태.
이대로 가다간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리원의 낯빛이 거무죽죽해졌다.
와중, 그런 목리원을 또 놀라게 하는 일이 있었으니.
“…놓아라.”
바로 어깨에 들쳐 메고 있던 화서의 속삭임이었다.
귓가에 대고 바로 전해지는 따스한 숨과 이제야 인식되기 시작하는 달짝지근한 냄새.
그것에 목리원은 화들짝 놀라 그녀를 땅으로 내팽개쳤다.
쿵!
“끄윽…!”
화서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삐져나왔다.
목리원은 심장이 벌렁거리는 기분에 연신 심호흡만 하고 있었다.
화서의 이가 빠득 갈렸다.
“어디서 온 놈이냐.”
서늘하게 내려앉은 목소리.
눈빛은 이전까지의 사나운 기색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었으나, 당장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목리원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저, 저 뒤편 산골짜기에서 왔소!”
눈을 질끈 감으며 검지로 산맥 어딘가를 대충 가리킨다.
화서는 흰자 위에 핏발이 설 정도로 강하게 그를 노려봤다.
“수작 부리지 마라! 가문이냐? 그도 아니면 흑도의 고수더냐? 버러지 같은 것, 내가 이런다고 네놈들 뜻대로 움직여 줄 것이란 생각은 말거라!”
“그, 그게 무슨…!”
“허, 끝까지 시치미를 떼시겠다?”
목리원은 서슬퍼런 화서의 기색에 움찔움찔 몸을 떨며 그녀를 훔쳐봤다.
‘왜,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인가…!’
물론 방법이 과격했다곤 하나, 그녀라고 해서 이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지 않나.
그녀는 양민을 착취하는 못된 요녀가 아닌가.
이 점에선 조금의 미심쩍음도 없었다.
그녀가 요녀가 아니라면, 평범한 가희였다면 무공을 알 리도 없었고 이리 자신의 속을 진탕으로 만들 수 없었을 테니.
목리원은 돌연 떠오른 억울함을 조금도 숨기지 않은 채 화서를 손가락질했다.
“어, 어허! 요녀가 말이 많구나! 내 이미 이곳의 양민들에게 다 들었다! 네년이 오고 나서부터 흑도의 보호비가 두 배나 늘었다는 이야기를! 어디 그것뿐이더냐, 네년은 지금 관아를 습격하려 외부의 고수들을 모집하고 있지 않느냐!”
“뭐?”
“내 비록 오늘 처음 강호에 나온 미숙한 무인이라 하나, 그럼에도 협이 중요하고 인의가 중요함은 알고 있다! 발뺌할 생각은 말거라!”
꽤나 멋있게 말한 것 같다는 생각에, 목리원은 ‘흥!’하고 콧김을 뿜으며 미소 지었다.
화서는 그제야 뭔가 제대로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무슨….’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접대를 받고 있습니다. 잔뜩 쪼그라들어서요.
그가 잔뜩 쪼그라든 채 기녀들의 접대를 받고 있었다는 소향의 보고.
색공으로 나를 홀린 게로구나! 하지만 이 목리원은 그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사악한 요녀야! 이제 본성을 드러내거라앗!
다짜고짜 색공이니 뭐니 하면서 자신을 홀렸다고 외치던 그의 모습.
그리고 직전, 산골짜기에서 왔다는 그의 말까지.
화서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탈함이 가득 담긴 헛웃음이었다.
‘잠깐, 아니….’
설마 진짜?
다른 집단에서 온 게 아니고 진짜 촌놈?
그렇다면 무공은?
‘…은거기인에게 사사 받았다?’
어디 애들이나 볼 잡서에 나올 이야기다.
그럼에도 화서는 그 가능성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서의 상식에선 저런 고강한 무공을 지닌 인간이 굳이 기루에 손님으로 들어와 잠입하고 뒤늦게 무공을 보이며 자신을 납치할 이유가 없었던 까닭이다.
다시 말해.
‘행동에 일관성이 없다.’
잠입이면 잠입, 소란이면 소란.
둘 중 하나를 제대로 하면 될 일을 이 사내는 굳이 어렵게 꼬아서 하고 있었다.
‘…훈련받은 이가 아니야.’
더군다나 지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내고 뿌듯해하는 저 모습은 딱 애새끼나 할 법한 꼴이 아닌가.
“어디 변명해보거라!”
잔뜩 기가 살아 자신을 손가락질한다.
화서는 문득, 스스로가 처량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 내가 지금….’
추격해오던 가문도 아니고 수양현의 흑도 무리들도 아닌, 고작 무공만 강한 촌놈에게 납치당해버렸다.
그 사실이 화서의 가슴속에 아릿함을 일게 했다.
*
탈력감에 휩싸인 화서는 한숨을 내쉬며 오해를 풀고자 했다.
아니, 그것 외에도 다른 목적이 더 있었다.
‘포섭.’
소속이 없는 고수.
거기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듯한 멍청한 말본새에 자신에게 호감까지 가진 듯했다.
잘만 이용하면 지금 닥친 문제 몇 가지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화서는 나름의 계산을 더해 말을 이었다.
하나, 그 말이 이어질수록 목리원의 표정은 이상해졌다.
“그, 그러니까….”
세상 물정을 몰라 별스러운 짓거리나 하는 목리원이었으나, 그는 어릴 적부터 오성이 뛰어난 것으로 목선오에게 숱한 칭찬을 받아온 사내였다.
즉, 지금 화서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정도는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루주가 된 것은 전 루주에게서 돈을 주고 기루를 샀기 때문이고….”
“그래.”
“흑도의 무리가 보호비를 두 배로 걷기 시작한 것은 소저에게서 기루를 빼앗으려는 목적이고….”
“잘 이해했구나.”
“정체불명의 무인들은….”
“그냥 외지인이지. 당장 네놈부터가 외지에서 온 무인이 아니더냐?”
물론 그냥 외지인만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자신의 흔적을 찾아 따라온 가문의 수족들도 그중엔 분명 존재할 터.
하나, 화서는 그런 것까지 그에게 이야기해 줄 필요성을 못 느껴 그리 얼버무렸고 그 시도는 통했다.
“그럼 색공은…?”
“아까부터 색공, 색공. 그놈의 색공에 뭐 그리 집착하는 것이냐? 혹 색공에 당하러 나를 찾기라도 한 게냐?”
“….”
목리원이 화서의 시선을 피했다.
그것에 화서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이제야 어느 정도 오해가 풀린 상황.
화서가 이 상황을 어찌 이용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기 바쁜 와중, 목리원은 연신 몸을 덜컥이고 있었다.
‘요녀가 아니라면….’
뒤늦은 깨달음에 목리원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렸다.
등에선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여, 여인을 납치했다!’
그는 이제야 자신이 죄 없는 아녀자를 납치한 불한당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물론,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