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이장 강호초출, 그리고 요녀 (2)
* * *
수양현 최고의 기루로 꼽히는 경화루.
그곳의 최상층에 한 여인이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미인이었다.
비단결처럼 빛나며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칼도, 들숨과 날숨을 이어 가며 슬쩍 벌어지는 붉은 입술도, 그리고 그녀의 몸을 덮은 붉은 경장도.
그녀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보는 이로 하여금 찌릿한 자극을 느끼게 할 정도로 화려한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아가씨.
어디선가 퍼져나오는 목소리.
그것에 여인이 눈꺼풀을 들었다.
사납게 치켜 올라간, 그러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고고한 눈매가 정면을 향했다.
“무슨 일이냐.”
아가씨의 뒷조사를 하고 다니는 이가 있습니다.
“…뭐?”
근방에선 본 일이 없는 무인입니다.
“일륜회냐?”
그것은 아닌 듯합니다. 일륜회라고 하기엔 그 술수가 허술하기 그지없으며, 차림새나 무장 또한 허름하기 그지없습니다.
여인의 미간이 좁아졌다.
“목적은 알아냈느냐.”
불분명합니다.
“무공은?”
…최소 일류의 경지는 넘겼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도가 아주 잘 정련되어 있더군요.
“최소 일류라….”
여인은 그리 중얼거리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번엔 또 어디서 냄새를 맡은 개새끼가 찾아온 것일까.”
처리합니까?
“향아, 충심은 좋으나 분에 맞지 않는 일엔 덤비지 않는 것이 좋단다. 나는 너를 그리 허망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
여인은 가부좌를 풀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곧게 세우며 시선을 향한 곳은 밖으로 나 있는 창가.
수양현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여인의 얼굴 위로 씁쓸함이 떠올랐다.
언제부터였을까.
성씨를 버리고 도망쳐 나온 그 순간부터 주변엔 언제나 목을 노려오는 적들 뿐이었다.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으면 따라오고, 또 도망쳐 살길을 찾아보고자 하면 따라오는 지긋지긋한 그림자들.
그것에 그만, 여인은 한탄 섞인 말을 내뱉었다.
“지치지도 않는 것인지, 또 이렇게 징조를 보이는구나.”
…아직 그들이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아니면 어디서 그런 고수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겠느냐.”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아마 지금쯤 어떤 답을 내뱉어야 할지 몰라, 저 천장 위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을 터.
여인은 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에 피식 웃으며 물었다.
“손님은 어디 있느냐.”
아, 루의 2층에 있습니다.
“그래, 이번엔 어떤 식으로 나오던? 나를 불러오라 소란을 피우더냐, 그도 아니면 가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아이들을 겁박하더냐.”
그리 묻고 잠시, 공간에 침묵이 감돌았다.
여인은 고개를 기울이며 답을 재촉했다.
“향아?”
그으….
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목소리가 머뭇거림을 품었다.
그것에 여인의 얼굴 위로 의구심이 더욱 짙어지던 중.
…접대를 받고 있습니다. 잔뜩 쪼그라들어서요.
들려온 말에, 여인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
“아가, 너무 귀엽다. 응? 여기 좀 봐봐.”
“그, 그만하시오…!”
“꺄악! 그만하시오래! 너무 귀여워어어!!!”
경화루 2층의 구석 객실은 소란스러웠다.
기루가 소란스러운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런 것을 따져봐도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는 소란이었다.
그렇지 않나.
보통 기루에서 깔깔대며 즐기는 것은 손님 쪽이고 기녀들은 그 옆에서 아양을 떨며 옅게 웃는 것이 맞는 일 아닌가.
한데 이곳에선 그것과는 정반대되는, 기녀가 크게 웃고 손님이 수줍게 뺨을 붉히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손님이 누구인지는… 말해 뭐하겠나.
목리원이었다.
“어, 어찌 아녀자들이 이리 헐벗고 다니시오…! 조, 조신하지 못하게 이래선 안 될 일이라 보오!”
눈을 질끈 감은 목리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손은 어깨를 다 드러낸 기녀의 옷섬을 분주히 여미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기녀들이 또 꺅꺅댄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픈 일.
“어쩜, 배려심까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기녀 애월은 크게 웃으며 목리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찌 손님을 이리 대해도 되는 것이냐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 또한 이 일을 몰라서 하는 소리.
‘호구네.’
손님에도 부류가 있다.
돈 많고 이런 일에 익숙한 부류.
또한 돈은 없어도 한 번 오면 온갖 폭정을 다하는 부류.
그리고 격식을 중시 여겨 그것을 어기면 가게에 항의해오는 부류.
삼대진상이라.
기녀들 사이에서 그리 불리는 것이 위의 세 부류였고 그것과 반대되는 개념의 손님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목리원과 같은 부류였다.
여자를 모르는 쑥맥.
막 대해도 뒤탈이 없어 보이는 허름한 옷차림.
흔히들 호구라 말하는 접대를 건성으로 해도 되는 부류였지만, 오늘의 애월은 그러지 않았다.
“아가, 열여덟이라고?”
“그, 그렇소….”
젊고 맛있어 보이는 미남.
그것이 제 발로 굴러들어와 이리 쭈그러들어 있는데 그깟 접대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어쩜, 벌써부터 이런데 맛들리면 나중에 큰일 나는데?”
애월의 장난기 넘치는 말에 목리원은 화악 얼굴을 붉히며 어깨를 좁혔다.
‘이, 이게 아니건만!’
코앞에 드리워진 술잔의 달짝지근한 냄새와 옆에서 팔짱을 껴오는 여인의 분 냄새가 너무 자극적이었다.
또한 깔깔대는 목소리는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일 없는 울림을 지녀, 왜인지 뺨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목리원은 그만 부끄러움에 죽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요, 요녀에 대한 걸…!’
물어봐야 하건만.
이 기루의 최상층에 있다는 요녀에 대한 것을 이들에게 캐내야 하건만!
“저… 이제 그 요녀에 대한 것을….”
“어머, 지금 앞에 날 두고 다른 여자랑 놀고 싶다고 말하는 거니?”
…무슨 말을 하든 돌아오는 것이라곤 이런 장난 섞인 반응이었다.
“그런 게 아니라…!”
목리원이 눈을 질끈 감으며 변명했다.
그것에 앞뒤 옆으로 포진해있던 기녀들은 더욱 깔깔대며 웃었다.
어지러운 상황이 한참이나 펼쳐지던 와중, 다행히도 목리원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어져 나왔다.
드르륵.
방의 문이 열렸다.
그와 함께 들어오는 것은 전신을 꽁꽁 싸맨 작은 체구의 복면인이었다.
“정지.”
얇은 목소리에 기녀들이 화들짝 놀라 목리원에게서 떨어졌다.
그제야 조금 숨통이 트인 목리원은 눈을 끔뻑대며 전방의 복면인을 바라봤다.
드러난 눈만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는 복면인에게서는, 분명 내공이 느껴지고 있었다.
‘무인?’
목리원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일류 초입이다. 사용하는 무공은… 쾌검술 종류일 터. 아니, 암기술인가?’
습관처럼 이어지는 분석은 목리원이 산골짜기에서 지낼 적 걸왕에게 훈련받았던 것 중 하나였다.
날카롭게 벼려지는 분위기에 기녀들이 딸꾹질을 했다.
복면인은 갑작스레 가라앉는 목리원의 기색에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루주께서 당신을 뵙고자 하시오.”
루주.
그 단어에 목리원은 눈을 빛냈다.
‘요녀…!’
분명 들은 정보로는 그랬다.
이곳의 원래 루주는 그녀가 온 날, 그녀의 연주를 듣고 크게 감탄하며 경화루를 내어줬다고.
그것이 그 요녀의 첫 번째 행보였다고.
“마침 잘 됐구려. 내가 그 루주를 찾아 이곳에 온 참이니.”
목리원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그리 말했다.
목소리를 내리깔고 어깨를 활짝 펴며 내뱉은 말.
하나, 그것에 복면인은 ‘허!’하고 헛웃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복면인, 루주의 최측근인 소향은 목리원과 그 곁의 기녀들을 번갈아 봤다.
분명 직전까지 이곳에서 깔깔대며 놀고 있었던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이제와 저런 말을 하는 것이 괘씸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이는 목리원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커, 커흠…!”
목리원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복면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
경화루는 총 5층까지 층이 올라와 있는 거대한 전각이었다.
목리원은 복면인의 뒤를 따라 걸으며 기감을 넓게 펼쳤다.
‘숨어있는 자객이 일곱. 모두 이류에 해당하는 진짜 무인들이다.’
그 외에도 층을 지키고 있는 경비들 또한 이류 초입부터 갓 일류에 도달한 이까지 그 구성이 다양했다.
‘전부 무인이라?’
수상한 냄새가 났다.
목리원은 그제까지의 수더분하던 마음을 착 가라앉힌 채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도록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시오.”
그렇게 도착한 최상층의 문 앞.
목리원은 옆으로 비켜서는 복면인을 잠시 흘기다, 이내 문 앞으로 걸어갔다.
‘느껴지는 기척은 여덟.’
방의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이 루주일 테고, 천장 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호위들일 것이다.
모두가 일류 초입에 들어선 이들이다.
과연, 루주라는 이의 경비치곤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목리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다.
드르륵.
그리고, 멈칫 몸을 떨었다.
“어서 오십시오.”
방은 넓었다.
분명 사람 몇십이 들어앉아도 넉넉할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들어찬 기자재 또한 그 수가 적어 황량하게 보여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한데, 목리원은 문이 열리는 순간 그 방이 너무나도 좁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아름….’
아름답다.
그런 생각만 떠오르게 하는 미인이 그의 시야를 가득 메워, 시야가 오로지 그녀로만 가득 차서.
그 탓에 시야가 너무 좁아져.
쿵.
목리원은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낀 것이었다.
*
여인, 화서가 목리원을 보고서 가장 먼저 떠올린 감정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젊어?’
경악.
바로 그것이었다.
‘최소가 일류라 들었다.’
한데 저 청년의 나이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대 초반을 채 넘기지 못할 것으로만 보인다.
환골탈태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만약 그 정도 경지를 이룬 고수라면 그가 스스로의 내력을 완전히 숨겨 소향이 알아채지도 못했을 테니.
‘세가 출신?’
그 가능성이 더욱 선명히 떠오른다.
세가에서 온갖 영약을 다 먹으며 성장했다면 충분히 말이 되는 경지에, 더불어 생김새도 귀이 자란 것이 분명할 정도로 멀끔하지 않나.
‘만약 세가 출신이라면 무슨 희생을 치러서라도 이 자리에서 죽여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오른 와중, 화서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 아니지. 아직 확단하긴 이르다.’
화서는 긴장에 마른침이 넘어가려는 것을 꾹 참아내곤 애써 표정을 다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경화루의 루주, 연화라 합니다. 고인께선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일단 정보가 우선이다.
저치의 출신을 알아내 위협이 되는 상대인지, 그도 아니면 아군으로 포섭할 수 있는 상대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화서는 빠르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답을 기다렸다.
그렇게 몇십 초가 흘렀을까.
화서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답에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들었다.
화서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그랬다.
“어, 어어….”
잔뜩 붉어진 얼굴로 어버버 말을 흐리는 멍청한 얼굴.
그리고 핑글핑글 돌아가는 눈.
화서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방심을 유도하는 건가?’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여 방심을 유도하는 것일 터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릇 일류 이상의 고수라면 심상을 의지 위로 얹어 어느 정도의 부동심을 완성했을 게 당연하지 않나.
“대협?”
허튼 수작 부리지 말라는 의미에서 건넨 말.
그것에 목리원은 덜컥 몸을 떨며 충격을 드러냈다.
‘대, 대협…?’
대협.
그 단어 하나에, 목리원의 심장이 그녀를 본 순간 느꼈던 두근거림보다 더욱 세찬 박동을 해낸 까닭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대협이라 칭하는 이런 상황은, 목리원으로선 꿈에나 그리던 상황이었기에 좀처럼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목리원은 쿵쾅쿵쾅 뛰는 심장에 열이 바짝 오르는 기분을 느끼다, 뜨거워진 머리에 흠칫 놀라 몸을 다잡았다.
스릉!
그리고 검을 뽑았다.
“이, 이 무슨 사특한 술법인가!”
온 방 안을 다 울리는 외침.
그것에 화서가 몸을 쭈뼛 세우고 천장 위의 호위들이 단도를 뽑아내던 순간, 목리원이 말을 이었다.
“색공으로 나를 홀린 게로구나! 하지만 이 목리원은 그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사악한 요녀야! 이제 본성을 드러내거라앗!”
목리원은 생각했다.
이것은 분명 악독한 색공이 분명하다고.
그런 게 아니라면 이 심장의 떨림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또한 그녀를 볼수록 멍해지는 머릿속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목리원의 외침이 길게 울리는 방 안.
그의 말을 듣던 화서는, 너무 엉뚱한 발언에 뒤늦게야 그 뜻을 이해하고 멍한 얼굴을 만들었다.
그리하며 생각했다.
‘뭐 하는 새끼지?’
이건 어디서 굴러온 미친 새끼인가.
…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