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7화 (7/334)

〈 7화 〉 이장 ­ 강호초출, 그리고 요녀 (1)

* * *

환한 대낮, 목리원은 초가집 마루 앞에 선 채 주먹을 손바닥으로 감싸 앞으로 뻗었다.

포권지례(??之?).

무림에서 상대에게 예를 치를 때 쓰는 인사법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회색 무복을 입은 목리원의 등엔 봇짐이 메여 있었다.

허리엔 낡은 철검 한 자루가 있었고, 또한 그의 품엔 긴긴 유년기를 함께 해온 서책 ‘강호협객전’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목선오는 흐뭇하게 웃는 얼굴로 마루에 앉아 그런 목리원에게 답했다.

“그래, 강호로 나가는 것이냐.”

어찌 제자의 성취를 모르겠는가.

느껴지는 기도만으로 그가 절정지경에 다다랐음을 깨달은 목선오는 다른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저 대견하고 또 대견하여, 이젠 아이라 부를 수 없는 모습이 된 그를 향해 그런 질문만을 건넸다.

“원아.”

“예!”

“강호는 험난할 것이다. 때로는 무정하고, 때로는 사특하며 또 때때로는 악독하기까지 할 것이다. 너는 그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겠느냐.”

각오를 묻는 말.

목리원은 자신감 있게 웃으며 답했다.

“그 모든 일을 협의로 이겨내 보이겠습니다.”

“훌륭한 답이구나.”

목선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곁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이젠 흰머리가 머리의 절반을 덮은 노인 마일석이 말했다.

“말은 참 잘하는구나.”

11년이 지났으나 마일석의 태도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하나, 그것이 마일석의 마음까지 그렇다는 말은 아니었다.

부대끼고 살았던 정이란 것이 있지 않던가.

마일석은 자신감 넘치는 목리원의 모습에 괜히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끼곤, 품에서 패 하나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이게 뭡니까?”

“혹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것을 도시의 거지들에게 보이거라. 아, 허리에 이런 띠를 두른 놈한테.”

마일석이 제 허리에 두른 띠를 툭툭 치며 말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면 도움을 줄 터다.”

이젠 개방주의 자리에서 내려와 은거한 그였으나, 그것이 중원 무림에서 걸왕(?王)이라는 이름의 힘이 줄었다는 말은 아니었다.

즉, 그의 패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목리원은 개방의 손님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목리원은 감격 어린 얼굴로 마일석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개뿔이.”

마일석은 ‘흥!’하고 콧방구를 꼈다.

그리하며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걱정 어린 말을 쏟아냈다.

“그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겠지만, 한 번 더 듣거라.”

“예!”

“강호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덜컥­.

목리원의 얼굴 위로 씁쓸한 미소가 피어났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 너는 천살성이다. 그리고 극마지체를 가진 이다. 네가 이 사실을 무사히 숨긴다면 다행인 일이지만, 분명 너의 무공을 통해 형님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게다.”

“그리고 이 무공을 통해, 제 정체를 눈치채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겠지요.”

“말 끊지 마라.”

마일석의 표정이 구겨졌다.

목리원은 그만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염두에 두겠습니다.”

“건방진 놈.”

목선오는 두 사람의 투닥거림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하곤 목리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보거라.”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하나, 이제야 제 길을 나서려는 제자를 붙잡는 것 또한 스승의 도리는 아닐 터다.

떠오르는 아쉬움을 꾹 눌러낸 독촉.

목리원은 그런 스승을 바라보며 뭉클한 마음을 느꼈다.

목리원은 시야를 넓게 잡고 마지막으로 집을 두 눈 속에 담았다.

나무가 우거진 산속 골짜기.

그 속에 야트막하게 자리한 초가집.

그리고 가족과도 같은 두 명의 스승.

이제 이곳을 떠나 더 이상 자신에게 따스하지 않은 세상으로 나가게 될 터.

목리원은 설렘과 걱정을 동시에 떠올리며 천천히 무릎을 꿇어 절을 하기 시작했다.

구배지례.

스승을 향한 극진한 예를 담아 그리 절을 마친 목리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꼭! 무명을 이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돌아섰다.

길을 떠나며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것이 아쉬움만 더할 것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

산을 내려가 약 사흘.

내내 봇짐을 인 채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던 목리원은 눈앞의 대도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이제야 도시구나!”

하마터면 길을 잃은 줄로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내 보이는 것은 산골짜기뿐인데다가 그 아래 사람 사는 곳인 줄 알고 찾아갔던 곳은 폐허였으니 불안감이 차오르는 것이 아니겠나.

설마 강호초출에 산에 길을 잃어 굶어죽는 일은 생기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목리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도시에 들어섰다.

“오오…!”

목리원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눈 또한 동경을 담아 빛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이리 많을 수가 있던가!’

여기를 봐도 사람, 저기를 봐도 사람.

심지어 나이대와 성별까지 모두 다른 이들이었다.

이는 살아생전 본 사람이래 봐야 목선오와 마일석이 끝인 목리원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와중.

꼬르륵­.

목리원은 뱃속에서 울려 퍼지는 꼬르륵 소리에 부끄러운 듯 뺨을 붉혔다.

그리하며 주변을 흘끔거렸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컴, 크흠!”

괜히 머쓱해져 헛기침하길 잠시.

목리원은 이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밥부터 먹어야겠다.’

향하는 곳은 객잔.

요리는 이미 정해두었다.

‘소면에 죽엽청!’

강호협객전에 나오는 고수들 중 안 먹어본 이가 단 한 명도 없는, 그야말로 협객의 음식.

무림초출 목리원은 설레는 발걸음으로 객잔을 찾기 시작했다.

*

강서성 수양현의 대로변.

소화객잔이라는 이름의 작은 객잔엔 평소와는 다른 멍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구석진 자리에서 소면을 ‘마시고’있는 한 청년의 외모가, 그런 분위기를 만든 것이었다.

회색 무복과 벽에 기대어둔 봇짐은 허름하다.

허리에 차고 있는 검 또한 시장통에서 굴러먹을 것 같은 낡은 검이다.

하나, 그럼에도 그에게서는 광채가 일었다.

남자라기엔 너무나도 뽀얀 피부.

높게 솟은 콧대와 얄쌍한 얼굴선, 그리고 기다란 속눈썹.

옷차림에 맞지 않는 귀공자 같은 외모였다.

그것에 객잔의 분위기가 묘해진 것이었다.

혹 그가 암행을 나온 명문 세가의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해버린 것이다.

목리원의 반대쪽 구석에 앉아있던 왈패가 그의 외향을 보며 숙덕거렸다.

“저놈, 저거 꼭 기생오래비 같이 생기지 않았수?”

“그래, 그… 뭐냐, 제갈가의 옥룡이니 뭐니 하는 그놈인 게 아니냐?”

“제갈세가? 에이, 형님도 참. 그 집안 자제가 왜 이런 곳에 있겠소?”

“모르냐? 그놈이 괴짜라는 소문이 이 강호에 이리 파다하게 퍼졌는데.”

왈패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그 뒤쪽에선 점소이가 입을 떡 벌리며 목리원을 바라보고 있었고, 또 어느 곳에선 아녀자 몇몇이 몽롱한 눈으로 목리원을 훔쳐보고 있었다.

특출난 외모란 것이 그랬다.

가만히 있어도 시선을 몰아오는 특성이 있었고, 또한 무슨 행동을 한들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특성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 목리원을 훔쳐보는 여인들의 말 또한 그 맥락 속에 있는 것이라 봐야 했다.

“어쩜, 식사도 저리 호쾌하게 하실까….”

틀렸다.

게걸스럽게 하는 것이다.

“턱에 죽엽청이 흐르셨구나. 덜렁대는 것도 꽤나….”

덜렁대는 게 아니라 일부러 흘리는 것이었다.

목리원이 본 ‘강호협객전’에 [죽엽청이 턱을 타고 흘렀다]라는 묘사가 있는 까닭이다.

“분명 세가에서 암행을 나온 도련님이실 테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목리원은 산에서 나고 자란 촌놈.

말 그대로 세상물정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였다.

오해는 깊어져만 갔지만 풀어줄 사람은 없었다.

와중, 목리원은 낭만에 취해 귀를 닫고 싱글벙글하고 있을 뿐이었다.

‘맛있다!’

짜릿하다!

‘이것이 협객의 맛!’

어찌 낭만과 낭만이 겹친 맛이다.

소면은 적당히 부드러웠고, 죽엽청은 화한 맛이 목을 태우는 것이 아주 일품이었다.

산에서 먹던 나물들과는 그 결이 다른 속세의 맛에, 목리원은 그만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좋구나…!’

이런 강호행이라면 평생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목리원이 시원스레 웃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목리원은 주변을 인식했다.

‘음?’

고개를 휙휙 돌리니 다들 깜짝 놀라 식탁에 고개를 박는다.

또한 갑작스레 소란이 잦아든다.

기이한 반응들에 고개를 기울이던 와중, 목리원은 한숨소리를 들었다.

“후으….”

시선이 흘긋 소리의 근원지를 향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늙수그레한 노인과그 앞에서 죽을상을 하며 앉아있는 중년이었다.

목리원은 그들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별달리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그들의 안색이 꼭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 탓이었다.

목리원의 내공이 단전에서부터 솟아올라 귀를 감쌌다.

청력을 극대화하는 일종의 잡기.

걸왕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경화루 때문에 아주 죽겠구나.”

“내 말이 그 말이오. 그놈들은 어찌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오? 어찌 이리 상권을 다 독점하려고만 하는 것인지….”

‘경화루?’

목리원은 미간을 좁히며 한 단어에 집중했다.

‘이름만 들으면 주점이나 기루인 것 같은데….’

목리원이 고민에 빠져있던 중, 죽을상을 하고 있던 중년인이 탁자를 내리쳤다.

쾅!

“이게 다 그 요녀 때문이오!”

“이, 이보게!”

“내가 틀린 말 했소? 형님도 실은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소! 그 요녀가 경화루에 들어온 날부터 골목이 이상하게 변해버렸소! 흑도에서 보호비 명목으로 걷어가던 돈은 두 배가 늘었고, 곳곳에서 모르는 무인들이 보이기 시작했소! 이렇게 가다간 우리들 모가지도 다 날아갈 게 분명하지 않소!”

흥분한 중년의 목소리가 객잔에 가득 울려 퍼졌다.

하나 그런 중에도 의구심이 드는 점이 있었는데, 저리 사람이 흥분해있으면 누구든 말리러 갈 법한데도 객잔에 있는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더 정확한 말이 있었다.

‘…시선을 피한다.’

객잔에 있는 이들이 그에게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목리원은 이 기이한 상황에 눈을 번뜩였다.

‘협행의 시간이다!’

철딱서니 없는 촌놈 목리원은, 이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그런 생각이나 떠올렸다.

*

무릇 정보를 캐낸다 하면 당연히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었다.

은밀함이나 조심스러움 따위의 것들 말이다.

하나, 목리원은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길을 가는 사람에게 말을 물으면 누구든 답해줄 것이라는 안일함.

목리원의 속에 있는 것은 그것 뿐인 것이다.

…이를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런 중에도 목리원의 시도는 성공했다.

그의 주제에 맞지 않게 잘난 얼굴 탓이었다.

“고맙소, 소저!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아, 아니에요!”

포권을 하고 있는 목리원의 앞으로 얼굴이 잔뜩 붉어진 여인들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갔다.

목리원은 그것에 아무런 의구심도 갖지 않은 채 허리를 펴며 생각을 이었다.

‘요녀란 말이지!’

소저들이 알려준 것은 그랬다.

이 소양현에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인이 들어왔다.

요사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의 행보는 그러했다.

‘홍화루의 주인에게 찾아가 악기를 연주하니 그가 그 연주에 홀딱 빠져 요녀를 귀이 여겼다라….’

목리원은 눈을 좁혔다.

‘의심스럽다.’

그저 악기의 연주를 잘했기에 그런 것이라 말할 수도 있었지만, 목리원은 그 이전에 마일석이 당부한 말 하나를 떠올렸다.

­무림엔 온갖 사특한 사술이 난무한다. 개중 특히 악랄한 것으로 따지자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섭혼술(???)이라는 것이 있다.

­섭혼술이요?

­그래, 사람의 이지를 흐려 꼭두각시로 만드는 술법이지.

요녀가 행한 것은 섭혼술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녀가 나타난 이후로 흑도의 움직임이 거세졌다 하니, 그녀는 흑도 단체에서 이 소양현을 집어삼키기 위해 보낸 척후병일지도 모른다.

‘분명 요녀라 했다.’

목리원은 잘 써보지도 않은 머리를 팽팽하게 굴려 생각을 이었다.

섭혼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꼭두각시로 만드는 술법.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무공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이라면 목리원도 아는 것이 있었다.

‘색공…!’

목리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7세의 목리원과는 다르게 이제 그런 쪽에도 지식이 생긴 목리원은, 언젠가 들었던 마일석과 청혈색귀 사이에 벌어진 싸움의 내막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색공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홀리는 지 알게 되었단 말이다.

“어허­!”

목리원은 몸을 홱! 하고 돌려 직전 들었던 경화루의 위치 쪽을 바라봤다.

‘색공이라니!’

…라고, 목리원은 색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순간 요녀가 부리는 술수가 사술이 아닌 색공이란 확신을 떠올렸다.

물론, 이유는 없었다.

타닥­!

‘위험하구나!’

목리원은 경화루를 향해 달렸다.

색공은 정말 위험한 무공이니 양민이 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탓이었다.

만약 양민이 당한다면 기가 쪽 빨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탓이었다.

‘차라리 내가!’

나라면 가진 내력으로 버틸 수 있다!

틈을 노릴 수 있다!

목리원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뻘개진 얼굴 위로는 삐죽삐죽 미소가 걸려있었다.

‘색공!’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속으로는 그런 다짐이나 떠올리는 와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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