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일장 유년기 (5)
* * *
다음 날 아침, 초가집의 마당.
마일석은 팔짱을 낀 채 목리원에게 말했다.
“…사과는 하지 않겠다. 네 기벽을 알려주기 위해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단 생각은 아직 동일하니.”
여전히 굳은 어조였다.
하나, 그런 중에도 보이는 기색은 이전보다 확실히 따스해져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전날 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그 역시 먼 곳에서 들었던 까닭이다.
마일석은 대의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의로움과 인간 됨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그는 스스로의 천성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우는 아이를 모질게 대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나, 약속하마. 네가 협객이 되겠다는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나는 내 이름을 걸고서 너를 도울 것임을.”
물론, 이 모든 것은 목리원으로선 알 수 없는 일.
목리원은 그저 웃으며 답했다.
이제야 꿈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 아이는 드리운 역경 앞에서 웃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목선오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봤다.
‘좋구나.’
어찌 어긋날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관계라 꿈꾸던 모습으로 드리워지니 기꺼움이 가득 차오른다.
아우가 있고 제자가 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이 있다.
목선오는 아이가 꼭 협객으로 자랄 수 있으리란 확신을 속에 인 채,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자, 원아. 때가 되었다.”
“네?”
“이 스승이 네게 내공을 일러주지 않은 일. 그것이 속상했던 것 아니더냐?”
목리원의 눈이 커졌다.
입은 슬그머니 벌어지고 있었다.
목선오는 그런 목리원에게 이어 말했다.
“사실,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 바로 수련에 들어갈 수 없었단다. 원이 너의 천성과도 관련된 일이다.”
흠칫.
목리원의 몸이 떨렸다.
목선오는 그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예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의 체질에 관한 이야기다. 들어주겠느냐?”
웃는 낯이지만 그 어딘가에 걱정의 기색이 있었다.
또한 긴장이 묻어있었다.
목리원은 스승의 그런 표정을 보며, 지금 나올 이야기가 사뭇 진지한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네…!”
하여, 그의 스승과 똑 닮은 긴장된 낯으로 이야기를 경청했다.
*
극마지체.
오로지 마공을 익히기 위한 체질이며, 동시에 무림 역사상 가장 악독했던 마인이 가졌던 체질.
목리원은 자신의 몸이 그런 체질이라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에 빠졌다.
하나 다행이라 해야 할 점이 있었다.
목리원이 더 이상 그런 것에 무릎 꿇을 정도로 여린 아이가 아니란 것이었고, 또한 다만 가진 무기가 사특함에 절망할 아이가 아니란 것이었다.
“스승님.”
“그래.”
“…그래도, 저는 협객이 될 수 있는 거죠?”
목리원은 그리 물었다.
목선오는 문득 고마운 마음을 떠올렸다.
아이가 절망하지 않고 자신을 똑바로 봐주는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레 느껴진 것이었다.
“내가 그것을 보증하마.”
“그럼 됐어요!”
목리원이 시원스레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일석은 찡긋 코를 찌푸리다, 이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극마지체가 마공을 위한 체질이라 하나, 그것이 정공을 익히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마일석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마일석은 고개를 빳빳이 든 채, 개중 목리원을 바로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혈도가 뒤집혀있다던가, 쌓은 내공이 거칠게 흘러 이지를 흐린다든가 하는 문제는 결국 네놈의 의지로 극복하면 될 일이다. 네놈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오로지 하나!”
마일석이 팔짱을 풀었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어 가슴을 탕! 하고 쳤다.
“그것을 이겨내고, 네놈을 시험하는 본성을 다스리는 일이다. 형님께서 지어준 그 이름에 맞게.”
목리원.
목선오의 성을 따, 목.
다스릴 리(理)자와 근원 원(?)자를 따서 리원.
스스로의 근원을 다스리는 아이가 되어라는 그 뜻을, 목리원 또한 알고 있었다.
목리원은 목선오를 바라봤다.
목선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볼게요.”
목리원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
수련은 고되었다.
첫날처럼 목선오가 이끌어주지 않고, 오로지 제 힘으로 내공을 운기하니 드러나는 문제가 있었던 까닭이다.
목리원의 몸은 마공을 위한 몸이다.
또한 목리원이 이고 있는 천살성은 살기에 차 있는 별이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며 형성된 목리원의 내공은, 그의 몸조차 갉아 먹을 정도로 광폭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소주천을 바랄 수 없었다.
그저 내공을 단전에서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온 전신이 찢어발겨지는 고통이 느껴졌기에, 또한 심장이 쿵쿵 뛰며 머릿속을 헤집었기에.
목리원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내공이 제 통제 아래에 들어오도록 이를 악 물며 버티는 일뿐이었다.
“원아, 너는 할 수 있다.”
목선오의 응원이 있었다.
“버텨라. 네놈이 진정 협을 바란다면 이런 일에 쓰러져선 안 된다.”
마일석의 다그침이 있었다.
그렇게 약 이주.
드디어 내공을 운기해도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된 날.
그리하여 혼자만의 힘으로 소주천을 엮은 날.
목리원은 살아생전 처음으로 목선오의 눈물을 봤다.
“장하구나….”
목선오가 목리원을 끌어안았다.
목리원은 멍한 얼굴을 만들었다.
그의 스승의 눈물이, 그와 함께 전해지는 목소리 속의 뜨거운 열기가 도저히 현실로 느껴지지 않은 까닭이다.
머뭇거림이 속에 자리하길 잠시, 뒤늦게야 자신이 내공을 다루는 데 성공했음을 깨달은 목리원은 그의 스승과 똑 닮은 울상을 한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됐어요…!”
사제가 서로를 끌어안는 광경엔 묘한 훈훈함이 있었다.
마일석은 그 모습에 삐죽삐죽 입꼬리를 올려대다, 헛기침을 하며 그 앞으로 다가갔다.
“훌륭했다.”
목리원의 몸이 흠칫 떨렸다.
마일석이 칭찬을 건네는 일이 이번이 처음이었던 까닭이다.
고개를 든 목리원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삐뚜름하게 웃고 있는 마일석이었다.
“응당 칭송받아야 할 일을 했으니, 네놈에게 그에 맞는 선물을 주어야겠지.”
마일석이 품에서 서책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목리원에게 건넸다.
목리원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강호협객전….’
목리원이 아는 책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들어본 책이었다.
처음 자신의 기벽을 마주한 날 밤, 목선오가 꼭 보여주겠다고 일러준 바로 그 책이었다.
“축하한다. 이제 너는 이류(二?)다.”
이류(二?).
이제야 진짜 무인이라 말할 수 있는 경지.
진정 협객의 길 위에 발을 얹을 수 있게된 경지.
목리원은 그것이 점차 실감나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방정맞게 콩콩 뛰었다.
얼굴 위론 홍조가 한가득 피어올랐다.
목리원은 간질간질 타들어 가는 속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목선오와 마일석을 번갈아 보다, 이내 빵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
『온 중원에 일러라. 가장 악독한 악이 네놈들을 벌하러 왔음을.
지옥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마귀가 네놈들을 끌어내리러 왔음을.
타인의 재물을 탐한 죄인아, 너는 네 품에 무엇도 두지 말아라.
타인의 가족을 해한 죄인아, 너는 네 곁에 누구도 두지 말아라.
타인의 정을 향한 죄인아, 너는 네가 행한 죄악의 백배가 되는 벌을 받을 것이다.
독을 독으로 이겨 낸다 이르니, 열기는 열기로 이겨 낸다 이르니.
그렇다면 다만 악은 악으로 이겨내야 할 것이니.
내 가장 악독한 마인이 되어 이 중원의 악을 거두어 갈 것이다.
중원의 죄인들은 두려워하며 나를 보아라.
나는 세상 모든 악업의 위에 서서 그것들을 벌하는 마귀가 되어, 마협(??)이라 칭해질 이다.』
탁.
호롱불이 아련하게 빛나는 방안.
목리원은 붉어진 얼굴로 책을 덮었다.
‘마협…!’
가장 두려운 마귀가 되어 악한 이를 벌하는 협객.
그의 이야기가 적힌 부분을 모두 읽은 목리원은 설렘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멋있다!’
멋스럽다.
그 외의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서사라고, 목리원은 그리 생각했다.
목리원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상상했다.
어른이 된 자신이 벌판 위에 서있는 것을, 그 앞에 온갖 흉흉하게 생긴 죄인들이 긴장하고 있는 모습을.
자신이 칼을 뽑아 들자 죄인들의 안색이 새하얘진다.
멋지게 보법을 밟으며 움직이자 죄인들이 비명을 지른다.
눈물을 훔치며 무릎 꿇은 죄인들 앞에서 자신이 말한다.
두려워하라! 나는 마협, 너의들을 벌할 지옥의 마귀다!
부르르.
목리원의 몸이 떨렸다.
저 혼자 이불 속에서 헤실헤실 웃던 목리원은, 좀처럼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기분에 벌떡 일어나 문을 바라봤다.
‘수련해야 해!’
어서 고수가 되어서 강호를 나가고 싶었다.
저 강호협객전의 마협처럼, 악인들을 벌하며 이름을 드높이고 싶었다.
살금살금.
이불 속에서 나온 목리원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틈새로 밖을 바라봤다.
아무도 없었다.
지금이라면 나가서 수련을 할 수 있을 터.
목리원은 방을 빠져나가 신을 신었다.
그리곤 혹시 스승님이 잠에서 깰까 싶어 조심스레 초가집에서 멀어졌다.
도착한 곳은 냇가였다.
목리원은 ‘후읍’ 숨을 들이켜곤 단전의 내공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손에 쥐어진 것은 보잘 것 없는 나뭇가지.
들끓는 것은 이제야 겨우 힘겨루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기가 죽은 사나운 내공.
목리원은 눈을 감고 검을 휘둘렀다.
휘익.
머릿속에 남아있는 목선오의 검무를 어설프게 따라 추기 시작했다.
드디어 가야 할 길을 알게 된 어린 소년의 검무가 달빛 아래서 이어지고 있었다.
“저저 성질 급한 놈.”
고요한 냇가.
목리원이 검무를 추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마일석이 혀를 쯧쯧 찼다.
목선오는 그런 마일석의 태도에 웃으며 말했다.
“열정이 있는 것이니 좋은 게 아니더냐.”
“형님은 어찌 그리 세상을 밝게만 보려 하오?”
“아우는 세상을 삐뚤어지게만 보는구나.”
마일석이 표정을 구겼다.
목선오는 지그시 웃는 얼굴로 목리원을 바라보며 낮게 읊조렸다.
“대견하지 않느냐.”
“무엇이 말이오.”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려는 모습이.”
목선오의 검은 눈동자엔 소년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는 펼쳐진 광경에 한껏 만족을 드러내며 휘어져 있었다.
“저리 일어나 노력할 줄 아는 이가, 진정 협객이 되는 것이지.”
*
목리원의 시간은 빨랐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목리원의 곁에 있는 것은 두 명의 스승과 한 권의 책, 그리고 손때 묻은 목검이었다.
휘익.
휘익.
달빛 아래의 검무가 이어진다.
목리원의 키는 이전보다 한 뼘 더 자라 있었다.
이제 10세가 된 목리원은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이 달밤의 수련을 이어가던 중, 돌연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내공이….’
몸을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곳으로 이어지려 하고 있었다.
부우웅.
검무는 멈추지 않았다.
목리원은 이 기이한 현상이 무엇의 전조인지를 알고 있었다.
“아….”
나지막한 탄식과 함께 목리원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어가는 동작에는 더욱 큰 힘이 실렸다.
즐거움이 속에 차오른다.
간질거림이 더욱이 이어진다.
그저 기꺼움이 차올라 검무를 이어가던 와중, 목리원은 깨달았다.
‘이것이었구나.’
휙!
드디어 몸을 넘어 검에까지 기를 실을 수 있는 경지.
강호가 말하길 일류(一?)에 해당하는 경지에, 자신이 올랐다는 것을.
*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목리원의 검무도 이어졌다.
달빛을 벗 삼아 냇가에서 검무를 이어가던 소년은, 어느새 남성적인 태를 지닌 청년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얼굴의 선은 얇았다.
피부는 뽀얗고 속눈썹 또한 길었다.
미남보단 미인이라는 말이 어울릴 인상이었으나, 그럼에도 길쭉하게 자라난 그의 체격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남성의 것이었다.
휘익.
휘두르던 목검은 어느새 철검이.
그저 어설프기만 하던 검무는 이제와 꽤나 아름다운 선을.
흘러간 시간에 따라 더욱 완숙해진 검무를 이어가던 목리원은, 돌연 동작을 멈추고 자리에 섰다.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뜨고선 저 하늘의 달과 그 주위를 수놓는 별을 바라봤다.
‘…밝다.’
세상이 잠드는 밤이었음에도 하늘만큼은 밝았다.
아릿하게 빛나는 천체는 이 밤이 외롭지 않도록 한결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목리원은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지그시 미소 지은 채로, 검 끝을 흔들어 별과 별을 이었다.
그리하며 성련신공의 구결을 외웠다.
별자리를 잇는 길을, 그 길 아래 서 있는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앞에 밤하늘을 반사하는 냇가를.
휘익.
하나하나 길을 그어가던 검 끝의 흔들림이 어느새 하나의 검로로 화했다.
그 검로 위로 또 다른 검로가 떠올랐다.
하늘과 땅, 그리고 나를 별자리로 엮어 이어낸 검이 쿵쿵 맥동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맥동하는 내공이 있었다.
목리원은 긴긴 시간 드잡이질해 온 유쾌하지 않은 친우를 다독여 자신이 만든 길 위에 얹었다.
사아아.
바람 소리가 일었다.
목리원의 움직임이 멎었다.
“되었다.”
목리원은 크게 웃으며 검무를 멈췄다.
그리하며 자신의 검 끝을 바라봤다.
검 위로 떠올라있는 것이 있었다.
저 밤하늘처럼 새까만, 그럼에도 시린 광채를 뿜어내는 묘한 기파.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스승의 눈동자를 똑 닮은 그런 기파.
목리원은 이 묵색의 빛을 칭하는 법을 알았다.
‘검기상인(??人).’
절정지경의 무리.
18세의 청년 목리원은, 밤하늘 아래 검무를 추던 중 그것을 깨우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