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5화 (5/334)

〈 5화 〉 일장 ­ 유년기 (4)

* * *

“돕겠소.”

초가집으로 돌아온 마일석이 말했다.

목선오는 눈을 끔뻑거리며 멋쩍은 표정의 그를 바라봤다.

목선오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직전까지 도저히 돕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역정을 내던 그가 갑자기 이리 돌변한 탓이다.

잠시 이어지던 생각.

하나, 그 끝에서 목선오가 한 일이라곤 그저 웃는 것뿐이었다.

“고맙구나.”

아무렴, 아우가 심경에 변화를 겪고 이리 다가와 주었으니 다른 게 중요하겠는가 하는 생각의 발로였다.

*

드디어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다.

웃는 얼굴의 목선오와 뚱한 얼굴의 마일석을 앞에 두고, 목리원은 눈을 끔뻑대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던 중, 마일석이 말했다.

“오늘부터 이 걸왕이 네놈의 수련을 도울 것이다.”

통보식의 말이었으나, 목리원은 그것에 환한 미소를 띄웠다.

“정말입니까?!”

마일석의 몸이 흠칫 떨렸다.

나름 무게를 잡아보자고 한 일에 저리 좋다고 달려드니 대뜸 머쓱함이 차오른 탓이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마일석은 재차 표정을 굳히며 목리원에게 이어 말했다.

“그래, 네놈의 성질이 기이한 구석이 아주 많은 까닭이다.”

“기이한 구석이요?”

“네놈은 네 놈이 어떤 별을 타고났는지 알고 있느냐?”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살성입니다!”

“그렇다면 그 별이 왜 살귀의 별이라 불리는지도 아느냐?”

대답을 하려던 목리원은 덜컥 몸을 멈춰 세우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것에 대해선 잘 몰랐다.

당장 천살성이란 개념에 대해 알려준 목선오부터가 ‘이 별을 타고난 사람은 살겁의 운명을 이고 살게 된다’식의 뭉뚱그린 말만을 한 까닭이었다.

목리원이 입을 다물며 떠오른 침묵 속에서 마일석은 한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마일석의 시선이 불만스러운 기색을 품은 채 목선오를 향했다.

목선오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변명하듯 눈초리에 답했다.

“좀 더 크면 알려줄 생각이었다.”

“형님이 어지간히도 그랬겠소.”

“끄응….”

마일석은 재차 시선을 목리원에게로 옮긴 후, 엄한 목소리로 하던 말을 이어 내뱉었다.

“듣거라.”

“예!”

“천살성이 살귀의 별이라 불리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턱­.

마일석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목리원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마일석을 올려봤다.

굳게 굳은 시선은 어딘가 차가운 기색마저 품고 있었다.

그런 중에 느껴지는 위압감은 목리원이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형태였다.

“천살성을 타고나는 이들이 가지는 기벽이 있는 까닭이다.”

그런 말을 건넨 마일석이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

그리고 날붙이 부분을 손바닥 위에 가져다 댔다.

“기벽이요?”

“그래.”

무슨 행동을 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목리원은 저것이 그리 유쾌한 것을 아닐 것이란 생각을 떠올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마일석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목리원을 노려보며, 답과 함께 단도를 그었다.

뚜둑­.

“바로 피를 보면 흥분에 휩싸인다는 것이지.”

목리원의 시야를 붉은 피가 메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목리원은 느꼈다.

쿵­.

심장이 무겁게 박동하며 몸에 열이 올라오는 듯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짜릿한 감각을.

*

목리원이 눈을 뜬 것은 휘영청 뜬 달이 밤하늘을 밝히는 시간이었다.

멍하니 제 방의 천장을 바라보던 목리원은, 직후 잠들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내고선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스승님!’

기억나는 장면은 그랬다.

붉고 비릿한 액체가 시야를 가득 메우는 그 순간, 심장이 크게 벌렁거리는 기분과 동시에 묘한 갈증을 느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로 속이 뜨거웠고, 시선은 피가 샘솟는 마일석의 손바닥 위에서 떨어지질 않았었다.

그래서 마일석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을 목선오가 막아섰다.

목리원은 그제야 그 모든 일을 다 기억해내곤 헐레벌떡 방을 나섰다.

“깼느냐?”

바로 앞에 보이는 마당, 그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던 목선오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평온한 말투로 건네진 말에, 목리원은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스승님…?”

“몸은 어떠하느냐.”

어떠하냐니, 당연 멀쩡하다.

멀쩡할 수밖에 없었다.

마일석에게 달려들던 순간 자신의 이빨질을 멈춰 세운 것은 목선오의 팔뚝이었으니.

목리원의 시선이 목선오의 왼 팔뚝을 향했다.

목선오 또한 그 시선을 느끼곤 웃으며 답했다.

“이 스승은 괜찮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목리원은 왜인지 그 목소리에 울컥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왜 우는 게야.”

목선오가 목리원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를 쓸었다.

목리원은 목이 꽉 막히는 기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스승님….”

“그래, 이 스승이 여기 있다.”

톡.

톡.

머리를 쓰다듬던 목선오가 어느새 목리원을 끌어안아 등을 토닥였다.

목리원은 히끅히끅 숨을 헐떡이며 이어 말했다.

“저는 마인이 되는 건가요…?”

두려움 탓이었다.

낮의 일이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와, 자신이 앞으로 피만 보면 그런 무서운 일을 할 것만 같아 덜컥 겁이 난 것이었다.

“저는, 협객이 될 수 없는 건가요?”

마일석은 말했다.

천살성은 피를 보면 흥분하게 되는 기벽이 있다고.

그 탓에 살겁을 몰고 다니는 별이라 불린다고.

실로 옳은 말이다.

이리 두려운 와중에도 목리원은 피를 떠올리자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참으로 짜릿하면서도 두려워, 앞으로도 평생 이리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차올라 불안해졌다.

목선오는 울먹이는 목리원의 모습에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을 느꼈다.

어찌 모르겠는가.

성정이 그리 유약하여 덫에 걸린 토끼조차 가만 보지 못하는 이 아이에게 이 기벽이 얼마나 무섭게 다가올지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겠나.

사실, 마일석의 방법은 목선오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종류였다.

충격을 줘서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취지는 좋으나, 그보다 먼저 아이에게 겁을 줬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였다.

목선오는 목리원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하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답했다.

“틀렸다. 너는 협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아.”

목선오가 끌어안고 있던 목리원을 놓아준 후, 양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인과 협객의 다른 점이 무엇인 줄 아느냐?”

목리원은 답하지 않았다.

목선오는 그런 목리원을 향해 지그시 웃어주며 말을 이었다.

“바로 가진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나쁜 마음이 드는 순간에도 그것을 꾹 참아낸다는 것이다.”

아이를 위한 설명은 어려웠다.

아직 세상에 밝지 않은 만큼 어려운 말이나 이념보단 가슴을 울리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점이 그랬고, 또한 추상적인 개념을 직관화 해야 한다는 점이 그랬다.

목선오는 가만 목리원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가다, 이내 그런 질문을 건넸다.

“원아.”

“네….”

“정순한 내공을 가진 이가 그 힘을 바르게 쓴다면 그것은 협객이겠느냐?”

목리원은 울음기를 꾹 참아내며 고민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실히 답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목선오가 목리원에겐 그런 이였던 까닭이다.

목선오는 웃으며 다음 질문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리 정순한 무공을 가진 이가 그 힘으로 남들을 착취하면, 그때 너는 그를 협객이라 부를 것이냐?”

목리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아는 협객은 남들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었지, 착취하는 이는 아닌 까닭이다.

목선오는 이어 물었다.

“그럼 사악한 내력을 가진 이가 그 힘으로 남들을 돕는다면 말이다.”

목리원의 몸이 움찔 떨렸다.

목선오는 조금은 장난스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는 그를 협객이라 부를 테냐, 그도 아니라면 가진 내력이 사악하니 마인이라 부를 테냐?”

목리원의 입술이 뻐끔거렸다.

눈은 어느새 목선오를 마주하고 있었다.

“원아.”

“네….”

“검에는 눈이 없단다. 검은 상대를 가리지 못하고, 또한 선악을 말하지 못한다. 검에게는 오직 그것을 휘두르는 검수만이 있을 뿐이야.”

목선오의 손이 목리원의 얼굴을 쓸었다.

방울방울진 눈물이 그의 손에 의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조금 사악한 검이면 어떻더냐, 또한 보기 흉하게 생긴 검이면 어떻더냐. 그걸 휘두르는 네가 협의를 안다면 그것으로 족한 이야기가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그 검은 협객의 검이 아니더냐.”

목리원은 그저 건네지는 말을 들으며 그의 눈 속을 들여다봤다.

눈동자는 온통 새하얀 그에게서 유일하게 검은 부분이었다.

검은 것은 주로 악한 것에 빗대어지는 면이 있었다.

목리원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 그럼에도 목리원이 검은 것과 악한 것이 다름을 아는 이유는, 이리 검은 그의 눈동자에 깃든 것이 찬란한 별빛인 까닭이리라.

“아무리 너에게 악한 기벽이 있다 해도, 네가 그것을 억눌러 그 살의를 부정한 일에 쏟아낸다면 될 일이 아니겠더냐.”

목선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마협(??)이라는 이가 있단다.”

“마협…?”

“그래, 마협. 사악한 마공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 힘으로 악한 이들을 징벌한 남자의 이름이다. 저 도시의 책방에 가보면 찾을 수 있는, ‘강호협객전’이라는 책에도 실린 사내이지.”

목리원의 눈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목선오는 멋쩍은 듯 웃으며 이어 말했다.

“너라고 해서 그 사내처럼 되지 말란 법은 없는 게 아니냐.”

실은, 거짓이었다.

마협이라는 사내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었고, 지금 말한 ‘강호협객전’이라는 책은 그저 흥미를 위해 쓰인 잡서에 불과했다.

아니, 그조차도 마인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지탄받는 책이었다.

하나 목선오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다 한들 어떤가.’

그런 허접하다 평가되는 잡서조차 이 아이처럼 간절한 이에겐 희망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원이 너는 네게 깃든 살의를 올바른 곳에 쏟아낼 수 있는, 그런 착한 아이가 아니더냐.”

말을 끝마친 목선오는 목리원의 답을 기다렸다.

목리원은 손끝을 움찔거리며 목선오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 깃든 별과, 저 밤하늘을 수놓는 별과, 그것들을 감싸 안는 뽀얀 달을 바라봤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라, 또한 너무나도 애틋한 풍경이라.

목리원은 가만 그 풍경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 너는 선하고 의를 아는 아이이니. 분명 협객이 될 수 있을 게다.”

목선오의 웃음소리가 목리원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 순간의 목리원은 깨달았다.

‘가슴이….’

더 이상 가쁘게 뛰지 않았다.

“내 걸개에게 일러 ‘강호협객전’을 구해와 주마. 너도 마협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 것이다.”

너도.

그 단어에 목리원은 물었다.

“스승님은 마협이 마음에 드세요?”

목리원은 마협을 몰랐다.

또한 그가 말하는 강호협객전을, 그리고 무림을 몰랐다.

그렇기에 목리원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였다.

그의 스승이자 어버이 되는 이가 과연 마에 속하는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는 것일까.

마(?)로 이룬 협을 옳다고 말해줄까.

목선오는 긴장한 목리원의 모습에 눈을 끔뻑이다,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아무렴, 그 또한 협객이니 싫을 리가 없지 않느냐.”

아이의 세계는 작았다.

고작 산골짜기의 초가집 하나와 그 앞의 냇가에서 끝나는 작은 크기였다.

그랬기에, 아이는 노인의 말에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자신의 세계를 지탱하는 어버이의 긍정에 함께 기뻐했다.

이날 아이는 비로소 또렷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생전 알지도 못하는 마협이라는 사내의 뒤를 쫓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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