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4화 (4/334)

〈 4화 〉 일장 ­ 유년기 (3)

* * *

초가집의 마루.

걸왕 마일석은 그의 오랜 의형과 마주한 채, 담장 너머로 이쪽을 흘긋거리는 목리원을 바라봤다.

“저게 그 아이요?”

“그럼 내가 그새 다른 아이를 데려왔을꼬.”

“…꽤 그럴 싸 하게 컸구려.”

약 7년 만의 재회였다.

마일석은 가라앉은 눈으로 목리원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목선오에게로 향했다.

“저 아이의 몸이 마공을 위해 만들어졌다. 혹 이런 사례가 더 없었는지 조사해달라. 그런 부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오.”

“그래.”

목선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내 무공을 가르치고자 했다. 한데 혈도가 저리되어 있으니 혹시 이 무공이 독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여하튼, 형님도 조심성은 참 많구려.”

마일석은 콧방구를 꼈다.

“일단 조사해오긴 했소. 맹의 서고를 뒤져보니 꽤 의외의 곳에서 저런 현상에 대한 것을 찾아볼 수 있더구려.”

“의외?”

“7년 전의 혈사.”

목선오의 눈이 커졌다.

마일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생각하시는 게 맞소. 그날 혈천교를 불태우며 가져왔던 자료들, 그 속에 어떤 대법에 관한 것이 있더구려.”

“대법이라 함은….”

“아이를 찾은 곳이 어디였는지 기억하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대전 뒤로 나 있던 쪽문의 혈향이 가득 풍기던 제단.

필시 아이를 향한 사특한 사술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던 장소였던 만큼, 그곳에 대한 것은 아직도 목선오의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이다.

목선오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미 대법을 끝낸 몸이다. 그리 말하고 싶은 것이냐.”

“그렇소. 서책에는 대법이 그런 이름으로 적혀있더구려.”

마일석은 표정을 굳히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어 말을 꺼냈다.

“극마지체(??之?).”

목선오가 헛숨을 들이켰다.

표정은 형편없이 구겨지고 있었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저 극마지체라고 하는 신체가 무엇인지 정도는 무림에 발을 담근 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천마의 육신.”

“그렇소. 3대 천마 이무백. 아직도 고금 제일을 꼽을 때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그가 극마지체를 타고 났었지.”

마일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또한 천살성을 타고 났었고.”

“…혈마는 이무백의 재림을 바랐던 것이더냐.”

“이젠 모르오. 그놈 모가지를 형님께서 베어버리시지 않았소.”

목선오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참으로 답답한 상황일진대, 어찌 물을 곳도 없으니 허탈함이 가득 차오르는 것이었다.

마일석은 그런 목선오의 마음을 이해했다.

왜 아니겠는가.

자신의 이름까지 버려가며 거둬들인 아이가, 제게 내린 운명을 극복하게 만들겠다 단언한 아이가 마공을 익히기 위해 만들어진 신체를 가지고 있다 하니 답답하지 않은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나 그런 감정적인 부분을 빼고 생각해보자면, 마일석은 이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형님.”

“말하거라.”

“…아직 늦지 않았소.”

목선오의 눈이 부릅 뜨였다.

마일석은 그런 그의 기색에도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형님의 뜻을 존중하고자 그날 나서지 않았소. 또한 형님의 협의를 알기에 이곳에 오기까지도 최선을 다했소. 한데 보시오. 결국 저 아이에게 내린 운명은 개인의 노력으로는 바꿀 수 없는 형태요. 그러니 이제 포기….”

“그만­!”

목선오가 호통을 쳤다.

마일석의 입은 꾹 다물렸고, 멀리서 둘의 이야기를 엿들으려던 목리원은 호통에 깜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두 개의 시선이 목리원에게 꽂히고, 목리원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자리를 떠났다.

목선오는 슬픈 낯으로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만하거라.”

“형님….”

“걸개야.”

마일석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가 이리 옛날 별명으로 자신을 부를 때면 어떤 말을 이어갈지 너무나도 잘 아는 탓이다.

“나는….”

목선오가 말을 이어가려던 와중, 마일석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멈추시오.”

목선오의 시선이 마일석을 향했다.

마일석은 입술을 꽉 깨물다, 이내 그런 말을 이었다.

“또 나를 설득하려 하는 것이겠지. 그놈의 협을 부르짖으려는 것이겠지. 한데 말이오….”

마일석은 말꼬리를 늘렸다.

지금 꺼내려는 말이 존경하는 의형에게 상처를 줄 말임을 알기에, 그렇기에 망설임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하나, 그럼에도 꼭 내뱉어야 하는 솔직한 마음은 그랬다.

“나는 저 아이가 싫소.”

마일석은 목리원이 싫었다.

마땅히 칭송받아야 할 위대한 협객의 이름을 빼앗은 아이가, 또한 그런 주제에 악으로 자랄 가능성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운 것이었다.

“저 아이만 없었다면 형님은 이름을 버리지 않아도 됐소. 아니, 다만 그뿐이었겠소? 정파 무림의 많은 고수들이 형님의 뒤를 따르고자 기꺼이 고개를 숙였겠지. 어쩌면 정파 무림은 형님의 이름 아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말은 길게 이어져 나왔다.

응어리진 채 몇 년간 삭혀 왔던 마음은 이제와 그간 곪아왔던 것을 죄다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소! 아직 많은 이들이 형님을 기다리고 있소. 그 고집을 꺾고 돌아오길, 다시 가장 드높은 별이 되어주길 바라는 이들이 있소!”

검성(??) 목선오.

그것은 틀림없이 이 무림에서 가장 찬란한 별의 이름이었다.

“고작….”

고작, 악으로 자랄지도 모르는 저런 핏덩이 하나 때문에 사라져도 될 이름이 아니란 말이다.

마일석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진 채 목선오를 꿰뚫었다.

목선오는 그런 그의 기색에 차마 다른 말을 더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속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나의 욕심이 이리도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또한 죄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한데도 속엔 어쩔 수 없는 고집이라는 것이 있었다.

아니, 이제와 말해보자면 애정이라 해야 할 것이 있었다.

목리원은 제 성을 나눠준 아이를, 숲속의 작은 동물들을 바라보며 웃는 아이를 도저히 내칠 수가 없었다.

“…미안하구나.”

마일석은 통탄해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의 의형은 이런 사람이었으니, 그의 고집은 단 한 번도 꺾인 일이 없었던 것이었으니.

허탈한 마음에 괜히 한숨만 푹푹 내쉬던 마일석은 이내 목선오에게서 몸을 돌렸다.

“미안하오. 내가 큰소리칠 입장은 아닌데….”

공간에 떠오르는 것은 침묵이었다.

마일석은 생각했다.

지금은 머리가 너무 뜨거워져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이라고.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오겠소.”

마일석이 자리를 떠났다.

남은 목선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침통한 속을 다스렸다.

*

마일석은 초가집을 나서 멍하니 걸었다.

오면서 확인한 바로,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냇가가 하나 나올 것이니 그곳에서 세수라도 하고 하는 것이었다.

수풀을 헤치고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 그렇게 냇가에 도착한 마일석은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인영에 표정을 구겼다.

“…아! 걸왕님!”

목리원이었다.

뽀얀 피부와 까만 머리칼, 그리고 계집아이 같은 인상.

마일석은 ‘쯧’하고 혀를 차며 목리원을 지나쳐갔다.

“왜 여기 나와 있는 게냐.”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심각해 보여서 방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박또박 말하는 꼴이 꽤나 영특해 보인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마일석은 뒤늦게 몸을 흠칫 떨며 생각을 지워냈다.

“…흥, 꼴에 분위기는 읽을 줄 아는구나.”

이런 태도가 유치한 것은 알고 있다.

한데 어쩌겠는가.

이 아이 탓에 의형이 잃었던 것을, 그리고 정파 무림이 잃었던 것을 생각하면 속이 다 뒤집히는 걸 어떡하겠는가.

암만 봐도 곱게는 보이지 않는 목리원의 행색에 마일석이 표정을 뚱하게 만들던 중, 목리원이 말했다.

“걸왕님은 스승님의 아우지요?”

“…뭐?”

“스승님께 들었습니다! 자신이 아는 협객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사람으로 의형제인 걸왕이 있다고! 그래서 걸왕님께서 이름을 말씀하셨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이리 퉁명스레 대하고 있음에도 개의치 않는 것인지, 목리원은 환한 얼굴로 팔을 이리저리 휘저어가며 설명을 이었다.

순간, 마일석은 목리원의 말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형님이 말이냐…?”

형님이 이 아이에게 자신에 대한 것을 이미 이른 듯했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절로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네! 한 번씩 무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걸왕님의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같이 잔혈곡에서 사투를 벌였던 일이나, 청룡비무회의 결승에서 만났던 일이나, 또오…!”

재잘대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새의 지저귐과도 같은 청아한 목소리였다.

마일석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속 어딘가가 뭉클해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다….’

기억하고 계셨던 것인가.

이미 잊고 은거하신 줄로만 알았건만, 더 이상 그 시절을 추억하지 않으실 줄로만 알았건만.

“…아! 특히 재밌었던 것은 청혈색귀와 사투를 벌인 이야기였습니다!”

“으, 음?!”

감상이 이어지던 중, 걸왕은 ‘청혈색귀’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청혈색귀.

무림맹의 정보를 빼내려던 혈천교의 마녀.

마일석의 생에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몇 안 되는 이름이었다.

그녀에게 홀딱 넘어갈 뻔한 것을 목선오가 구해준 일을 계기로 의형제가 됐으니, 이 이야기가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것에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청혈색귀요!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걸왕께서 사흘 밤낮으로 요녀의 발을 묶어두셨다고! 그날 걸왕님이 없었다면 청혈색귀는 절대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묶어두기는 했다.

아니, ‘묶였다’라고 말해야 할까.

그만 여색에 홀려 사흘 밤낮으로 쥐어짜인 그 날의 일은, 마일석의 인생사에 가장 부끄러운 기억 중 하나였다.

“커, 커흠…!”

마일석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린 목리원은 그 연유를 알지 못해 그저 동경이 묻어나는 눈으로 마일석을 바라봤다.

수치심에 몸을 떨던 중, 마일석은 뒤늦게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지금 내가 이 아이를 마주하며 사특한 기색을 느꼈는가.

이 아이에게서 마기를 느꼈는가.

떠오른 의문에 마일석의 기색이 심각해졌다.

시선은 그런 기색을 그대로 담은 채 목리원을 향했다.

목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순수하게 빛나는 눈망울.

자세히 보면 붉은 기색이 보이는 다갈색의 눈동자.

…그 속에는, 마일석이 염려하던 그 어떤 사특함도 없었다.

“….”

마일석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래, 생각해보면 목선오가 아이에게 나쁜 일을 가르칠 리는 없었다.

아이의 운명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형태라 한들, 목선오는 그런 아이에게도 사랑을 줄 위인이었다.

냇물이 줄줄 흐르는 냇가 앞에서 마일석과 목리원의 시선이 부딪치던 와중, 돌연 마일석이 물었다.

“너는 말이다.”

“네?”

“너는….”

마일석은 잠시 입을 뻐끔거리며 말을 골랐다.

혹시 저 눈에 홀려버리기라도 한 것인가.

스스로도 연유를 알 수 없는 의문이 차올라, 7년 전의 그날 떠올렸던 ‘혹시’라는 기대감이 다시 차올라 마일석은 이내 말을 내뱉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냐.”

목리원은 마일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가.

그것에 관한 의문이 떠오른 까닭이다.

그럴 정도로 목리원이 되고 싶은 것은 명확했다.

“협객이 되고 싶습니다! 스승님처럼 대단한 협객이요!”

마일석이 눈이 슬쩍 커졌다.

주먹은 으스러질 정도로 꽉 쥐어지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라니요?”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 협객이 되어서 무명을 높이고 싶다거나, 힘과 권력, 그리고 재물을 가지고 싶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일부러 구체적인 예시를 들었다.

이 아이가 차라리 저 중 하나를 입에 담아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길 바란 까닭이다.

그리하면, 이 아이를 원망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조금은 가실 것 같은 까닭이다.

하나 목리원은 그런 마일석의 바람을 들어줄 정도로 속세에 밝은 이가 아니었다.

목리원은 그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스승님의 검에서 별을 보았습니다. 정말 눈부시고, 또 아름다워서 눈을 감으면 지금도 스승님의 별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하며 눈을 감았다.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저는 스승님의 별이 좋습니다. 바라보고 있으면 온 세상이 환해지는 것 같아서 어두운 밤에도 그걸 생각하면 무섭지 않아집니다.”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였다.

목리원의 목소리에 깃든 것은 분명한 형태의 갈망이었고, 또한 애틋한 사랑이었다.

“저도 그런 별을 품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비춰주고 싶습니다.”

목리원이 눈을 떴다.

마일석이 계집아이 같다 평한 그의 인상은, 초승달 모양으로 눈이 접히며 더욱 어여쁘게 피어나고 있었다.

“제가 가지고 싶은 별은 스승님의 별입니다. 그리고 스승님의 별은 협객의 별입니다. 그래서, 저는 협객이 되고 싶습니다.”

마침내 끝난 목리원의 말끝에서 마일석은 허탈하게 웃었다.

“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저 원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런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한데도 마일석은 아이의 모습에서 누군가를 겹쳐볼 수밖에 없었다.

“…너는 참 건방진 꼬맹이구나.”

환히 웃는 목리원의 미소는, 정말 목선오에게서 똑 떼어온 듯한 멋스러운 협객의 미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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