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일장 유년기 (2)
* * *
다음 날의 아침은 분주했다.
설렘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 목리원이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소란을 벌인 탓이다.
“인석아, 그리 보채지 않아도 나는 어디 가지 않는단다.”
“헤헤… 그래두요.”
“마음을 급히 먹는 것은 무학을 익히는 데에 좋지 않은 습관이니, 마음을 느긋이 먹는 버릇을 들이도록 하거라.”
“네!”
대답은 참 잘한다.
목선오는 그런 생각이나 떠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리하고선 조금 이른 아침 식사를 끝낸 후 목리원을 마당으로 이끌었다.
“자,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갈 것이다. 각오는 되었느냐?”
“네!”
“정말로?”
목선오가 눈을 좁게 만들며 물었다.
목리원은 그 눈빛에 흠칫 몸을 떨며 재차 고민했다.
그러길 잠시, 이내 자신에게 더 필요한 준비는 없다는 생각을 띄운 그가 답했다.
“네! 정말로요!”
목리원은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오늘은 한낮에 별을 쏟아내는 일을 배우는 날이니만큼, 노인이 어떤 신비로운 가르침을 선사해줄지에 대한 기대가 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콩닥콩닥.
목리원의 어린 심장이 분주하게 박동을 이어가는 와중, 목선오가 말했다.
“그럼 일단 마보부터 배워보자꾸나.”
목리원의 표정이 멍해졌다.
*
마보(馬?).
양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린 채 직각이 되도록 무릎을 굽혀 만드는 자세.
이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그리고 평생을 이어가는 수련 중 하나이지만 목리원이 그것을 알 턱은 없었다.
상식이 모자란 목리원은 그저 의아해했다.
일단 마보를 시키기에 하고는 있지만, 힘들기만 한 이런 자세를 하는 것이 별을 쏟아내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목선오는 그런 목리원의 기색을 알아챘다.
그리하여 설명을 덧붙였다.
“원아, 나무를 지탱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뿌, 뿌리요…!”
“그래, 뿌리 깊은 나무가 어디 잔바람에 흔들리더냐?”
“아… 니요!”
“무공도 이와 같다. 인체 속에 자연의 섭리를 담아 그것을 표하는 것이 곧 무공이니, 너는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육신의 뿌리의 역할을 하는 하체부터 다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목선오의 어조는 엄했다.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목리원이 반박할 여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무인을 분류할 때엔 가진 내공의 수위로 그 수준을 가린다 했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 보편적인 기준일 뿐이다. 무공을 펼치는 것은 결국 육신. 제아무리 내공이 고강하다 한들 그것을 펼칠 육신이 보잘 것 없다면 무공의 위력은 십 분의 일도 발휘되지 않는 게 옳지 않겠느냐.”
길게 이어지는 말.
하나 목리원은 집중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그는 아직 어린 7세의 소년이다.
제아무리 재능이 넘친다 한들, 당장의 근육은 말랑말랑하기 그지없었고 체력 또한 받쳐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집중해보고자 노력했으나, 그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
목리원은 그저 끙끙대며 마보를 이어갈 뿐이었다.
“진정 고수가 되고 싶다면 내공을 통한 경지 상승보다 단단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뿌리…! 기반…!’
날씨는 얄미울 정도로 화창했다.
목리원은 내리쬐는 햇살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들려온 말 중 겨우 몇 단어만을 수습하여 되뇌었다.
튼튼한 하체.
긴 시간 이어질 목리원의 수련은, 여느 이들과 같이 그것을 만드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세 달이 지났다.
그간 진행된 목리원의 수련 진도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더뎠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천살성을 타고난 이를 가르치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하나, 이는 목리원의 재능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목선오의 방침의 문제라 보는 것이 옳았다.
‘기를 느끼는 것은 한순간일 터다.’
목선오는 감히 예상했다.
이 아이는 기를 몸에 흘려주는 순간, 이류의 경지에 해당하는 소주천을 완성할 것임을.
저 아이의 넘치는 재능은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단번에 해낼 것임을.
그렇기에 목선오는 섣불리 기를 다루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신체가 감당할 수 없는 내공은 원이를 상하게 할 터이니.’
무릇 바른 무학이란 심(心), 기(?), 체(?)의 삼요소가 골고루 어우러져 성장하는 것을 뜻한다.
한데 그것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기부터 일러주면 어떻겠는가.
몸 안에 넘치는 기(?)를 체(?)에 해당하는 육신이 감당하지 못해 혈도가 상하고 마는 것이다.
‘천천히, 그릇부터 다지는 것이 옳다.’
기를 느끼는 순간 온전한 이류에 오를 수 있도록, 그 순간 육신이 흘러들어오는 기를 감당할 수 있도록.
지난 세달의 일이 모두 그를 위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 옳으리라.
목리원에게 마보를 일렀다.
그 외에도 산을 내달리는 일을 일렀고, 또한 기본적인 정권 지르기와 앞차기를 일렀다.
그렇게 신체를 궤도에 올린 것이 오늘.
“그만.”
목선오의 말에 그제까지 마보를 하고 있던 목리원이 바닥에 엎어졌다.
전신은 삐져나온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내뱉는 숨은 헥헥대는 형태였다.
목선오는 그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다, 이내 말했다.
“이제 때가 되었구나.”
번뜩!
목리원의 눈이 뜨였다.
시선은 한껏 놀란 기색을 담은 채 목선오를 향했다.
“내공?!”
들뜬 외침은 어찌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목리원이 힘겨움을 꾹 참은 이유가 이것이 아니던가.
목선오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원이 네가 기를 느끼는 법을 배울 때가 된 것이다.”
목리원은 낑낑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한 후 정자세로 앉아 목선오를 올려다봤다.
“준비됐어요!”
“되기는, 그리 땀에 흠뻑 젖어서야 어디 운기에 집중이나 할 수 있겠느냐. 냇가에 가서 몸부터 씻고 오너라.”
목리원이 헐레벌떡 냇가로 달려갔다.
그리도 배움에 안달 나 있던 것일까.
목선오는 전신을 들썩이며 뛰어가는 목리원의 뒷모습에 너털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
앞마당은 고요했다.
아이의 설렘 가득한 긴장이 그런 고요함을 띄운 것이었다.
“원아, 가부좌를 틀어보거라. 가르쳐 준 것을 기억하고 있겠지?”
“네!”
목리원이 정좌했다.
처음 이 자세를 배울 때만 해도 가랑이가 아려오는 느낌에 낑낑댔던 목리원이었으나, 이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익숙하게 가부좌를 해내고 있었다.
“자, 오늘 익힐 심법이 무어라 했느냐?”
“성련신공(????)이요!”
“성련신공은 어떤 무학이라 했느냐?”
“마음속에 별자리를 새기는 무학이에요!”
“잘 외웠구나. 아주 장해.”
목리원이 히죽히죽 웃었다.
목선오는 그런 목리원의 등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성련신공을 창안하신 우리의 조사께서는 이르셨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빛날 별을 남기었으니, 이것으로 강호에 드리우는 암운을 물리쳐야만 할 것이라고.”
“네!”
“그렇기에 성련신공은 협객의 무학이다. 또한 인간의 무학이다. 원이 너는 수련을 이어감에 있어 이것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네!”
목리원은 힘차게 대답하며 이제껏 이론으로 배웠던 사실을 되새겼다.
‘목표는 10개.’
성련신공은 1성부터 10성까지 10단계의 성취가 있었다.
각 성취를 이룰 때마다 심상 속에 하나씩 별이 새겨지며, 또한 10개의 별을 모두 새기는 데에 성공하면 등선을 노릴 수도 있는 고강한 무공.
‘나는 이제 이류가 되는 거야.’
오늘 하나의 별을 새길 것이다.
그로 인해 드디어 무인이라 할 수 있는 이류의 경지에 다다를 것이다.
떠오른 생각에 목리원의 미소는 그칠 줄을 몰랐다.
목선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목리원을 바라보다, 이내 일을 시작했다.
“그럼 시작하마. 해야할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게지?”
“네! 구결을 외면서 스승님께서 이끌어주는 대로 기를 이끌어 소주천을 이룰 것입니다!”
“그래, 잘 기억하니 다행이구나.”
목선오는 다른 말을 더하지 않고 그대로 단전 속의 내공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사아아.
목선오의 몸에서부터 시린 별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이 목리원의 몸을 감쌌다.
목리원은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이제까지 알던 세상 위로 새로운 세상이 겹치는 감각.
또한 왜 이제까지 이것을 몰랐는지 의아할 정도로 당연하게 느껴지는 무형의 물질이 피부 위로 닿는 감각.
이르길 기(?)라 하는 만물의 근원을, 목리원은 이제야 느끼게 된 것이다.
‘신기해….’
어찌 이리 따스할까.
또한 어찌 이리 포근할까.
난생처음 마주하는 것임에도 그것이 세상 무엇보다 익숙하게 느껴지는 기분에 목리원의 사고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피부 위로 기가 닿는다.
그것이 스며들어 육신을 타고 흐른다.
세상과 나라는 경계가 흐트러지며 거대한 흐름이 어린 육신 안에도 새겨지기 시작한다.
무아지경(無?之?).
평범한 무인은 일평생 단 한 번도 겪기 힘들다는 스스로의 존재조차 잊는 깨달음.
목리원이 타고난 살귀의 운명은, 처음 기를 느낀 순간부터 그에게 그런 깨달음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심상에 하나의 별이 떠오른다.
그것이 아직은 그 빛깔을 완전히 정의 할 수 없는 가능성의 별.
그런 별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기를 느낀 날 바로 별을 만드는 것은 경이로운 수준의 성취였으나, 목리원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하나의 별이 아닌 그보다 더 높은 경지로.
흐릿하게만 보이는 두 번째 별이 있는 자리로.
목리원이 깨달음의 순간에 빠져 그것을 손에 쥐려한 순간.
“그만!”
목선오가 호통을 내질렀다.
깜짝.
몸을 들썩인 목리원이 번쩍 눈을 떴다.
홱 하고 고개를 돌린 목리원의 눈에 비친 것은, 다름 아닌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목선오였다.
“스승님…?”
목리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나, 목선오는 답할 수 없었다.
그조차도 예상치 못한 목리원의 어떤 특성 탓이었다.
내공의 깊이 문제는 아니었다.
목선오는 처음 그를 가르치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었으니.
깨달음이 너무 이른 문제도 아니었다.
무릇 뛰어난 무재(??)라 함은 시도 때도 없는 깨달음의 파도에 몸부림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 자신 또한 그런 과정을 겪었으니.
목선오의 얼굴 위로 이런 당황이 피어오른 이유는 단 하나.
‘혈도가….’
목리원의 혈도가 평범한 인간의 것과는 아득히 달랐던 까닭이다.
아니, 다르다는 표현보다 더 적합한 단어가 있었다.
‘…반대로 흐르고 있다.’
혈도가 뒤집혀있다.
피와 정기, 그리고 생명이 흐르는 그 길이 범인들이 가는 길을 거슬러 역으로 뻗어있었다.
목선오는 알았다.
이런 신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인간의 신체는 자연을 본 따 만든 것이다.
그중 혈도는 마땅히 걸어야 할 순리를 뜻하는 것이다.
그것이 역으로 뻗어있다는 것은 목리원의 혈도가 순리를 거스르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뜻.
…즉, 그의 신체가 마공(??)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
내공 수련은 취소됐다.
목리원은 입술을 삐죽이며 마당의 돌부리를 걷어찼다.
벌써 일주일.
내공의 수련은 이르다는 말을 남긴 목선오가 그 어떤 수련도 해주지 않고 있었기에 불만이 차올라 해낸 행동이었다.
‘내가 잘못할 걸까?’
혹시 내공을 느끼는 과정에서 해선 안 될 일을 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간 단련한 신체가 아직 목선오의 기준까지 성장하지 않은 걸까.
목리원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생각을 떠올리던 중, 자신이 스승을 실망 시켰다는 결론이 나와버린 까닭이다.
툭.
툭.
발끝이 돌부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마당에 울린다.
그러는 중 목리원의 눈망울은 점점 그렁그렁해졌다.
차오른 슬픔에 그만 눈물이 솟아오르려는 순간.
저벅.
발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목리원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스승은 지금 초가집 안에 있을 텐데, 발소리는 초가집과 반대되는 방향에서부터 들려오고 있는 까닭이었다.
‘모르는 사람…?’
살아생전 본 사람이라고는 목선오가 끝인 목리원이다.
하여 목리원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가장 먼저 긴장을 떠올렸다.
저벅.
저벅.
걸음 소리가 점점 커지고 가까워졌다.
그것에 목리원은 꼴깍꼴깍 마른침을 넘기며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바스락.
꼬질꼬질한 중년인이 수풀을 뚫고 나타났다.
안 씻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행색.
그리고 넝마라고 해도 될 헤진 옷.
이런 이를 표현할 방법으로 ‘거지’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목리원은 말했다.
“거, 거지?”
거지가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 성큼성큼 목리원에게 다가왔다.
직후.
빠악!
“걸왕(?王)이시다. 요놈아!”
거지, 걸왕 마일석이 목리원에게 딱밤을 먹였다.
* * *